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0년경에는 도시 주민의 거의 3분의 1이 아일랜드인이었다. 아일랜드인들은 자기들만의 학교를 세울 수 있는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신교고들의 공립학교 동맹과 투쟁했다. 그들은 맨해튼의 타락한 민주당원들이 결성하여 정치와 재정을 부패시킨 기구인 ‘태머니파‘에 합류하기도 했다. 다른 당들은 모두 그들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젠틀맨‘, 다시 말해 은행가나 부유한 상인이 될 수 없었기 때문에 가장 야비한 직업인 정치가가 되거나 공무원이 되었다. 그 결과 19세기의 후반기와 20세기의 상당 기간 동안 아일랜드인들이 뉴욕을 통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 P32

뉴욕파의 화가들에게는 그들만의 위대한 여사제가 있었다. 1942년에 맨해튼에 있는 자신의 화랑에서 ‘금세기의 미술‘이라는 제목을 내걸고 그들의 작품을 전시하기 시작한 페기 구겐하임이 바로 그들의 여사제였다. 그녀는 막스 에른스트의 부인이었다. 구겐하임 화랑은 전쟁중에 로스코와 폴록의 유일한 고객이었고, 생계가 어려운 많은 화가들을 도왔다. - P60

뉴욕주의 죄수들 가운데 85% 이상이 흑인이거나 히스패닉계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지만 에디 엘리스가 처음으로 밝힌 것은 그중 75%가 뉴욕 시티의 100여 개가 넘는 구역 중에서도 특히 서로 이웃한 다음 7개 구역 출신이라는 것이었다. 할렘, 로어이스트사이드(맨해튼), 사우스 브링크스, 사우스 자메이카(퀸스), 이스트뉴욕, 브라운스빌,배드퍼드스 투이베산트(브루클린). 그전까지는 어떤 경찰이나 범죄학 전문가도 ‘죄수 4명 중 3명이 이 7개 구역에서 태어나 범죄를 저지르고 결국은 이곳으로 돌아온다‘는 것, 그리고 이 구역들이 감옥과 마찬가지로 범죄의 출입구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 P68

1900년 시청에서 맨해튼의 하류 지역을 할렘의 주거지역과 연결하는 지하철을 레녹스가에 건설할 예정임을 공고하면서 한 가지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건설 과역 현상이 빚어지면서 부동산 개발업자들이 할렘의 지하철 노선과 그 노선이 끌어들일 주민들의 수를 예측하고 호화로운 임대 아파트를 지었다. 그런데 지하철 개통과 함께 엄청난 경기 침체 바람이 몰아쳤다. 지나치게 많은 건물이 세워진 할렘은 순식간에 겉만 번지르르한 유령도시로 변모했다. 부동산 개발업자들은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백인들이라면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았을 턱없이 높은 임대료를 받고 흑인들에게 세를 놓기 시작했다. 그 결과 할렘은 맨해튼의 ‘그늘진 도시‘가 되었다. (중략) 흑인들이 장악한 건물들이 여기저기 늘어나자 백인들은 할렘 밖으로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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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상황은 제조 대기업이 생산직 노동자의 숙련을 우회하거나 배제하는 방향으로 재편하고 있다. 생산직 노동자들 대신 고학력의 대졸 엔지니어를 많이 뽑아 그들의 숙련도를 높이는 것이 제조 대기업의 관심사다. 저학력이지만 고숙련 공정을 담당했던 정규 생산직 노동자의 자리가 자동화와 로봇에 의해서나 혹은 비정규직 노동자나 저임금-저숙련 하청 노동자로 대체됐다.

중숙련 업무인 사무직 자리는 신규 채용 대신 ‘경력직 같은 신입‘이나 경력직을 통해 충원되거나, 전직을 바라는 엔지니어에게 돌아간다. 특히 산업도시에서는 사무직을 정규직으로 뽑지 않으려는 경향마저 있다. - P86

몇 년 전까지 화두가 됐던 ‘젠트리피케이션‘의 경우처럼 도심의 공업 지대가 쇠퇴하고 나서 탈공업화 과정에서 상업지로 조성되는 사례는 많다. 지금은 ‘패션 피플‘과 예술가들의 성지처럼 불리는 뉴욕의 브루클린 같은 곳이 전형적 사례다. 코로나19 백신 때문에 더 익숙해진 화이자가 브루클린에 본공장을 갖고 있었다. 브루클린의 사례야말로 탈공업화 이후 전형적인 도심 공업 지역이 문화예술 산업으로 전환된 경우다. - P78

수도권을 포함한 전국의 지자체는 산단 유치를 강력하게 히망하고 중앙정부는 이에 호응한다.(중략) 하지만 결국 제조 대기업의 하위 단계 하청이나 모듈 생산 공장이 산단에 입주하고, 단기 계약직 ‘뜨내기‘ 노동자나 저렴한 인건비를 맞추기 위해 이주 노동자를 고용하는 상황이 된다. 불안정한 저임금 일자리만 양상되는 셈이다. (중략) 지역에 남아 있는 청년들은 공장에 가느니 배달이나 쿠팡 등의 물류센터 상하차 작업 등 플랫폼 노동을 선택하고 만다. 여성 일자리는 아예 생겨나지도 않는다. - P84

한국식 생산방식은 일본이나 독일과 유사하게 애초 고졸 엔지니어도 많았고, 생산직과 엔지니어의 협업이 많았던 작업장의 역사도 있다. 하지만 1987년 이후 노사관계가 적대적으로 변함에 따라 사측이 미국식 경영 방식을 적용해 오고 있다. 자동화와 로봇 도입을 밀어붙이고 생산 현장에서 가능하면 노동자의 숙련에 기반을 둔 개입을 줄이는 방향으로 애썼다. 물론 산업에 따라 일정한 차이는 있다.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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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대화가 실제로는 세 가지 유형으로 이루어진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에 집중하는 실용적인 의사 결정의 대화가 있다. ‘어떤 기분인가?‘를 나누는 감정적인 대화도 있다. 마지막으로 ‘우린 누구인가?‘를 탐구하는 사회적 정체성에 대한 대화가 있다. 대개는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이 세 대화가 뒤섞이게 된다. 그러나 내 앞에 있는 상대와 동일한 유형의 대화를 하고 있지 않다면 서로 진정으로 통하게 될 가능성은 아주 낮다.

시버스는 과학 저널을 탐독하던 중 2012년 독일의 막스플랑크 인간개발연구소 학자들이 크리스티안 샤이들러의 소나타 D장조를 연주하는 기타리스트들의 뇌를 연구한 논문을 발견했다. 연주자들이 각자 자기 악보에 집중해서 독주할 때는 신경 활동이 서로 상이했다. 그러나 합주 부분으로 넘어가는 순간 뇌 안의 전기 펄스가 동기화되기 시작했다. 마치 기타리스트들의 뇌가 하나로 합쳐지는 것 같았다. 게다가 이 연결은 신체로도 이어져 모두 비슷한 속도로 흐흡하고 동공이 동시에 확장되었으며 심장도 비슷한 박자로 뛰기 시작했다. 피부를 따라 흐르는 전기 자극조차 빈번하게 일치했다.

직장 내 정치를 두고 뒷담화하거나 상대가 함께 아는 지인이 있는지 물어볼 때, 또는 종교나 집안 배경, 그 밖의 정체성이 자기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설명할 때 우리는 뇌의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를 사용한다. 이 네트워크는 신경과학자 매슈 리버먼이 쓴 것처럼 "타인에 관해, 자신에 관해, 자신과 타인의 관계에 관해" 생각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소통상의 오해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유형의 대화에 참여할 때 발생한다. 상대가 감정을 말하는데 나는 현실을 말하면 두 사람은 본질적으로 다른 인지 언어를 사용하는 셈이다.(중략) 지금부터 배우자와의 대화가 다툼으로 번지는 순간이 오면 이렇게 슬쩍 물어보자. "지금 당신은 기분을 말하고 싶어? 아니면 우리가 함께 결정을 내려야 하는 거야? 아니면 혹시 내가 모르는 다른 문제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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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2016학년도의 재수생 비율에서 나타나듯이, 수시 확대 기조가 수능 경쟁에 참여하는 인원을 단기적으로나마 줄이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수능 난도‘와 ‘수능 경쟁 압력‘이 서로 연관성을 지닐지라도 여전히 별개의 요소라는 점, 표본집단의 수준에 의해 난도가 결정된다는 점, 수시에도 수능 성적이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장기적으로는 상황이 달라집니다. - P275

2014학년도는 수능이 ‘언 수 외‘에서 ‘국 수 영‘ 체제로 개편되고 탐구 응시과목 수가 2개로 줄어들면서 수능 해킹이 용이해지도록 출제 경향이 바뀐 해입니다. 시대인재학원이 <서바이벌 모의고사>와 함께 대치동에 첫발을 내디딘 해이자 ㄷ이 ‘메가스터디 1타 강사‘가 된 해이기도 하죠. - P189

킬러 문항이 단순히 ‘교육과정을 벗어나서‘, 혹은 ‘정답률이 낮아서‘ 문제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1부 전체에 걸쳐 다루어졌습니다. 애당초 킬러 문항이란 학생 당사자들이 ‘문제의 퍼즐화로 인한 난도 상승 및 그에 따른 사고의 외주화‘를 현장에서 체감하며 생겨난 용어인데, 결정권자인 기성세대들은 과거의 인식에만 사로잡혀 있었던 겁니다. - P111

뭔가 이상합니다. 언론은 교사들이 킬러 문항 제작을 주도하는 것처럼 묘사하는데, 정작 유명 학원 체인은 대학생이 주축인 출제팀을 여럿 보유하고 있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학원과 강사들은 공식 홈페이지에서 수시로 ‘문항 공모‘를 받습니다만, 여기에도 별다른 자격 제한은 없습니다. - P139

오르비는 부속 사이트로 ‘오르비 닥스‘라는 PDF 거래 플랫폼을 운영합니다. 커뮤니티 이용자 개개인이 직접 만든 교재를 업로드한 후, 구매가 발생하면 매출의 50%를 가져가는 구조입니다. 업로드 과정이 어렵지 않으니 시장 진입이 용이한데다가 판매 페이지에 누적인세가 표시되는 만큼 경쟁심을 자극하지요. 실전모의고사 출제는 조직화된 산업인 동시에 소규모 독립 창작, 즉 인디 문화로서의 특성 또한 지닌 셈입니다. - P141

지금의 수능 사교육 시장은 수능 콘텐츠 시장입니다. 그런데 이런 변화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수능 콘텐츠가 본격적으로 사교육을 지배한 기점을 논한다면, 2017년에서 2019년 사이입니다. 첫번째 실전모의고사가 출간되어 문화적 현상으로 발돋움한 계기는 2010년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시작은 2005년입니다. 바로 ‘숨마쿰라우데 시리즈‘의 첫번째 권이 ‘최상위권을 위한 참고서‘를 표방하며 시장에 등장한 해입니다. ‘숨마쿰라우데 시리즈‘는 오르비스 옵티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오르비스 옵티무스, 짧게 줄여 오르비 이야기부터 하겠습니다. - P148

2000년대 극초반까지는 수능 문제가 거의 IQ테스트다 싶게 자유분방하다가 2000년대 중후반부터 원칙과 조건을 조립하는 틀이 갖춰지기 시작한 점도 짚어야겠습니다. 그때부터 난도가 본격적으로 높아지기도 했고요. 그렇다보니 유사 문항을 만들어서 대비하면 공부가 더 수월해지겠구나라는 생각이 관련자들 사이에서 생겨난 것 같아요. <포카칩 모의평가>가 최초이긴 했습니다만 저희가 그걸 무에서 창조했다기보다는 그런 게 나올 수밖에 없었던 시기였던 거죠.(이덕영 ‘포카칩 모의평가‘ 저자) - P155

무엇이 시장 논리에 부합한다는 사실은 도덕의 근거가 되지 못하고, 어떤 물건이 그 자체로 좋다 나쁘다 하는 말에도 별 의미가 없습니다. 상품과 거래의 의미는 시장 바깥의, 사회적이고 종합적인 맥락 속에서만 온전히 특정될 수 있는 것입니다. - P245

(논리력이나 분석력 등을 체계적으로 기르는 공부와 달리) 문제풀이 위주 학습에는 완성이 없는 만큼 투입 시간이 절대적인 중요성을 지니지요. 그렇다면 절대다수의 수험생이 후자의 방식으로 수능을 준비하기 시작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재학생과 재수생 간의 격차가 확연히 벌어질 것입니다. 이건 3년간 문제를 푼 학생보다는 4년간 문제를 푼 학생이, 4년간 문제를 푼 학생보다는 5년간 문제를 푼 학생이 반드시 유리한 승부니까요. - P251

사교육 의존도가 높아지고 N수가 일반화되면서, 반수생을 비롯한 N수생들이 조교 및 출제·검토 업무를 병행하며 사교육비를 벌고 산업의 하부를 지탱하는 구조가 나타난 것입니다. 급여는 최저임금을 소폭 상회하는 수준이고, 경우에 따라서 이들은 무급 초과노동을 당연스레 요구받기도 합니다. 학습과 업무의 경계가, 취미와 업무의 경계가 흐릿한 탓입니다. - P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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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어렵다 해도 에세이나 회고록을 쓸 때는 그런 페르소나를 반드시 만들어내야 한다. 이는 조명 도구나 마찬가지다. 이게 없으면, 주제도 이야기도 있을 수 없다. 회고록이나 에세이를 쓰는 작가는 그런 페르소나를 빚어내기 위해 소설가나 시인처럼 자기 성찰이라는 견습 기간을 거치며, 왜 말하는가, 누가 말하는가를 동시에 알아내야 하는 이중고를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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