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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릴케 현상 > 이름없는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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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릴케 현상 > 이름 없는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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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superfrog > 채링크로스 84번지

어느 누구도 그 자체로서 온전한 하나의 섬은 아닐지니, 무릇 인간이란 대륙의 한 조각이요, 또한 대양의 한 부분이어라. 한 줌 흙이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면, 유럽 땅은 또 그만큼 작아질지며, 작은 곶 하나가 그리 되어도, 그대 벗들이나 그대 자신의 영지가 그리되어도 마찬가지어라. 그 누구의 죽음이라 할지라도 나를 축소시키나니, 나란 인류 속에 포함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 이를 알고저 사람을 보내지는 말지어다. 종은 바로 그대를 위하여 울리기에......

- 헤밍웨이의 작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17세기 영국 시인 존 던의 설교문을 모태로 태어난 것이라고 합니다.
  <채링크로스 84번지>에 인용된 설교문의 한 구절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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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frog 2004-09-18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저 설교문 참 좋지요? 책도 좋아요..

chika 2004-09-18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책이 좋다하시니 함 읽어보고싶단 생각이 드네요. 찾아봐야지~ ^^)
 

 

새 벽 별

                                  박노해시

 

새벽 찬물로 얼굴을 씻고 나니
창살 너머 겨울나무 가지 사이에
이마를 탁 치며 웃는 환한 별 하나

오 새벽별이네!

어둔 밤이 지나고
새벽이 온다고
가장 먼저 떠올라
새벽별

아니네!

뭇 별들이 지쳐 돌아간 뒤에도
가장 늦게까지 남아 있는 별
끝까지 돌아가지 않는 별이
새벽별이네

새벽별은
가장 먼저 뜨는 찬란한 별이 아니네
가장 나중까지 어둠 속에 남아 있는
바보 같은 바보 같은 별
그래서 진정으로 앞서가는 별
희망의 별이라네

지금 모든 별들이 하나 둘
흩어지고 사라지고 돌아가는 때
우리 희망의 새벽별은
기다림에 울다 지쳐 잠든 이들이
쉬었다 새벽길 나설 때까지
시대의 밤하늘을 성성하게 지키다
새벽 붉은 햇덩이에 손 건네주고
소리없이 소리없이 사라지느니

앞이 캄캄한 언 하늘에
시린 첫마음 빛내며 떨고 있는
바보 같은 바보 같은 사람아
눈물나게 아름다운 그대

오 새벽별이네!

 

그리하여 여러분은 나무랄 데 없는 순결한 사람이 되어 이 악하고 비뚤어진 세상에서 하느님의 흠없는 자녀가 되어 하늘을 비추는 별들처럼 빛을 내십시오(필립비 2, 15)

*******************

조선인님 서재에 갔다가 문득 생각나서 찾아봤다.

참 좋아하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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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4-09-16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군요...

chika 2004-09-16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전출처 : 바람구두 > 노튼영문학개관:영문학의 무수한 오솔길을 일러주는 지도책

전공이 영문학이었던 사람들에게 "노튼영문학개관"을 이야기하는 건, 교회 다니는 사람들에게 "성서"를 말하는 것, 역사를 전공한 이들에게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었느냐고 묻는 것과 흡사하다. 영문학전공자들의 필독서로 꼽히는 책이고, 국내에서 출간된 책 가운데 이보다 더 좋은 책이 나왔는지는 모르겠으나 아직까지도 이 책의 명성을 능가하는 책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을 한 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영문학 개론서이자 영문학통사라 할 수 있다.

"나의 책읽기"란 글을 통해 나는 저자 서문이나 옮긴이 서문을 반드시 읽어보라고 권유한 적이 있는데, 불행히도 이 책엔 저자 서문은 아예 없고, 옮긴이의 서문이라는 건 분권된 2번째 책의 말미에 짤막하게 이 책과 옮긴이 김재환 교수의 인연 부분이 전부다. 이 책을 교재로 삼은 학과 이외의 독자들에겐 상당히 불친절한 셈이다. 조셉 골드(Joseph Gold)가 북키앙에서 펴낸 "비블리오 테라피"란 책이 있다. 읽어보진 못하고 그저 그런 책이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는 책인데, 이 책의 부제는 "독서치료, 책속에서 만나는 마음치유법"이다. 우리가 향기 치료법을 아로마테라피라고 하는 것처럼 책을 통한, 독서를 통한 치료법이란 의미에서 "bibliotherapy"란 제목을 달았다.

이 책에는 워즈워드의 다음과 같은 구절을 소개하고 있다.

"무엇인가 얻어내고 소비하느라 우리는 우리의 힘을 탕진하고 있네. 우리는 우리의 것인 자연 안에서 보지 못하네"

이때 저자 조셉 골드가 이 글의 출처로 삼고 있는 것이 "노튼영문학개관" 이른바 "The Norton Anthology of English Literature"이다. 나름의 독서법을 위해서는 한 권의 책을 개관해보라고 권한 적이 있는데,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어떤 책의 로드맵이랄 수 있는 인덱스 부분을 충실하게 검토해보라고 말했다. 이것을 영문학사 혹은 다른 테마의 책들로 옮겨 볼 때, '개론서'라는 것은 강의나 학습의 필독서 차원을 넘어 독서에 있어서도 역시 중요한 로드맵 구실을 해준다.

개론서는 단지 개론만 해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테마 뒤안에 있는 수많은 오솔길과 갈라지는 길들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이 책 "노튼 영문학 개관"이 다루고 있는 영미권 시인들이 그렇다. 이 책의 1권에서는 중세 앵글로 색슨 시대와 노르만 시대의 중세 영문학을 다룬다. 영미 문학의 고전이랄 수 있는 "베오울프"를 비롯해 여러 작품들을 개괄하면서 읽다보면 문득 한 사람의 이름에서 눈길이 멈추게 된다. 그는 바로 "제프리 초서(Geoffrey Chaucer)"다. 그가 지은 "캔터베리이야기(The Canterbury Tales)"를 읽어보지는 못했으나 우리는 이 책 "노튼영문학개관"을 통해 이 작품이 영국 문학사에 있어 어째서 중요한 작품인지 짚어볼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국내에도 출판되어 있는 제프리 초서 연구서들이나 그의 작품들을 함께 읽어볼 수 있다.

제프리 초서 시대의 영국은 아직 이들만의 사상이 무르익은 시기라 볼 수 없었다. 사상이 현실을 끌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현실 상황이 사상보다 앞서 있던 시대였다. 문학사는 어느 경우라도 당대가 직면하고 있는 시대 상황과 결부되어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헨리 5세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각별한 사랑을 받는 국왕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영국의 왕이니만큼 전제 왕정 시대의 영국 작가인 셰익스피어가 그의 업적을 높이 찬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영어를 사용하는 작가로서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헨리 5세를 각별히 아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헨리 5세는 영국의 세종대왕이었다. 헨리 5세는 그의 숙부인 윈체스터 주교 헨리 보퍼트의 손에서 자랐다. 그는 어린 시절 영어로 읽고 쓰는 법을 먼저 배운 사실상 최초의 영국 왕이었으며, 영어를 궁정어의 지위로 승격시킨 왕이었다. 헨리 5세의 부왕이었던 헨리 4세는 1399년 의회에 나가 영어로 연설하였고, ‘영어를 지나치게 조잡하거나 이상한 용어로서 사용하지 않고,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이해될 수 있는 용어로 사용함’으로써 소통의 어려움을 제거하고자 했다. 헨리 5세는 대외적으로는 프랑스의 왕위를 요구했지만 내부적으로는 정부와 지식인 사회에서 프랑스어의 사용이나 프랑스적인 풍속을 억눌렀다. 이제 영어는 최소한 영국 땅에서만큼은 더 이상 ‘정복당한 사람의 언어가 아니라 정복한 사람의 언어’ 가 되었다.

제프리 초서가 영어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캔터베리 이야기(The Canterbury Tales, 1387년 - 1400년)』를 집필한 것이 이 무렵이었던 것도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다. 이 무렵 영국은 점차 민족국가로서의 국가성(nationhood)을 획득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종종 보다 많은 지식을 얻는 수단으로 인식하면서도 지식이란 그것을 활용할 때 비로소 본래의 의미를 다한다는 사실을 종종 망각한다. "노튼영문학개관"을 그저 영문학 개론서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는 동안 이 책은 절대로 본래의 의미대로 활용되는 것이 아니다. 영문학사를 이해한다는 것은 동시에 영국사를 이해한다는 것이고, 영국사를 이해한다는 것은 영국의 철학과 사회와 경제, 문화를 이해한다는 말이 된다. 이를 다시 영국의 역사를 배경으로 다룬 영화를 이해하고, 이에 대한 글을 쓰거나 리뷰를 한다는 목적으로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을 때, 지식이란 그 본래의 의미를 다하는 것이다.

영문학사를 공부하는 것이 그저 지난 과거의 영문학사를 공부하는 것에 그치는 건 시간낭비다. 인간이 어느 한 일면만을 지니고 있지 않듯, 어느 한 시대는 어느 하나의 일면만을 지니고 있지 않으며 하나의 학문은 단지 하나의 학문이 아니라 다른 수많은 인접 분야의 학문 체계와 유기적 연관을 맺는다. 인문학과 사회학은 물론 예술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다양한 독서가 요구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셰익스피어를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튜터 왕조를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역사구분법은 일반적인 영국사의 시대구분법과 맥을 같이 한다. 중세를 지나면 16세기가 나오고, 17세기의 중요한 사건들인 청교도 혁명 전후의 주요 작가들, 존 단, 존 밀턴, 프란시스 베이컨, 존 로크 등을 다룬다. 왕정복고시대와 18세기에서는 신고전주의 문학이론을 개괄하고, 이 무렵 영미문학사의 가장 중요한 사건인 소설의 출현을 다룬다. 존 번연과 다니엘 디포우, 사무엘 버틀러, 조나단 스위프트 등이 이 시대의 작가들이다. 만약 누군가가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읽고 이것이 당대는 물론 오늘날까지 여전히 중요한 작품이라고 느낀다면 그 시대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이 책을 읽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영미문학사를 개론하고 있는 책 가운데 이 책 보다 더 좋은 책도 있을 수 있다.

한 권의 책, 하나의 작품, 한 명의 작가를 이해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한 권의 책을 읽어도 되고, 그에 대한 작가론을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다면적이고 중층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작가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 그가 살았던 시대를 함께 짚어볼 수 있다면 우리는 한 권의 책에서 보다 많은 지식들을 얻어낼 수 있다. 좋은 책은 많은 대화거리들과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골치아픈 영문학개론 숙제나 리포트를 쓰기 위해 처음 이 책을 접한 이들은 리포트 작성 뒤엔 더이상 이 책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렇기에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자신은 학교에서 아무 것도 배운 게 없다고 과감무식하게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필요한 모든 지식은 교과서(text)에서 얻는다. 텍스트의 중요성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참고서를 붙들고 씨름하는 것처럼 볼썽사나운 일도 드물다. 만약 대학에서 이 책을 교재로 삼았고, 그것을 공부했다면 이 책을 주요 텍스트로 삼아 이 책에서 가지를 치고 나가는 독서를 하는 것도 매우 좋은 독서법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이 책의 2권에서 다루고 있는 낭만주의 시대의 시인들, 윌리엄 블레이크, 로버트 번즈, 윌리엄 워즈워스, S.T.코울리지, 바이런, P.B. 셸리, 존 키이츠 등의 작품들은 우리나라에도 모두 번역된 시집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사람들 하나하나가 이후의 작가, 시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이들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중세로부터 20세기 중반 제2차 세계대전 직전까지의 영미권 작가들을 다루고 있다. 이 한 권을 텍스트 삼아 주변부로 가지치기 하는 공부를 해나갈 때 아마 본인도 모르게 축적된 영문학에 대한 교양에 놀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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