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것을 먹은 새악시
새악시는 먹보였습니다. 먹보 새악시는 오늘 아침에도 밥 한 양푼을 다 먹어 치우고 트림을 끄윽 했습니다. 시어머니가 놀라서 호들갑을 떨어도 먹보 새악시는 밥상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머뭇거렸습니다.
새악시는 시집 올 때부터 많이 먹었습니다. “야야, 제발 음식 조심하거라. 숟가락은 들었다 놓고 신부 술도 권하면 잔에 손만 부딪치고 고갤랑 다소곳이 숙이고 있어야 헌다.” “걱정 마이소. 어무이예.”
시집을 가는 딸을 앞에 놓고 신신당부를 하시던 어머니께 대답은 시원하게 했지만 새악시가 시댁에 도착했을 땐, 벌써 속이 헛헛해오기 시작했습니다. 아침부터 연지곤지 찍고 치장하느라 아침도 대강 먹었고, 시댁 식구들에게 절을 하고 어쩌고 하다 보니 점심때가 꼭 차서, 아주 허기증까지 나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폐백 절차가 끝나고 겨우 각시방에 들어가니 그제서야 커다란 새각시 상이 들어왔습니다.
음식을 본 새악시는 어머니의 당부도 까맣게 잊고 밥이며 국이며 떡, 과일을 정신없이 입안으로 끌어넣었습니다. 화장이 지워지고 노랑 웃저고리에 국물이 튀어 얼룩이 지는 것도 몰랐습니다. 새색시를 보러왔던 마을의 사람들이 모두 놀랐습니다. 시어머니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서 새악시 방을 들락거렸습니다. 하지만 새악시는 오랜만에 맛있는 음식을 너무 많이 먹은 탓에 졸음이 쏟아져 코까지 골고 쿨쿨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시어머니는 그때부터 며느리를 구박했습니다. 이웃 사람들에게 “내 참! 며느리를 본 게 아니라 식충이를 데리고 온 기라카이” 하고 흉을 보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새악시는 시집올 때, 무슨 일이 있더라도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소경 3년으로 살라고 하신 어머니의 당부대로 시어머니의 구박과 험담에 아예 벙어리 시늉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먹보 새악시는 더욱 더 먹는 일로 마음을 채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화가 나도 먹고, 억울해도 먹고, 외로워도 먹었습니다.
그렇게 살기를 9년, 그런데 그때부터 먹보 새악시에게 이상한 증세가 나타났습니다. 가슴에 꾹꾹 눌러 참은 소리들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 날도 언제나처럼 시어머니가 면박을 주자, 새악시가 이상한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아아아아아아……”
시어머니는 새 트집거리가 생겨 좋아하다 며느리가 하루 종일 소리를 지르자 겁이 덜컥 났습니다. 괴상한 소리는 솜으로 틀어막고, 이불을 두르고, 골방에 가두어 놓아도 막무가내였습니다. 사람들은 한마디씩 했습니다. “하이고, 시집 올 때 그리 곱고 참하더이만 얼마나 구박했으면. 쯧쯧.”
돈이 아까워 귀신이 들었다고만 우기던 시어머니는 그제서야 의원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이 의원, 저 의원 다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그러다 침술이 용하다는 의원을 찾아갔습니다. 의원이 새악시에게 침을 놓자 소리가 조금씩 줄더니, 의원이 뭐라고 소곤거리자 푹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아이고 이게 웬 날벼락인교?”
“걱정마세요. 할머니, 며느님은 지쳐서 잠이 들었습니다. 마음이 허전할 때는 하늘의 것을 먹어야 하는데 그걸 몰랐으니 저런 병이 생긴답니다.”
“그라믄 우째야 낫는 깁니꺼? 돈이 많이 들면 우짜지예?”
“돈은 한 푼도 안 듭니다. 대신 할머니가 오늘부터 잔소리 대신 매일 한 번씩 며느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세요. 그리고 재 너머 용담계곡에 가면 하늘의 정기가 서린 옹달샘이 있답니다. 그 물을 떠다 먹이면 며느리의 병이 나을 겁니다. 반드시 할머니의 손으로 떠와야 약효가 있습니다.”
그날부터 시어머니와 먹보 새악시는 의원이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시어머니는 날마다 십리길을 오르내리는 일이 귀찮았지만, 돈을 들이지 않고 병을 고친다는 말에 힘든 줄을 몰랐습니다. 며느리는 며느리대로 구박만 하던 시어머니가 먼 길을 걸어 약을 구해 주는 정성이 고마워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새악시는 시어머니가 떠다 주는 하늘의 물이 밥보다 더 기뻤습니다. 새악시는 몸을 아끼지 않고 어떻게 하면 시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릴까 하는 생각으로 종일 동동거리고 다녔습니다.
시어머니도 진심으로 며느리가 기특해서 머리를 쓰다듬고 약수물을 떠다 먹였습니다. 새악시는 하늘을 먹은 듯 기쁨이 가득했습니다. 집안 일도 부지런히 끝내놓고 들일도 하고, 두엄도 져 나르고 볏가리도 날랐습니다.
“아이구, 야야. 그러다가 병나문 우짜노! 뭘 좀 묵어야제.”
시어머니는 이제 며느리가 밥을 달게 안 먹는 것만 가슴이 아팠습니다.
박숙희, <새를 기다리는 나무 중> ‘하늘의 것을 먹은 새악시’ 요약 재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