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벼락
김 부자는 돌쇠 아버지를 30년 동안 머슴으로 부려먹었습니다. 그리고는 새경이랍시고 내놓은 것이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돌밭이었습니다. 그래도 돌쇠 아버지는 기뻤습니다.‘처음부터 기름진 밭이 있나?’하면서 손에 피가 나도록 돌을 골라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밭에 뿌릴 거름이 걱정이었습니다. 워낙 가난한 살림살이라 마땅한 거름이 없었으니까요. 돌쇠네는 죽기 살기로 똥을 모았습니다.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개똥만 봐도“똥이다 똥”하고 금덩이처럼 귀하게 들고 왔지요. 하루는 돌쇠 아버지가 산 너머 잔칫집에 갔습니다. 모처럼 잘 차린 상을 받았는데 갑자기 배가 아프지 뭐예요.‘귀한 똥을 밖에서 눌 수는 없지’돌쇠 아버지는 벌떡 일어나 똥구멍을 꼭 오므린 채 집을 향해 달렸습니다. 그런데 산 중턱에 이르자‘꾹, 꾸르르륵!’똥이 당장이라도 밀고 나오려 했습니다.‘싸서라도 가져가자’돌쇠 아버지는 허둥지둥 커다란 나뭇잎을 깔고‘뿌지지직!’참았던 똥을 누었습니다. 그러자 오줌도 세차게 뻗쳐 나왔지요. 어찌나 세차게 뻗쳤던지 그만 낮잠 자던 산도깨비 얼굴에 폭포처럼 쏟아지고 말았습니다.
“어푸푸! 웬 놈이 내 얼굴에 오줌을 싸느냐?”
깜짝 놀란 돌쇠 아버지는 그만 똥덩이 위로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아이쿠! 아까운 내 똥 다 뭉개졌네!”똥 묻은 엉덩이를 흔들며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그 꼴을 보고 산도깨비는 기가 막혔지요.
“그깟 더러운 똥이 무에 아깝다고 그래?”
“뭐? 돌밭 거름할 귀한 똥이 더럽다고…?”
돌쇠 아버지는 눈물까지 글썽거렸습니다. 산도깨비는 돌쇠 아버지가 딱해 보였지요. 그래서 돌쇠 아버지를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걱정마. 내가 잔뜩 주지.”하더니 중얼중얼 주문을 외웠습니다.
“수리수리 수수리! 김 부자네 똥아, 돌쇠네로 날아라!”
집에 와 보니 거름간에 똥이 수북했습니다. 들큼한 똥 냄새가 밥보다 반가웠습니다. 돌쇠 아버지는 똥에다 풀도 베어다 넣고 재도 섞었습니다. 며칠 뒤 푹푹 잘 썩은 똥거름을 돌밭에 내다뿌렸습니다. 똥거름 덕분에 농사가 아주 잘 되었습니다.
조며 수수도 잘 되고, 고구마도 참 잘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일까요? 고구마를 캐는데 누런 금가락지가 딸려 나오지 뭐예요.‘어라? 웬 가락지람?’돌쇠 아버지는 곰곰 생각하다가 곧장 김 부자네로 달려갔습니다.
“혹시 이게…….”가락지를 보고 김 부자는 눈알을 뒤룩뒤룩 굴렸습니다.‘저건 지난 봄에 손자 놈이 똥독간에 빠뜨린 건데…….’수염을 배배 꼬며 꼬치꼬치 물었습니다.“그걸 왜 네 놈이 갖고 있느냐?”
돌쇠 아버지가 그 동안 있었던 일을 죄다 말해주었지요. 그러자 김 부자가 버럭 소리쳤습니다.“뭣이? 그럼 네 놈이 똥도둑이렸다. 여봐라! 저 도둑놈을 매우 쳐라!”돌쇠 아버지는 뼈가 녹신녹신하도록 매를 맞았습니다. 김 부자는 실컷 매를 놓고도 모자라 시커먼 속을 드러냈습니다.“훔쳐간 똥을 모두 갚든지, 아니면 그 똥 먹고 자란 곡식을 몽땅 내놔라.”
돌쇠 아버지는 하도 막막해서 절뚝거리며 산도깨비를 찾아갔습니다. 산도깨비도 기가 막혀 입을 쩍 벌렸습니다.“김 부자 그 놈 욕심은 끝도 없군. 뭐 걱정할 것 있나. 가져온 똥을 백배로 갚아주지.”산도깨비는 산이 쩌렁쩌렁 울리게 주문을 외웠습니다.“수리수리 수수리! 온 세상 똥아, 김 부자네로 날아라!”
사방팔방에서 똥덩이가 솟아올라 커다란 똥 구름을 일으켰습니다. 거무누르스름한 똥구름이 하늘을 뒤덮었습니다. 김 부자는 대청에 앉아 돌쇠 아버지를 기다렸습니다.‘설마 제깟 놈이 똥을 가져올 수야 없겠지.’
그러던 차에 무언가 마당에‘퍽’하고 떨어졌습니다.“옳거니, 곡식이 왔구나!”김 부자는 한달음에 마당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하지만 곡식은 무슨 곡식입니까? 굵직한 똥자루 똥, 개똥, 소똥, 닭똥, 말똥, 돼지 똥, 토끼 똥, 염소 똥까지 후득후득 처덕처덕 사정없이 쏟아져 내립니다.
“아이쿠 이게 웬 똥벼락이냐!”김 부자가 이리 뛰고 저리 뛰지만 피할 틈도 없이 촘촘하게 내리 꽂힙니다. 푸드득 푸드드득, 퍼드득 퍼드드득! 밤새도록 똥벼락이 내리치더니 큼지막한 똥 산이 생겼습니다. 이똥 저똥 잘 섞인 거름 산입니다. 온 동네 사람들이 산을 헐어서 똥거름을 가져다 농사를 지었더니, 이듬해 흥겨운 풍년노래가 오래 오래 울려 퍼졌다지요.
똥벼락, 사계절, 김회경 글, 조혜란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