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 같은 진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억압

사육장 쪽으로
편혜영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7월

 환상같은 진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억압

  편혜영의 두번째 소설집, 『사육장 쪽으로』. 그녀가 누구인가. 평론가 신병철의 말에 따르자면, 그녀를 '그 어떤 작가보다 사실적인 소설을 그리는 리얼리즘 작가'라고 평할 수 있겠다. 작품에서 나오는 그 무섭고 섬뜩함을 리얼리즘이라고 말한다는 것은, 작품이 획기적이라는 말이다.  무엇보다 독자를 불편하게 만들어, 일상을 악몽화하는 소설집은, 나의 마음에 쏙 든다.

  작품의 이미지는 괴기스러운 느낌을 강하게 주어 다가가기 힘든 면도 있으나, 그것이 작품의 매력이다. 작품의 주인공들도 세상에게서 잔혹하게 폭력을 당한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잔혹하게 개에게 물리는 아이(「사육장 쪽으로」), 늑대인줄 알고 총을 쏴 죽은 인간(「동물원의 탄생」), 공사 도중 늪에 빠져 죽은 여인(「밤의 공사」)가 있다.

  뿐만 아니라, 사회의 폭력에 중독된 자들도 등장한다. 항상 웃어야하는 서커스 단원들(「퍼레이드」), 직장 상사의 말을 따라야하는 직원(「분실물」), 매일매일 일을하는 사회인들(「금요일의 안부인사」)이 폭력에 중독된 인물들이다.
(그외에 많은 작품에서도, 많은 인물들이 그러하다.)

  작가는 이러한 인물들은 등장시킴과 동시에, 그들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위로 혹은, 현실로 내세운다. 어쩔 수 없는 포기(「사육장 쪽으로」)라거나, 게임(「금요일의 안부인사」), 코끼리(「퍼레이드」),  지진(「분실물」)등속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훌륭한 면을 지니고 있는데 반해, 편혜영의 작품에서는 자기 이야기라는 느낌이 농후하다. 때문에 싫어하는 자들도 두루 존재한다. 아쉽지만 나도 그렇게 느끼고 있다. 나는 세상의 문제를 드러낼 줄 아는 자가 작가라고 생각한다. 작가로서의 편혜영이 그러하다.

그렇다면 역시, 편혜영은 우리나라 문단에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작가이다.

'내면의 심연'을 알 수 없는 사회 속 군상들

악인 ㅣ 오늘의 일본문학 6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월

'내면의 심연'을 알 수 없는 사회 속 군상들
(혹은 선악을 판단할 수 없는 인간 내면의 '심연')

-모두가 피해자이며, 모두가 피의자이다.
 

  옴니버스식 기법을 사용한 작품들로 많은 상을 휩쓴 요시다 슈이치. 그가 이번에는 자신의 대표작이라 내걸고 『악인』이라는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지금까지 발표된 작품들로도 호평을 받아왔던 그가 『악인』으로 명성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 많은 언론에 의하면 그것은 "YES"다.

  이번 작품은 다른 작품들과는 남다르다. 작가가 많이 사용하던 '범죄'이거늘, 이번은 크게 다르다. 읽으면서 필자의 고뇌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3인칭과 1인칭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이번 작품은 객관적인 묘사가 눈에 띈다. 작가는 선과 악 사이에서 중립적인 입장으로 사건을 바라본다. 단순하게 있었던 이야기를 전개해줄 뿐이다. 인물들을 내세워 인터뷰형식의 말을 하면서 사건을 차차 맞춰가기만 한다.

  이같은 전개방식 덕분에, 작품에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얽히고 설키며 자신들도 모르게 상처주고 위로받는다. 그런데 인물들이 명확하게 위로받는지 상처받는지 모르겠다. 무엇이 진실인지 모르겠다. 과연 인간은 선과 악 중에 어느쪽에 더 가까울까? 누가 피의자이고 누가 피해자일까? 마지막까지 작품은 그 문제의 답을 내리지 못한다. 답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작가는 마지막 문장을 의문형으로 끝맺음으로써, 전적인 판단을 독자에게 맡긴다.

  나는 객관적으로,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가 피의자이며 피해자라고 본다. 인간이 의도하지 않았던 행동은 심연에 있는 의식(트라우마)을 통해 일어난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며 겪었던 일들은 부정적인 감정을 만들어내고, 부정적인 감정은 긍정적의 결과를 위해 하나의 행동으로 실행되는데, 이 실행된 행동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만들었다. 이는 인간 의식속에 있는 하나의 충동이다. 결과적으로는 자신에게 긍정적인 결과를 만드려는 행동이 좋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아니, 그보다 알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이에 대해서 인간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 하나의 결과는 돌이킬 수 없다.

  물론 이와 전혀 다른 상황도 찾을 수 있다. 하나의 충동이 자신에게 불리한 경우를 가져다주지만, 근본이 배제된 결과를 봤을 때, 자신에게 불리한 결과는 커녕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경우이다. 이럴 때 인간은 자신의 문제는 생각하지 않고, 문제와 결과를 함부로 판단한다. 게다가 사건 이후에도 관련없다는 이유만으로 보이지 않는 악행까지 저지른다.

 

  "요즘 세상엔 소중한 사람이 없는 인간이 너무 많아. 소중한 사람이 없는 인간은 뭐든 할 수 있다고 믿어버리지. 자기에겐 잃을 게 없으니까 자기가 강해진 걸로 착각하거든. 잃을 게 없으면 갖고 싶은 것도 없어. 그래서 자기 자신이 여유 있는 인간이라고 착각하고 뭔가를 잃거나 욕심내거나 일희일우하는 인간을 바보취급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지. 안그런가? 실은 그래선 안되는데 말이야."

- 『악인』중에서

  몇번이나 들어도 도무지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차츰 나 혼자만 들떠 있는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사람이 들떠 있는 날 이용했다는 말이 사실일지도 모르죠.
‥‥‥
 그런데 도망만 치던 하루하루가‥‥‥, 등대 오두막에 숨어 떨던 하루하루가‥‥‥, 눈이 냐료 두사람이 얼어붙었던 하루하루가 아직도 그리워요. 정말이지 바보처럼 아직도 그 생각만 떠올리면 가슴이 아파요.

  분명 저 혼자만, 혼자서만 들떠 있는 거겠죠?

-『악인』중에서
 

  덕분에 인간의 심연의 선악과 관련된 문제들은 답이 없다. 작품은 명확한 판단을 잃게 만들었다기 보다는, 더 정확한 판단을 하도록 만든 것이다. 작품에서도 보았지만, 우리는 부조리하다면 부조리한 사회에서 살 고 있다. 이렇게 아무 것도 없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악인』에는 요시다 슈이치와 한국어 번역자 이영미라는 이름하에 아쉬운 작품으로 남겨진다. 요시다 슈이치의 작품을 봐왔던 독자라면 알 것이다. 이제는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본다. 그의 변화된 모습을 있지만서도 비슷한 플롯이 계속적으로 사용되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어 번역자 이영미는 몇몇 문장들이 요시다 슈이치 글의 의도를 강력하게 뽑아내지 못한 느낌이 다분하다. 『악인』은 소위 '2%'가 부족하다는 말이 어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넘어서는 강한 스토리 구성과 내포한 의미가 있어, 『악인』은 요시다 슈이치가 만들어낸 최고의 걸작이라고 평할 수 있겠다. 이제 작가는 나머지 '2%'를 채워, 지금까지 발표된 작품의 매너리즘에서 벗어나는, 더 나은 작품을 내어줬으면 한다.

  - 나는 이 작품이 영화로 나온다면 더 큰 흥행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영화로 나오기에 너무 어울린다. 그림이 그려진달까, 꼭 확석영 작가의 작품을 보는 느낌이었다. 이는 시각적 효과가 강하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섬세한 묘사가 영화와 어울린다.

아, 인생 참 유쾌하다

성석제의 이야기 박물지, 유쾌한 발견
성석제 지음 / 하늘연못 / 2007년 6월

  독자들은 성석제를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그리고 그의 작품을 읽은 후에는 역시 성석제, 라고 말한다. 나 역시 그렇게 말했다. 근자에 그의 이름으로 『성석제의 이야기 박물지, 유쾌한 발견』라는 책이 출판됐다. 언제나 그랬듯이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할말은, 그렇다. 역시 성석제다.

  이번에 출판된 『성석제의 이야기 박물지』는 '에세이'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보았던 에세이와는 무엇인가가 달랐다. 에세이라고 하기에는 무언가가 더 있어보였다. 더 있는 것, 그것은 바로 '이야기' 였다. 이 책에는 '지음'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우리들이 알고 있는 상식과 같은 이야기가 많다. 작가는 이 이야기들을 보고 들어 느낀바 그대로 글을 썼다. 어쩌면 이 책은 그냥 '엮음'을 써도 무방할 것 같았다. 제목 그대로 '이야기 박물지'였다.

  이번 작품은 4부로 구성되어있다. 한결같이 모두 재미있었다. 그렇다고 웃음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안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생활이 고스란히 들어있어, 자기 자신을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어떤 면에서 볼 때 인간의 삶이란 것이 참으로 심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역시 성석제는 재미있게 풀이했다.

  삶이 고단하고 힘든 자들에게 이 책을 한 번 권유하고 싶다. 보고나면 아마 입에서 이 말이 나올 것같다.

   아, 인생 참 유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