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서 손해봤다면, 출판사에 항의하라. 내가 그러라고 말했다고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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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밭에서- 자선대표작품집 10
조세희 지음 / 청아출판사 / 1994년 4월
6,000원 → 5,400원(10%할인) / 마일리지 300원(5% 적립)
2002년 03월 31일에 저장
품절

70년대 후반이 책이 나왔을 당시 이책을 읽지 않고는 대화에 끼지못했다는 화제의 책. 다양한 시점 변화와 세련된 필체로 치열한 삶의 투쟁을 그려 읽는이의 가슴에 큰 멍에를 지우는 책
몰입의 즐거움- 개정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지음, 이희재 옮김 / 해냄 / 2007년 11월
16,500원 → 14,850원(10%할인) / 마일리지 820원(5% 적립)
2002년 03월 31일에 저장
구판절판
어떤것에 몰입해 본적 있는가? 자신의 인생에서 몰입이라는 것이 얼마나 인생을 다르게 해주는지를 성찰게 해주는 인문학 스테디셀러이다. 자유를 만끽하는 삶이 시작되었다. 그 자유를 쏟아부을 대상을 선택하는데 참고가 될만한 조언서
마음이 예뻐지는 시 (블루)- 정지영의 내가 사랑하는 시
정지영 엮음 / 나무생각 / 2001년 12월
5,000원 → 4,500원(10%할인) / 마일리지 250원(5% 적립)
2002년 03월 31일에 저장
품절
보이지 않는 무엇에 쫓겨 교과서에 실린 시외엔 본적이 없는 당신이 이제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시 하나 읊어본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심야 라디오 방송을 맏고 있는 정지영씨가 사랑한 시에는 우리를 위한 빈자리가 있다.
쥐 I
아트 슈피겔만 지음, 권희종 외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1994년 9월
4,500원 → 4,050원(10%할인) / 마일리지 220원(5% 적립)
2002년 03월 31일에 저장
구판절판
만화책을 통해서 2차대전의 실상을 이토록 잔잔하며 잔인하게 전달해주는 책은 없다. 오늘날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독일과 그들에 억압받고 살아남은 유태인 가정을 통해 반추해볼 수 있는 책. 과거를 알고 미래를 설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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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건
엘리에트 아베카시스 지음, 이세진 옮김 / 예담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당신은 10년 전에 펴낸 에세이집 ‘당신

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를 통해 신혼 생

활의 알콩달콩한 묘미를 솔직하게 써냈

다. 당신이 생각하는 가족과 결혼은 무엇

인가.


 

“부부와 가족은 별개의 형태라고 생각합

니다. 부부는 아이가 있어야 가족이 됩니

다. 아이가 있고 없음에 따라 가족의 재

미와 풍경이 다를 겁니다. 나는 일부러

부부와 가족을 섞고 싶지는 않습니다. 부

부는 연애 쪽에 더 가깝습니다.”


 

―당신의 결혼 생활은 부부와 가족 중

어느 쪽인가.

“저는 부부의 형태로 있습니다.”

 

이 책을 읽고서 생각난 에쿠니 가오리의 인터

뷰중 일부분이다. 그녀의 인터뷰 중 이 부분이

제일 인상적이었고 또한 이해가 잘 안되는 부

분이었다. 그래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었

는데 <행복한 사건>이란 책이 확실한 해답을

알려주었다.

 

아이를 갖기로 한 건 잘못이었다.(p.24)

아기를 갖는 것, 그것은 인생의 끝이다.(p.26)

우리 사랑으로 낳은 아이, 바로 그 아이가 우리

커플의 파괴자였다.(p.211)

 

라고 책 전체에 걸쳐 구구절절하게 사실적으

로 알려준다.

 

부부는 아이가 생기면 새로운 형태의 애정관

계에 변한다는걸 에쿠니 가오리는 아기를 가

지지 않고도 아는 참으로 똑똑하고 현명한 여

자란 생각이 먼저 들었다.

 

어떠한 글이 삶에 대한 통찰을 가져다준다면

어떠한 의미에서건 한 번 쯤 읽어볼 가치가 있

다고 본다. 더구나 이렇게 임신이라는 소재를

적나라하다면 적나라하게 사실적으로 이야기

한 글을 접하기 쉽지 않은 상황아래서 이 책의

가치가 더 빛나지 않나 싶다.

 

피그말리온이라고 자신이 조각한 상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밥도 안먹고 처다만 보기에 그

사랑에 감복하여 아프로디테가 생명을 불어넣

어 아내로 맞아 딸 포프스가 태어났다는 유명

한 신화가 있다.

 

이 신화는 애인이 아무리 사랑스러워봤자 자

신이 창조한 대상에 비교할 바 아니라는 걸 은

유적으로 알려주는데, 자신이 10달을 잉태하

여 낳은 딸과 애인이 어찌 비교대상이 될 수

있겠는가...생각해보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진리를 이 책을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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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로 보는 인간의 고통 - 법의학자가 들려주는 그림 속 아픔 이야기 명화 속 이야기 8
문국진 지음 / 예담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직업에 평생을 바친 사람이 그러하듯이 저자는 가운데 취미생활을 자신의 직업과 접목시키고 있다. 명화를 앞에두고 그림에 메스를 대고 해부하듯 분석하고 싶다는 생각. 저자의 이러한 생각을 엿보는 듯한 기분만으로도 일종의 짜릿한 흥분을 가지고 책을 집어들었다는 이야길 하고 싶다. 그가 예술을 선택한 것은 꽤나 탁월한 선택이지 않은가. 우리가 좋아하는 많은 미술가들은 저마다 시체해부에 꽤나 열성적이었다.

 

 그림에 메스를 없으니 미술사적 지식과 자신의 전문 지식을 적절히 버무려 글이 완성되었다.

 글은 미술이 중심에 있다기 보다 꽤나 대중적인 의학지식을 설명하기위해 그림이 예로서 들어진 수준이었다. 특별히 그림에 메스를 대고 그림 근육 하나하나에 대한 예술가의 사고와 의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묘사의 탁월함으로 나아가지는 못했다. 물론 그러려면 그림 선택에서부터 이제는 식상하기까지한 명화를 가지고 이야기 없는 것이다. 명화가 만들어기 전의 데생 스케치나  특수 레이저로 촬영한 명화 제작 당시의 붓터치가 그대로 살아 있는 자료를 구하는 것이 이미 어려운 시대도 아니다. 사실은 은근히 이러한 책이길 바라며 책을 들었다는게 솔직한 심정이다.

 

 물론 저자의 80 생애에서 나오는안이 <들어가는 >에서부터 나오기는 하지만, 너무나 많은 명화들과 인물에 대한 에피소드를 다루다 보니 저자의 의학적 관점에 대한 내용은 의학에 문외한인 나에게는 꽤나 감명깊은 구절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미술사적인 면에서는 특별히 다른 책들과 비교될만한 장점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대한 민국에 나온 미술 대중서가 별로 안되기에 미술에 관심이 많은 독자가 이미 자신을 타겟으로 미술 대중서를 전부 읽었다면(합해보았자 일정 수준을 충족하는 미술 교양서가 100권도 안되니 맘만 먹으면 읽었을 독자도 많을 것이다) 굳이 책에서 새로운 명화에 대한 시각을 얻기는 힘들 것이다. 책이 내세우는 장점인 전문적인 법의학자의 관점이 책에 충분히 묻어나기에도 마치 잡지나 신문의 연재분 정도의 분량이라 그리 깊이있는 이야기가 되고 있는 것이 아님은 정말 아쉬운 점이다.

 

솔직히 이정도의 훌륭한 필자가 다른 글을 팔아먹고 사는 사람들과 같은 정도의 책을 내었다는 것은 아쉽다면 많이 아쉬운 점이다.

전체적으로 <들어가는 >에서 보이는 혜안이 고르다기보단 앞쪽과 뒤쪽에 집중되어 짧은 단락속에서 명철한 두뇌를 가진 사람이 세월속에 쌓은 연륜이 느껴지는 감동적인 어구가 많다는 점은 이러한 저자의 장점이 전면에 드러난 책을 바라게 만든다.

전문적 글쓰기를 하지 않는 사람가운데 평생을 예술과 밀접한 직업에 종사하며 대중을 위한 책을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몇명이나 있겠는가를 생각했을때, 주제넘은 말이 되겠기에 몇번이나 주저하면서도 괴테에게 달라붙어 말년에 파우스트 2부를 마저 쓰게 만든 에커만의 심정으로 한마디 올리자면, 남들과 같은 고만고만한 책을 쓰기위해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주셨으면 하는 생각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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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하는 인간
강웅경 지음 / 한양대학교출판부 / 2004년 12월
평점 :
절판


 매체의 발달이 가져온 제일 큰 특징은 인간의 오감 중, 시각과 청각의 중요성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점이 아닐까 싶다. 어려서부터 함께한 TV와 컴퓨터, 인터넷을 통한 정보의 흡수는 분명, 두가지 감각 중에서도 시각을 앞에 내세우게 한다.

 감각하는 인간의 8편의 논문 중 4편에서 시각이란 용어가 제목안에 들어가 있는것도 이때문일 것이다. 나머지 4편도 시각을 제일 큰 비중으로 다룬다.
개인적으로는 책 제목만큼이나 소재가, 지난해에 발간된 모든 책 중에서 제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본다. 인간이 감각을 통하지 않고, 세상을 살아갈 수는 없으니까. 사유또한 이제는 감각의 위에 서있어 보이진 않는다.

 저자들의 시각을 읽는 것은 기본적으로 매우 즐거웠다. 그들의 시각이 향한 곳을 조금이나마 같이 바라봄으로서, 인식의 폭을 넓혀준 것만은 분명하다.
일단 읽으면서 평소에 의문점으로 남아있던 사항에대한 저자들의 시각은 책 읽는 재미를 더했다. 
 이드위어드 머이브리지(Eadweard Muybridge, 1830-1904) 가 스탠포드 대학 총장의 요청으로 동물의 움직임을 분석하는 일을 왜 했는지, 툴루즈 로트렉(Toulouse-Lautrec, 1864-1901) 같은 화가가 경마장을 자주 찾으며 그림을 그린 이유에대해, 나름대로 곁눈질 해 볼 수 있는 시각을 전해주는 것이었다.(32면)
시각과 색체를 통한 르네상스의 작품 감상은 비록 흑백 사진으로 인해, 시각적 의미전달이 절름발이가 되었을지언정, 텍스트의 의미는 분명 새길만하다. 관심이 있다면, 얼마든지 작품들을 찾아볼 수 있을만큼 인터넷이 발달했으니, 아쉽지만, 노력해서 찾아볼 가치는 충분하다.

 항상 소설에대해 분석한 글을 읽을때면, 드는 생각이 있다. 정말 소설가들은 평론가들이 분석하듯 거기까지 생각해서 글을 썼을까? 라는 점이다. 사실유무를 확인하기위해선 작가를 직접만나 사실관계를 확인하는게 제일 좋겠지만, 실제로 만났다고 사실을 이야기해줄 작가는 드물것이다.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이 고정된 텍스트로 읽히기보다 살아있는 생명체로서, 독자마다 다른 느낌을 주길 바라는, 작품에 있어선 분명 욕심쟁이들이니까. ‘탁류’의 시대를 읽는 시선은 분명 도움이 된다. 식민지에대한 사고는 주석7 에서 저자가 말했듯이 본질에대한 깊은 논의가 이루어지기엔 시대가 아직 성숙하지 못했을지는 몰라도, 개인적으로는 읽는 내내 즐거웠다. 왜냐하면, 글속에서 드러난 저자의 시선이 매우 익숙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글속에서 또 다른 저자(이득재, ‘가족주의는 야만이다’) 의 시선을 독자인 내가 의식했기 때문이었다. 교감이 저자와 독자 사이 이외에도 제 3자의 시선이 함께 존재 할 수 있다는 것을 의식한 첫 체험이었다.

 고대 철학자들에 관한 글을 볼 때면, 2500년 정도의 세월은, 인간의 정신적 진화나 발달이 이루어지기엔 그리 오랜 세월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곤 한다. 이 논문은, 두번째 육체적 이미지를 다룬 논문과 함께, 저자들이 요구하는 독자의 교양이 제일 높지 않나 싶다. 이젠 정말 정신병자 화가 자화상의 전형이 되어버린 인물 고흐(Vincent van Gogh, 1853 -1890) 가 아닌 아르또(Antonin Artaud, 1896-1948) 를 다룬 것은 분명 신선하다. 인간의 육체, 병리, 그에 대한 표출이라는 소재자체는 서양의 전통적인 영혼을 집어삼키는 예술의 승화에 대한 분명 좋은 소재임엔 분명하다. 다만 무식한 독자가 감히 조금이나마 느낌을 말해보자면, 기본적으로 아르또에 대해 무지한 상태에서 그의 정신병 치료에 쓰였던 그림이 가지는 의미 분석이 얼마나 실지적으로 유용한지에 관한, 의미 파악이 어렵다는 점이다. 수많은 플로베르(Gustave Flaubert, 1821-1880) 논문이 대부분 플로베르의 작품을 다 읽었다는 사전 전제위에 쓰여졌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역시 독자의 무식이다. 좀더 두고 볼 논문이다.
에피쿠로스(Epicouros, BC 341-BC 270) 에 대한 논문은, 아르또와는 조금 다르다. 단 13장안에 한 철학자의 사상을 함축적으로 담아내었기에, 반복적인 독서가 필수불가결이다. 다만 에피쿠로스가 결정론적 세계관을 부정하고, 인간의 자유의지를 이야기했다는 점에서, 귀가 솔깃 해졌다. 분명히 들여다보아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그래서, 에피쿠로스의 인식론에 관해, 이책에서 느낀점을 조금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에피쿠로스는 순간적 쾌락이 아닌, 지속적인 쾌락을 바란것같다.(글 안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은것인지 발견치 못한 독자의 착각인지 모르겠기에 단정어법을 피했다), 육체적 쾌락보다 정신적 쾌락을 중요시하는 에피쿠로스의 관점은 분명히, 영혼의 안정을 통한 지속적인 쾌락을 희망한듯하다.

영혼의 안정을 목표로한 에피쿠로스는 감각의 지배아래 ‘인간의 인식’을 두고 싶어했다. 절대적인 초월자는 ‘인간의 인식 범위’를 넘어선 존재다. 또한, 절대적인 초월자의 인정은 윤리적으로 굉장히 골치아픈 문제를 잉태하고 있다.
인간의 노력 즉 자유의지가 인정되지 않는 것이다. 이미 신에의해 결정된 미래를 인간의 자유의지로 바꿀수는 없다. 사람을 죽였다고 책임을 인간이 질 이유가 없어진다. 이미 신은 미리 그일을 태초부터 알고 있었고, 피조물의 자유의지완 상관없이 사람을 죽이게 운명지어져 있었던 것이니, 피조물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에피쿠로스는 신을 부정함으로서, 인간의 자유의지와 그에 따른 윤리학을 만들어낸다.
 지금의 사회는 물질만능의 시대다.(10년전에도 그런말을 귀에 따갑도록 들었지만, 21세기의 현재가 더더욱 물질 만능에 빠져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이 시대의 쾌락은, 어떠한 주제보다 중요한 사유의 대상이 될 위치에 놓여있다.

인간은 감각을 통해 쾌락을 연장시키려 노력한다. 자신의 일상생활을 돌아보라.
영화(시각,청각), 음악(청각), 음식(미각), 운동(촉각), 향수(후각) 등 일상생활의 중요한 문화활동은 오감을 통해, 우리의 쾌락을 연장시키는 도구들이다.

다른 감각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형이상학적 감각이라는 대우를 받고 있는, 시각과 청각은 육체적 쾌감보다 정신적 쾌감을 연장시키는 역활을 한다. 에피쿠로스의 주장에대해 어느시대보다 관심을 기울여야 할 시기가 찾아온 것이다.

어떻게 쾌락에 정신과 몸을 맡기고, 영혼의 안정을 찾을 것인가?

매력적인 화두다. 특히나 현실적인 평안 행복을 종교를 통해 찾으려는 사람들에겐, 에피쿠로스의 주장이 가져오는 신의 존재에 대한 ‘제거’와 감각주의적 인식론은 거부감이 없지않아 생길 수 있다.

현재. 인간의 자연을 다루는 솜씨는 너무나 진보해서, 신의 영역으로 치부되던 일인 창조의 비밀을 분석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환경의 파괴는 엄청난 재앙을 불러온다라는 소재는 헐리우드 영화에서 재난영화 라는 장르를 만들어 내고 있다. 영화속 현실이 스크린을 벗어나는 것도 시기의 문제이지, 현실과 가상 사이에서 논란이 될 차원의 문제는 이미 아니다.
인간의 욕망은 자연을 지배하고, 신을 부정하고, 정신과 육체의 두가지 쾌락을 동시에 손아귀에 쥐려하고 있다.

저자가 지금 에피쿠로스를 이야기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간의 안녕된 삶을 위해, 자연에 대한 인간의 겸손과, (독자의 시각에서) 신에 대한 겸손이 필요한 시기임을 에피쿠로스를 통해 드러내고 싶어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어서 나머지 세편은 쉽게 읽힌다. 에피쿠로스와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 를 통해, 육체로 가자고 주장하더니, 마지막 두 편은 실제로 육체를 다루어서 참 쉽다. 물론 쉽다고 해서, 그 시각이 다른 시각들에 비해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여성과 남성의 육체를 통한 담론은 흥미로울 수 밖에 없다.

 정말로 아쉬운 것은, 앞에서 언급한 ‘프랑스 르네상스의 시각’ 이란 논문과 마찬가지로, 그림이 흑백이라는 점이다. 금발머리 여인의 모습을 표현하는 저자와, 그것을 상상해야하는 독자 사이의 시각적 괴리감은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이다.

 외국 대학의 출판사들을 보아도, 대학 출판사가 이익을 내기 어렵지만 사회에 꼭 필요한 양질의 책을 내지 않는다면, 나서서 출간할 곳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면에서, 지금까지 책을 내온 대학 출판사의 경우. 시각적 이미지가 결여된 활자만으로 이루어진 책들이 주류를 이루어온 것이 사실이다. 지금의 서투름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좀더 책이 많은 독자들에게 선보이기 위해서라도, 수익을 위한 책 자체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의미에서 출판사의 다음 책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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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지음 / 이성과힘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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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르네상스 – 인간을 향한 사랑과 신체 자유- 의 회복을 꿈꾸며

프롤로그 – 작품 안의 경계 종단하기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이하 난•쏘•공)은, 난장이와 그 가족을 중심으로 하는 12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단편은 독립적이면서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우화적이라고 불릴 만큼, 많은 상징성을 내포한 소설에서, 길을 잃지 않고 여행을 마치기 위해서는 취사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단순한 이분법적 논리에서 벗어나 대립적 존재들의 의미성을 파악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소재로서, ‘칼’을 선택하였다. ‘칼날’에서 난장이를 보호하기 위해 사용되었고, 난장이의 아들 영수가 은강 그룹 회장의 동생을 죽일 때도 사용된 칼을 가지고 뫼비우스의 띠를 종단하는 여행을 나서 보고자 한다.

1. 거인론 – 동굴이론을 통한 난장이 바로보기 –

‘난•쏘•공’에서 중심에 두어야 할 인물은 단연 ‘난장이’이다. 지금까지 난장이를 이야기하면서, 난장이의 왜소한 몸과 그에 따른 차별 속에, 억눌리고 소외된 계층을 대표한다라는 점은 쉽게 떠올려 왔다. 그러나, ‘난장이’라는 명칭에서 오는 고정된 관념 때문에, 그 이상의 담론을 끌어내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다. 이제 ‘난•쏘•공’안에서 난장이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보고자 한다. 고정된 관념 속에서, 우리가 사고하지 못한 난장이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그 진정한 의미를 찾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조세희가 말하고자 했지만,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했던 담론으로 한 발짝 다가서게 될 것이다.

고정된 난장이의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대립적인 ‘거인’의 이미지를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대립항에 대한 정확한 고찰을 통해, 난장이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는 것이다.

‘두 집 여자는 거인처럼 서서 고개를 저었다. 난장이의 키는 두 여자의 어깨 밑까지밖에 안 찼다.’ (칼날, 39면)

‘그들은 아버지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그들과 악수할 때 아버지는 발뒤꿈치를 들었다.아버지가 어떤 자세를 취했건 상관이 없었다. 난장이 아버지가 우리들에게는 거인처럼 보였다.’ (난•쏘•공, 76면)

‘난•쏘•공’에 나오는 거인에 관한 표현들이다. ‘칼날’에서의 거인은 키가 작은 난장이의 육체에 대립된, 두 집 여자의 육체 묘사임을 알 수 있다. 신애가 난장이를 보호하기 위해, 사나이를 칼로 찔러 죽이려 할 때도, 두 집 여자들은, 수수방관할 뿐이다. 신애와 눈길이 마주쳤을 땐, 목을 움츠리며 피하는 육체적 거인일 뿐이다.

두번째, 난•쏘•공 단편 안의 표현은 사회적이다. 처음 보는 사람이 아버지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 함으로서, 자식이 느낀 거인이란 이미지는 거인이 갖는 사회적 지위에 대한 상징성을 보여준다. 비록, 난장이를 거인으로 묘사했지만, 이것은 어린 자녀의 부모에 대한 시각으로, 학교에 들어가기 전의 아이들이 부모들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의미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만 본다면, 거인의 이미지를 육체적 강자, 사회적 강자로서, 난장이와 대립되는 위치에 놓는 것에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거인의 표현이 난장이와 대립적 구조만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대립을 부정하는 정반대의 표현이 마지막으로 발표된 단편에서 나타난다.

‘잠시 후에 판결을 받을 피고인의 아버지는 사실은 굉장히 큰 거인이었다고 단숨에 말했다.’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243면)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중, 경훈에게 말하는 여공의 입을 통해, 조세희는 분명히 밝히고 있다. ‘난장이’는 ‘큰 거인’이다. 그렇다면, 육체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약자인 난장이를 바라보는 조세희의 시각은 어떠하기에 이런 표현이 가능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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