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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날은 전부 휴가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아침까지만 해도 장마전선이 걸쳐져 있어서 그런지 꾸물꾸물 흐릿한 날씨에 추욱 처지는 피곤함이 가득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기분 좋은 느낌의 선선한 바람과 함께 햇살이 비추고 창밖에서는 새의 지저귐까지 들리니 휴일 오후의 여유로운 한때를 보내는듯한 기분이다. 이건 분명 이사카 코타로의 [남은 날은 전부 휴가]를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딘가에서 쭉 휴가를 만끽해주겠어. 내 인생, 남은 날은 여름방학이야. 숙제도 없이"라는 문장을 읽고 맛있는 점심을 먹고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날씨의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은 딱 그 느낌과 닮아있다. 감동을 주겠어,라는 결의따위는 없이 그냥 읽다보면 감동이 있는 것이다.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이런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이어지는게 어디있어,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그 뒷 이야기를 읽다보면 아하,하고 바로 수긍하게 되어버린다.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야기가 떨어져있으면서도 서로 이어지고 연결되어 있어서 유심히 읽게 되는데도 항상 어라? 하면서 다시 앞을 살펴보게 되곤 한다. 그냥 스쳐가는 인물인 것 같지만 어느 한 명 허투루 등장하는 사람이 없다. 그만큼 이사카 코타로의 글은 술렁술렁 쓰여진 듯 보여도 글을 다 읽고 나면 치밀하게 짜여진 이야기 속에 빠져들었음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가족과 젊은 남자의 독백같은 이야기로 시작된다. 남편이 바람을 피워 이혼을 하게 된 부부와 그로 인해 기숙사로 들어가면서 해체되어버리고마는 가족이 함께 하는 마지막 날에 젊은 남자 오카다의 메시지가 도착한다. 친구가 되어 드라이브도 하고 밥도 같이 먹자는. 그런 말도 안되는 메시지에 응답하는 가족도 가족이려니와 애초에 랜덤으로 그런 메시지를 보내 친구가 되자고 하는 젊은 남자도 어이없을만큼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정말 묘하게도 어쩔 수 없이 이들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이 다음에 이들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나지?
그리고 좀 더 이야기를 읽다보면 친구가 되자는 메시지를 랜덤으로 보내게 된 원인이 나오고, 그러면서 또 미조구치의 이야기가 나오고. 이건 뭔가 줄줄이 이어져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것 같지만 결국은 전체적으로 하나의 이야기가 완성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비로소 '남은 날은 전부 휴가'의 의미가 다가온다.
사실 처음 읽기 시작할때는 "과거만 돌아보고 있어봐야 의미 없어요. 차만해도, 계속 백미러만 보고 있으면 위험하잖아요. 사고가 난다고요. 진행방향을 똑바로 보고 운전해야지. 지나온 길은 이따금 확인해보는 정도가 딱 좋아요."(40)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의미만을 찾았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그 말과 "내 인생, 남은 날은 여름방학이야. 숙제도 없이."라는 말은 이제 앞으로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하는지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게끔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진다.
솔직히 천천히 걸어가면 되는 것이 나답게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생각했지만, 속도와 상관없이 '날 수 있다'는 경험을 해본다는 의미에서 나의 '사는 방식'을 생각해보게 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날아가면 8분, 걸으면 10분, 메일은 한순간. 그렇다 하더라도 날 수 있으면 날아야 해. 그런 경험, 안 하는 게 손해지˝
˝8분이고 10분이고 큰 차이 없다고 말하는 건 `어차피 인간은 죽으니까 뭐든 상관없어`하고 말하는 거랑 같잖아˝
˝어차피 언젠가는 죽지만 사는 방식은 중요한 거야˝ (2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