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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지음 / 이성과힘 / 200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두 대립적인 계층 사이에, 이해의 통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그 대립적인 사고 방식을 가진 경훈의 사고 방식이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을 우리는 경훈의 시점을 통해 알 수 있다. 경훈은 형제들 가운데에서, 자신이 낙오할 것을 두려워한다. 아버지에게 나약한 모습을 들킬 것을 두려워한다. 그렇다면, 경훈은 단편 안에서 어떤 상태에 놓여있는가? 경훈과 비슷한 환경이랄 수 있는 변호사의 아들인 윤호와의 비교를 통해, 그 심리 상태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윤호는 경훈과 마찬가지로, 지섭을 좋아하지 않았다. 과외선생 이외의 것을 그에게 바라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지섭은 우주인과 그 가족을 만나게 해주겠다면서 윤호를 끌고 나갔다. (우주여행, 55면) 그날밤, 윤호는 우주인이 창 밑에 와 유리문을 두드리는 꿈을 꾸게 된다. 다음날, 수업을 어떻게 받았는지 모를 정도로 이것은 큰 영향이었다. 위의 소설적 구조를 경훈에게 대입 시켜보면,
경훈은 숙부의 죽음을 통해, 재판정에 참석해서 난장이의 아들을 보게 된다. 그 후, 꿈속에서 가시고기들이 자신을 공격하는 꿈을 꾼다. 정신과 의사의 치료를 받을 생각을 갖게 된다.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263면)
즉, 윤호가 지섭을 통해, 다른 계층의 세계를 생각하게 되었듯, 경훈은 영수를 통해 다른 계층의 세계에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다른 점이라면, 두 사람이 아버지에 대해 가지는 입장이 다르다는 것이다. 윤호는 아버지의 욕망에 부합하려 하지 않지만, 경훈은 아버지의 욕망에 부합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라는 것이다. 그로 인해, ‘사람들의 사랑이 자신을 슬프게 하는데’ 놀란다. 자신의 나약함을 지우기 위해 일부러 쾌활한 척 하는 그의 내면은, 이미 변화하고 있다.
경훈은 외부에 비치는 가진 자, 억압하는 자 라는 이미지와는 달리, 어려서부터, 가족 안에서는 약자의 위치에 놓여 있었다. 두 형들에게 장난감을 빼앗기고, 여동생과 인형놀이를 하면서 언제 형들이 인형나라의 평화를 깨뜨릴까 두려워하고, 가슴 조였던 것이다. 학업에서도 두형에게 뒤쳐지고, 언젠가 있을 가족 내에서의 승계과정에서 아버지의 욕망을 승계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그에게 존재하여 왔다. 다른 계층과의 소통 가능성이 열려있는 것도, 경훈이 약자가 가지는 공포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원들에게 둘러 쌓였을 때 느꼈던 공포, 자신도 죽을 수 있다는 공포와, 사촌을 약자라고 생각 위험하지 않은 인물로 단정 내리는 것에서 알 수 있는 강자와 위험을 동일시 함, 계속해서 공장에서 심상치 않은 문제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 등을 통해, 자신이 나약하다는 것을 깨닫는 단계에서, 소통의 공간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연민이란, 타인이 부당하게 고통 받을 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요. 공포란, 우리들 자신에게 임박한 고통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다. (김상봉, 2003, 293면)
3. 욕망하는 자유 – 인간 바로보기 -
경훈의 가족, 윤호의 가족은 어떠한 계층인가? 경훈이 내재하고 있던 소통의 가능성을 숨기고, 겉으로 드러내려 한 대립적 시선을 통해서, 우리는 소통의 문제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 수 있었다. 이들은 어떠한 존재인가? ‘우주여행’에서 인규를 표현하는 말이, 지섭과는 정반대의 인물(우주여행, 59면)이라는 표현이다. 이것이, 이들 계층에 대한 정확한 의미를 유추하게 도와준다. 다시 동굴이론으로 돌아가 보기로 한다.
만약에 그때 ‘그들 앞의 벽면에’ 지나가는 것들을 그들 사이에서 가장 예리하게 관찰하고서는, 그것들 가운데 어느 것들이 곧잘 먼저 그리고 뒤에 또는 동시에 지나가는지를 가장 잘 기억하고 있다가, 이에서 앞으로 닥칠 사태를 가장 유능하게 예측하는 사람에게 명예와 칭찬, 그리고 상이 주어졌다면, 그가 이것들을 갖고자 욕심부리며, 그들 사이에서 존경 받고 힘깨나 쓰던 자들을 부러워할 것으로 생각하는가? (플라톤, 1997, 448~45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