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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오사화 ㅣ 조선 핏빛 4대 사화 1
한국인물사연구원 지음 / 타오름 / 2010년 12월
평점 :
조선 사대사화라 일컫는 무오사화 갑자사화 기묘사화 을사사화중 연산4년에 김종직의 조의제문에서 의제를 죽인 한무를 비유해 단종을 죽인 세조를 은근히 비난한글을 사초에 실은 일이 성종실록을 편찬할 때 발각되면서 연산군을 충동하여 김일손 등 사림파 거의 전원을 죄인으로 몰아 죽이거나 귀향을 보내고 이미 죽은 김종직의 무덤을 파서 시체의 목을 베고 그의 문집은 태워버렸다. 그리고 사림파가 화를 당한 것을 일명 사화(史禍)라 적는 것은 그 발단이 사초로 인해 일어난 사화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연산군은 사치와 향락에 취해 재정의 낭비와 폐단이 심하였고, 연산군은 어려운 재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훈구 공신들의 토지와 노비를 몰수하려는 계획도 세웠다.
이런 상황에서 훈구파와 사림파의 잔존 세력을 죽이기 위해 나타난 세력중 임사홍과 연산군의 처남 신수근은 연산군의 생모 윤씨의 폐출과 사사 사건을 들추어 연산군의 마음을 뒤흔들어, 이로 인해 훈구파와 사림파의 잔존세력을 죽이거나 귀향을 보내고 파직시켰다 이것이 갑자사화(연산 10)이다.
이후 포악한 성격이 드러나며 온 갓 횡포를 부리던 연산군은 제위12년에 훈구 세력에 의해 폐출되고 동생 진성대군이 중종으로 즉위(중종반정)한다.
차례에는 사대사화, 정치집단, 무오사화, 연산군의 행적, 연산군일기와 무오사화의 인물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어 사대사화의 이해와 시대 인물들의 활약상을 볼 수 있다
정치집단에서는 조선시대 대간들은 국왕에게 시중의 인심을 바르게 전하기 위해 목숨까지 걸었다. 사대부만이 정치의 주체였던 조선과 전 국민이 정치의 주체인 현재의 상황을 그대로 비교할 수는 없을 테지만 조선시대 대간들의 모습에서 오늘날의 교훈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연산군은 원자 황의 탄생을 전갈 받으며 “그 원자가 나중에 자라면 세자로 책봉이 되고 또 내가 용상을 내놓으면 그 용상에 올라야 하니 팔자 사나운 어린애가 아니겠느냐? 수십명 대간들이 때를 지어서 술을 마시면 술을 마신다, 계집을 가까이 하면 계집을 가까이 한다, 사사건건 트집이니 트집만 잡힐 슬픈 어린아이 하나가 태어난 것이지 어찌 경사라 하겠느냐?”하는 말에서 자신의 삶을 불행하게 느끼고 있음을 말하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