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미쳤다고 말한 외로운 수학 천재 이야기 - 수학소설 골드바흐의 추측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 지음, 정회성 옮김 / 생각의나무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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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선택한 도전에의해 절망할 권리가 있다.' 수학자에관한 여러가지 책이 있다. 영화화되어 아카데미 작품상을 탄 존 내쉬를 다룬 '뷰티풀 마인드'나 괴이하고 천재적인 폴에어 디쉬를 다룬 '우리 수학자 모두는 약간 미친겁니다.', 페르마의 마지막정리를 풀어 유명해진 앤드류 와일즈의'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등은 실존 인물이 주인공이며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책의 마지막에는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그러나 지금 이야기하고자 하는 '골드바흐의 추측'의 주인공 페트로스는 허구의 인물이며 정신착락증세를 동반한 뇌발작가운데 초라한 죽음을 맞이한다. 페트로스를 관찰하는 조카인 '나'가 화자로 존재하지만 이것은 가공의 인물에 좀더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시선을 부여한다는 의미일뿐이다.

앞에 열거한 실존 인물들은 보통 사람인 나로서는 그들의 업적에 감탄할 수는 있어도 괴리감을 느끼게 되는데 반해 이책의 주인공은 충분히 함께 할 수있는 인물이다. 인간이 생을 마감할때 객관적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고 말하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주인공 페트로스 삼촌또한 객관적으로 성공한 삶을 살지는 못한다. 범상하지 않은 수학적 능력을 가졌으면서도 도전하지 말았어야 좋았을 문제에 도전해 그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죽음을 앞에두고 평생의 숙원을 풀었다는 행복의 미소? 처음 그가 골드바흐의 추측에 도전한 이유는 자신을 차버린 여자앞에 유명한 문제를 해결해 나타나겠다는 치기어린마음이었다. 넌 멋진 날 차버렸으니 평생 후회하길 바래! 그러나 이런 치기어린 동기는 곧 인간이란 존재가 생에서 피할수 없는 커다란 벽으로 다가온다. 이 벽은 여러형태를 가지겠지만 페트로스에겐 골드바흐의 추측이란 이름으로 다가왔다.

'2보다 큰 모든 짝수는 두 소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 겨우 한줄도 꽉 채우지 못하는 추측의 증명이 어려워 보았자 얼마나 어렵겠어 하는 마음을 가지게되는 순간 250년이 넘는 세월동안 어떤 수학자도 증명치 못한 난제에 빠져들고 마는 것이다. 보통은 어느정도 해보다 포기할 껏이다. 아니 애초에 시도를 하지 않을껏이다.

우리는 어떤 이유에선지 불가능해보이는 것에 도전하는 것을 시간낭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런삶에 익숙해져서 우리가 잊어버리는 것이 있는데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선택한 도전에의해 절망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 도전의 아름다움을 영화감독이자 이책의 저자인 아포스톨로스는 페트로스의 삶을 통해 잘 전달해 주고 있다.벼룩을 작은 상자안에 가두어 두면 높이 뛰던 벼룩도 작은상자크기에 익숙해져서 상자크기 이상은 뛰지 못한다고한다. 우리는 한두번의 실패로 도전 자체를 두려워하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이제부터는 잃어버린 도전을 되찾아 인간적인 절망을 할수있는 권리를 돌려받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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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하는 글쓰기 - 스티븐 킹의 창작론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 / 김영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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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신문을 통해 알게된것이 1999년이었다. 그당시엔 무심히 지나쳤던 일인데, 저자가 그당시에 쓰고 있었던 책이 바로 이책'유혹하는 글쓰기'였다. 만약에 작가가 사고 즉시 죽어버렸다면 이 책은 빛을 보지 못했을것이다. 또한 생명이 경각에 달렸을때 글쓰기란 행동으로 삶의 희망과 용기를 얻지 못했다면 이 책의 후반부에 해당하는 창작론과 인생론이 지금처럼 감동적이지는 못했을것이다.

위인전보다 자서전을 좋아하는 나에게 전반부에 '이력서'는 작가에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그가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 글쓰기를 통해 겪은 경험과 에피소드는 이 베스트 셀러 작가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더구나 남다르긴 하지만 예비작가들이 엄두도 못낼 일들을 해온것도 아니고, 스티븐 킹또한 태어나면서부터 넌 작가가 되어야한다고 누군가에게서 허가증을 받은것도 아니란다. 즐겁지 않은가. 우리도 작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연장통'에서는 글을 쓰기위해 어떤 연장을 작가가 준비해야 되는지를 설명해준다.낱말을 어떻게 사용하고, 문법을 습득해야 하며, 부사는 우리의 친구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어휘력, 문체, 문법에 대한 지식이 건축재료로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창작론'은 바로 이책의 모든 것을 책임진 파트다. 이부분이 없었다면 결코 'on writing' (원제) 이란 제목을 달지 못했을것이다. 본격적인 글쓰기에 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어떤 환경을 조성하고, 처음 글을 쓸때는 어떤 상태가 좋으며, 분량은 얼마 정도를 매일 꾸준히 써서 글쓰기 습관을 기르는게 좋다라는 충고도 작가의 경험을 통해 말해졌을때 일반적인 그런말들에서도 상당한 설득력이 느껴지며 용기를 얻게된다. 작가 자신의 작품으로 예를 든 '미래의 묵시록'이나'캐리'를 통해 글을 쓰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쯤 봉착 했을 막다른 골목을 어떤 심정으로 극복했는지를 알수있다.

야호! 스티븐 킹도 이런 때가 있었구나!. 이책의 저자가 일관된 생각으로 항상 주장하듯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다. 이책은 너무나 생기발랄하고 재미있으며 유머로 넘쳐나고 있다. 창작론이란 딱딱한 지식을 전수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소설을 읽듯이 즐겁게 읽을 수 있다. 어느 분야나 그렇지만 대가는 자신의 전문분야를 비 전문가들에게 쉽게 설명해주는 비상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인생론'은 교통사고 이후에 바뀐 자신의 인생관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인생관이 바뀌었다기 보다 자신의 인생관을 다시한번 깨달은 것이리라. 글쓰기란 행위를 통해, 한시간 이상 앉아있기도 힘든 육체와 지친 영혼에 살아갈 힘과 용기를 스스로에게 줄 수 있었다. 삶이 글쓰기는 아니지만 글쓰기가 삶을 지탱하게 해준 것이다.

후반부의 '그리고 한걸음 더' 는 작가의 '호텔이야기'라는 초벌작품이 어떤 수정을 거쳐 '1048호' 라는 제목의 작품으로 완성되었는지를 예문을 통해 자세히 설명해준다. 내가 큰 도움을 받았듯 다른 독자들도 많은 도움을 얻게될 부분이라 생각한다. 이 책을 덮은후 든 최초의 생각은 '아 난 너무 행복해'. 라는 기분이었다. 이책을 접한것은 분명 행운이었다. 마치 먹고싶었던 요리를 먹기위해 식당에 갖는데 마침 판매가 끝난 음식대신 요리점에서 추천한 요리를 먹었을때, 기대하지도 않았던 별미에 속으로 쾌재를 부르는 심정이었다. 다음번에 왔을때에도 꼭 맛있는 요리를 추천해주세요. 하는 기분으로 나는 리뷰를 들춰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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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랑캐가 그립다 - 다언어, 다문화 시대를 사는 삶의 뉴 패러다임
김경일 지음 / 바다출판사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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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태양의 주위를 도는 행성중에하나일 뿐이라는 주장을 카톨릭에서 인정 받는데에는 320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김경일님의 <나는 오랑캐가 그립다>라는 책은 우리나라가 조상의 빛난 얼로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강대국이 아니라 변방의 한 보잘것 없는 나라라는것을 주장한다. 그리고 그것을 인정함으로서 한단계 앞으로 나아간 대한민국의 삶과 문화의미래를 제시한다. 백범 김구 선생의 '내가 바라는 대한 민국' 이란 희망을 그 이후의 후세 누구도 이룰수 있다 기약할 수 없는 삶을 영위해 온것은 우리가 우리자신을 스스로 똑바로 보려는 노력없이 포장하고 미화했으며 또한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볼수 있는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변방의 오랑캐이다. 결코 중국에 동화될 수 없는 민족이다. 스스로를 동방예의지국이란 미묘한 위치에 두고 청나라를 오랑캐로 무시한 조선은 스스로가 오랑캐 임을 인정하지 않았었고 지금도 그 사상은 이어져 오고 있다. 민족적 우월의식에 빠져 타국을 아래로 깔아보는 습성의 민족성을 볼때면 이 민족이 사고란걸 해온 조상들인가 하는 생각이들 정도로 세뇌되어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이책의 저자가 그의 전작인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라는 책에서 보여준 비판은 있으되 마땅한 대안은 내놓지 못함에 한탄했었다. 그리고 민족의 과거와 현재를 날카롭게 비판한 책에서조차 대안을 내놓지 못했음에 울화통이 치밀었다. 2년의 세월이 흘러 나온 이책은 대안을 제시한다. 저자가 말하는 대안들은 하나같이 쉽게 행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다. 500년간 내려온 짧지만은 않은 세월동안 무성하게 자라난 잡초를 모두 뽑아낸다는것은 힘들고도 오랜 작업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우린 스스로를 비하하거나 미화할 시간적 여유가 더 이상 없다. 세상은 더이상 우리민족을 우물안 개구리로 살아가는 것을 두고 보지 않는다. 우리가 지금 자신을 똑바로 보고 분수에 맞게 미래를 설계하고 나아가지 않는한 우리에겐 미래가 없다.최소한 우리민족이 발빠르게 21세기를 맞아들여서 변화하는 국가들 사이에서 뒤쳐져 역사에서 존재 자체를 의심받게 되는 순간은 면해야 되지 않겠는가?

영어를 당장 공용어로 해주길 간곡히 정부에 바란다. 이렇게 말한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중 돈이 있고 권력이 있는 사람들의 자녀들이 매년 수천명씩 외국으로 조기유학가 그곳에서 배운 교육으로 우리나라의 새로운 계급을 형성하고 있는 요즘, 민족 정기 운운하며 고리타분한 교육을 주장하는 이들을 나는 민족을 우매하게만들려는 사람이상으로 이해 않는다.

우리민족이 그 수많은 외세의 침략에도 잘 견뎌온 민족이라면서 그깟 남의 나라말에 민족정신이 없어지겠는가? 오히려 영어를 우리는 우리민족의 부흥을 위해 이용해야 한다. 처음 훈민정음 창제당시 '조선의 왕' 이 만들었음에도 언문이라 칭하며 무시한 최만리와 같은 우매한 사고를 하루빨리 씻어내지 않으면 안된다. 최만리가 올린 상소문을 잠시 책에서 옮겨본다. '그깟 언문을 공부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리오? 우리나라의 오랜 문화가 아마도 싹 쓸어 없어지고 말것입니다......낡음을 싫어하고 새로움을 좋아함은 예나 지금이나 두루 있는 병환이라. 언문은 단지 신기한 한 재주에 불과하니......'

세종대왕이 최만리를 불러다 꾸짖는 말을 옮겨본다. '너희들이 언문이 다 옛에 어그러진다 하지마는,......언문도 또한 백성을 편하게 함에 있지 아니하냐?'

여성을 자유롭게 해주자. 유교가 만들어놓은 사농공상과 남존여비사상의 폐악은아직도 우리를 멍들게 하고 있다. 유교님 500년간 수고하셨습니다.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당신을 퇴출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해줄 지도자를 기다린다. 우리는 오랑캐로서 세상을 상대로 남들 눈을 신경쓰지않고 인간이 인간답게, 개인이 집단에 억눌리지 않고 조화되며 문화적으로 성숙한 사회를 만들어 가겠습니다. 오랑캐로서 드넓은 대륙을 향해 말을 달린 조상처럼 세계를 상대로 교역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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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오의 딸 데이바 소벨 컬렉션
데이바 소벨 지음, 홍현숙 옮김 / 생각의나무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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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갈릴레오의 딸인 마리아 첼레스터 수녀와 갈릴레오의 편지왕래중 딸이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갈릴레오의 딸들은 사생아라는 문제로 갈릴레오를 반대하고 비판하는 자들에게서 상처입을 것을 두려워한 갈릴레오의 배려로 두딸이 모두 한 수녀원에서 지내게 된다. 데이비 소벨의 이야기 전개는 이책이 소설이 아닌 논픽션임을 분명히 하는 구실을 한다. 실제 존재하는 편지를 소개하고 편지와 연관된 갈릴레오의 근황을 이야기하는 가운데 작가의 상상력보단 사실이 이야기의 큰 흐름을 이어가고 있고 이것은 이책을 덮을 때쯤 뭉클한 감동을 안겨주는 역활을 한다.

우리 대부분이 알고있는 갈릴레오에대한 생각은 피사의 사탑에서 무게가 다른 두 물체를 떨어트린 일화나 미사가 거행되는 동안 흔들리는 전등불을 바라보다 전자의 법칙을 깨달았다던가,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지구가 돈다는 주장을 부정하지만 돌아서선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읊조렸다는 유명한 일화들이 전부다. 그러나 갈릴레오는 그리 간단히 평가할수 있는 인물이 아니란걸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되었다.

인간의 역사상 망원경을 활용하여 처음으로 우주의 비밀에 접근할수 있게해준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갈릴레오의 말은 그에대한 호기심을 왕성하게했다. 갈릴레오의, 사고의 탁월함에서 나온 저서인<프톨레마이오스와 코페르니쿠스의 두가지 주요한 세계관에 관한 대화> 는 신의 위엄을 해석하는 했동을 카톨릭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인 그 시대 사람들과 달리 신을 찬양하는 것을 의심한적 없는 갈릴레오였다.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 을 납득할수 있는 이야기로 증명한 그의 대화는 갈릴레오란 인간이 한세기가 아닌 인류역사를 통틀어 사고과정에 크나큰 영향을 키친 인물임을 자각하게 하는 것이다.

갈릴레오의 딸 마리아 첼레스터 수녀와 갈릴레이의 서신왕래에서 느껴지는 두 부녀의 끈끈한 정은 단순한 부녀의 관계를 넘어서있다. 너무나 많은 나이에 핍박받는 갈릴레오나 모든것이 부족한 수도원 생활에서 오는 피로로 단명한 마리아 첼레스터 수녀에게 있어 서로의 존재는 불타는 초의 심지와 같은 존재였으리라 짐작한다.

말년에 맞아들인 제자 비비아니에의해 갈릴레이는 재평가된다. 제자 비비아니가 갈릴레오의 무덤에 몰래 마리아 첼레스터의 유골을 같이 안장한 것은 정말 이것이 사실이다라고 생각한순간 전율을 느끼게 함에 부족함이 없었다.

갈릴레오가 우주를 관찰하며 수도원의 딸이 부탁한 사소한 물건들을 챙기고, 작업복을 입은채 집 앞의 텃밭에서 과일나무를 가꾸는 평범한 일상에서 휴식을 취한 모습은 이책을 생생히 보여준다. 역사속의 갈릴레오, 아버지로서의 갈릴레오를 이책에서 보여주는데 성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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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 I
아트 슈피겔만 지음, 권희종 외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199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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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라는 작품속에서 내가 느끼는 것은 현실과 역사에 대한 충격이다.아돌프 히틀러는 이렇게 말했다. '유태인들은 하나의 인종인것은 틀림없으나 인간은 아니다.' 그의 말의 진실여부를 떠나서 이책에 등장하는 유태인들은 쥐의 얼굴을 하고있으며, 독일인은 고양이, 미국인은 개, 폴란드인은 돼지의 얼굴을 하고있다. 이것은 얼핏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을 연상케한다. 그러나 동물농장의 권력투쟁보다 '쥐' 는 더 큰 흡인력을 가지고 있다. 상상력에의해 만들어진 허구가 아니라 작가의 아버지가 실제 2차대전중의 폴란드에서 살아남은(!)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실화이고 실제라는 측면에서 이책은 충격적인 내용들로 점칠되어 있다.

2부에서 주인공과 다른 유태인들은 독일인들에의해 화차안으로 입추의 여지도없이 끌려들어간다. 주인공은 고기를 걸어놓는듯한 양쪽고리에 자신의 담요를 걸쳐 공중에 앉아서 살아간다. 그 화차안의 200 여명중 25명 밖에 못살아 남았다. 몇날며칠인지 모를 시간동안 그곳에 쳐박아 둠으로서 나머지는 서서 질식사하거나 굶어 죽은것이다.

이때 독자인 나는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이 왜 주인공의 좋은자리를 넘보지 않았나하고. 그러나 이내 알았다. 입추의 여지없이 움직일 공간이 없는곳이다. 쓰러질 자리도 없어서 쓰러지면 그위에 밟고 서야지 안그러면 깔려죽는다. 서서 소변이나 대변을 보아야 하는 것이다. 너무나 그림체가 간결하고 작가자신이 책을통해 무엇인가를 주장하기보다 있는 그대로를 객관적으로 표현하려는 양식탓에 충격적인 내용들이 담담하게 다가왔다가 그 담긴 의미의 잔학성에 몸을 떨게된다. 이 책에는 유태인이면서 독일인들의 편에선 앞잡이들의 모습도 뜻깊게 다루고 있다. 물론 이들의 결말또한 다른유태인들과 다를바 없이 쓸어없어진 유태인들은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에서 최후를 맞는다.

이책을 읽기전만하여도 일제시대를 겪지않은 세대인 나는 식민지 시대의 친일파들에대해 거의 본능적인 저주를 하고 있었다. 이 책의 주인공 쥐는 친독파적 행동을 직접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친독파인 유태인들의 환심을 사면서겨우겨우 생명을 영위해간다. 그곳에 옳고 그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살아남느냐 죽느냐 라는 문제에있어 이성적 판단이 자리를 틈이 보이지 않는다.

주인공의 아들인 만화가는 아버지에게 묻는다. '유태인들은 왜 저항하지 않았을까요?' 아버지는 대답한다.' '다들 너무나 굶었고 겁에 질리고 힘들어서 눈앞에 벌어지는 일조차 믿을수 없었지' 물론 때로는 몇몇의 인간들은 저항을 해서 가스실을 폭파시켰다. 그러나 그들또한 죽음을 피할순 없었다. 살아남은 자가 승자라고 기뻐하거나 죽은자가 죽었다고 슬퍼할 수 있는 간단한 상황이 아닌것이다. 죽은자는 죽은자대로 고통스럽게 삶을 마감했고 살아남은 자또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서 자유로울수 없는 것이었다. 과거 청산이 어려운 이유는 단순하게 현상만을 두고 말하기엔 너무나 복잡한 사정이 겹쳐있다는 것이다. 살아남기위한 그들의 행위를 비난할수 있는가? 이것이 아픔이다. 그리고 단지 독일의 이야기일뿐이라고 생각하고 자유로울수 없는 나또한 내내 거북한 마음이 한자리에 존재함을 느낀다.

이책에서 기자가 작가에게 묻는다. '독일청소년들은 대학살이야기라면 이미 질릴정도로 듣고 봤습니다. 이사건들은 그들이 태어나기전에 있었던 일인데 왜 그들이 죄책감을 느껴야 할까요?' '누구에게 이야기 할까요? 하지만 나치 독일하에서 번성했던 많은 기업들이 그 어느때보다 더 번창하고 있죠. 모르겠어요. 아마 모든 사람이 죄책감을 느껴야죠. 전부가! 영원히 말예요!'

사무엘 베케트의 '모든 말은 침묵과 무위에 묻은 불필요한 얼룩이다. '라는 말에 나는 달리 생각한다. 해답이 비록 지금은 보이지 않는 일 일지언정 계속 입에 오르내리며 화제에 남아있는한 언젠가는 그것을 해결하고 통쾌하게 가슴을 펼 날이 올것이라고 생각하다. 이책이 안겨준 화두를 이어갈 새로운 책을 기다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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