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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의 붉은 별 - 소설 박헌영
진광근 지음 / 힘찬북스(HCbooks) / 2025년 8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 입니다
소설 반도의 붉은별은 박헌영이라는 인물을 매개로 해방 공간과 전후 권력의 음영을 응시한다. 이상과 현실이 충돌할 때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이 민중의 삶임을 집요하게 드러낸다. 교과서가 말하는 정의와 도덕의 언어를 빌리되, 실제 권력의 현장에서 작동하는 냉혹한 계산을 한 겹씩 벗겨내며 보여준다. 인물들의 선택과 침묵, 타협을 통해 말의 정의와 현실의 이해득실 사이의 거리를 예리하게 추적한다.
가난한 서출 박헌영은 조선의 양반상놈제도와 그 제도의 유지를 꾀하고 기득권을 향유하려는 양반집단의 행위에 격분하였고 항일의지를 불태우는 동아일보의 열혈기자가 되었다. 일제의 탄압에 혹독한 고문을 겪게 되었고 마침내 해방이 되었으나 ㅇ리제대신 미군정이 그자리를 대체하면서 기득세력의 정권유지는 그대로 세습되는 모습에 대항하기 위한 방법은 오로지 사회주의뿐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조국이 주변국들의 먹이가 되어 산산조각이 나고 있었지만 지배층들은 그들의 계급적 이익을 위해 새로운 점령자들에게 아부하며 미군정의 앞잡이가 되어 반공이라는 수단을 통해 공정을 요구하는 민중을 억압하고 잔인하게 탄압하려 하게 됨에 부득이 남한을 떠나 북으로 피신하는 처지가 된다.
그렇지만 북한에서는 이미 김일성의 패거리들이 소련의 지원을 등에 업고 세력을 단단히 구축한 상태였고 박헌영이 설 자리는 그만큼 이류가 되었고 주력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이 작품이 특히 빛나는 대목은 기득권의 자기 보존 본능을 포착할 때다. 변혁의 언어든 질서의 언어든, 그들의 공통분모는 기득권의 연장이었다. 위기의 순간마다 공공선은 뒤로 밀리고, 책임은 아래로 전가되며, 성과는 위로 집중된다. 권력의 사다리는 공정한 경쟁이 아니라 힘 있는자의 안배와 거래로 움직이고, 민중의 바람은 통계와 구호 속 숫자로만 소환된다.
민중에 대한 시선은 연민을 넘어 윤리적 분노를 담는다. 빚에서 벗어나고 싶고, 내일을 예측하며,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조차 논리의 대결 속에서는 가볍게 무시된다. 정치의 약속이 화려할수록 삶의 현장은 더 조용해지고, 그 조용함 속에서 손해는 더욱 뚜렷해진다는 역설이 뼈아프게 다가온다.
그렇다고 작품이 단순한 반기득권 서사에 머물지는 않는다. 공산주의가 내세운 해방과 평등의 약속이 조직의 논리와 강제의 언어로 변질되는 과정을 서늘하게 보여준다. 사상 검열과 내부 숙청,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유혹은 인간을 도구로 전락시키고, 동지를 의심과 공포의 감시망 속에 몰아넣는다. 개인의 고민은 ‘노선’이라는 잣대에 의해 단순화되고, 복잡한 현실은 구호로 편집된다. 그 대가는 결국 사람들의 상처와 상실로 되돌아온다.
박헌영의 초상 역시 흑백 도식을 벗어난다. 이상을 말하던 입과 조직을 이끌던 손 사이의 모순, 대중을 향한 연설과 은밀한 거래의 간극은 한 개인의 비극을 넘어 체제의 결함으로 확장된다. 작가는 영웅화도 악마화도 거부하며, ‘의도는 선했으나 결과는 폭력이었다’는 냉정한 결론 앞에 독자를 세운다. 남는 것은 개인의 죄책감이 아니라 구조의 책임이라는 물음이다.
결국 이 소설은 두 층위를 동시에 겨냥한다. 위로는 기득권의 이기심과 권력의 기술을, 옆으로는 연대가 도그마로 굳어 폭력을 낳는 과정을 비춘다. 교과서의 윤리는 종이 위에서만 빛났고, 현실 정치의 규칙은 힘의 불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작가는 이를 꾸밈없이 꿰뚫으며, 다시 삶의 현장과 민중의 목소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요청을 전한다.
읽고 나면 남는 감정은 체념이 아니라 분별이다. 어떤 깃발도 검증 없이 믿지 말 것, 어떤 약속도 비용과 책임의 배분을 확인할 것, 어떤 대의도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는 순간 정당성을 잃는다는 상식을 기억할 것. 반도의 붉은별은 그 오래된 상식을 오늘의 언어로 복원하며, 이상과 제도의 거리를 좁히는 정치적 상상력을 독자의 몫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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