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드그라프 mindgraph Vol.1 - 창간호
마인드그라프 편집부 지음 / FFL(에프에프엘) / 2021년 7월
평점 :
절판


우연히 알게 된 창간호. 사실 어떤 주제로 꾸린 잡지인지도 모르고 노석미 작가님 인터뷰 실린다는 소식에 그 댁 고양이들 사진 보려고 구입했다. 궁금한 고양이는 미뤄두고 첫 페이지부터 차근차근 읽던 나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이건 때때로 상담실, 대부분 명상 공간이구나. 그저 힙한 요즘 잡지이려니 했는데 심리학과 마음챙김이 가득하다. 아 psychology와 mindfulness면.. 완전 힙한 건가?
ㅤㅤㅤㅤㅤㅤㅤㅤ
발행인의 노트를 제외하면 창간호의 첫 글은 유희경 시인의 것이다. 아직 혜화의 위트앤시니컬을 못가봐서 이대 앞 시절을 생각하며 읽었다. 마음의 세밀화 같은 시인의 글로 여는 창간호라니. 이 잡지의 톤은 여기서 지정된다.
ㅤㅤㅤㅤㅤㅤㅤㅤ
그리고 전문적인 심리학 노트가 이어진다. 일상의 마음챙김과 책, 음악, 인터뷰, 사물들도. 힘을 빼고 앉아서 오늘의 나를 다듬을 정도로 조금씩 읽는 것이 어울린다는 인상을 받았다. 마음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함인지 이 잡지에는 색깔도 절제되어 있고 광고도 없다. 그 덕분에 가격은 좀 있는 편이지만.
ㅤㅤㅤㅤㅤㅤㅤㅤ
*기대했던 고양이는 너무 좋았다. 인스타그램 이상의 이야기가 인터뷰에 있었다.
*잡지의 아주아주 작은 부분인데 너무 신경이 쓰여서 사실 그 페이지 이후로 전혀 집중을 못해서 기록해둔다. 여기 실린 한 인터뷰에 “돌고래를 보기 위해 보트를 타는 일정”, “돌고래와 같은 속도로 달리는 보트를 상상”이란 구절이 나오는데 핫핑크돌핀스의 활동을 몇 년간 지지하며 지켜보는 입장에서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돌고래 선박 관광은 꼭 금지되어야 할 활동이고 마음챙김의 정반대 지점에 속하는 일이다. 이 인터뷰의 전체를 해치는 게 아니라면 잡지의 통일성을 위해 그 구절은 없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다행히 바람이 세서 배가 뜨지 않았다고 하며 맺었는데 배가 뜨든 안 뜨든 돌고래 선박 관광은 안 됩니다. 돌고래가 선박 관광으로 어떤 고통을 받는지 알고 싶다면 핫핑크돌핀스의 인스타그램 방문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끝까지 쓰는 용기 - 정여울의 글쓰기 수업
정여울 지음, 이내 그림 / 김영사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에 이끌려 읽게 되었다. 끝까지/쓰는/용기. 한 글자도 버릴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저기서 정여울 작가의 글을 읽긴 했지만 제대로 책 한 권은 사본 적 없는데 이런 제목이라면 덮어놓고 믿어도 좋다는 심정으로 바로 주문했다.

평소 작가가 쓴 글쓰기 책을 좋아한다. 그건 그러한 책이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거대한 각주가 되기 때문이다. 아 그때 그래서 그렇게 쓴 거였군, 하고 오해를 풀 기회도 있고. 이 책을 읽기 전에 그래서 걱정이 되기도 했다. 세세한 뒷얘기를 먼저 알게 되면 나중에 정여울 작가의 책을 읽게 되더라도 내 생각 같은 건 못하게 되는 게 아닐까 해서. 그런데 이 책은 각주가 아니었다. 이 책은 작가가 자신의 책에 대해 쓴 다정한 독후감이었다.

이것은 이렇게 쓴 것이다, 라는 설명이 아닌 그것을 쓸 때의 생각과 지금 다시 자신의 글을 읽는 작가의 마음을 썼다는 데에서 독후감이 느껴졌다. 표지에는 글쓰기 수업이라고 조그맣게 적혀있지만 그는 이 책에서 이미 써본 사람으로서 가르치지 않는다. 그는 계속해서 쓰는 일을 통해 독자에게 글쓰기가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이 수업은 학습을 위해 줄 맞춰 앉은 강의가 아니라 나누고 교감하는 동그랗게 앉아 낯선 옆사람과 손을 잡기도 하는 종류의 수업이다.

그리하여 나는 앞으로 읽을 정여울 작가의 책들을 스포일링 당한 게 아니라 영업을 잔뜩 당한 쪽이 되었다. 그의 책이 한 바닥씩 나와있는데도 미리 읽었다는 느낌보다 여기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이전에는 무슨 얘길 썼을지 궁금해졌다. 일단 끝까지 읽을 용기를 충전 완료. 그리고 여기서 읽은 대로 무엇이든 써보는 용기까지 챙기기로 한다.


너무 외로워서 글이라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 순간, 나는 작가가 된 것이로구나. - P19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쓰는 사람, 이은정 - 요즘 문학인의 생활 기록
이은정 지음 / 포르체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가, 이은정이 아닌 쓰는 사람, 이은정’. 아직 소설로 만나지 않은 소설가의 산문집은 잘 읽지 않는 편인데 쓰는 사람이라는 자기소개에 홀려 읽게 되었다. 작가라는 말은 예술가를 떠올리게 한다. 생각과 마음을 보이는 형태, 글이나 그림이나 조각 같은 것들로 만들어내는. 그런데 그를 더 구체적으로 쓰는 사람이라고 부르면 쓰는 일과 쓰기 위해 하는 모든 일이 노동으로 다가온다. 한 권의 책이 어떤 영감이나 글쓰기 요정이 뚝딱 만들어낸 작품이 아니라 재능이란 가느다란 거미줄에 주렁주렁 매달려 반짝이는 고통과 묵묵함으로 보이는 것이다.

이 기록은 과연 그런 것이어서 쓰는 사람은 충분한 평온과 무신경한 기쁨을 느끼는 일이 없다. 그가 적어둔 것은 주름지고 초라한 것들의 따뜻함, 더 털어버릴 수 없을 것 같은 절망에서 마지막을 놓아버릴 때 느끼는 충족, 우연한 불운이 주는 농담 같은 얘기들이다. 요새는 잘 나오지 않지만 오래전에는 이런 느낌의 글을 수필이 아닌 수기로 엮인 책에서 종종 읽은 기억이 있다. 사실 수기와 수필은 내용상으로는 큰 차이가 없다. 수필은 아무 날도 아닌 날을 마음만 가지고 쓸 수 있다면 수기는 어떤 체험을 한 사람만의 언어로 적어낸다는 미묘한 차이 정도가 있을 뿐. 그런데 여기에 이 책이 수기의 느낌을 주는 이유가 있다. 작가는 쓰는 사람으로서 아무 날도 아닌 날을, 작고 가만한 날을 살아내는 체험을 적은 것이다. 그리하여 이 글은 독자가 작가의 마음을 엿보는 데 그치지 않고, 살아내는 모습을 아주 가깝게 읽는 사람으로 존재하게 한다.

읽다 덮어둔 책 표지에 쓰인 문학, 목매달고 죽어도 좋을 나무란 표현을 보고 어린 가족이 기겁한다. 목매달아 죽어도 좋다고? 하면서. 아가, 넌 아직 죽어도 상관없을 만큼 좋은 게 어떤 마음인지 당연히 모르겠지. 나는 죽어도 좋을보다 나무가 더 크게 보였다. 부디 그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서 그에게 그늘도 되어주고 초록도 나눠주고 꽃도 열매도 아름답길. 죽음이 둘을 갈라놓을 때까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웃어넘기지 않는다 - 페미니스트 킬조이가 보내는 쪽지
에린 웡커 지음, 송은주 옮김 / 신사책방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좋아하지만 역시 난해하고 그래서였는지 요새는 유행이 지난 듯한 여성적 글쓰기(식수)의 흔적을 여기서 본다. 원제에 들어있는 note, 번역으로 쪽지인 단어는 빈말이 아니다. 저자는 분열의 삽화를 쪽지들로 남기고 그것들을 패치워크로 엮어 이 책으로 만든 듯 하다.
ㅤㅤㅤㅤㅤㅤㅤㅤ
가부장제에서 여성-엄마-페미니스트로 존재하는 것은 분열할 수 밖에 없는 상태다. 이것을 기존 문법으로 적는다면 아무리 많이 써도 담을 수 없는 것들이 생긴다. 여성적 글쓰기는 그것을 완전하게 한다. 엮어내고 숨겨주고 빈 공간(행간)을 제공한다. 같은 맥락에서 전에 읽은 《자아, 예술가, 엄마》 도 생각난다. 통합적 존재로서의 ‘나‘라는 환상이 깨진 후(자아-예술가-엄마 라는) 그 조각을 모으는 과정의 ‘나‘ 혹은 그 작업을 읽었었다. 이 책은 자아-페미니스트-엄마의 경우다. 강간 문화에 관한 쪽지는 비교적 쉽게 읽히고(모두 동의하니까 역설적이게도 제일 편하게 읽을 수 있다) 우정에 관한 쪽지는 핵심 단어만 빼고 주변을 쓴 느낌. 그만큼 조심스러운 접근. 페미니스트 엄마 노릇에 대한 쪽지는 치마만다 응고지치 아디치에의 《엄마는 페미니스트》 보다도 솔직하게 다가왔다. 이건 진짜라고요.
ㅤㅤㅤㅤㅤㅤㅤㅤ
이 책에 휘둘리며 읽은 이유는 나도 딸을 낳아서, 그 어린이의 태명이 같은 쑥쑥이여서, 쫓긴 적이 있어서, 같은 결의 절망을 겪은 적 있어서만은 아니다. 가부장제의 즐거움이 즐겁지 않다는 연대, 그리고 그것을 인지함으로부터 오는 불안/흥분이 날 것 그대로 생생했기 때문이다. 호흡이 그대로 느껴지는 이런 책은 흔치 않지...
ㅤㅤㅤㅤㅤㅤㅤㅤ
*ㅤㅤㅤㅤㅤㅤㅤㅤ
별개로 분명 쉬운 책은 아니니만큼 역자후기 노트가 짧게라도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역시 지극히 개인적으로 읽을 때 의미가 증폭되기 때문에 없는 걸까 궁예해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서울의 길 - 확장하는 도시의 현재사 서울 선언 3
김시덕 지음 / 열린책들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드디어 기다리던 대서울 시리즈 세 번째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책에서 저자가 서울에 대한 책은 매년, 매달 갱신되어야 한다고 쓴 것처럼 과연 세 번째 책이 나온 지금의 서울은 또 다른 모습이다. 이번 책에서는 내게 익숙한 경기도 그 너머까지의 대서울을 주로 다룬다. 난 출퇴근도 통학도 안 하는 입장이라 대서울의 범위를 일상에서 체감하지 못한다. 하지만 나의 좁은 이곳은 놀랍게도 대서울 어디와도 연결된다. 진짜 ˝대˝서울이다. 이 책의 여정은 그 연결, 선(길)을 따른다.
ㅤㅤㅤㅤㅤㅤㅤㅤ
이번 책에서 유난히 눈길을 사로잡았던 건 곳곳에 서있는 위령비들이다. 위로하고 기록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 잊혀지고, 사고들은 비석을 앞질러 잊혀진다는 느낌. 어떤 곳에서는 자연물처럼, 어떤 곳에서는 걸림돌처럼 방치되고 잊혀진 비석들이 매달 갱신되어야 하는 대서울 확장을 위한 땔감의 일부가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ㅤㅤㅤㅤㅤㅤㅤㅤ
그리고 또 한 가지 눈에 들어온 것은 대서울에 형성된 외국인 노동자 거주지역에 대한 것들이다. 요즈음 난민 이슈가 대두되며 나오는 이슬람 문화를 수용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말들이 공허하게 느껴졌다. 스피커의 옆집이 아닐 뿐 이미 그것은 대서울의 한 부분이라는 걸 부정할 수 없으므로.
ㅤㅤㅤㅤㅤㅤㅤㅤ
이번 책의 묘미는 뿌리깊은나무 출판사에서 1983년 나온 《한국의 발견》시리즈와 지금의 대서울을 비교하며 읽을 수 있는 구성이다. 한국의 발견 시리즈를 공책에 베껴 적으며 사회 숙제를 했던 ‘국민학생‘이었던 나는 이 시리즈를 여전히 아빠가 갖고있다는 걸 알고있으므로 당연히 《대서울의 길》을 풍부하게 읽기 위해 빌렸다. 대서울의 길에 중요한 부분은 발췌되어있고 한국의 발견은 뒤적거리며 부분부분 읽었지만 엄청 재미있었다. 70대 아빠의 책꽂이에는 한국의 발견이, 내 책꽂이에는 대서울 시리즈가 있다는 것도 상징적.
ㅤㅤㅤㅤㅤㅤㅤㅤ
이번 책에서는 이전과 다르게 내가 잘 모르는 지역이 많이 나왔다. 이전 책에서는 아는 곳의 반가움, 기억의 재미를 느꼈는데 이번에는 안타까움이 컸다. 내가 알기도 전에 이미 사라진 것들, 더이상 원래 모습이 아닌 것들에 느끼는 감정이었다. 그러다 문득 몇해 전 우리집에서 내려다 보이던 주공아파트 철거 모습이 생각났다. 그 광경을 볼 때 이 비슷한 기분이었다. 소중했던 한때가 부서지는 장면, 돌이킬 수 없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때의 느낌. 이것을 미래 유산 보존 같은 이름을 붙여 낡은 아파트 한 동 남기는 걸로 무마시킬 수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