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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에크하르트 톨레 지음, 류시화 옮김 / 연금술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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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연말이면 워크샵을 빙자하여 모처에 가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 건지 진지하고도 본격적인 대화를 다각도로 나누곤 한다. 일명 부부워크샵. 


아이가 없는 대신 지극한 사랑으로 돌보는 커다란 개와 함께 살며 우리는 평균 이상의 대화와 친밀함을 가지고 살아가는 부부다. 하지만 문득문득 상대방을 통해서 바라보게 되는 자신은 엉키고 꼬이고 삐뚤어진 이미지일 때가 있다. 아니면 늘 그렇지만 평소에는 적당히 위장하고 사는 건지.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최근 극렬한 논쟁이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변한 적도 더러 있고, 워낙 한 번 물면 끝을 보고야 마는 성격 탓에 출구를 열어놓지 않는 집요한 추궁이 파국으로 치달은 적도 있었다.


결혼 13년차. 

아직도 싸울 게 남았나 싶은데, 외려 시간에 고착된 에피소드는 곰탕처럼 우리고 우려서 전가의 보도가 되었으니 ‘아직도 그 타령이냐’를 외치지 않을 수 없는 궁극의 깔때기로 수렴되는 상황.


이렇게 다른 데 과연 사는 것이 맞나? 하는 생각이 종종 들기도 하고, 아니 그렇게 넌더리가 났으면 왜 헤어지지 못하나 하는 게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남는다. 습관인가? 


대체 그 많은 부부들은 어떻게 그 오랜 시간 부부생활을 유지하는 걸까.

알 수 없는 대목.


지독한 끝장 토론 끝에 우리가 찾은 결론은 

<A New Eearth: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를 각자 읽고 이야기를 나누기.


각자 서로에게 혹은 상대방, 또는 자신에게 묻고 싶은 질문을 포스트잇에 적어 이리저리 섞은 후

제비뽑기해서 그 질문에 답을 하는 것이다.


ex) 

- 현재에 머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 우리는 어떻게하면 에고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 상대방이 자신의 에고를 건드리는 순간은 언제인가, 그런 순간에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까?

- 자신의 고통체에 가장 영향을 미친 경험은?

- 목적의식을 갖지 않는 것과 목표가 없는 것은 무엇이 다른가?

등등


우리는 중세풍의 멋진 브루어리 한자리에 앉아 꼬박 3시간 동안 워크샵을 진행했다. 


사실 이 책을 다 이해했는지도 모르겠고, 과연 내가 이해한 것이 맞는지도 모르겠고, 이 책에서 하는 이야기가 다 맞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이 책에서 이야기한 자아, 현존, 형상, 의식 같은 주제로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문제들과 그 문제들을 들여다보는 시각을 환기했다는 것이 적지 않은 소득이다. 우리는 결국 더 더 깊이 들어간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기억 속에 웅크리고 있는 서로에 대한 트라우마(서로에게 받았던 상처)를 발견하게 되었고, 그 트라우마가 계속 촉수를 뻗쳐올 때마다 관계가 잠식당했다는 걸 알게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우리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서로에 대한 상처를 기억에서 ‘소멸’함으로써 자유로워지는 쪽을 선택했다. 앞으로 그 상처를 다시는 꺼내지도 않고, 생각하지도 않고, 기억에서 지우는 걸로. 화형식을 하고 싶었지만 남의 업장에서 화재위험을 무릅쓸 순 없는 거라 상상 속에서만 날려버리는 걸로. 어차피 우리가 만들어낸 모든 스토리들이 다 머릿속에서 지어낸 것 아닌가. 우리는 그 머릿속에서 고약한 암덩어리를 파내버리는 데 기쁘게 동참했다.


결혼 13년차라 열정적이고 뜨거운 밤을 보내진 않았지만 호텔에서 낯선 잠을 자고 여유있는 조식을 먹고난 후 예의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엄청난 걸 발견했다.


더.이.상 싸우지 않았다.


언제든 뭔가 터질 것 같은 미묘한 마찰이나 거슬림 같은 것도 없었다. 

한층 더 서로를 아끼고, 티나지 않게 서로를 위해 물처럼 움직였다. 


이렇게 보람있는 부부워크샵은 실로 처음.


늘 뭔가 반성하고 전망을 세우지만 뭔가 석연치 않은 잔존감 같은 것이 있었는데, 이번 경우는 달랐다. 정말 최대한 솔직하게 자신의 것을 털어놓고 묵은 것들을 지우고 나니 마음이 너무도 홀가분했다. 


그러자 찾아온 새로운 세상.

A New Earth.


이 자리를 빌어 에크하르트 톨레에게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다.

덕분에 부부가 몹시 화목해졌다고.


아마 살면서 다시 또 에고가 뿌지직 하고 튀어나오는 순간이 분명히 있을텐데, 

두 사람은 그걸 ‘의식’하는 것만으로도 에고에게 속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서로에게 거울처럼 그걸 의식하게 해주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절감하게 되었으니.

이처럼 고마운 소득이 없다.


일단 당분간은 그러는 걸로.







결혼, 관계, 에고, 알아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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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12-22 08: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
글도 좋고
워크샾도 궁금합니다

나뭇잎처럼 2021-12-23 10:44   좋아요 1 | URL
헤헤. 글이 좋다니 과찬이십니다. 분명 좋았는데 까먹을 까봐 잽싸게 적어보았어요. 워크샵은 회사에서 하는 거랑 비슷했어요. ㅋㅋ 다만 쓸데없는 전망을 세우는 것보다 가장 필요한 뭔가에 서로 합의하는 게 달랐다는 정도. 해마다 조금씩 커리큘럼을 바꾸는 재미도 있고요. 올해는 톨레에게 큰 빚을 졌네요. ㅎㅎ

프레이야 2021-12-22 09: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해마다 부부워크샵을요! 궁금하기도 하고 대단하시다는 생각도 들어요.
마음은 있어도 실천하기 쉽지는 않을 텐데 매해 하시다니요.
몹시 화목해지셨다니 몹시 좋아요^^
13년의 두 배가 넘어버리면 이러저러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답니다.

나뭇잎처럼 2021-12-23 10:46   좋아요 1 | URL
하. 13년의 두 배가 되면 또 어떤 경이로운 세계가 펼쳐지나요? 정말 관성으로 사는 것만큼은 지양하는 일인데, 그 오랜 세월을 늘 현재로서 살 수 있을지, 하 궁금해지네요. 워크샵은 낯선 데 가서 하는 게 핵심이죠. ㅋㅋ 그만큼 떠나는 설렘이 있고요. 그래서 매년 하게 되는 거 같아요. 떠나기 위한 핑계? 구실? ㅎㅎ 당분간 워크샵 약발이 지속되는 거 같아 모처럼 흐뭇할 뿐입니다. ㅎㅎ

blanca 2021-12-22 17: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저 이 책 꼭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좋은 글 감사해요. 그냥 상황, 현실에 마냥 쓸려다니느라 올해가 어떻게 간지도 몰랐는데 스스로와 삶을 돌아봐야 할 시간을 확보해야겠네요.

나뭇잎처럼 2021-12-23 10:51   좋아요 0 | URL
코로나 덕분인지, 탓인지 송년모임을 많이 갖진 못했지만 이렇게해서라도 한 해를 보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고런 핑계로 문득 문득 삶을 낯설게 바라보는 것도 재미난 거 같고요. 워낙 많이 팔린 책이라 책에 대한 칭찬은 더할 필요가 없을 거 같지만, 오프라 윈프리가 이 책을 읽고 자기 삶을 바꾼 가장 영향력 있는 책이라고 말하면서 저자랑 둘이서 팟캐스트를 열었어요. 챕터 바이 챕터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팟캐고요. 아 또 둘이서 그렇게 한 챕터당 한 시간씩 딥하게 하니까 책의 보충교재(?) 같은 효과도 있더라고요. 암튼 남편에게 추천하고 고맙다는 칭찬 받은 몇 안되는 책 중 하나입니다. ㅋㅋ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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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과 짝짓기에 관한 소설. 저자는 한 번도 내딛어 보지 못한 습지로 우리를 안내하지만 서사는 진부하며 이야기는 단조롭다. 아마존에서 경이적인 리뷰와 판매고를 성취한 건 과연 무엇 때문이었을까. 사람들은 유명한 책을 선택한다? 유명 인플루언서의 지지? 광고? 아니면 무난한 대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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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2-24 11: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나뭇잎 처럼님 !
가족 모두 행복 가득! 하시길 바랍니다
해피 크리스마스 !
🎄 ℳ𝒶𝓇𝓇𝓎 𝒞𝓇𝒾𝓈𝓉𝓂𝒶𝓈 🎅🏻
。゚゚・。・゚゚。
゚。  。゚
 ゚・。・゚
⠀()_/)
⠀(。ˆ꒳ˆ)⠀
ଫ/⌒づ🎁

나뭇잎처럼 2021-12-24 21:22   좋아요 0 | URL
늘 들려주시는 귀한 음악 선물 감사합니다. scott님도 메리 크리스마스하세요. ^^
 
어둠의 왼손 어슐러 K. 르 귄 걸작선 1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 시공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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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남자, 혹은 여자로 태어나는 것은 남은 인생의 거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 어디서 어떻게 누군가와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갈지. 어슐라 K. 르 귄은 그 전제에 의문을 제기했다. 성은 과연 필요할까? 우리가 성의 결과라고 여겨지는 행동 중에서 사실 우리가 성에 기대한 결과는 얼마나 될까? 만약 성이 없거나 또는 양성을 가진 인간들에 대해 쓴다면? 그런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인류학자 아버지와 동화작가 어머니 사이에서 자라 명문대에서 프랑스 문학을 전공하고 역사학자 교수가 된 남편을 만나 평생 세 아이를 두며 SF로 노벨상을 받는다면 제1순위로 꼽히는 작가가 그런 상상을 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을 거라고 여기는 건 지나친 편의주의일 것이다. 그에게 게센인의 이야기가 찾아온 건 그의 말마따나 '그것이 다가올 길을 그가 준비했기' 때문이다. 책의 후반부를 압도하는 겨울 행성에서 빙하는 건너는 일은 그의 오래된 폴더 '겨울'이라는 곳에 오랫동안 쌓여있었다고 한다. 겨울의 혹독함에 대한 자료. 


작가는 서문에서 자신이 정작 하고 싶었던 질문은 (양성을 가진) 그 존재들은 정말로 우리와 그토록 다를까? 우리 성이 정말로 그토록 절실할까? 우리 성이 정말로 그렇게 명확히 정해져있고, 그토록 중요할까? 였다고 했다. 그리고 작품 속에서 '케메르' 상태에 대해서 자세히 밝혀 놓았다. 케메르는 (내가 이해한 직접적인 언어로 표현하자면) '발정기' 상태다. 인간을 제외한 모든 포유류에서 나타나는 발정기. 발정기 이외의 시간에 게센인들은 성적 특이성이 발현되지 않는 '인간'으로 산다. 


게센의 사회는 그 일상적 기능에 있어서나 지속성에 있어서 성이 없다. 전 생애의 5분의 4기간 동안 이들이 성적으로 전혀 자극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17-35세의 모든 사람이 '출산에 묶일' 수 있다는 사실이 이곳에서는 다른 세계의 여성들처럼 생리적/육체적으로 완전히 출산에 '묶일' 일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아이들은 어머니나 아버지와 정신적-성적 관계가 없다. 상대의 동의 없는 성교나 강간은 없다. 다른 포유동물과 마찬가지로 성교는 상호 유인과 동의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이른바 인간성에 대한 강자와 약자의 이분법, 즉 보호적/피보호적, 지배적/순종적, 주인/노예, 능동적/수동적 따위의 구분은 존재하지 않는다. 게센인들은 타인을 남자나 여자로 보지 않는다. 그들은 잠재적으로 양성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완전한 형태로도 갖고 있다.


남자는 자신의 남성다움을 남들이 주목해주길 원하며 여자는 자신의 여성다움이 인지되기를 원한다. 주목과 인지하는 방식이 얼마나 간접적이고 미묘한가는 상관이 없다. 하지만 겨울 행성에서는 그러한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각자는 오직 하나의 인격체로만 존중되고 판단된다. 그것은 소름끼치는 경험이다. 
실험을 행한 이들은 아마도 지속적인 성적 능력을 갖지 않은 인간이 지성적이고 창조적인 문화를 일으킬 수 있는가를 확인해보고 싶었을 가능성이 있다. 즉, 그들은 지나친 소모와 광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고대 헤인인들은 다른 포유류와는 달리 인간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는 지속적인 성적 능력과 조직화된 사회의 공격성이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걸까? 아니면 전쟁을 순전히 남성의 배설 행위, 즉 대규모의 강간 행위로 보고, 그들의 실험에서 강간하는 남성성과 강간당하는 여성성을 영원히 제거하려 한 것일까? 

 

욕망도 부끄러움도 없는 이곳에서는, 제아무리 비정상이라 할지라도 남들로부터 따돌림받는 일은 없었다. 게센의 생활을 지배하는 것은 성이나 다른 인간적인 요소가 아니라 환경, 추운 세계이다. 이곳 사람들은 자신보다 더 잔인한 적을 가지고 있다. 



어슐라가 페미니스트 작가로 추앙받는 이유는 우리가 의식/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남녀성차, 그리고 그 성차에 대한 가치의 차등 부여, 그리고 나아가 보다 억압적인 우위에 놓인 남성성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양성적 인간이라는 개념을 통해 차분히, 새롭게 바라보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인간들로 이루어진 세상. 


카르히데. 이곳에서 현재는 늘 원년이다. 이곳 사람들은 유일무이한 '현재'를 기준으로 과거와 미래를 헤어려 나간다. 늘 원년을 사는 겨울 행성 주민들에게 진보보다 현재가 더 중요하다. 


카르히데인이 아이를 때리는 것은 본 적이 없다. 아이들을 대하는 부모의 부드러운 태도가 특히 인상 깊었다. 아주 정중하고, 효과적이며, 아이에 대한 소유욕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모성' 본능이라 부르는 것과 다른 점은 아마도 그 무소유의 태도일 것이다. 


카르히데와 오르고레인은 불화한다. 그곳 사람들은 시기하고, 질투하고, 다투고, 반목한다. 하지만 그것이 극단적으로 응축되어 표출되는 '전쟁'이란 단어는 없다. 강자와 약자의 이분법, 그로 인한 착취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생각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 전쟁을 남성의 배설 행위, 대규모의 강간 행위로 보아 게센인들에게 그런 유전적 실험을 감행했을 거라고 추측하는 주인공의 의문에 작가는 이미 답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랫동안 회사에서 닉네임을 '우르술라'로 썼다. 마르케스가 <백년 동안의 고독>을 써서 잘난척하는 영미 편집자들에게 퍽큐를 날리며 '소설이란 무엇인가'로 수백년을 머리 싸맨 사람들을 한방에 날려버린, 그 소설 속의 대모 같은 주인공, 그 우르술라에서 따왔다. 많고 많은 직원들 중에서 존, 메리, 마이클은 A, B, C로 구분해서 부를 정도로 차고 넘쳤지만 우르술라는 유일무이했다. 나는 그것을 자부심으로 여겼다. 


하지만 왜 우르술라인지 아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간혹 외국인 중에 Mermaid? 하고 묻는 이가 더러 있었다. <인어공주>에 나오는 백발마녀의 이름인가 보았다. 디즈니 인어공주는 본 적이 없어 놉, 이라고 답하며 <One Hundred Years of Solitude>를 운운하면, 아, 아 알겠다는 듯 눈을 흐렸다. 난 모르는 책이고, 알고 싶지도 않고, 그래 너 책 좋아하는구나, 알겠어 너 문학소녀라는 거, 정도로 알 듯한 표정. 난 굳이 묻지 않았는데, 그 책이 왜 영미권 최고의 소설로 꼽히는지, 어떻게 작가가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그 잘난 영미문학 크리틱들을 넉다운 시켰는지 설명해주었다. 더러는 혹 관심을 보이기도 하고, 더러는 '자자, 이제 회의하자'라는 눈길로 내 이야기를 매듭지었다. 아무렴, 아이스 브레이킹하기로 이만한 주제가 없지. 아이스 브레이킹은 그쯤에서 끝내는 게 가장 아름답고.


한국인들은 '우.르.술.라' 네 음절, 외국인들은 '어ㄹ.슐.라' 삼 음절로 내 이름을 발음했다. 하지만 숫적으로 한국인이 많았기 때문에 외국인들도 '우르술라님'하고 오음절로 발음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어슐라 K. 르 귄을 몰랐다. 만약 그녀를 알았다면 One more 어슐라 르 귄이 얼마나 SF의 대모인지 침이 마르게 설명을 했을텐데. 안타깝다. 


'SF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친구에게 말한 후 무지를 혹독하게 질책 받은 다음 그 말은 삼갔다. '무협지처럼 스토리가 너무 패턴화되어 있다'는 말은 아이작 아시모프의 <영원의 끝>으로 쏙 들어갔다. 테드 창의 단편들을 읽다가 너무 매혹되어 흥분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번역본은 끝내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테드 창의 단편들을 영문으로 읽다가 눈이 침침해졌다. 그렇게 나의 SF 경력(?)은 노루 꼬리보다도 짧다. 


어슐라의 책에 손을 대기로 마음을 먹은 건 그녀가 번역한 노자의 <도덕경>을 필사하고 부터다.  그녀의 아버지가 평소 즐겨 읽었던 책으로 어느 날 책 한 구절을 끄적이는 걸 보고 뭐하시냐고 묻자 자기 장례식에 쓸 문구라고 대답한 아버지를 따라 그녀도 <도덕경>을 평생 벗으로 삼았고 그녀의 장례식에 쓸 구절도 이미 다 정해놓았다. 바로 그 도덕경에서. <도덕경> 영문본은 차고 넘치는 데 조금씩 미묘한 문구의 차이가 있어서 뭐가 뭔지 조금씩 헷갈릴 때도 많고, 어떤 표현이 더 좋은 표현인지 잘 확신이 안서는 경우도 많다. 한글 번역본이야 어릴 적 읽었지만 그 번역도 그리 명확하진 않다고 읽을 때도 느꼈던 것 같다. 


세상이 좋아져 공책 한 바닥에 오른편에는 영문, 왼편에는 한문을 적고 의미의 공백과 격차를 나름의 두 언어 사이에서 나름의 상상력을 동원해 메꾼다. 하나의 언어에 의지해 상상했을 때보다 좀 더 편안함을 느낀다. 어쩌면 한글, 영어, 한문 세 가지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이 맞겠지. 그런 어슐라가 쓴 SF. 완전 끌렸다. 그리고 처음으로 시작한 그녀의 책이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장바구니에는 벌써 그녀의 다음 책이 담겨있고... 나는 주문 버튼을 누르고... 전집 말고 한 권씩 사자고 스스로를 달래고... 그러고 있다.





우리 사이에 이렇게 우정을 확신하게 된 것은 조금 전에 우리 사이의 성적 긴장을 진정시키는 대신 그것을 인정하고 이해한 덕분인 듯했다. 추방된 우리에게 우정은 절실했으며, 그간의 험난한 여행의 밤과 낮을 견디며 잘 확인된 우정을 이제는 사랑이라 불러도 좋았다. 하지만 사랑은 우리 사이의 차이점에서 생긴 것이지 유사점이나 닮음에서 싹튼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사랑은 갈라진 우리를 이어주는 다리, 유일한 다리였다. 


지구에서 낳아 에큐멘이란 연합체의 특사로 카르히데에 파견된 겐리 아이. 그는 그곳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믿어주는 에스트라벤을 만나 카르히데가 에큐멘과 협력하도록 애쓴다. 결국 천신만고 끝에 에스트라벤과 함께 차가운 겨울 행성 카르히데, 그 중에서도 빙원을 함께 건너 목적을 이루고자 애쓴다. 두 사람이 나눈 건 우정이었을까, 사랑이었을까. 빈약한 지구인의 상상력으로는 두 사람 사이에 형성된 탄탄한 다리를 이를 단어가 없다. 우정 또는 사랑. 우정은 동성, 사랑은 이성? 아마도 카르히데 사람들이 부르는 '사랑'과 지금 이 시대 지구인이 부르는 '사랑'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있지 않을까 예측할 뿐이다.


사실 이 책을 읽기 훨씬 전에 구상해 놓은 걸 한 번 써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에 대한 전혀 다른 관념을 갖고 살아가는 다른 시간, 다른 공간의 사람들에 대해서. 일단 어슐라 전작 읽기를 마친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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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12-06 19:0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르 귄 전작주의 시작!
응원합니다. 따라갈게요 페이퍼라도.^^
전집 말고 단행본으로 한 권 한 권 사는 거
재미나지요. 그게 더 좋더라구요 때때로 자주.

나뭇잎처럼 2021-12-07 09:37   좋아요 4 | URL
전집을 사지 않다보니 책장이 좀 들쭉날쭉하긴 하지만 그래도 뭔가 저만의 일관성 같은 게 느껴지죠. 전작 표지를 예쁘게 뽑았더라구요. 구매욕을 자극해요. 이래저래 원하는 대로 사들이다가 결국 퍼즐 맞추듯이 다 꿰어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ㅎㅎ

러블리땡 2021-12-06 20:3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오 궁금해졌어요 장바구니 담아갑니다ㅎㅎ

나뭇잎처럼 2021-12-07 09:39   좋아요 3 | URL
저도 많이 궁금해져서 급 불을 당기는 중입니다. ‘일종의 사고실험‘이라고 했던 말이 잘 들어맞는 거 같아요. 두 번째 책은 <빼앗긴 자들>. 요건 또 어떤 실험일지!

mini74 2021-12-06 23: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방탄이 어슐러 단편을 언급하면서 아이들이 관심을 많이 가지더라도요. 전작읽기! 응원합니다 ~

나뭇잎처럼 2021-12-07 09:36   좋아요 3 | URL
아 맞아요. 저도 뉴욕타임스 기사 읽다가 https://www.nytimes.com/2021/11/04/opinion/graeber-wengrow-dawn-of-everything-history.html <The Dawn of Everything: A New History of Humanity> 저자가 어슐러의 단편 <The Ones Who Walk Away From Omelas>란 단편 인용하는 거 보고 아마존에서 찾아보니 리뷰에 온통 BTS 이야기더라구요. BTS 노래는 1도 모르는데 그랬었었던거였더라구요. ㅎㅎㅎ 영면에 드신 어슐러 여사가 반가워하시려나. ㅎㅎ 따끈따끈한 다음 책이 도착했네요. 고고~~

서니데이 2022-01-07 20: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나뭇잎처럼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주말과 기분 좋은 금요일 되세요.^^
(사진 속 노트의 손글씨가 예뻐요. 부럽습니다.^^)

나뭇잎처럼 2022-01-08 10:40   좋아요 2 | URL
아. 좋은 소식 가장 먼저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덕분에 풍성한 주말이 될 거 같아요.^^. 자판을 치고 살아도 한 자 한 자 종이에 적는 맛이 다른 거 같아요. 뭔가 진짜로 읽고 어딘가에 새기는 기분. ㅎㅎ 서니데이님도 좋은 주말 되세요^^

thkang1001 2022-01-07 21: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나뭇잎처럼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좋은 밤, 행복한 주말과 휴일 보내세요!

나뭇잎처럼 2022-01-08 10:44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쓴 지 좀 된 글인데 이렇게 소환되니 반갑네요. Thkang1001님도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주말 되세요. 전 우리 강아지랑 제주도 가는 중이에요. 새벽에 목포에 내려와 거기서 배타고 가요. 소풍가는 아이처럼 설레네요. 고맙습니다^^

thkang1001 2022-01-08 1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뭇잎처럼님! 감사합니다!
 

“Why does the universe go to all the bother of existing?” asks physicist Stephen Hawking, realizing at the same time that no mathematical model could ever supply the answer.

팽창했다 수축했다 죽음과 생성을 반복하는 일.


The ultimate purpose of that transformation goes far beyond anything the human mind can imagine or comprehend. And yet, on this planet at this time, that transformation is the task allotted us. That is the reconciliation of outer and inner purpose, the reconciliation of the world and God.

여기서 God은 universe, the whole, infinity, consciousness 등 다양하게 해석 가능.


All that ever has been or will be is now, outside of time, which is a mental construct.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건 오직 지금뿐.


Only from the limited perspective of an observer on or near the planet’s surface does the sun rise and set. If you were far out in space, you would see that the sun neither rises nor sets, but it shines continuously. 

해가 뜨고 지는 것이 지극히 주관적 사고에 의한 묘사라는 걸 아는 순간 인간이 가졌던 절대에 대한 환상이 부서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우리는 주관의 한계를 매순간 의식하지 못한다. 언어에 남아있는 인식의 한계.


There is ultimately no such thing as “your” life, since you and life are not two, but one.

언어에서 흔히 실수하는 이분법적 사고.

‘내 인생’ ‘너의 인생’ 같은 건 없다. 나와 인생은 하나니까.


Why is old considered useless? Because in old age, the emphasis shifts from doing to Being, and our civilization, which is lost in doing, knows nothing for Being, It asks: being? What do you do with it?

This is to say, their inner purpose would emerge only as their outer purpose collapsed and the shell of the ego would begin to crack open.

늙어가는 것에 대해 너무나 용기와 희망을 주는 말. 뭔가 하는 것보다 존재하는 것이 얼마나 의미있는지. 늙어서야 하무 것도 하지 않고 그저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는 것. 우리의 강철 같은 에고가 부서지고 마모되고 금이 가야 닿을 수 있게 되는 경지.


When the ego is no longer identified with the return movement in a person’s life, old age or approaching death becomes what it is meant to be: an opening into the realm of spirit. I have met old people who were living embodiments of this process. They had become radiant. Their weakening forms had become transparent to the light of consciousness.

On the new earth, old age will be universally recognized and highly valued as a time for the flowering of consciousness. 

그렇게 늙을 수 있다면! 눈부시게 빛나는 노년. 의식이 빛이 투명하게 빛나는. 


It’s not we who create, but universal intelligence that creates through us. We don’t identify with what we create and so don’t lose ourselves in what we do. We are learning that the act of creation may involve energy of the highest intensity, but that is not “hard work” or stressful. We need to understand the difference between stress and intensity, as we shall see. Struggle or stress is a sign that the ego has returned, as are negative reactions when we encounter obstacles. 

The force behind the ego’s wanting creates “enemies,” that is to say, reaction in the form of an opposing force equal in intensity. The stronger the ego, the stronger the sense of separateness between people.

에고가 일하지 말고 universal intelligence가 일하게 해야. 스트레스는 이기려고 하는 에고가 돌아왔다는 증거. 에고가 강할 수록 분리감이 강해지고, 그럴수록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은 더욱더 힘들어진다.


Consciousness flows through you into this world. It flows into your thoughts and inspires them. It flows into what you do and guides and empowers it.


Not what you do, but how you do what you do determines whether you are fulfilling your destiny. And how you do what you do is determined by your state of consciousness.

All truly successful action comes out of that field of alert attention, rather than from ego and conditioned, unconscious thinking. 

결국은 이 이야기를 하려고 마지막 장까지 왔구나.

의식이 어떻게 나를 통해 이 세상에 오는지, 왜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지 말하기 위해. 이기려고 하고 뽐내려고 하고 내세우려고 하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에고가 아니라 universal intelligence, consciousness 가 나를 통해 세상과 만나려면 그만큼 내가 잘 비어있어야 한다. 내가 나로 꽉 차 있으면 아무것도 나를 통해 들어오고 나갈 수 없으므로.

 

The modalities of awakened doing are acceptance, enjoyment, and enthusiasm.

자ㅡ 세 가지. 받아들임, 기쁨, 그리고 열정


If you are not in the state of either acceptance, enjoyment, or enthusiasm, look closely and you will find that you are creating suffering for yourself and others.

진심으로 동의.


If you can neither enjoy or bring acceptance to what you do - stop.

내 언어로 표현하자면, 기쁨으로 넘실거리는 일만 할 것.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 혹은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아주 간단한 리트머스 용지.


Through enjoyment, you link into that universal creative power itself.


Joy is the dynamic aspect of Being. When the creative power of the universe becomes conscious of itself, it manifests as joy. There is more meaning in joy than you will ever need.

Don’t ask your mind for permission to enjoy what you do.

Joy does not come from what you do, it flows into what you do and thus into this world from deep within you.


The misperception that joy comes from what you do is normal, and it is also dangerous, because it creates the belief that joy is something that can be derived from something else, such as an activity of thing. You then look to the world to bring you joy, happiness. But it cannot do that. This is why many people live in constant frustration. The world is not giving them what they think they need.


It isn’t the action you perform that you really enjoy, but the deep sense of aliveness that flows into it.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나를 포함해서)은 어떤 일을 해야 기쁨이 느껴진다는 것인데, 중요한 건 우리가 하는 어떤 일로부터 기쁨이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스미는, 넘쳐나는 살아있다는 감각이 기쁨이라는 것. 외부에 있는 어떤 것이 우리가 하는 일을 통해 우리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깊이 내재되어 있던 살아있다는 감각이 흘러넘치는 것이라는 것.


That’s why anything you enjoy doing connects you with the power behind all creation.

따라서, 우리가 무언가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힘과 하면서 기쁨을 느끼는 것은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Some of these people who, through creative action, enrich the lives of many others simply do what they enjoy doing most without wanting to achieve or become anything through that activity.

“Do what they enjoy doing most” 가장 즐겁게 하는 일을 하는 것. 무엇이 되거나 어떤 걸 성취하려는 마음을 품지 않고 가장 즐겁게 하는 일에 몰두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해줄 수 있는 건 참 다행한 일이다. 하는 사람이나 감상하는 사람이나 모두.. 


“I am a hole in a flute that the Christ’s breath moves through. Listen to this music.” 

페르시아의 한 시인은 창작에 관한 아름다운 구절을 남겼다. 


When you add a goal to the enjoyment of what you do, the energy-field or vibrational frequency changes. A certain degree of what we might call structural tension is now added to enjoyment, and so it turns into enthusiasm.  At the height of creative activity fueled by enthusiasm, there will be enormous intensity and energy behind what you do. 

You will feel like an arrow that is moving toward the target - and enjoying the journey.

즐거움에 목표가 더해지면 열정이 된다….


When there is stress, it is usually a sign that the ego has returned, and you are cutting yourself off from the creative power of the universe. Unlike stress, enthusiasm has a high energy frequency and so resonates with the creative power of the universe. 

스트레스와 열정은 다르다….


Nothing great has ever been achieved without enthusiasm.

랄프 왈도 에머슨의 말이다.


With enthusiasm you will find that you don’t have to do is all by yourself.

All you have to do then is “ride the wave.”

열정이 함께하면 effortlessly 할 수 있다….


When enthusiasm encounters obstacles in the form of adverse situations or un cooperative people, it never attacks but walks around them or by yielding or embracing turns the opposing energy into a helpful one, the foe into a friend. 

Enthusiasm and the ego cannot coexist. One implies the absence of the other. 

Enthusiasm “wants” nothing because it lacks nothing.

열정은 참 그렇다….


Once a wave of creative energy has passed, structural tension diminishes again and joy in what you are doing remains. Nobody can live in enthusiasm all the time. A new wave of creative energy may come later and lead to renewed enthusiasm.

늘 열정에 넘치지 않는다고 한탄한 일은 없다. 누구도 그렇게 살 수 없으니. 기쁨으로 찰랑찰랑 거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고 행복해야 할 일.



Make sure your goals are dynamic, that is to say, point toward an activity that you are engaged in and through which you are connected to other human beings as well as to the whole. Instead of seeing yourself as a famous actor and writer and so on, see yourself inspiring countless people with your work and enriching their lives. Feel how that activity enriches or deepens not only your life but that of countless others. Enthusiasm is the power that transfers the mental blueprint into the physical dimension.


“Whatever you ask in prayer, believe that you have received it, and it will be yours.”


어쩌면 이런 구절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훔칠 수 있는(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스스로 용기 내지 못하고 무엇이 되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한 사람들에게 ‘주는 것’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으니, 생각하는 것을 현실로 이룰 수 있는 힘을 묘사하고 있으니. 하지만 그게 또 지금껏 작동했던 원리이기도 하다. 이미 그렇다고 믿는 데 장사 있나. 자기 자신의 영달에 초점을 두지 않고 만인에게 빛과 소금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품는 것이 더 큰 자장을 만들어 내는 것은 맞다. 문제는 그것이 정말 인류의 행복이나 삶에 기여하는가 하는지 여부. 머스크도 주크도 아마 누군가에게 그렇게 도움되는 미래를 꿈꾸고 있다고 생각하면 소름이 끼치지 않나. 영성 책이 사이비 종교가 되는 것은 한순간이다. 


They are here to generate consciousness through the activities of daily life, through their interactions with others as well as through “just being.”

In this way, they endow the seemingly insignificant with profound meaning. Their task is to bring spacious stillness into this world by being absolutely Present  in whatever they do. There is consciousness and therefore quality in what they do, even the simplest task. Their purpose is to do everything in a sacred manner. As each human being is an integral part of the collective human consciousness, they affect the world much more deeply than is visible on the surface of their lives. 


예전 같으면 몽상가, 명상가, 할 일 없는 사람, 베짱이, 등등으로 불렸을 사람들, 현대에는 더욱더 존재의 이유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안팎으로 받을 수 밖에 없는 사람들. 그들의 역할이 앞으로 얼마나 중요해질 것인지, 아니 얼마나 중요했는지 설명하는 대목이다. <필경사 바틀비>가 떠오를 만큼 단어 하나 하나가 심장에 콕콕 박힌다. 그저 어떤 일을 어떻게 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누군가에게 아주 큰 영감을 줄 수 있다. 그것이 어떤 목적이나 의도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가 누군가와 나아가 더 큰 우주와 연결될 수 있는 방법이 오직 그 순간에 통하는 것이므로. 그 순간에 존재하는 것이므로. 거창하고 어려운 단어로 설명할 필요도 없다. 아무 것도 아닌 일상의 순간들을 살아있게 만드는 마법.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 주인공 아버지가 주인공에 남겼던 말처럼.


Nothing is going to make us free because only the present moment can make us free. A new heaven and a new earth are arising within you at this moment, and if they are not arising at this moment, they are no more than a thought in your head and therefore not arising at all.

우리가 읽은 이 모든 것이 이 순간 일어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는 오직 지금 현재에 자유로워질 수 있을 뿐이다. 자유로워진다는 미래 시제는 있을 수 없다. 그걸 깨닫는 것이 깨어나는 것이다. 지금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저 머릿속에 일어났다 사라지는 생각에 불과하다. 생각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지 않는다. 


Heaven is right here in the midst of you.

지금 현재 바로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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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too, will, pass.

이또한 지나가리라


When you become aware of the transience of all forms, your attachment to them lessens, and you disidentify from them to some extent. All such suffering is due to an over-valuation of form and an unawareness of the dimension of inner space.


Their minds are filled up with the clutter of thoughts one thought after another. This is the dimension of object consciousness that is many people’s predominant reality, that is why their lives are so out of balance.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 단 한 순간이라도 생각을 멈출 수 있다면. 생각을 멈추는 일이 이토록 어려운 일인가. 


Awareness implies that you are not only conscious of things (objects), but you are also conscious of being conscious. If you can sense an alert inner stillness in the background while things happen in the foreground - that’s it!

의식하고 있는 걸 의식하는 것. 메타인지.


A short attention span makes all your perceptions and relationships shallow and unsatisfying. Whatever you do, whatever action you perform in that state, lacks quality, because quality requires attention.

아주 조금만 피드를 올려도 금방 지치는 이유.


When you hear of inner space, you may start seeking it, and because you are seeking it as if you were looking for an object or for an experience, you cannot find it. This is the dilemma of all those who are seeking spiritual realization or enlightenment. 

찾으려 하면 안 보여!


The kingdom of God is in the midst of you.


Don’t look for it as if you were looking for something. You cannot pin it down and say, “Now I have it,” or grasp it mentally and define it in some way. The form of little things leaves room for inner space. And it is from inner space, the unconditioned consciousness itself, that true happiness, the joy of Being, emanates. To be aware of little, quite things, however, you need to be quiet inside. A high degree of alertness is required. Be still. Look. Listen. Be present.

침잠하라.


If action is possible or necessary, you take action or rather right action happens through you.

네가 춤추는 것이 아니라 춤이 너를 추도록.


All creativity comes out of inner spaciousness.

강박적일 때 좋은 것이 나오긴 어렵다. 내 안의 영혼이 마음껏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널따란 마당이 펼쳐져야. 


Some people feel more alive when they travel and visit unfamiliar places or foreign countries because at those times sense perception - experiencing - takes up more of their consciousness than thinking. They become more present. Others remain completely possessed by the voice in the head even then. Their perceptions and experiences are distorted by instant judgements. They haven’t really gone anywhere. Only their body is traveling, while they remain where they have always been: in their head.


닐 게이먼의 엄청난 책 <The Graveyard Book>에서 봤던 “Wherever you go, you take yourself with you.”가 생각난다. 이 책은 정말 낭독하면서 읽고 또 읽고 싶은 책인데. 함박눈이 내리면 이 책을 다시 읽어야겠다.


As soon as something is perceived, it is named, interpreted, compared with something else, liked, disliked, or called good or bad by the phantom self, the ego. Whenever it ceases and even when you just become aware of it, there is inner space, and you are not possessed by the mind anymore. 

이름 붙이고, 떠올리고, 판단하고, 해석하고, 비교하고, 좋다 싫다 딱지를 붙이고, 그러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 


If thoughts arise, don’t get involved in them.

Allow each sound to be as it is, without interpretation. 


One conscious breath (two or three would be even better), taken many times a day, is an excellent way of bringing space into your life. Many people’s breath is unnaturally shallow. The more you are aware of the breath, the more its natural depth will reestablish itself.

Being aware of your breath forces you into the present moment - the key to all inner transformation.

숨쉬기 운동이 최고라니깐!



Most people are so distracted by their thoughts, so identified with the voices in their heads, they can no longer feel the aliveness within them. You then begins to look not only for substitutes for that natural state of well-being within, but also for something to cover up the continuous unease that you feel when you are not in touch with the aliveness that is always there but usually overlooked. 


Even drama in relationships is used as a substitute for the genuine sense of aliveness. The most sought-after cover-up for the continuous background unease are intimate relationships: a man or a woman who is going to “make me happy.” It is, of course, also one of the most frequently experienced of all the “letdowns,” And when the unease surfaces again, people will usually blame their partner for it.

내면의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오면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잡기 시작한다.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부터 파괴하기 시작한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까. 기대하는 것이 많을수록 실망의 낙차가 커지기 마련. 싸움의 근원은 늘 내 안에 있다.



Awareness is conscious connection with universal intelligence. Another word for it is Presence: consciousness without thought.

“나는 누구인가”란 질문에 최근 뇌과학에서는 “의식(consciousness)”이라고 답하고 있다. 내 육체나 내 정신도 내가 아니고 오로지 지금 현재 나의 의식만이 나라고.


Living up to an image that you have of yourself or that other people have of you is inauthentic living - another unconscious role the ego plays

내가 바라는 나도 내가 안되는데 하물며 남이 바라는 나대로 살아가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게 있을까.


If something within you responds to it, however, if you somehow recognize the truth in it, it means the process of awakening has begun. Once it has done so, it cannot be reversed, although it can be delayed by the ego.

모든 책에는 그래서 인연이 있다.


Like the atom, it is one of the smallest things yet contains enormous power. Only when you align yourself with the present moment do you have access to that power. Anxiety, stress, and negativity cut you off from that power. The illusion that you are separate from the power that runs the universe returns. You feel yourself to be alone again, struggling against something or trying to achieve this or that. But why did anxiety, stress, or negativity arise? Because you turned away from the present moment.

원자 하나가 가진 무한한 힘. 하지만 불안이 우리를 잠식할 때, 우리는 파편화된 원자일 뿐이다. 우주의 강한 힘에 접속된 존재가 아니라. 지금 이순간에 존재하지 못할 때 우리는 우리가 원래 가진 힘을 잃고 만다. 


Some changes may look negative on the surface but you will soon realize that space is being created in your life for something new to emerge. 

인간만사 새옹지마.


As the ego is no longer running your life, the psychological need for external security, which is illusory anyway, lessens. You are able to live with uncertainty, even enjoy it. When you become comfortable with uncertainty, infinite possibilities open up in your life. It means fear is no longer a dominant factor in what you do and no longer prevents you from taking action to initiate change. If uncertainty is unacceptable to you, it turns into fear. If it is perfectly acceptable, it turns into increased aliveness, alertness, and activity. 

에고를 죽이면 이러한 엄청난 소득이 있구나. 불안에 잠식당하지 않는 것. 


When we perceive without interpreting or mental labeling, which means without adding thought to our perceptions, we can actually still sense the deeper connectedness underneath our perception of seemingly separate things. 

해석하지 말고, 이름 붙이지 말고, 생각을 더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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