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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 읽을수록 문제제기만 가득하지 정리되는 것은 없다. 내가 꽤 도덕적인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버린지 오랬기에 그나마 문제제기가 가능한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뭐, 어쨌든. 

적어도 한 챕터정도는 읽어줘야 조금씩이라도 정리를 할텐데 겨우 한쪽을 읽는 것도 버거워 그와중에 졸고앉았다. 아, 이번주는 좀 힘든 주간이었어..월요일 오후부터 벌써 금요일같은 느낌이었다니까 라고 변명을 해 봐도 소용없다. 내용이 정리되지 않아 무슨 말을 읽고 있는지 몰라서 더 졸고 있다는 걸 나 자신이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글을 쓰다가 손가락질 한번의 실수로 화면이 사라지고, 임시저장된 글을 불러오니 쓴 글의 반이 사라져버렸다. 도대체 겨우 1분도 안된 시간에 내가 무슨말을 하려고 했는지 잊어버리고 있다니. 어쨌거나. 난 정말 철학적인 인간이 아니다. 그렇다고 놀이하는 인간도 아닌데. 뭐냐.. 인간이 아닐수도? 

도덕,이라는 것은 종교와 관련된것만이 아니라는 걸 인식하기까지 꽤 많은 사유가 필요한것인가에 대한 생각은 오로지 나 혼자만 하고 있는것인지? 

  

 

 

개인의 권리와 공공선, 무엇이 우선인가 

: 개인의 특정한 권리가 너무나도 중요하기 때문에 공동선을 고려하더라도 그러한 권리를 무시할 수 없다면 그 권리는 어떤 권리인가. 

자유지상주의적 자유주의자들은 정부가 기본적인 시민적, 정치적 자유를 비롯해 시장경제가 부여한 노동의 대가 또한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 따라서 부자들에게 세금을 매겨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재분배정책은 인간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평등주의적 자유주의자들은 기본적인 사회, 경제적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시민적, 정치적 자유를 유효하게 행사할 수 업다고 주장. 따라서 정부는 모든 사람들에게 교육, 소득, 주택, 의료 등 제대로 된 혜택을 권리로 보장해야 한다. 

권리지향적 자유주의자들은 우리에게 어떤 권리가 있는지에 대해 다양한 설명을 제시하면서도, 인간의 권리를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정의가 정당성을 갖추려면 좋은 삶에 대한 특정한 개념에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칸트, 롤스 그리고 오늘날 자유주의자들의 이론에서 중심이 되는 이러한 생각은 옳음(권리)이 좋음(선)에 우선한다는 주장으로 요약된다.(217-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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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에서 들을때도 좋았는데, 역시 기사를 보니 책을 읽고싶어진다. 

 

 

 

출처 YES24 채널예스 | http://www.yes24.com/chyes/ChyesView.aspx?title=003004&cont=5183
 
[현장 취재][작가 강연회] 에드워드 권 “손님은 더 이상 왕이 아니다” -『에드워드 권 에디스 카페』 에드워드 권
 
지난 9월13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 사옥에서 열린, 예스24와 한겨레가 함께하는 ‘아름다운 책 이야기’.
『에드워드 권 에디스 카페』의 저자, 에드워드 권이 이날의 초대 손님.
셰프 에드워드가 독자들과 함께 레시피의 향연을 펼쳤다. 능수능란하게 좌중을 요리하는 셰프 에드워드와 그의 레시피에 조응하고 교감하는 동반자인 독자들.

자, 이날의 레시피를 공개한다. 이날, 폭풍강연이 작렬했고, 스타 셰프를 향한 반응도 불꽃박수와 폭죽함성, 그 자체였다. 이날 강연을 토대로, 약간의 소스를 버무려 기사를 재구성했다.


“당신은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 공기를 가르며 당신의 주방으로 들어선다.
하얀 셰프복을 입고 앞치마를 두르며 열정을 불태울 준비를 한다.
첫 번째 손님의 주문이 들어오면 이제 당신을 위한 시간이 시작된다.
1초 단위로 달라지는 맛을 눈과 코와 손끝으로 느끼며 당신만의 작품을 만들어간다.…
당신은 예술을 창조하는 요. 리. 사. 다.”(p.16)


그렇다. 나는 에드워드 권이다. 나는 요리사다. 나를 둘러싼 말도 많지만, 나는 내 요리로 평가받는 요리사다. 미국, 두바이 등 다른 나라에도 있어봤지만, 한국의 코스요리는 지나치게 비싼 감이 있다. 요리사는 분명 주방에서 예술을 창조하는 일이지만, 그 창조된 예술이 그렇게까지 비싸야할 이유는 없다.

2년여 전, 강남의 어느 레스토랑을 갔다. 코스요리가 1인분에 20만원이었다. 재료나 분위기를 따져 봐도,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담스러운 이 가격에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그만한 만족도를 제공했다면 모르겠으나, 쉽지 않을 것이다. 나는 결심했다. 거품을 빼자. 가격대비 만족도가 높은 요리를 제공하자.

‘에디스 카페’가 그렇고, ‘더 스파이스’가 그런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입맛에 거품이 껴선 안 된다. 가격 거품은 요리를 지나치게 높은 곳으로 올려다놓을지도 모를 일이다. 18세기 프랑스의 미식가이자 법관이었던 앙텔름 브리야사바랭(Jean-Anthelme Brillat-Savarin)은 이런 말을 남겼다. “당신이 먹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 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마.” 요리에, 입맛에 거품이 낀다면,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말할 수가 없다. 거품 낀 음식을 먹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알 수 없다. 거품이 실체를 가린다.

“에디스 카페는 좋은 식재료를 통해 주재료의 맛을 충분히 느끼게 하는 곳이다. 신선하고 고급스런 서양요리를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그곳이 에디스 카페의 흔들리지 않는 원칙이다. 그리고 에드워드 권의 약속이다.”(p.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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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좀 바쁜척하느라 장바구니에 책 몇권을 담아놓고 결제를 못하고 있었는데 문학동네의 장바구니 결제 이벤트가 하이드님의 예언(!)과는 달리 다시 돌아왔다는 걸 알았다.  

훗, 알라딘 서재를 눈여겨보고 계셨던거군. 하지만 아주 반갑지만은 않으니 어쩔건가.  

책도둑 출간후 책도둑이벤트라 여겨지는 알라딘의 장바구니 결제 이벤트는 해마다 진행이 되었고 해마다 아주 약간의 기대감을 갖고 책을 고르고 골라 장바구니에 넣어보지만 여지없이 알라딘은 나를 외면하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이벤트에 열심히 도전해봐도 알라딘에서는 안되는구나,라는 인식이 강해져서 이벤트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시들해져버렸는데. 

그래도 이놈의 유혹은 뿌리칠 수 없으니 내가 구입하려고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던 책을 낼름 끄집어내 살펴보게 된다. 

 

렛미인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하다가 새로운 책들이 넘쳐나 훌렁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여행에세이를 읽다가 이 책이 언급된 것을 보고 다시 생각나버렸다. 영화를 찍은 장소를 찾아 헤매다닌 에피소드였는데 우연찮게도 또 그 비슷한 이야기는 김연수와 김중혁작가의 대책없이 해피엔딩 첫머리에 나와서 이 책을 읽는 것은 운명이다,라는 생각을 또 잠시 했었다. 그런데 한가지 가로막고 있던 잔인함,이라는 것 때문에 여지껏 읽지 못했었는데 이 책을 읽은이들과 문동편집인의 친절한 안내글이 더욱 더 이 책을 읽고싶게 만들었다. 아, 그래서 구입하려고 장바구니에 넣었는데 장바구니 이벤트를 하고 있는거야. - 이건 당신들이 내 장바구니를 결제해줘야한다는 운명,이라 믿고 싶어지는 분위기인데..... 

 

모두에겐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는 법,인거지요. 네.  

 

 

 

 

 

 

 

이번에 장바구니에 담은 책들은 - 뭐 어떤 책이 그렇지 않겠습니까만! 사람에 대한, 가족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책들입니다.  

그 저마다의 이야기에 담겨있는 감동을 느끼게 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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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대중문화 분야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11월은 그냥 쓸쓸함이 있는 달인 것만이 아니라 죽음과 연관된 공포가 내포되어 있는 달이었군요. 가톨릭에서는 위령성월이라고 해서 돌아가신 영혼을 기억하며 기도하고,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는 그런 달인데. 

스티븐 킹의 죽음의 무도가 궁금하기도 하지만, 역시 몸을 굳어버리게 하는 공포는 자신이 없기에 과감히 포기를 하고, 이 피묻은 칼이 보이는 표지와 소문으로만 듣던 잭 더 리퍼의 연쇄살인은 충분히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 하지만 그래도 엘런 무어의 작품이기에 관심서적으로 집어넣습니다. 브이 포 벤데타와는 또 다른 분위기일 것 같지만. 음.. 어쩌면 책읽다가 속이 뒤집어질지도 모르지만 일단 그래픽노블안에 담겨있는 내용을 생각하며 신청.

"근대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하는 런던을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의 겉모습은 고전적인 공포 스릴러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의 본질은 근대화 과정을 의사와 의사집단 그리고 질병에 대입하여 당시 영국사회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는 것이다. 19세기 후반의 런던은 산업혁명이 시작된 바로 그 중심지로 근대화의 최첨단을 달리던 영국의 수도였다. 그러나 작품 속의 런던은 한마디로 ‘Hell(지옥)’로 묘사된다. 자욱한 안개에 둘러싸여 공장의 굴뚝에서는 끊임없이 매연이 피어오르고 빈민가는 창녀와 부랑자, 거지, 미치광이들로 넘쳐나는 오물투성이의 아수라장이다. 무분별한 산업화와 빈부격차가 극에 달했던 런던의 창녀들은 약간의 돈과 먹을 것(당시에는 구하기 힘들었던 포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연쇄살인마의 마수에 걸려든다. 경찰은 사건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피해대상이 창녀이기 때문에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심지어 이런 짓을 할 인간은 유대인이나 유색인, 미치광이 밖에 없다며 유대인에게 누명을 뒤집어씌운다. 그러나 범인은 뜻밖에도 왕실주치의였던 것으로 밝혀진다.

이 작품에서 잭 더 리퍼는 근대화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인 캐릭터이다. 근대화가 시작되면서 중세는 막을 내리고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했는데 그 시작을 알리는 것이 사회 최상층 엘리트 계급인 의사 신분의 연쇄살인마였다는 게 의미심장하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미술이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위한 레슨...이라는군요. 아니, 뭐 그보다는 책소개의 첫머리에 나온 우키요에가 눈에 화악 들어와서 책이 궁금해졌습니다.   

 

 

 

 

  

"해당 건축물의 설계자나 설계 의도, 완공 시기, 시공법 같은 기본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건축물이 탄생하게 된 역사적 배경에 대한 소개, 건축물의 과거와 현재의 위상을 비교.분석하여 현 사회를 진단하는 비판적 시각까지. 어떻게 건축이 예술이고 문화이며 여행이자 역사가 될 수 있는지 심도 있게 설명한다." 

 

제주도에서 나고 자라 지금도 제주에서 살고 있는 제게 육지 사람들은 제주의 관광지를 훤히 꿰뚫고 있지 않냐는 듯 질문을 해댑니다. 제가 관광업에 종사하는 것도 아닌데말이지요.  저도 한가지 묻고 싶습니다. 당신들은 당신들의 고향땅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있는가..말이지요. 네, 물론 저도 제주역사기행이라거나 왠만한 관광지와 유적지에 대해서는 들은 풍월로 말을 해 줄 수 있습니다. 오랜만에 서울나들이를 할때마다 서울관광하고 싶다,라고 말하면 서울에 갈곳이 어디있나... 하다가 고작 서점이나 문화거리를 걷거나 그러고맙니다. 뉴요커처럼 뉴욕의 거리를 걷는것만이 세련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서울, 건축의 도시를 걸어보는 것도 최고의 문화체험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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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Pei 2010-11-05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건축의 도시를 걸어보는 것
아, 그거 참 좋네요. 저도 그런 여행을 해 보고 싶어요.
그런데 애들이 아직 어리니까 그런 곳에 데려가 봤자 재미없다, 지쳤다 할 뿐이고. 애들 집에 두고 혼자 가지도 못하고.
전 이탈리아 로마에 가 보고 싶어요.
혼자 로마에 며칠 있다가, 건축물의 역사, 사연, 일화등을 천천히 살피면서 하나씩 보고 간다... 얼마나 멋진 여행인가요.
아, 그날이 언제쯤 오는지, 완전히 안 오는지...

 

 

 

 

 

 

 

 

 

 

뭐.. 정확히 말하자면 1권은 건너뛰었고 (사실 책의 존재사실조차 몰랐었고) 지금 2권을 읽고 있는 중.  

일본 장르소설, 그중에서도 특히 사회문제를 언급하거나 다룬 소설들을 읽을때마다 우리가 답습하고 따라가고 있는것이 답답할 지경인데 어쩌면 그리도 똑같이 우리는 아메리카의 못된 횡포만을 정확하게 따라하고 있는 것일까. 

얼마전에 시사인에 실렸던 가난한 학생과 부유한 학생들은 꿈조차 다르다,라는 머릿기사가 떠오른다.  

에미넴이 화이트 아메리카를 부른지 5년이 지났고, 미국은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뽑았지만. 달라진건 뭘까. 

 

...... 열두시 넘으니 정신을 못차리겠어! 배경으로 자장가처럼 들리는 와잇아메리카! ㅉㅉ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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