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2016학년도의 재수생 비율에서 나타나듯이, 수시 확대 기조가 수능 경쟁에 참여하는 인원을 단기적으로나마 줄이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수능 난도‘와 ‘수능 경쟁 압력‘이 서로 연관성을 지닐지라도 여전히 별개의 요소라는 점, 표본집단의 수준에 의해 난도가 결정된다는 점, 수시에도 수능 성적이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장기적으로는 상황이 달라집니다. - P275
2014학년도는 수능이 ‘언 수 외‘에서 ‘국 수 영‘ 체제로 개편되고 탐구 응시과목 수가 2개로 줄어들면서 수능 해킹이 용이해지도록 출제 경향이 바뀐 해입니다. 시대인재학원이 <서바이벌 모의고사>와 함께 대치동에 첫발을 내디딘 해이자 ㄷ이 ‘메가스터디 1타 강사‘가 된 해이기도 하죠. - P189
킬러 문항이 단순히 ‘교육과정을 벗어나서‘, 혹은 ‘정답률이 낮아서‘ 문제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1부 전체에 걸쳐 다루어졌습니다. 애당초 킬러 문항이란 학생 당사자들이 ‘문제의 퍼즐화로 인한 난도 상승 및 그에 따른 사고의 외주화‘를 현장에서 체감하며 생겨난 용어인데, 결정권자인 기성세대들은 과거의 인식에만 사로잡혀 있었던 겁니다. - P111
뭔가 이상합니다. 언론은 교사들이 킬러 문항 제작을 주도하는 것처럼 묘사하는데, 정작 유명 학원 체인은 대학생이 주축인 출제팀을 여럿 보유하고 있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학원과 강사들은 공식 홈페이지에서 수시로 ‘문항 공모‘를 받습니다만, 여기에도 별다른 자격 제한은 없습니다. - P139
오르비는 부속 사이트로 ‘오르비 닥스‘라는 PDF 거래 플랫폼을 운영합니다. 커뮤니티 이용자 개개인이 직접 만든 교재를 업로드한 후, 구매가 발생하면 매출의 50%를 가져가는 구조입니다. 업로드 과정이 어렵지 않으니 시장 진입이 용이한데다가 판매 페이지에 누적인세가 표시되는 만큼 경쟁심을 자극하지요. 실전모의고사 출제는 조직화된 산업인 동시에 소규모 독립 창작, 즉 인디 문화로서의 특성 또한 지닌 셈입니다. - P141
지금의 수능 사교육 시장은 수능 콘텐츠 시장입니다. 그런데 이런 변화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수능 콘텐츠가 본격적으로 사교육을 지배한 기점을 논한다면, 2017년에서 2019년 사이입니다. 첫번째 실전모의고사가 출간되어 문화적 현상으로 발돋움한 계기는 2010년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시작은 2005년입니다. 바로 ‘숨마쿰라우데 시리즈‘의 첫번째 권이 ‘최상위권을 위한 참고서‘를 표방하며 시장에 등장한 해입니다. ‘숨마쿰라우데 시리즈‘는 오르비스 옵티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오르비스 옵티무스, 짧게 줄여 오르비 이야기부터 하겠습니다. - P148
2000년대 극초반까지는 수능 문제가 거의 IQ테스트다 싶게 자유분방하다가 2000년대 중후반부터 원칙과 조건을 조립하는 틀이 갖춰지기 시작한 점도 짚어야겠습니다. 그때부터 난도가 본격적으로 높아지기도 했고요. 그렇다보니 유사 문항을 만들어서 대비하면 공부가 더 수월해지겠구나라는 생각이 관련자들 사이에서 생겨난 것 같아요. <포카칩 모의평가>가 최초이긴 했습니다만 저희가 그걸 무에서 창조했다기보다는 그런 게 나올 수밖에 없었던 시기였던 거죠.(이덕영 ‘포카칩 모의평가‘ 저자) - P155
무엇이 시장 논리에 부합한다는 사실은 도덕의 근거가 되지 못하고, 어떤 물건이 그 자체로 좋다 나쁘다 하는 말에도 별 의미가 없습니다. 상품과 거래의 의미는 시장 바깥의, 사회적이고 종합적인 맥락 속에서만 온전히 특정될 수 있는 것입니다. - P245
(논리력이나 분석력 등을 체계적으로 기르는 공부와 달리) 문제풀이 위주 학습에는 완성이 없는 만큼 투입 시간이 절대적인 중요성을 지니지요. 그렇다면 절대다수의 수험생이 후자의 방식으로 수능을 준비하기 시작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재학생과 재수생 간의 격차가 확연히 벌어질 것입니다. 이건 3년간 문제를 푼 학생보다는 4년간 문제를 푼 학생이, 4년간 문제를 푼 학생보다는 5년간 문제를 푼 학생이 반드시 유리한 승부니까요. - P251
사교육 의존도가 높아지고 N수가 일반화되면서, 반수생을 비롯한 N수생들이 조교 및 출제·검토 업무를 병행하며 사교육비를 벌고 산업의 하부를 지탱하는 구조가 나타난 것입니다. 급여는 최저임금을 소폭 상회하는 수준이고, 경우에 따라서 이들은 무급 초과노동을 당연스레 요구받기도 합니다. 학습과 업무의 경계가, 취미와 업무의 경계가 흐릿한 탓입니다. - P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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