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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 대성전. 몇번을 가봤지만 바티칸 내에서 이 광장을 내려다보는 건 처음이었다. 대성전의 돔에는 여전히 올라가보지 못했지만, 지하의 역대 교황들의 무덤은 여러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역시 여행은, 아니 순례는 이렇게 다녀야 하는 건데,라는 생각도 했지만 아무런 준비없이 그냥 들이닥친 그곳에서의 내 마음은 처음부터 조금 혼란스러웠음이었다.

  

대성전의 웅장함을 찍어보고 싶었으나.. 수많은 사람들과 광장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멀티비전은 왠지 웅장함과는 거리가 먼 문명의 이기만을 전해줄 뿐. 그래, 줄 서면서 급히 서두르느라 이렇게밖에 찍지 못한 사진에 대한 변명일뿐인지도.

  

성바오로 대성전. 온갖 사진에서 보던 바로 그 바오로 성상! 볼때마다 제다이 기사를 연상케 한다는 내 말에, 두건이 한몫 한다는 신부님의 맞장구. 성상들 중 가장 멋있는, 진짜 포스가 느껴지는 모습.
그것과는 별개로 나는 드디어 성바오로 대성전을 찾았다.

  

바오로 성인의 탄생 이천주년을 맞이하여 전세계에 선포된 바오로 성인의 해(2008.06.29-2009.06.29). 그것을 계기로 바오로 성인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었지만 다 까먹은 지금 그곳에 다녀왔다. 바오로 사도가 순교했던 곳. 그분의 잘린 목이 세번 땅에 닿으면서 세개의 연못이 생겨났다는 트리폰타네.
대부분의 성전은 촬영금지였기때문에 로마에서의 일정은 온통 마음속에만 남아있다. 이 길은 트리폰타네 성당으로 들어가는 길. 아마 바오로 사도는 이천년전 자신이 처형될 곳을 향해 걸어갔으리라. 그리스도교를 철저히 박해하는 정통 유대인이었다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여 그리스도교 전파에, 특히 이방인의 선교에 온 삶을 바치고 순교한 성인.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제자는 아니었지만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 칭하며 자랑스럽게 순교한 그가 이 마지막 길을 걸어가며 어떠한 생각에 잠겼을까... 

물이 샘솟는 트리폰타네를 신기하게 구경하고 나온 후, 아무 생각이 없었던 내게 그리스도인의 길에 대한 묵상을 하게 해주었던 길.

  

산타마리아 마 조레. 성마리아 대 성전.
리베리오 교황이 꿈에 성모마리아를 보는데, 성모 마리아는 교황에게 눈이 내린 곳에 성전을 지으라고 했단다. 한여름에 왠 눈이냐, 싶었지만 저 언덕(에스퀼리노 언덕이라는군)에 하얗게 눈이 내린 기적을 보고 그곳에 성모마리아에게 바치는 성전을 짓게 되었다. 겉을 둘러싼 건축은 후대의 것이지만 내부는 당시의 건축 양식이 그대로 보존되어 건축학적으로도 가치가 있다...라고 했던가? 지식적인 것은 찾아봐야 할 것이고. 아무튼 내부 장식이 온통 금이었다는 건 기억하고 있으니 나의 로마 순례는 참말로.

  

기도하다말고, 아니 기도를 끝내고 한 컷. 이건 아마도.. 내 기억이 맞다면, 저 금빛 성합안에 얼핏 보이는 나뭇조각이 그 옛날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난 말구유....

 

    

어머니가 힘들어하셔서 결국 이번에도 못가보는가, 싶었던 라떼라노 대성전. 일반인들에게는 역사속의 한 사건일뿐인지도 모르겠지만 콘스탄티노플 칙령으로 인해 그리스도교가 공인되었다라는 의미를 넘어서고 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 건축되고 봉헌된 대 성전. 

그 의미는 다시 되새기겠지만 어쨌든 이로써 나는 로마의 대성전 4곳을 모두 순례하였다...

그리고 헬레나의 성십자가 성당. 헬레나 성녀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찾아와 봉헌한 성당이라고 한다. 성녀 헬레나가 당시 수많은 십자가들 중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찾은 방법은 바로 기적. 모든 십자가를 앞에 두고 병자들을 지나가게 하여 기적을 일으키는 십자가를 찾았다고 한다. 내부는 역시 촬영 금지. 성당이라 상시적으로 지켜보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기도하고 있는 중에 앞을 막아서며 끊임없이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 사람은 어딜가나 있었지만 - 나 역시 다미아노 성당에 아무도 없길래 다미아노 십자가 원본이 놓인 제대를 한 컷 찍은 사람이다 ㅠ.ㅠ - 성프란치스코 성당에서는 참다못한 수사님이 웃으면서 사진찍지 말아달라하시기도 했지만, 이곳에선 아니었다. 짧게 기도하고 나올수밖에.

  

아, 여기서 나를 찾는다는 건... 좀 쉬운 일이구나.
이곳이 성 계단 성당. 예수 그리스도가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으며 십자가를 지고 오르던 계단을 헬레나 성녀가 갖고와 봉헌했다는 곳.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오르는 계단.
사실 라떼란 대성전을 보고 난 후 이곳에 잠깐만 들리고 바로 갈 생각이었으나 - 어머니가 그동안 계속 기다리고 있어야 해서 망설임과 고민이 있었는데, 첫 계단에 무릎을 꿇은 이후 (바로 일어서서 되돌아설 생각이었는데도) 정신없이 기도하며 끝까지 올라가야했다. 처음엔 기다리는 사람들을 생각해서 속성으로 기도를 하며 올라갈 생각이었는데, 한계단 한계단 올라갈때마다 무릎의 통증과 흘러내리는 땀방울에 지쳐 아무 생각이 없었다.... ....
- 이틀 후, 아씨시에서 잠들기 전 무릎에 멍든 것처럼 아파 왜 그런가했는데 이 날의 짧은 무릎기도가 그날까지 통증을 끌고간거였다. 겨우 그것만으로... 그보다 더 큰 고통을 당하는 이들의 아픔은 죽을때까지 깨닫지 못할지도.

 

움브리아 주의 노르치아. 성베네딕또와 스콜라스티카의 고향. 둘은 쌍동이이고, 베네딕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베네딕또 수도회의 창설자이다. 왼쪽건물은 시청, 오른쪽 건물이 성당. 그 지하에는 두 성인이 생활했던 곳이 있다. 마침 우리가 도착했을 때, 낮기도 시간이었기에 베네딕또 수도회 수사님들의 성무일도를 노래로 들을 수 있었고, 바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 역하게 풍겨오던 프로슈토 냄새도 맡고 말라 비틀어진 돼지 박제(선글라스까지 낀 ㅠ.ㅠ)도 덤으로 쳐다봤다. 노르치아의 햄맛이 정말 본고장 맛이라고 하던데, 역시 고기를 못드시는 어머니를 위해 산을 넘어가다 말고 도시락을 먹었기때문에 각종 햄 모듬 식사는 통과. 고기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 나지만 왠지 조금은 아쉬운.

 

노르치아를 지나 아씨시로 들어가는 길,의 분지인데 이곳이 어디메던가. 지도를 놓고 봐도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불안한 예감이... 움브리아 주,일테고. 까스텔 루치아,라고만 해서 루치아 성(城)인가 라고 짐작만 하고 말았는데 역시 그런 지명은 없고말이다. 아무튼 이 넓은 분지... 한여름이면 온갖 들꽃이 피어나 아주 아름답다고 하던데, 어느 여름에 내가 다시 움브리아주를 찾아볼 수 있겠는가.

  

이탈리아 중부에서 양떼와 마주치리라고는.

  

드디어 아씨시. 야경이 멋있다고 했지만 나는 아씨시 그 자체로 흥분하고 있었다. 정신없이 도착한 아씨시에서의 첫날 밤, 첫느낌. 성프란치스코 성당.

 

이...이건 우리가 아씨시 근교에 묵었던 호텔. 아씨시 성안의 비싸고 좁은 숙소보다 훨씬 저렴하고 깨끗하고 주인 가족의 분위기도 좋았던 곳. 아침에 직접 내려 준 카푸치노는 이곳에서 삼천오백원이나 주고 마시는 그것보다 훨씬 더 맛있었어.
이곳에서 바라본 아씨시의 전경, 뽀르지옹꿀라도 보이고, 뒤쪽으로는 성프란치스코가 은둔하며 기도생활을 했던 까르첼리 은둔소가 있는 수바시오 산도 보인다. 산꼭대기에서 뛰어내리던 패러글라이더들의 모습, 한밤중에 빨간 자동차 불빛만 깜박이며 산을 오르고 있는 풍경이 아직도 생생한데.... 

아, 오늘은 어쨌든 로마의 대성전 순례에 대해서만 올리려고 했는데 쓸데없이 글이 길어졌다. 차근차근 꼼꼼하게 정리하려던 계획이 마구 앞질러가고 있다. 이러면 많은 것이 뒤엉켜버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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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1-09-14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지구에 걸친 하늘인데도 또 달라보입니다^^ 근사한 풍경을 가진 호텔에 우아한 카푸치노가 상상이 됩니다....
전 고기좋아하는데 유럽에 가게되면 햄 꼭 먹어봐야겠습니다요ㅋㅋ

chika 2011-09-14 13:36   좋아요 0 | URL
날마다 보는 하늘과 좀 달라보이기 때문에 여행을 가는 것인지도... ^^
민박 도미토리 기준의 금액과 별 차이 없는데 아주 깔끔하고 조용하고 좋았어요!
글고 고기 별로 안좋아하는 제가 먹기에도 씹을수록 맛이 괜찮긴 하더군요. 메론하고 같이 먹는데... 아마 고기를 좋아한다면 정말 맛있다고 할 것 같아요! ㅎ
 

 

서재에 사진을 올리려니 잘 나온 사진을 추려내고, 내용별로 다시 사진을 묶어놓고 그것을 또 다시 크기변환해야하는거였어. 나처럼 게으른 아이에게 그런짓은 절대 무리! 라고 생각해버리고 있으니. 

순례자처럼 다녀온 그 길들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적고 싶었음에도 처음부터 이렇게 귀찮아하는 마음이 생겨나고 있으니 나의 이탈리아 소도시 순례 여행이야기는 언제 정리될지 모르겠다. 사실 지금 다녀온 곳의 도시 이름도 가물거리고 있는데.
시간이 없어 들려보지 못한 페루자와 시에나의 이름은 선명한데 왜 베네딕토와 스콜라스티카의 고향 도시 이름은 절대적으로 떠오르지 않고, 로마에 있는 4개의 대성전의 모습도 희미해져만 가고 있는지. 

일단 생각나는대로 마구 풀어헤쳐야겠다. 여행이었지만 여행과는 다른 느낌... 우피치 미술관에 가보기 위해 피렌체를 선택했지만 결국 이틀동안 피렌체에 있으면서 우피치를 포기해야만 했고, 가까운 시에나도 들리지 못한 여정은 나의 욕심을 버리라는 뜻이었는지 다음에 또다시 그곳을 가게 되리라는 뜻이었는지 망설이게만 하고 있다. 

아니, 여행지였던 로마에서 내가 가보고 싶었던 로마의 대성전 4곳을 모두 순례하고 바오로 사도의 순교지 트리폰타네를 직접 가본 것으로 나의 이번 순례의 목적은 이루었다,라고 생각했던 마음은 완전히 사라져버리고 이 무슨 망발이란 말인가. 나 자신이 분명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 이번 로마에서 내가 보고 싶었던 것은 다 보았다고. 

성베드로 대성전, 성바오로 대성전, 라떼란 대성전, 산타 마리아 마조레 - 성모 마리아 대성전. 

바오로 사도의 트리 폰타네, 헬레나의 십자가 성당, 성계단 성당까지. 

 

사진은 바티칸안에 들어가 교리신앙성장관의 사저를 거쳐 (교리신앙성장관이 맞을까? 이건 명확하지 않은데 어따 확인해볼수도 없고...) 언덕배기에서 내려다 본 베드로 대성전.  나머지 대성전과 성당 사진은 생각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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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1-09-12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탈하게 잘 다녀오신거죠^^? 보고또보고~ 이번에 못본건 담에 또 구경가면 되겠지요~

chika 2011-09-13 22:25   좋아요 0 | URL
네. 친구와 통화하며 농담을 했는데, 이탈리아가 다음에 또 와도 된다고 하더라~ 라는 말을 했어요. 정말 다음에 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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