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의 진화 -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들려주는 성의 비밀 사이언스 마스터스 1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임지원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이란 존재는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지구의 역사가 1만년 내외라고 믿는 창조론자들이나 적어도 45억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고 믿는 진화론자들이나 공통적으로 곡해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인간이 지구상에서 가지는 존재가치나 역활론에 대해서는 이구동성격으로 비슷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중에서 가장 고등한 생명체는 다름 아닌 우리들 인간 자신이고 인간을 제외한 그 어떠한 생명체들과 확연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는 믿음이 그것이다. 창조론자들은 신이라는 형이상학적존재를 제외한 형이하학적 존재중에서 가장 으뜸이 바로 신의 아들들인 인간이라는 믿음과 이에 반해 조금은 덜 하지만 인간은 비롯한 모든 생명체은 어느날 갑자기 뚝딱하고 생겨난 것이 아니고 가장 원시적인 세포에서 서서히 진화했다고 믿으면서도 유독 우리 인간의 진화는 여타의 생물들과는 다른 길을 걸어 왔다는 은근한 자부심 아닌 자긍심을 가슴한켠에 남겨놓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예전의 인종차별이나 성차별만큼 위험하고 왜곡된 생각으로 종차별이라는 거대한 담론에서는 극히 잘못 인식되어 있는 사례라고 할 것이다. 

우리 인간은 모든면에서 우리와 극히 진화나 유전적으로 가까운 영장류와도 확연히 구별되는 진화를 거쳐 지금의 현대인류에 이르렀고 다른 생명체와 다른 문화, 예술, 언어를 사용함으로서 진화의 가장 최극점에 놓여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러한 극단적인 예가 바로 섹스에 관한 담론이다. 우리 인간은 섹스를 여타의 포유류들과 달리(가장 흔히 볼 수 있듯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만인이 보는 앞에서 아주 당당하게 짝짓기를 하는 개들을 찌푸린 시선을 바라본적이 한두번 쯤 있을 것이다) 남들이 보는 앞에서 그리고 대게의 경우 배우자 내지는 고정적인 섹스 파트너가 아닌 다양한 사람들과 섹스라는 행위를 가지지는 않는다. 더욱 인간과 가장 닮은 영장류들과 확연하게 다른 점은 우리 인간은 섹스를 정해진 때(발정기나 번식기)에 구애받지 않고 그냥 하고 싶을때(물론 상대방과 합의하에)섹스를 한다. 또한 우리는 섹스를 번식의 대상을 떠나 즐거움 내지는 쾌락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다.
 
물론 우리에게도 일부다처제나 일처다부제라는 극히 제한적인 형태의 집단이 있지만 대게 보통은 일부일처제내지는 고정적인 섹스파트너와 그 행위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들 스스로가 만물의 영장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고 이러한 생각은 거의 신앙의 수준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들과 비교해 보면(그 범위를 좀더 줄여 포유류 아니 영장류로 줄이더라도) 인간의 섹스는 다소 의외의 면들이 많이 있다. 물론 이점에서 우리 인간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동물들과 다른 사고라는 힘이 섹스를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통제 가능한 섹스가 동물과 다른 인간만의 진화과정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약간만 아니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러한 논리에는 허술한 점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는것을 금방 알 수 있다. 단지 우리가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수의 동물집단에서 인간처럼 섹스를 하는 개체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인간처럼 일부일처라는 규칙성에 따르는 동물들도 있지만 동물계 전체적으로 보면 이러한 규칙성은 극히 예외적이면서 왠지 불안정해 보일 정도이다. 그럼 인간의 섹스와 인간을 제외한 동물들의 섹스중에 어느것이 정상적인 것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물론 우리는 우리가 정상적이고 나머지는 수준 낮은 진화에 의거된 현상이라고 주장하고 싶을 것이다.

이에 대한 해답을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섹스의 진화>에서 명백하게 그리고 다소 의기소침해지기 쉬운 주제이지만 저자 특유의 위트와 설명을 통해서 섹스의 진실을 말하고 있다. 결론은 인간의 섹스가 다른 동물과는 달리 고차원적이고 통제 가능한 인간만의 특유의 행위가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의 섹스 역시 찰스 다윈의 자연선택처럼 세월이 흐름과 처해진 환경속에서 철저하게 제거되면서 살아남은 진화의 결실이라는 것이다. 남녀가 왜 일부일처제를 더 선호하고 자식을 남녀공동으로 양육하는지는 우리 인간이 수준높은 문화를 가지고 있어 그런것이 아니라 단지 진화의 산물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특히 여성의 패경에 대한 저자의 실랄한 논거는 상당히 수긍이 가는 진화론적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섹스가 우리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내지는 윤리적 가치관의 산물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모든 인간들에게 외치고 있다. 섹스는 그저 단순하게 진화의 산물일뿐이라고...

인류와 영장류의 공통조상에서 가지치기를 시작하였던 500만년전부터 꾸준하게 환경에 적응하면서 철저하게 자연선택의 논리에 의해 진화 되어온 산물인 것이다. 우리는 마치 섹스에 대해서 고차원적인 의미를 부여하길 좋아한다. 아니 그러고 싶을 것이다. 이점이 여타의 동물과 다른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라고 해야 그 우월성확보에 이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섹스만큼 유전자의 이기적인 선택에 의해 진화된 산물도 없을만큼 철저하게 유전자의 이해타산에 의해 자연선택된 일련의 행위일 뿐이다. 단지 우리는 예술,언어,문화라는 얄팍한 덮개로 진화라는 거대한 현상을 덮길 바랄뿐인지도 모른다.
즉 우리가 인정하고 싶은 인류라는 종 역시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처럼 진화라는 역사에서 특정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특별하고 뛰어난 종이 아닌 지구라는 행성에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는 진화의 일부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얼음 없는 세상 - 얼음의 역사부터 지구의 미래까지 인류에게 보내는 마지막 경고
헨리 폴락 지음, 선세갑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략 130억년전 어느 날 갑자기 빅뱅이라고 불리우는 대혁명으로 우주가 탄생하였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 대략 45억년전에 우리가 발딛고 숨쉬고 있는 지구라는 행성이 탄생하였고 직계 인류라 칭할 수 있는 인류의 탄생도 길게 잡아야 500만년전의 일이다. 130억년이니 45억년이니 500만년이니 하면 그 개념자체부터가 정립안된다. 이를 1년 12개월로 정리해보면 1년 12달로 보면 쉽게 와닿는다. 12월 31일 11시 45초에 로마제국이 탄생했고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지가 자정이 되기 불과 3초전이고 한때 지구상의 지배자였던 공룡이 멸종한게 12월 26일경쯤 된다고 한다. 이제 대략 시간적인 감이 잡일 것이다. 그만큼 인간이 이 지구상에 출현해서 공룡의 시대처럼 지구의 지배자라고 생각했던 것이 불과 이 정도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은 마치 일년 내내 이 지구상에 살았고 지배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이다. 

이처럼 지구의 역사를 1년이라는 시간으로 보면 그동안 지구의 기후는 인간이 출현하기 전까지 지구자체의 매카니즘에 의해 아무런 문제 없이(물론 여기서는 외부적인 행성의 충돌등은 배제한다) 굴러왔다고 보면 큰 범주내에서 이견이 없다. 그러나 마지막 3초내에 벌어지는 기후이상의 현상들은 지구자체의 매카니즘을 뿌리채 흔들고 있다. 다름 아닌 지구 온난화 전혀 예상치 못한 난제로 인해서 지구가 어디로 향해갈지 예측불가능한 상태에 직면해 있다. 그만큼 지금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절체절명의 시점에 와 있다는 것이다. 

현재 지구에 있는 물(H2O)는 대양이 96.5%, 빙하 1.74%, 지하수 1.7% 담수호를 비롯한 기타 0.06%가 존재하고 있다. 정확히 소금물을 빼면 대략 3%내외가 인간을 비롯한 대부분의 생명체에 필요한 담수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오랜세월 동안 담수 활을 하고 있는 것이 빙하을 비롯한 물의 고체형태인 얼음이다. <얼음없는 세상>는 바로 흔히 주변에서 아무런 의식 없이 접하는 얼음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고 있다. 저자는 IPCC(기후 변화에 대한 정부간 협의체)의 핵심멤버로 지구온난화 연구에 매진하면서 매번 우리에게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알리고 있는 구물리학의 권위자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얼음의 생성 역사에서 부터 지구의 미래까지를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 독자들을 대상으로 아주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과학적으로 정확하게 맥락을 짚어주고 있다. 물론 저자가 제시하는 논거들은 저자를 비롯한 지구물리학자, 천체물리학자, 지구기상학자들이 연구한 객관적이고 집적된 과학적 데이터를 기준으로 하고 있어 더 신빙성이 있는 논거들이고 지금 현재에도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을 말하고 있다. 흔히 지구 온난화라 하면 그저 기온이 상승하는 변화 정도로 인식하지만 여기에는 기후이상까지 다 담고 있는 담론이다. 가깝게는 기상측정이래 최저 4월말 기온을 기록한 우리의 현실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보면 될 것이다. 과학기술문명의 발달로 인해 왠만한 미래는 예측가능하지만 유독 기상변화는 아직도 아니 갈수록 더 예측하기 힘들어 지는 것이 현실이니 기상예보가 틀린다고 기상청을 원망해서도 될일이 아니라는 말이 이 책을 읽고 나면 수긍이 갈 정도일 것이다. 

인류는 농업혁명이라는 대변혁을 거치고 산업혁명과 디지털혁명을 거치면서 삶의 질이 풍부해졌다. 하지만 이러한 우리가 대혁명이라고 명명하는 이러한 일련의 변화들은 전지구 차원에서 보면 가히 쿠테타와도 같은 존재이다. 여태까지 지구상에 생존했다 멸종했던 생명체중 이렇게 단시간안에 지구라는 모체를 위협한 존재는 인간말고는 그 어디에도 없었고 아마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오죽하면 인간만이 살아져야 지구가 살 수 있다는 영화까지 나오겠는가?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 만큼 이제 피부로 느낄 정도로 기상이변도 잦아지고 그에 따라 삶의 쾌적성도 떨어지는 것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번 책을 통해서 지구온난화에 대한 원인, 심각성 그리고 향후 준비해야 할 대안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낙관론자이던 무지한 자이던 관심이 있는 자이던 간에 저자가 주장하는 것은 이제 지구온나화라는 문제는 피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왔이다는 점을 알리고 싶은 것이다. 탄소발생억제, 화석연료의 자제, 에너지절약등을 통해서 그 진행속도를 잠시 느출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 이시각에도 북극과 남극의 빙하 그리고 영구동토층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 산재해 있는 얼음들은 상상을 초월한 속도로 녹아내리고 있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럼 아무런 대안 없이 다가올 불안한 미래를 맞이 해야 하는가 물론 대안을 저자는 제시하고 있지만 각국의 지정학적인 이익 앞에 답보적인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다름 아닌 현실의 직시인 것이다. 다소 과격한 톤으로(자신을 포함한 대다수의 과학자들은 최대한 온화하게 주장하고 있다고 하지만) 지구온난화에 대해 주장하는 논거를 통해서라도 현실을 똑바로 보자는 취지가 더 강하다. 단순하게 인터넷만 검색하더라도 지구온난화에 대한 폐해를 확인할 수 있겠지만 이러한 행위들은 일회성을 그치고 마는것 역시 사실이다. 이제 인간이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지구에서 정말 주인답게 살아가고 싶다면 주인답게 행동하자는 것이다. 내집에 물이 새고 불이나면 어떻게 하는가 뻔하지 않는가 가장 먼저 집주인의 피해가 가장 큰 것이고 그래서 집주인이 발벋고 나서서 막아야 하듯이 이제는 우리가 나서지 않는다면 우리의 집 지구는 더 이상 우리의 집이 아닌 것이기 때문이다. 

▣ 얼마전 1500년주기론등을 들어 출간된 <지구온난화에 속지마라>라는 책과 비교해보면 그 허와 실을 다시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IPCC 홈페이지의 리포터도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얼음 없는 세상>는 한마디로 우리에게 보내는 석학의 마지막 경고장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책이다. 저자가 [땅은 선조에게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에게서 빌려온 것]라는 인디언의 속담으로 이 책을 마무리한 뜻을 깊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확실한 세상 - 위기의 시대를 좌우할 열쇳말
박성민 외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들은 누구나 확실한 것(certainty)을 선호하게 마련이다. 공부를 하는 수험생이든 연애를 하는 청춘남녀이든, 기업을 경영하는 경영자든 국가을 이끌어가는 위정자이든 간에 막론하고 미래에 대한 확실성을 가지는 것을 선호하고 그런 확실성을 갖추기 위해 시험에 자주 나올만한 문제들, 연인의 성격과 취향, 향후 고객들의 니즈와 효용등, 그리고 민족이나 국가 구성원들의 정체성이나 각종 경제적 지표들을 포함한 다양한 정보를 확보하기 위해 경쟁자인 타인들 보다 많은 수고와 비용을 지출하면서 확실성에 접근할려고 한다. 왜 우리는 이렇게 확실성에 대해 집착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대답한 간단명료할 것이다. 다름아닌 불투명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불확실한 미래는 우리들 스스로의 통제범위를 벗어나 있는 영역이니 그 만큼 불안을 가중시킬 수 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인류는 아프리카의 드넓은 대초원(당시에는 사바나성 기후가 대세였다)에서 지금의 각 대륙으로 이동하였고 농업혁명이라는 회기적인 발명으로 수렵채집의 노마드적인 문명에서 한곳에 정착하는 혁신을 가져왔다. 그리고 인류는 먹거리와 더불어 기초적인 경제활동에서 많은 진보를 가져올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다름아닌 수렵채집의 불확실한 상황에서 농업이라는 정해진 수순에 따른 회득의 산물들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변화일 것이다. 정확히 몇월 몇일에 파종을 하고 언제 김매기를 하면 풍요로운 먹거리를 수확할 수 있다는 것은 막연한 감으로 먹거리를 찾아 해매였던 수렵시대보다는 확실성에서 비견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 인류를 편안한 상태로 이끌었다. 그러나 인류는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겪으면서 이러한 확실성에 대한 의구심을 조금씩 키워오다가 급기야 글로벌시대와 디지털혁명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세계속으로 던져지면서 이제 그동안 조금이라도 남아있던 확실성의 개념은 완전히 사라지고 한치 앞도 예측 할 수 없는 불확실성(uncertainty)의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흔히 대한민국 정치권을 풍자하는 말인 안개정국이라는 표현처럼 우리의 앞은 가시거리가 극도로 불투명해진 안개속에 내던져 있는 것이다. 

<불확실한 세상>은 이렇듯이 예측불가능한 지금의 시대와 그리고 향후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에 대해서 각계의 지성인들이 토로하고 제시하는 불확실한 세상을 헤처나가는 통찰을 제시하고 있는 책이다. 물론 이 책을 통해서 불확실성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이 책을 손에 든다면 차라리 시작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 즉 저자들은 이 책에서 지금처럼 불확실성이 높아만 가게 된 배경을 고찰하므로서 향후 미래의 불확실성을 조금이라도 낮추어보자는 견지에서 토론의 대상 폭을 정하는 것이지 방법론을 제시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 무엇때문에 대안없는 과제를 접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일까?  

우리는 정치,경제,문화,종교,과학이라는 인간활동의 큰 테두리안에서 그동안 많은 발전을 가져왔고 확실성에 대한 자부심을 스스로 키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는 미래에 대한 확실성에 대해서 아니 적어도 불확실성을 해치한다는 대안으로 많은 제도적 방안과 의식적인 사조들을 탄생시켰지만 결국은 불확실성의 크기만을 증폭시킨 자가당착에 빠졌이었던 것일 뿐이다. 이러한 일련의 행위들은 결국 개미가 뫼비우스띠를 따라 끊임없이 제자리를 걷듯이 불확실성을 제거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또 다른 난관에 부딛치면서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이는 불확실성 아니 정확히 확실성에 대한 수 많은 오판에서 나왔다고 보는 것이 오히려 더 타당할 것이다. 그럼 불확실성을 해치하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자칫 이러한 논조가 다시금 종교로 회귀하잖는 퇴보적인 의식이나 자포자기적인 주저감을 증폭시킬 수 있는 오해의 소지도 있지만 저자들의 공통된 주장은 다름아닌 가까운 곳에 있다. 그것도 가장 확실한 자료들 즉 우리가 겪어왔던 지난일들에 대한 상고와 재검토를 통해서 불확신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루트비히 비겐슈타인은 "확실성이란 새로운 대안을 상상할 수 없게 만드는 닫힌 공간"이라는 말을 남겼다. 이 말이 상징하는 의미에서 바로 불확실한 세상을 살아가는 시금석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불확실성은 우리들에게 새로운 대안이라는 무한한 상상력을 제공한다. 오래전 우리 조상들이 불확신한 수렵채집의 시대를 마감하고 농업혁명이라는 획기적인 대안을 찾았듯이 지금의 우리에게도 똑 같이 적용되는 말인 것이다. "안전벨트의 역설"에서 알 수 있듯이 다가오는 미래는 확실성과 불확실성이 상존하는 세상이며 브레이크를 밝기 전까지 앞의 像이 허상인지의 여부도 닥쳐봐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허상을 두려워하여 앞으로 나아가지 않은 것은 오히려 확인도 못하고 빈털터리로 일어서는 카드게임과도 같은 것이다. 

지나온 시대에 우리가 가장 확실하다고 여겼던 진리와 가치관들이 과연 확실하였는가에 대한 고찰과 반성이 먼저 있어야 미래의 불확실한 세상을 볼 수 있는 힘이 비로소 생길 수 있다는 극히 간단단순한 논지를 우리는 항상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이렇게 자기반성에서 우러나오고 축적된 자기테크놀러지가 결국 불확실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래된 연장통 - 인간 본성의 진짜 얼굴을 만나다
전중환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제는 극히 상식 내지는 하나의 사실이 되어버린(물론 아직도 창조론이나 지적설계론 이라는 유사과학논리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진화론에 대해서 우리 일반독자들의 생각의 기제는 거의 인간을 제외한 동식물종에 국한되어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도 언급을 했고 다윈 이후 수 많은 진화론자들이 증명해 보였지만 왠지 아직도 진화론을 믿던 창조론을 비롯한 유사과학논거를 믿는 사람이건 간에 동물원에서 우리 인간들의 눈요기를 제공해주고 있는 침팬지를 비롯한 유인원들과 우리가 같은 조상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사실에 대해선 왠지 꺼림직하게 생각하고 있는 경우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특히 우리 인간은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중에서 가장 우월한 위치에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대전제아래에서 이러한 생각들은 흔들리지 않는 일종의 진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러한 사유들은 특히나 우리가 자연계중에서 가장 고등동물이라는 유인원과도 비교할 수 없는 독창적인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다는 자부심에 그 근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다른 모든 생물학적 특성들은 다윈의 진화론에 의해서 설명되고 증거화 되겠지만 우리들의 정신 즉 마음속의 기제들은 인간이라는 종만의 독특한 현상이자 고유한 특성이라는 전제에 있을 것이고 또한 하나의 믿음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이러한 관념들이 진화심리학자인 전중환 교수의 <오래된 연장통>을 읽고 나면 그 얼마나 커다란 오류에 빠져 있었고 무지했는지에 대해서 알 수 있다. 화심리학은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학문이지만 이미 서구학계에서는 그 연혁이나 학력이 자리잡은지 오래되었다. 심리학이라는 말이 들어가서 심리학의 한 분파쯤으로 오인받을 수 있지만 진화심리학은 인간본성에 대한 모든 심리학적 기제들을 과학적 논거와 증거들 그리고 보편타당한 실험등으로 검증하여 인간의 마음 역시 다윈이 주창한 진환론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상기시킨다. 한편으로 진화론의 적용범위의 끝이 없음을 다시한번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흔히들 알고 있는 갓난애기의 마음은 백지와도 같고 이러한 백지상태에서 어떻게 주위환경이나 문화에 의해 그 심성이 바뀔 수 있는가에 대한 많은 사례들을 그동안 우리는 많이도 접해왔다. 그러면서 우리는 주위환경이나 문화등 후천적인 환경의 중요성에 대해서 많은 시간적 경제적 노력을 해왔다. 하지만 어린아이와 새끼침팬지을 같이 키우면서 들어난 결과는 그동안 우리가 가져왔던 생각들에 대해서 의문점을 던져주고 있다. 또한 공작새 수컷의 꼬리가 길어지고 한없이 화려해지는 것을 동물들의 성선택에 의한 진화로 인정하면서 인간 남성이나 여성들이 상대 이성들에게 잘보일려고 하는 행위에 대해선 그저 심리학적인 논거로 대치해왔던 것도 사실이다. 또한 인간만이 음악을 듣도 감상할 수 있다는 점, 인간만의 본성이라고 생각되는 도덕, 정의등의 문제 역시 우리의 조상들이 수백만년전 아프리카 사나바에서부터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하나 둘씩 우리의 심리적 기제에 쌓인 진화론적 결과물이라면 과연 믿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왜 유독 동양에서 계급간의 위계질서, 그리고 가족과 친족 그리고 더 나아가 같은 민족이나 국가간의 유대관계가 높고 타집단에 대한 배타의식이 강한지에 대해서도 진화론은 말끔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우리 인간종은 아득하게 머나먼 과거로부터 생물학전 진화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본능 즉 마음의 진화도 더불어 같이 해왔다는 것이 현대 진화심리학자들의 공통된 논리이고 이를 반증하는 예는 수없이 많이 있다. 결국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유일하다고 생각되는 이러한 심리적 기제는 우리 조상들이 대자연앞에서 자연선태되는 과정에서 선택되고 제거되면서 남아있는 진화론적 유물인 것이고 우리는 이처럼 아주 아주 오래된 연장통을 지니게 된 것이다. 우리는 지금도 이 연장통속에서 그때 그때 주어진 환경에 따라 다양한 조합들을 창출하고 이러한 조합들은 어김없이 자연선택되어지는 것이다 

새삼 다시한번 진화론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진화론의 범위확장에 대해 다소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이들 조차 진화심리학의 설득력있는 논거를 접하게 되면 진화론의 확장은 아마도 그 끝이 보이질 않을 것이다. 지구상의 생명체에서 지구를 벗어난 우주적인 측면에 이르기까지 진화론보다 설득력있는 논거는 없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사유에 대해서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겠지만 분명한 것은 다윈혁명 이후 깨닫게 된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의 정체성에 대한 한가닥의 실마리를 찾았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지금 우리가 생활하고 사유하는 모든 행위가 그 옛날 우리조상에서부터 장착되기 시작한 연장통에 있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기억하면서 살아간다면 좀더 명확하고 간결하게 주위현상들을 다시한번 들여다 보게 되지 않을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진화란 무엇인가 - 에른스트 마이어가 들려주는 진화론의 핵심 원리 사이언스 마스터스 16
에른스트 마이어 지음, 임지원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故 에른스트 마이어는 '20세기 다윈'으로 불리기도 한다. 에드워드 윌슨이나 스티븐제이 굴드, 특히 리처드 도킨스처럼 화려한 조명이나 그에 걸맞는 약간의 쇼맨쉽은 전혀 엿볼 수 없으나 진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다윈이후 최대의 인물로 스스럼없이 마이어를 손에 꼽는 이유는 다윈이 <종의 기원>을 세상에 내놓고 여러차례 개정판을 편찬하면서 보여주었던 조용하면서도 혹은 세상과 약간의 타협의 손길을 내미는듯 하면서도 일관되게 진화를 주장했다는 점에서 에른스트 마이어의 학풍이 다윈의 절차적 방법을 답습하는듯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결코 과격하고 화려하지 않지만 그의 저술이나 논거를 살펴보게 되면 벗어날 수 없는 강력한 힘에 절로 매료되는 것이 바로 위대한 진화생물학자인 에른스트 마이어의 힘이다. 

<진화란 무엇인가>는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혁명중에서 최고의 위치에 오른 다윈혁명이후 지금까지 수없이 많고 수많은 반박과 질타속에 사실로 자리매김한 진화론에 대한 원론적인 책이다. 그동안 진화론과 관련하여 많은 학자들의 저술이 있어왔던 것이 사실이지만 일반 독자들에게 진화가 무엇인지에 대한 접근방법론에서는 진화론을 반박하는 이들의 작품들보다 오히려 부족한점이 있어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전문적인 지식을 선행하지 않고서는 학자들의 진화론에 대한 이론이나 연구결과를 제대로 이해하기 부족하다보니 진화라는 것이 사실은 사실인데 좀 더 세부적으로 파고 들면 정말 모르는것이 더 많은 것 역시 진화에 대한 진실인 것이다. 이러면에서 저자는 특수계층의 독자를 위한 저서가 아닌 일반 독자층을 위한 진화론의 모든 것을 이 책 한권에 담았다. 그리고 이 책의 전제는 진화가 불변의 사실(물론 사실은 그에 대한 반증이 나오면 즉각 폐기되겠지만 이럴 가능성은 내일 아침 해가 서쪽에서 뜰 확률만큼이나 낮다)임을 전제로 출발하였기 때문에 진화론에 반박하는 이론들이나 창조론자들의 터무니 없는 주장에 대해 반박해야 하는 아까운 시간적 낭비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진화론에 좀더 깊이있게 다가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준다.

그동안 도약진화, 변환주의, 라마르크주의(획득형질진화론),정향진화등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한 이후 1940년까지도 이러한 다양한 진화론에 대한 찬반의 논의 진화론자들 사이에서 있어 왔고 그래서 더욱서 진화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가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지금 우리는 이러한 이론들이 하나의 가설이었다는 점을 수긍하게 되고 다윈의 자연선택이론은 확고한 사실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화려한 문구나 정치적 액션을 전혀 가미하지 않고 그저 진화라는 사실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열쇠들을 하나 둘 끄집어 내어 열쇠통에 맞추어 나감으로서 일반 독자들이 진화을 좀 더 쉽게 한편으로는 상세하게 이해할 수 있는 길라잡이 역활을 훌륭하게 해나가고 있다. 지구상 최조의 생명체인 원핵생물에서 지금의 인류라는 종에 이르기까지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광범위한 생명체가 바로 진화의 증거임을 알게 해 준다. 다시금 다윈주의가 갖는 세계사적 충격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여지며 진화론이라는 과학적 한갈래의 이론이 아닌 진화가 사실일 수 밖에 없는 증거들과 이론들을 재확인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다.

그동안 창조론과 진화에 반대편에 서있는 작자들에게 진화가 사실임을 증명하기 위해 전세계적으로 수많은 학자들이 그 역활을 수행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이러한 논박에서 좀더 유연하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벗어나야 할 때가 되지는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아직도 창조론이난 지적설계론을 믿는 이들이 상당수 존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진화가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 이들에게 그 사실에 대해서 좀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아야할 때라고 여겨진다. 그러면에서 에른스트 마이어의 <진화라 무엇인가>는 그 해답을 제시해 주고 있다. 진화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단계에서 부터 상당히 전문적인 이론의 과정까지 한눈에 일목요연하게 그러면서 전혀 지루하지 않게 서술해 나가는 저자의 힘에서 우리는 진화가 사실일 수 밖에 없음을 확인하게 된다. 

진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 지는 현상이 아니다 환경이 주는 자연선택이라는 일련의 제거과정을 통해서 점진적으로 그리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우리 주변에서 발생하고 있을 분명한 하나의 사실일 뿐이다. 이러한 현상이 사실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 그동안 수많은 논쟁과 연구가 있어 왔던 것이고 결국 진화가 사실이라는 것에 수긍할 수 밖에 없는 결과들이 도출되었다. 이제 더 이상의 논쟁은 무의미 할 것이다. 지금부터는 이러한 사실에 대한 상세한 내용들을 쉽게 그리고 보다 널리 알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이런면에서 저자의 이번 저서는 그에 합당한 많은 역활을 할 것으로 보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