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자연
제인 구달.세인 메이너드.게일 허든슨 지음, 김지선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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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공중파를 통해 천연기념물 제330호인 수달이 먹이를 찾아 민가로 들어와 사람들과 동화되어 그냥 눌러앉아버린 내용을 신기한 것처럼 다룬 프그그램이 방영되었다. 어디 수달뿐이겠는가 까치가 가정집을 옮겨다니면서 먹이를 구걸하는등 인간과 동물의 생활경계가 갈수록 흐릿해지고 있다. 물론 우리의 선조들이 수렵채집활동의 할 시대에도 이러한 경계는 거의 없었지만 그때와 지금는 명백한 차이가 존재한다. 그 차이점은 바로 희망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인간의 세계로 발을 들이는 동물들의 모습은 신기한 눈요기거리나 해외 토픽감이 아닌 자연의 힘이 서서히 상실되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저 씁쓸함을 감출수없다. 

영장류연구의 권위자이자 자연환경보호가인 제인구달의 <희망의 자연>은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인간들에게 많은 점을 시사한다. 특히 지구라는 행성에서 이 별을 지배하는 권력을 부여 받았다고 자부하는 인간에게 과연 그러한 권능에 대한 역활을 충실히 하고 있는가라는 의구심을 불러 일으킨다. 현생인류가 출현하기전까지 이 지구상에는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기후변화와 간간이 발생했던 자연재해이외에는 특별한 충격이 없었다. 하지만 인류라는 신종이 탄생하면서 지구라는 행성은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된다. 그 어떠한 종보다 빠른 속도로 진화에 진화를 거듭한 인류는 지구자원의 거의 대부분을 소비하면서 자신들만의 특별시를 개척했고 심지어 같은 종까지 말살해가면서 지구의 최강자로 자리매김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지구상의 생명체는 엄청난 고통을 받게 되고 수 없이 많은 종들이 인류에 의해서 지구상에서 그 자취를 감추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진행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앞으로도 불을 보듯 뻔한 일이 것이다

한편으로 이러한 지구를 살리기 위한 각성들이 여기저기 터져나오고 있지만 발전 지상주의라는 거함 앞에 그저 초라하고 작게만 보인다. 환경운동의 대명사인 그린피스의 캠페인이 해외토픽면을 장식할 정도로 아직까지도 우리에게 지구와 자연의 소중함에 대한 각성은 요원한 상태이다. 그나마 <희망의 자연>에서 보듯이 구달여사와 그녀가 만난 특이한 몇몇 사람들에 의해 우리는 아주 작지만 엄청난 희망의 메세지를 보게 된다. 알바트로스의 알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외딴 섬의 바위 절벽을 기어오르는 조류학자, 독성 물질에 오염되지 않은 안전한 모이를 제공하기 위해 네팔 오지에서 독수리 급식소를 운영하는 젊은이, 비행기를 타고 아메리카흰두루미와 붉은볼따오기에게 새로운 이주 경로를 가르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벌목 회사를 설득해 마못의 서식지를 복원한 생물학자 등 멸종 위기의 종들을 되살려 내려는 사람들과 그들의 삶과 열정을 통해서 우리는 소위 경외감이라는 감정마저 불러 일으키게 된다. 

자연의 자정능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위대하지만 한편으론 개발발전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는 것이다. 아마존이 열대우림의 훼손은 그 치유능력을 상실해 버릴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고 세계 곳곳의 자연생태계가 절체절명의 순간에 놓여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렇지만 지금도 보존보다는 개발쪽의 무게중심이 크다보니 곳곳에서 자행되는 자연파괴는 그 도를 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얼마되지 않은 동식물들은 자칫 잘못했으면 우리는 도감이나 박물관을 통해서나 볼 수 있는 존재들이다. 한편으로 그동안 인간이 자행해온 일들 극히 인간위주의 일들이 자연과 생태계에 끼친 영향이 얼마나 잔혹하고 엄청난것인가를 여실없이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 당장 태고의 시대로 역행하자는 것은 아니다. 구달여사와 세계곳곳에서 활약하고 있는 이들을 통해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것은 단지 작은 것이다. 인간이라는 종이 살아가는데 최소한의 양보만 한다면 (어찌보면 그 양보라는 것 자체가 원래 자연의 것을 자연으로 품으로 돌려준다는 것이지 결코 인간의 삶에 지장을 초래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로 이 말 역시 극히 이기적일수 밖에 없는 인간의 관점이지만...) 우리를 둘러싼 생태계의 보존은 한결 수월해진다는 것이다. 대자연은 그 정도의 양보만 있어도 회복능력을 발휘할 수 있으며 이러한 작은 희망들이 쌓여 인간과 생태계가 공존할 수 있는 바탕을 이룰수 있는 것이다. 우리 인간이라는 종처럼 단시간내에 지구와 자연을 훼손한 종은 없었다. 또한 인간은 자연을 정복과 경쟁의 상대로 인식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자만심은 여러곳에서 혹독한 댓가로 돌아오고 있다. 그리고 이제야 부랴부랴 우리는 그 대안을 연구하고 골몰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자연과의 조화나 공감에 대한 원천적인 의식은 부족한 듯 하다. 

우리는 자연과 인류가 적절한 거리감을 두었을 경우 또 다른 작은 희망을 보게된다. 화석어인 실러캔스나 2억년을 살아온 남양삼나무과의 올레미소나무를 통해서 우리는 인간과 자연이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할 경우 자연은 자연나름대로의 툴에 의해서 살아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고 향후 자연보존의 롤모델로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인간과 자연간의 적절한 거리감 유지는 상호간 생존의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면서 상호 유대와 공감을 형성할 수 있는 방법으로의 방향제시가 필요한 것이다.  

그나마 환경보존과 멸종위기에서 노력하는 이들의 노력과 약간의 완충효과(인간과 자연)만 부여하더라도 놀라울 정도의 회복력을 보이는 자연이 있기에 아직도 우리는 희망을 저버릴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러한 작은 희망의 메세지는 앞으로 인간과 자연의 관계정립에도 중요한 화두를 던져 주고 있다. 종속관계가 아닌 서로 상호간의 의존 내지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단지 의무적인 자연환경보호라는 낡은 개념을 벗어 던지고 이제 다가오는 시대에는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공존해야 한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여야 할 때인 것이다. 무엇보다 저자인 구달여사는 세계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이러한 작은 발견과 보호속에서 희망의 본성을 찾고자 한다. 즉 상터투성이로 전락한 지구이지만 아직까지 회복의 희망은 존재하고 이러한 희망을 저버리기엔 아직도 늦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다양한 동식물을 만나게 된다. 첫장에 소개되는 앙증맞은 검은발족제비의 모습에서 부터 콘도르, 악어, 따오기, 송어등 항상 인류와 같이 생존해왔던 생물들 그리고 이와 더불어 인류에 의해 살아지거나 살아질 위기에 처한 동식물들을 바라보면서 대자연과 공감할 수 있는 작지만 위대한 희망을 보게 된다. 인간이 이들을 포기하지 않는한 대자연 역시 회복의 본능을 발휘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이러한 자연과 인간의 공감만이 상호간 생존의 밑거름이 된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저자의 말처럼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는 생각으로 위기에 처한 종들을 구해야 한다. 어쩌면 정말 몇년안에 책의 칼러화보에 나오는 동식물들을 박물관이나 도감으로 밖에 볼 수 없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이는 우리 후대에게 명백한 죄악으로 남을 것이며 이러한 자연과의 불협화음은 결국 인류라는 종의 멸종을 가져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이들 동식물들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아마도 어머니 품속같은 편안함임 것이다. 그 편안함이란 다름아닌 인간이라는 특별난 종 역시 대자연이라는 어머니 품안에서는 다 같은 자식이자 형제자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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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 속에 숨어있는 수학 살림청소년 융합형 수학 과학 총서 30
사쿠라이 스스무 지음, 전선영 옮김 / 살림Math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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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감승제만 제대로 하면(하긴 요즘같은 세상은 그다지 가감승제에 대한 각별한 유의 없이도 크게 지장 받는 경우가 없지만) 그닥 불편할게 없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국민학교때부터 시작된 수학과의 사투에서 흥미를 잃어 버렸고 마침내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수학는 나에게 공공연한 적으로 남게되었다. 오죽했으면 수학를 안하는 인문계를 선택했고 대학도 그렇게 진학을 했지만 통계와 경영수학이 마귀같은 자태로 딱허니 버티고 있었고 결국 재수강이라는 고된 절차를 거쳐 학위를 취득했다. 그리고 세상속으로 나와 보니 각종 데이타 분석에서 사업성검토에 이르기까지 수학의 암울한 그림자는 계속 따라 다녔다. 그 만큼 수학은 일생일대 같이 걷고 싶지 않는 상대이며서도 동시에 미워할 수 없는 당신으로 남아 있다. 

그렇다고 수학에 대해서 완전포기는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다시 해보자는 취지에서 한스 엔첸스베르거의 <수학귀신>이라는 아동서적에도 눈을 돌려보았고 기타 교양수학관련 서적도 들추어 보았지만 그대로 여전히 수학과의 담의 높이는 처음과 똑같이 유지되었다. 이런 나에게 사쿠라이 스스무의 <일상생활 속에 숨어있는 수학>는 별다르게 다가왔다. 책표지부터 그 음흉한 모습을 전혀 들어내지 않고 왠지 친근한 이웃집 아저씨 모습의 황당박사와 나를 보는듯한 덜떨어진 모습의 엉뜽여사의 대화나 에미네이션에서 부터 수학이라는 마수를 걷어 내었다. 우스게소리로 당구장에서 배운다는 코싸인,탄젠트등 삼각함수와 지금은 아예 기억속에 살아져버린 로그지수등으로 시작되는 첫번째 장을 읽어가면서 기억저편속에 자리잡고 있었던 수학에 대한 막연한 공포감이 되살아나기 시작했지만 저자가 이끌어 가는 레파토리는 이런 불편함을 조금씩 사그라들게 한다. 스토리텔링방식으로 우리들의 일상생활속에 녹아들어있는 수학의 세계는 생각 이상으로 두려운 존재가 아님을 설파하고 있고 책을 읽는 동안만은 왠지 수학과 좀더 가까워졌다는 느낌을 자아내게 한다. 

특히 1 : √2라는 백은비와 관련된 복사용지의 숨어있는 비밀이 개인적으로 가장 압권이었던것 같다. 일상생활에서 단 한번도 의구심을 가지지 못했던 소소한 부분에 까지 수학의 세계가 확장되어 있다는 점이 놀라울 정도이다. 그동안 철학, 고전, 과학, 경제학등 일반인들에겐 상당히 무겁고 접근하기 어려운 분야에서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좀더 그 이해의 폭을 쉽게 접근하고자 하는 시도가 많이 되고 있다. 수학도 이런 세류에 적극 가담하여 이해하기 쉽게 출간된 서적들이 많이 있지만 이번 책처럼 우리들의 일상생활속과 연관되어 쉽게 설명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수학에 대해 막연하게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독자들에게 수학도 알고 보니까 상당히 매력적인 학문이라는 인식의 전환을 가져올 수 있는 좋은 계기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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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독약 한 방울 2 - 제국을 멸망시킨 화학 원소 이야기
존 엠슬리 지음, 김명남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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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 헤 리비 비씨 노흐 블레 .... 학창시절 화학시간에 주기율표에 나온 원소들이 잘 외워지지 않아서 이런한 방식을 동원해서 머리속에 담아둘려고 노력했던 생각이 난다. 수소에서 시작하여 우누녹튬에 이르기까지 주기율표상의 화학기호만 보더라도 눈앞이 막막했던 시절 화학은 그다지 쉽게 다가오던 그런 분야가 아니였던 기억이 강하다. 노벨을 비롯하여 이후 퀴리부부등 노벨화학상을 받은 학자들의 업적을 보면서 그 대단함을 느끼지만 화학과 난 그저 평행선을 그리듯이 가까울 수 없는 존재로 남아 있었다. 특히 화학공식에 법칙들 그리고 개별원소들의 상이한 반응들은 지금은 기억저편으로 가물거리지만 아직도 그다지 유쾌하지 못한 기억중에 하나이다. 그러나 화학은 산업화와 근대화를 발판으로 성장한 분야가 아니라 오래전부터 우리 인류와 함께했던 분야이다. 근대현사를 비롯하여 좀 더 역사를 확장하여 중세 그리고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각종 역사적 기록과 더불어 화학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다. 특히 금을 만들 수 있다는 연금술분야와 더불어 누군가를 제거하는 독약에 이르면 다양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다. 

<세상을 바꾼 독약 한 방울>은 바로 나와 같이 화학에 문외한이나 한때 절망감을 가졌던 독자들에겐 더욱 더 기쁜 소식으로 다가온다. 고리타분하기만 할 것이라는 선입관을 한꺼번에 넘어서 일사천리로 책장을 넘기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특히 독약으로 지칭되는 유해한 원소들을 대상으로 하여 그 흥미가 배가 되고 있다. 조선왕들 중 1/3 정도가 독살설에 휘말려 있고 르네상스시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의 이상형이었던 체사레 보르자와 그의 누이동생이자 연인이었던 루크레치아의 엽기적인 정적 제거 방법, 당나라 측천무후가 애용했다던 정적 제거 방법중 가장 인기 있는 대상이었던 독살과 독약에 대한 내용을 스토리텔링방식으로 전개하고 있어 책을 읽는 속도감과 집중력을 더해주고 있다. 

여기에다 한때 동서양을 막론하고(아마도 지금도 이런 야망을 져버지 못한 이들이 있겠지만) 황금을 향한 열정에 부응한 연금술과 내력 및 그들이 즐겨사용했던 방법등을 소개하여 과학서적으로 다소 딱딱해질 수 있는 부분을 걷어냈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아이작 뉴턴의 사망원인이 수은중독이라면 어떻게 생각할까? 그리고 이에 더해 뉴턴이 죽는날까지 금을 만들기 위한 연금술에 매진했다는 사실은 또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 20세기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수은중독자중에 형사들이 많았다는 사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모자장수 역시 수은중독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 온도계,형광등,치광용 아말감 충전재등 우리 주변엔 유독한 독금물들이 넘쳐나고 있고 이를 섭취한 동식물이 우리의 식탁에 오르고 있다는 사실등 독약은 먼 옛날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은밀한 물건이 아니라 바로 지척에 있는 평범한 원소들이라는 사실들에서 상당한 충격을 주기도 하지만 그래서 이 점은 오히려 우리에게 더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어버려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히치콕 감독이 이 책을 읽었다면 이 한 권으로 몇 편의 스릴러가 탄생했을거라는 뉴욕 타임스의 리뷰처럼 저자는 역사적 사건들에서 사용되었던 독약의 활용방법과 그 사례들 그리고 마치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을 방불케하는 남다른 추론을 통해서 화학의 세계를 세롭게 조명하고 있다. 부록으로 화학전문용어에 대한 친절한 해석을 덧붙여 이해의 폭을 넓혀주고 있는 배려도 잊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저자는 화학의 세계를 일반 대중 독자들에게 쉽게 그리고 아주 재미있게 풀어나가고 있는 점이 눈에 들어오며서 화학 전문가로서의 견해를 곁들여 자칫 가십거리로 흘를 수 있는 주제에 대해 무게중심을 잡아주고 있다. 

예로부터 수은, 비소, 납, 안티모니등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의료용으로 많이 사용되어 왔을 정도로 인간에겐 친밀한 원소들이다. 물론 이러한 원소는 우리의 몸에도 존재하고 있다. 단지 그 양의 과다에 따라 치료용이 되느냐 죽음을 재촉하는 독약이 되는냐의 판단은 인간 스스로에게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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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독약 한 방울 1 - 죽음을 부르는 독극물의 화학사
존 엠슬리 지음, 김명남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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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 헤 리비 비씨 노흐 블레 .... 학창시절 화학시간에 주기율표에 나온 원소들이 잘 외워지지 않아서 이런한 방식을 동원해서 머리속에 담아둘려고 노력했던 생각이 난다. 수소에서 시작하여 우누녹튬에 이르기까지 주기율표상의 화학기호만 보더라도 눈앞이 막막했던 시절 화학은 그다지 쉽게 다가오던 그런 분야가 아니였던 기억이 강하다. 노벨을 비롯하여 이후 퀴리부부등 노벨화학상을 받은 학자들의 업적을 보면서 그 대단함을 느끼지만 화학과 난 그저 평행선을 그리듯이 가까울 수 없는 존재로 남아 있었다. 특히 화학공식에 법칙들 그리고 개별원소들의 상이한 반응들은 지금은 기억저편으로 가물거리지만 아직도 그다지 유쾌하지 못한 기억중에 하나이다. 그러나 화학은 산업화와 근대화를 발판으로 성장한 분야가 아니라 오래전부터 우리 인류와 함께했던 분야이다. 근대현사를 비롯하여 좀 더 역사를 확장하여 중세 그리고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각종 역사적 기록과 더불어 화학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다. 특히 금을 만들 수 있다는 연금술분야와 더불어 누군가를 제거하는 독약에 이르면 다양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다. 

<세상을 바꾼 독약 한 방울>은 바로 나와 같이 화학에 문외한이나 한때 절망감을 가졌던 독자들에겐 더욱 더 기쁜 소식으로 다가온다. 고리타분하기만 할 것이라는 선입관을 한꺼번에 넘어서 일사천리로 책장을 넘기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특히 독약으로 지칭되는 유해한 원소들을 대상으로 하여 그 흥미가 배가 되고 있다. 조선왕들 중 1/3 정도가 독살설에 휘말려 있고 르네상스시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의 이상형이었던 체사레 보르자와 그의 누이동생이자 연인이었던 루크레치아의 엽기적인 정적 제거 방법, 당나라 측천무후가 애용했다던 정적 제거 방법중 가장 인기 있는 대상이었던 독살과 독약에 대한 내용을 스토리텔링방식으로 전개하고 있어 책을 읽는 속도감과 집중력을 더해주고 있다. 

여기에다 한때 동서양을 막론하고(아마도 지금도 이런 야망을 져버지 못한 이들이 있겠지만) 황금을 향한 열정에 부응한 연금술과 내력 및 그들이 즐겨사용했던 방법등을 소개하여 과학서적으로 다소 딱딱해질 수 있는 부분을 걷어냈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아이작 뉴턴의 사망원인이 수은중독이라면 어떻게 생각할까? 그리고 이에 더해 뉴턴이 죽는날까지 금을 만들기 위한 연금술에 매진했다는 사실은 또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 20세기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수은중독자중에 형사들이 많았다는 사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모자장수 역시 수은중독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 온도계,형광등,치광용 아말감 충전재등 우리 주변엔 유독한 독금물들이 넘쳐나고 있고 이를 섭취한 동식물이 우리의 식탁에 오르고 있다는 사실등 독약은 먼 옛날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은밀한 물건이 아니라 바로 지척에 있는 평범한 원소들이라는 사실들에서 상당한 충격을 주기도 하지만 그래서 이 점은 오히려 우리에게 더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어버려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히치콕 감독이 이 책을 읽었다면 이 한 권으로 몇 편의 스릴러가 탄생했을거라는 뉴욕 타임스의 리뷰처럼 저자는 역사적 사건들에서 사용되었던 독약의 활용방법과 그 사례들 그리고 마치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을 방불케하는 남다른 추론을 통해서 화학의 세계를 세롭게 조명하고 있다. 부록으로 화학전문용어에 대한 친절한 해석을 덧붙여 이해의 폭을 넓혀주고 있는 배려도 잊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저자는 화학의 세계를 일반 대중 독자들에게 쉽게 그리고 아주 재미있게 풀어나가고 있는 점이 눈에 들어오며서 화학 전문가로서의 견해를 곁들여 자칫 가십거리로 흘를 수 있는 주제에 대해 무게중심을 잡아주고 있다.
 

예로부터 수은, 비소, 납, 안티모니등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의료용으로 많이 사용되어 왔을 정도로 인간에겐 친밀한 원소들이다. 물론 이러한 원소는 우리의 몸에도 존재하고 있다. 단지 그 양의 과다에 따라 치료용이 되느냐 죽음을 재촉하는 독약이 되는냐의 판단은 인간 스스로에게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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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다윈의 시대 - 인간은 창조되었는가, 진화되었는가?
EBS 다큐프라임 <신과 다윈의 시대> 제작팀 지음 / 세계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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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우리는 리처드 도킨스, 에드워드 윌슨, 스티브 존스, 윌리엄 뎀스키, 마이클 베히등 세계적인 석학들의 저서을 통해서 진화론, 지적설계론고 그 밖의 창조론에 대한 서구의 열띤 공방을 접해왔고 이러한 담론에 대해선 국내의 저명한 학자들에 대한 고견을 사실상 접해보질 못했다. 그나마 2009년 <종교전쟁>이라는 책을 통해서 종교와 과학간의 갈등에 대해서 일반독자들에게 화두를 던져준것 이외에는 우리사회에 진화론 對 창조론 구도에 대한 심도깊은 논쟁은 거의 없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진화론에 대해서 우리는 극히 과학적인 사실로 인지하고 있으나 최근에 실시된 여론조사의 결과는 사뭇 충격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물론 창조론자들의 입장에서는 극히 실망스러운 수치이겠지만) 대한민국의 40%가량의 사람들이 진화론을 믿지 않고 있다는 통계 그중에서도 개신교 신자들은 60%가량이 진화론을 믿지 않는다는 통계가 나오면서 이제 우리사회도 진화 대 창조 내지는 과학 대 종교의 허심탄회한 담론의 장이 마련되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신과 다윈의 시대>는 이런 측면에서 굉장히 시의적절한 책이라고 하겠다. 다윈의 <종의 기원>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온 어머어마한 혁신이었다고 볼 수 있다. 기원전 그리스에서 철학에서 제기되었던 인간과 자연철학에 대한 비중이 로마제국과 중세를 거치면서 신학 즉 종교가 모든 가치관을 대변하면서 신을 떠난 사유의 확장은 극히 위험한 발상이었다. 이런 의식구조에 일대 변혁을 가져온 것이 바로 다윈의 종의 기원이었고 그중에서도 [자연선택론]은 당시로서는 충격이 이만전만이 아니였다. 신을 닮았고 신을 대신해 이 지구상을 통치하는 우리가 원숭이와 같은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에 세계는 경악 그 자체였고 특히 종교계는 마치 핵폭탄에 피폭된 것처럼 아노미상태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윈의 사유를 시발로 그동안 신학의 하부개념에 만족해야 했던 많은 분야의 학문들이 본연의 위치로 자리잡게되는데 다윈만큼 기여한 학자도 없다고 해야 할 정도로 이제는 다윈의 진화론을 과학적인 사실로 인지하고 있다. 물론 아직도 근본주의 개신교와 이슬람교등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판도라같은 상자이지만 대체적으로 진화에 대한 보통사람들의 생각은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사실에 대해서 우리는 어쩌면 괄호밖에 존재하고 있었다고 할 정도로 사회적인 관심이나 이슈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근현대화의 역사적 기원이 타율적이고 시간적인 추이에서 서구선진산업국에 비해 급속로 이루어진 관계로 이러한 학문적 기반이나 토론의 장이 마련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사정이 달라지고 있고 달라져야 할 것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짧은시간내에 가장 많은 개신교신자을 확보한 나라이자 추기경을 배출한 나라 그리고 유전공학분야에서 상당한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인 우리사회에서 이점에 대한 서로간의 논쟁이나 토론 자체가 없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해하기 힘든 문제이고 오히려 상당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숙한 토론문화에 익숙하지 못한 사회에서 토론자체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을 견지하게 되면 각자의 사고가 독설화 되어버리는 경향이 농후하고 이러한 추이는 결국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극단적인 이분법적인 사고만을 양상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면에서 <신과 다윈의 시대>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세지는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진화 대 창조, 인간 대 신에 대한 우열을 가리자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동안 진화의 입장에서 바라본 신과 종교, 종교의 입장에서 바라본 진화와 과학이라는 평행선을 달리는 두 명제에 대한 일반적인 접근을 가지고 과학과 종교의 역활에 대해서 심도 깊게 생각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자는 취지가 강력하다. 특히 이 책의 출간 의도가 어느 한편의 진영에 일방적인 판정승을 끌어내는 제로섬 게임 매치는 아니기 때문에 종교와 과학의 반대 논거 또한 많은 부분에서 수긍이 가는 점이 있다. 종교를 위한 종교, 과학을 위한 과학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과학과 종교가 상생할 수 있는 계기 마련에 일조를 하는 책임에 분명하다. 양측의 담론이 일방통행이 되어서는 결국 그 어떠한 담론도 지지를 받지 못한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동안 양 진영은 서로의 담론에 대해서 극과 극을 달리고 있고 서로의 견지를 묵살하고 있다. 에드워드 윌슨의 <생명의 편지>에서 과학과 종교가 화해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나마도 어느 쪽의 견해가 주가 되는냐에 대한 논거로 유명무실해진 형편이다. 하지만 이러한 작은 시도가 양측 진영의 화해의 밑거름이 될 것은 틀림 없는 사실이다.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과학과 종교의 진정한 화해와 협력이다. 이 양측진영의 대결은 모든 인류에게 해악만을 가져다 줄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이러한 때에 <신과 다윈의 시대>은 양측의 화해 가능성과 그리고 독자들로 하여금 한쪽 사고에 편협될 수 있는 오류를 피할 수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과학적 담론인 보편타당성을 종교에도 적용해야 하고 종교적 담론인 사랑,평화을 과학에 적용 한다면 분명 일류의 한발짝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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