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의 과학 - 이윤석의 웃기지 않는 과학책
이윤석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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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접하게 되면 가장 먼저 눈에 확인하는 절차중에 하나가 다름아닌 저자와 저자의 이력일 것이다.(물론 아닌 독자들도 많이 있겠지만) 특히 인문/사회계열이나 자연/과학계열의 경우 저자의 학문적 인지도와 다양한 저서들을 통해서 대충 그 책의 기본 틀을 어림짐작할 수 있다. <웃음의 과학>은 저자가 우리에겐 대중매체등으로 널리 낮익은 개그맨 이윤석의 생애 첫번째 저서이다. 여기서 대충 개그맨이 낸 책이고 그 제목에 웃음이 들어있다 그럼 대충 이 책은 개그계의 비화 내지는 코미디의 역사등을 다루는 신변잡기의 시시콜콜하면서 아주 부담없이 읽어나갈 수 있는 책으로 생각되어지는게 상식일 것이다. 특히 요즘처럼 연애인, 방송인들의 출간이 붐을 이루고 있는 시기에 은근히 슬쩍 끼어들기식으로 출간된 책으로 오인 받기 쉽상이다. 그런데 여기서 출판사를 확인해보니 사이언스북스라는 국내 굴지의 출판그룹으로 전문적인 과학서적만을 선별하여 출간하는 곳으로 알고 있는데라는 생각과 저자인 이윤석이라는 개그맨과의 상관관계가 퍼뜩 머리속에서 매치가 되지 않으면서 피식하고 웃음이 나오게 된다. 그럼 이 책의 정체는 무엇일까라는 궁금이 유발되면서 자연스럽게 책을 손에 들게 된다. 

우선 저자의 이력을 확인했고 책 표지와 뒤장의 추천사에서부터 왠지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내용으로 가득차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우리 뇌속에서 뉴런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전에 본능적으로 밀려든다. 그러나 막상 책을 읽어나가게 되면 정말 어디 한 곳에서도 이러한 막연했던 기대감은 좌절을 맛보게 된다(물론 현역에서 활동하는 몇몇 개그맨의 실례와 거론등이 메타포로 작용하여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짓게 하는 경우를 빼놓곤 웃을 일이 없다) 그리고 저자에 대해서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저자는 개그맨이고 대학에서 전공 또한 국문학에 신문방송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야말로 이 책과는 무관한 전공자이다. 그런데 책의 서술 내용은 진화학과 뇌과학, 진화심리학 전반을 다루는 심오한 학설과 이 학설을 일반독자들에게 쉽게 끌어 가는 스토리 텔링 방식으로 상당한 수준급의 서술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먼저 저자에 대한 색다른 면과 더불어 경의를 표하게 된다. 물론 저자의 직업상 웃음과 관련된 고민과 나름의 연구를 하였을 거라는 추측은 가지만 이렇게 수준 높은 저술로 다가올 줄은 감히 상상조차 못하였고 그동안 몇몇 연예인이나 방송인들의 책에서 가졌던 편견을 일소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한편으로 그를 프로페셔널이라는 생각을 절로 갖게 한다.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 일노일노 하고 일소일소 한다라는 우리의 속담에서 보듯이 웃음은 인간과 더불어 분리할 수 없는 어쩌면 인간만이 지닌 고유의 산물인지도 모른다. 저자는 바로 이런 웃음을 단지 웃음으로 지나쳐 버리지 않고 진화학적 분석에서 부터 뇌과학적인 측면 그리고 웃음이 필요한 이유에 이르기까지 과학적인 고찰을 하고 있다. 특히 라마찬드라의 거짓 경보 이론을 바탕으로 일반 독자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쉬우면서 편안하게 내러티브를 끌어가고 있는 점은 왠만한 과학 저널리스트 보다 낫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사실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 웃음에 대한 심도 깊은 사유를 가져볼 생각조차 하지 못한 이들에게 웃음이라는 일종의 신호가 진화과학적인 메카니즘에 의해 철저하게 진화되어 왔고 앞으로도 진화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웃음과 뇌과학의 영역 웃음이 유발하는 효과를 과학적인 실험과 사례를 들어 웃음을 실체를 밝혀내려는 저자의 고뇌가 보인다. 특히 유머를 사회적 비용측면에서 해석하는 부분에 상당한 공감을 갖게 한다. 무엇보다 전문가(속칭 말하는 학위 비슷한 제도로 평가되는 전문가 집단)가 아닌 저자가 일반 독자들을 위해서 저술된 이번 책은 솔솔한 흥미를 유발하는 과학 대중 교양서로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해야 겠다. 

저자의 이력을 떠나서도 전반적으로 과학 교양서로서 꽤 괜찮은 책이다. 수위 조절이 적절히 이루어져 거부감을 걷어 냈으며 삽화와 다양한 사례를 통해서 가독성을 높였다는 점에서 무난하게 독자들에게 호소할 수 있는 저작으로 보인다. 남을 웃기는 사람이 쓴 전혀 웃기지 않는 과학 에세이, 이제 저자의 이력난에 사이언스 저널리스트라는 별칭이 하나 더 붙더라도 이견을 달 사람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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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칭>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대칭 - 자연의 패턴 속으로 떠나는 여행 승산의 대칭 시리즈 4
마커스 드 사토이 지음, 안기연 옮김 / 승산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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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은 철학과 더불어 인류의 오래되고도 가장 근원적인 학문이라 지칭된다. 지금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유용되고 있는 거의 모든 학문의 근저에 수학적 개념이 지배하지 않은 분야가 과연 있을까할 정도로 수학은 다방면에 걸쳐 그 자신의 족적을 남기고 있다. 비단 이뿐이겠는가, 현대인들이 살아가고 있는 현상속에 부지불식간에도 수학의 마력은 우리의 발걸음을 잡고 있다. 나나 당신이나 알고 있던 굳이 부인하고 있던간에 수학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대칭>은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대게의 독자들(개인적인 추측으론 수학을 전공하는 이들이더라도)은 수학하면 일단 고개의 방향타가 좌우 45도이상은 기울어 지면서 상당한 불안감을 자아내게 한다. 가감승제라는 단순한 산술적인 개념을 떠나 명제의 증명과 기하학, 미적분학, 함수등등 학창시절 죽기를 각오하고 매달렸지만 수학이라는 대상의 잔혹성은 꼭 들추어 논하지 않더라도 종교인들이 상상하는 '신'의 영역으로 접어들었고 그 범접을 왠만해서는 허락하지 않는 경외의 대상으로 까지 승격되어 버렸다(물론 이에 동의하지 않는 수학 메니아들도 부지기수있을 것이지만) 수학의 이러한 난해한 접근성으로 인해 수학에 대한 수요는 급감하고 이를 기반으로 형성되는 순수학문분야가 뒤떨어지는 안타까운 현상마저도 초래하고 있다. 오죽하면 수학를 좀더 친숙하게 대해보자는 차원에서 출간된 <수학귀신>이라는 아동도서가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수학에 대한 염원을 담아내고 있을까. 

그동안 경제학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스토리 텔링방식의 서술방식은 딱딱하고 어려운 학문이나 현상을 문외한인 일반독자들에게 보다 재미있고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혁명적인 기법을 제공했다. 이번 책 역시 스토리 텔링 방식을 도입하여 마치 재미있는 내러티브를 읽는 듯 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그 레파토리의 구성은 수학이론 중 대칭에 관한 논설이다. 그래서 솔직히 표현하자면 기본적인 수학 매카니즘의 선 습득이 없는 상태에서 이 책은 상당히 어렵게 다갈 올 수 있다. 처음 불가사리의 구조와 달팽이 구조로 참신하게(쉽다는 표현이 정확하겠다)시작하면서 수학에 젠병이었던 주저감을 말끔히 걷어내지만 갈수록 역시 수학은 수학이구나라는 생각을 서서히 가지게 되면서 고난의 책읽기가 시작되고 그 끝은 아무리 읽어봐도 진전이 없고 다시 피드백을 감수하면서 반복을 되풀이 하게 된다(물론 서평자의 무지함과 인내력의 한계라고 생각되어지지만) 

스토리 텔링 기법이 아니였다면 대칭에 대한 일말의 개념조차 세울수 없을것이라는 작은 위안이라도 찾게 되어서 소득은 있었던 같다. 수학은 패턴의 이해에서 출발한다는 말이 있듯이 학문적인 범주를 넘어서 일상생활 그리고 수 많은 사건들에서 이러한 패턴을 인지할 수 있다면 수학자체에 대한 두려움이나 접근도는 상당히 향상될 것으로 생각된다.  

전반적으로 저자는 일반독자들에게 쉽게 다가설 수 있도록 쉽게 풀어 서술했다고 하지만 그다지 보편적인 이해도를 가지고선 접근하기 힘든 책이다. 그나마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생각으로 책장을 넘겼지만 역시 아는게 힘이다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한다. 수학을 전공하는 이들이나 입문자들 그리고 상아탑에서 열공하는 학생들에게 기초 교양과목으로 한번쯤은 일독을 권하고 싶을 정도로 많은 것을 얻기에 충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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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3-27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서향님. 신간평가 도서 서평을 보다가 처음으로 서향님의 서재에 들리게 되었네요.
수학 공식이 생각보다 많이 소개되어서 읽는데 애먹었지만,, 그래도 수학자들의 생애와 관련된 이야기는
무척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저도 역시 이 책은 수학 전공자들이 읽어보면 더 좋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식량의 종말 - 지금 당신의 밥상은 안전합니까?
폴 로버츠 지음, 김선영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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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현대 자본발전주의의 정점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다방면에 걸쳐 편리하고 풍족한 삶을 지향하고 있고 또 그러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물질적인 풍요로움은 인류가 첫발을 디딘 이후로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부의 획득과 부의 소비시대를 누리고 있고 특히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에게 필수적인 식량(식품,음식)의 문제 역시 이제는 단순히 생존을 위한 1차적인 욕구충족의 시대를 지났다. 오죽하면 좀더 미각과 정신적인 달콤함을 달래기 위해 레시피라는 일종의 요리법이 등장하면서 식품 역시 이제는 하나의 풍요로움이 만들어낸 산출물중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불과 1만전만 하더라도 수렵과 채집으로 하루를 연명해야 했던 인류에겐 먹거리 즉 식량의 의미는 절대적이었고 지금도 10억명에 이르는 이들에게 식량은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생존방식이기도 하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산업개발국은 넘쳐나는 칼로리로 인해 성인인구의 절반가량이 비만으로 인한 각종 성인병에 시달리고 있고 다른 한쪽인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절대빈민국에서는 기아와 영양결핍으로 삶의 의욕마저 앗아가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며 또한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그동안 많은 학자들의 연구와 저서들이 출간되었고 대부분의 연구결과는 기아의 방지와 예방이라는 측면으로 그 촛점을 맞추어 진행되어 왔다.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연구들은 거의 각론적인 시각으로 문제의 원인을 파악해 왔고 특정인구 특정지역에 국한된 경향이 있었다. 이번 <식량의 종말>우리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식량, 식품 전반에 걸친 시스템을 고찰하고 앞으로 우리에게 닥쳐올 위기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돋보인다. 특히 지금 현재 대한민국을 전 국토를 강타하고 있는 구제역과 조류독감, 미국산 쇠고기와 관련된 광우병파동등 동물과 인간의 건강을 위협하는 고병원성전염병이 발생하는 원인을 다시금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한다. 저자는 이러한 전염병의 창출, 비만으로 인한 각종 성인병의 급증, 죽음직전으로 내몰리는 기아와 영양결핍의 원인이 다름아닌 바로 우리가 만들어낸 식품 산업 시스템이 기인한다고 논거하고 있다. 산업혁명은 인류에게 하드웨어적인 패러다임의 변화만을 가져온게 아니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운송수단과 기계화의 급진적 발달은 식품 생산에 도화선으로 작용하였고 식량의 증대는 다시 인구의 증가를 가져오게 된다. 이에 대해 1798년 멜서스는 <인구론>에서 그 유명한 말로 인구와 식량간의 위험한 상관관계를 제시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멜서스의 경고는 산업화에서 자본주의시스템으로 탈바꿈한 2차 변혁 앞에서 그저 기우로 치부 되었다. 즉 이말은 이젠 식품,식량도 다른 재화 처럼 하나의 상품으로 인지되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는 식품이 조리라는 노동력을 투여하지 않더라도 간편하게 언제 어디서나 구매할 수 있는 상품의 반열에 올려 놓았고 획일화된 몇몇 브랜드와 소매업체의 선반에서 취사 선택만 하는 간편성을 제공하게 되었다. 한편으로 보면 단일성을 맥락으로 하는 이러한 대량생산 대량소비는 편리함과 풍요로움을 가져준 듯 하지만 실상 우리의 식품 시스템은 현재 커다란 위기에 봉착해 있다는 것이 저자의 일관된 논거이며 이에 대한 반증으로 한층 더 신뢰감을 주고 있다. 

<식량의 종말>는 식품 산업 시스템 전반에 걸쳐 식품이 음식에서 상품으로 전화하는 과정, 독점적인 식품생산업체와 식품가공업체, 식품소비업체들의 자본주의적 논리에 의한 식품권력이 창출되는 과정, 기아와 영양결핍의 원인, 육류소비 증가의 패해, 곡물생산 증대를 위한 각종 인위적인 간섭과 유전자 변형등의 심각성등 식품과 관련된 전반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다. 앞으로 전개될 인구증가와 발맞추어 이들의 입을 해결할 수 있는 식량의 증가가 과연 지속 가능할 것인가에 대해서 저자는 단호하게 해답을 던지고 있다. 지금의 식품 산업 시스템으로는 그 해답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몇년 몇십년은 가능하겠지만 지속 가능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비록 식품 산업에 종사하는 행위자들과 시스템에 메스를 가하더라도 가장 시급한 문제는 식품의 최종 소비자인 주류 소비자들의 의식과 식단의 변화가 선행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식품 구조의 패해와 개선의 방향을 알면서도 자신의 입으로 들어오는 편리하고 달콤한 음식을 거부할 실천의지가 없는 한 향후 인류의 미래는 멜서스의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는 불편한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물론 저자는 현재의 식품 시스템을 타개할 방책으로 대안농업, 청색(바다자원)혁명, 지역농업, 다양성의 확보등을 제시하고 있고 현재 작지만 몇몇 국가(대표적으로 쿠바의 성공 사례가 주목 받고 있다)에서 진행되고 있는 사례들에서 그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최고 정점에 있는 육류 소비의 절감 없은 이러한 대안들은 그 빛을 보기가 힘들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의 경제발전이 가져올 육류소비의 증가는 그  예측자체가 무의할 정도의 파괴력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수렵/채집의 시대 먹거리를 찾기 위해 반나절 이상의 시간을 투여했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의 우리는 식품을 구하는 시간이 몇분도 되지 않고 먹거리에 대한 비중의 의미 자체가 퇴색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먹거리 식품은 인류의 생존에 불가피한 요소임에 틀림없다. 

전반적으로 <식량의 종말>을 통해서 지금 우리 식탁에 올라오는 다양한 먹거리에 대한 심오한 고민거리를 어떻게 접근해야 하며 그 해결방안에 대해 깊은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점을 일깨우고 있다. 식품 시스템 전반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그 내막은 경악을 금치못할 정도의 충격을 던져주고 있지만 결국 이러한 시스템이 굴러가게 하는데 우리 소비자들도 지대한 일조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의 식단에 대한 심각한 고민과 반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던저주고 있는 문제작이다. 더불어 기아와 영양결핍으로 인한 인류의 심각한 이질성 회복과 지구 생태적인 차원의 회귀의 모색 또한 병행하여 생각해야할 여지를 남기게 한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숲으로 들어가 열매를 따 먹으며 고된 노동에 시달려가면서 효율성 낮은 전근대적 식품 경제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음식 만들기를 타인의 손에 넘겨주고 우리의 먹거리 그리고 식량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자체을 자본주의적 경제 모델에 내맡기면서 식량의 종말을 불러왔을 뿐 아니라 우리 삶에서 얼마나 소중한 것을 잃었는지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희망 바로 음식에 대한 주권을 회복하는데서 그 작은 시작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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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원자 - 세상만사를 명쾌하게 해명하는 사회 물리학의 세계
마크 뷰캐넌 지음, 김희봉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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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우리가 아는 범주내 아니 그러하리라고 받아들여져야 했던 논쟁이 가정들 특히 급변하는 사회를 그나마 대변할 수 있을거라는 정통경제학에선 인간을 합리적인 존재 그리고 이기적인 존재로 상정해왔고 이에 기반한 각종 이론들과 정책들이 우리사회를 지배해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가정의 근저에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중에 유독 인간만이 유니크한 존재이고 특별한 존재라는 믿음이 강하게 깔려있기도 하다. 제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하여 인간을 포함한 영장류와의 근연성이 오차범위한도에 있다고 하지만 우리 인간에게는 합리적인 사고방식이라는 특유의 그 무엇인가가 존재하기 때문에 인간사회는 그 어느 집단보다 복잡하고 우월하다는 강하고 변함없는 믿음이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고방식에 누군가 돌을 던진다. 잔잔한 호수가에 던져진 돌은 처음엔 무심코 지날칠 수 있겠지만 하나 둘 던져진 돌에 의한 그 파장은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하여 잔잔한 호수를 뒤흔들게 되듯이 마크 뷰캐넌의 <사회적 원자>가 그 시발점이 될 것으로 보여진다. 우선 저자는 정통경제학에서 가정한 합리적인 행위에 대해서 가차없는 부정을 끌어낸다. 그리고 개인에 촛점을 맞추었던 지난날의 방식에도 메스를 가하면서 집단주의, 민족주의, 합리주의, 부와 빈곤등의 문제에 대해서 개인이 아닌 조직화된 사회적 패턴의 되먹임 현상으로 설명하고 있다. 즉 사회,경제,역사,정치등 일련의 범위에는 사회적원자(각 개인들)들이 마치 물리학에서 보여지는 일정한 사회적 패턴이 자리잡고 있으며 그런 패턴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논리이다. 그동안 우리는 대게 한가지와 다른 한가지 사이의 상관관계에 집중해 왔다. 예를들어 빈곤과 범죄율, 교육과 소득사이의 상관관계에 치중하다보니 정작 그 근저에 깔려있는 기본적인 인과의 매커니즘을 등한시하게 되었고 결국 이러한 논쟁은 지금도 그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이 바로 자기조직화적인 패턴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통경제학에 반기를 든 행동경제학에서는 시장을 형성하는 개별적인 개인들의 복잡성 때문에 갈수록 시장을 이해할 수 없으며 정통경제학의 이론적 기반인 합리성으로는 이런 현상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각 개인의 의식과 행동에 촛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한다. 사회물리학 역시 합리적선택이라는 고전적 발상에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개인의 복잡성 역시 긍정하고 있지 않다. 저자는 지금의 시장이 이해하기 힘든것은 시장참여자들의 복잡성 보다는 시장속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이 이루고 있는 섬세한 질서와 조직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완벽한 합리성이라는 가정을 버리고 적응적 학습을 가정을 선택한 일명 적응적 행동자들에 의해 패턴이 형성되기 때문에 각각의 원인보다는 이러한 사회적 원자들이 불러일으키는 패턴을 파악해야만 진정한 변화의 흐름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경제학은 정량적 모델의 정립을 위해서 수학적인 기법을 차용해 왔지만 그 대세는 아직도 이념적인 틀에 갇혀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금세기 들어 행동경제학, 복잡계경제학등이 대두 되면서 기존 경제학에 대한 고찰의 범위를 증폭시키고 확장시키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그 역활은 미미한 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현대는 갈수록 복잡한 사회구조를 띄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수학이나 물리학의 공식처럼 아주 단순한 패턴이 자리잡고 있으며 이러한 단순한 패턴이 거의 모든 일련의 법칙을 가능케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사회물리학은 이처럼 가장 단순화면서도 근본적인 패턴을 기초로 우리 인간사를 규정해보려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사회물리학은 사람보다 패턴을 중요시한다. 마치 "다이아몬드가 빛나는 것은 원자가 빛나기 때문이 아니라 원자들이 특별한 패턴으로 늘어서 있기 때문이다" 듯이 중요한 것은 부분이 아니라 패턴일때가 많고 이러한 점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을 사례와 실험을 통해서 증명해 내고 있다. 

이 책은 그동안 정통경제학에 근저한 이론들을 무색하리만큼 해체해버리는 다소 충격적인 내용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실상 그 내막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경제학이나 사회학 그리고 심리학처럼 인간 본연에 대한 고찰들이다. 다만 이러한 고찰을 물리학이라는 과학적 영역으로 단순화 해서 설명하기 때문에 다소 폄하적인(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내용으로 비쳐질 수 도 있지만, 인문학과 과학의 통섭이라는 대전제에서 절실히 필요한 분야로 받아 들여진다. 그만큼 현대는 학문의 한 분야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세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학문의 영역을 넘나드는 좋은 본보기로서 <사회적 원자>가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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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필리아 - 우리 유전자에는 생명 사랑의 본능이 새겨져 있다 자연과 인간 15
에드워드 윌슨 지음, 안소연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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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인문학의 적절한 조화만이 향후 다가올 미래에 대한 보다나은 대처와 풀리지 않는 마법의 성을 깨뜨릴수 있다는 개념으로 <통섭>을 제시했던 에드워드 윌슨은 우리가 알고 있듯이 사회생물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인물이다. 기존의 과학(생물학)에 대한 탐구가 인간이 처한 사회를 배제하고 단순하게 생물의 세계를 연구했다면 윌슨은 여기에 사회 즉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현장을 접목하여 생물과 사회를 통합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했고 이러한 시도의 배경은 인간을 제외한 생물들의 연구나 생물을 제외한 인간의 세계가 결코 분리되어 생각할 수 없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는 그동안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들에 대한 이분법적인 사고의 틀을 바꾸기 시작했다. 일종의 우월적 관리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생명체에 대한 시각에서 이제는 지구상에 존재한 모든 생명체와 인간은 동반자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시각으로의 전환을 서서히 가져오고 있다. 

<바이오필리아>는 지금으로부터 26년전에 출간된 서적이지만 이 책에서 주장하는 저자의 담론만큼은 시대의 시차를 훌쩍 뛰어넘어 지금 이시간까지도 유효하게 전달되고 있다. 20세기 후반과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우리는 환경에 대한 심각한 오류가 있었음을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면서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또한 과학의 발달과 전 지구적인 공감대의 형성으로 환경보전의 절실함과 그 필요성에 다들 공감하고 이에 대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리도 있기도 하다. 그만큼 우리 인간에게 인간을 둘러싼 환경이 보존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인식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환경보존등의 진행방식에 대한 구체적인 담론을 제시하거나 그 방향성에 대한 적절성의 논의보다는 외형적으로 그리고 수치상으로 들어나는 환경보존에 오히려 더 열을 올리고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즉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파괴해 놓은 자연환경을 복구하는 방식에서도 역시 인간 스스로의 방식으로 대처해 나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짧은 시간에 환경을 황폐화 시켜놓고 또한 각종 첨단과학기술과 자본을 동원하여 인간의 방식대로 복원할려고 하는 의도는 아닌가에 대해 저자는 색다른 담론을 던져주고 있다. 

환경보존의 기본적인 근저에는 생명사랑이는 태제가 깔려있다. 생명사랑은 그동안 인간이 가진 우월적 관리자라는 생각을 버리고 모든 생명은 동등한 동반자라는 입장에서 시작된다. 이러한 인식의 출발만이 지구전체의 입장에서 종의 다양성확보라는 순리에 벗어나지 않는 것이고 인간과 생물에 대한 근본적인 동화를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연환경과 동식물등의 생명체를 보존하고 보호해야 하는 것이 인간과 불과 몇퍼센트 차이나는 유전자를 가진 근연관계에 있는 동물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나 계통학상으로 친인척간에 있을법한 생명체들에 대한 유전학적 의무가 아닌 생명 그 자체에 대한 경외감 그리고 나아가 인간과 여타의 생명체가 동등하다는 생각만이 진정한 환경보존의 길이라는 점이다. 저자는 환경보존의 방식에 이러한 생명사랑의 근본적인 대전제가 깔리지 않고서는 그 진면목을 발휘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즉 우리 인간은 우리가 만들어 놓은 예술이나 문화를 소중히 여기듯이 인간을 중심으로 둘러쌓여 있는 다양한 종 그 자체에 대한 소중함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연환경의 생명체를 단순하게 살려내야하는 생물로 인식할 것인가? 아니면 인간을 살릴듯 사랑을 담아서 인식할 것인가?라는 생각여하에 따라 자연환경보존에 대한 접근 자체에서부터 많은 차이점을 가져 올 것이다. 

분명 그동안 우리는 인간의 경제적,사회적,정치적등 온갖 필요에 의해서 자연과 생물들을 활용 해왔다. 그 이면에는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에 대한 우월적 관리자라는 생각이 강하게 작용했고 지금도 이러한 생각에는 거의 변함이 없다. 그래서 환경보존의 시급함이나 절실함을 느끼면서도 항상 우리는 인간의 입장에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나갈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바이오필리아>을 통해 이러한 방식이 과연 맞는 것인가에 대해 한번쯤은 심사숙고해야 할때이지 않나 싶다. 인간이 다른 여타의 생물보다 훨씬 우위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바로 이러한 우월성이 다른 생물을 더 잘 안다는 이점인 것이고 이러한 이점이 사실은 생명의 참된 의미를 고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26년이라는 시간의 흐름이 있어지만 저자의 기본적인 담론은 지금 현재 생물학을 연구하는 이들이나 환경보존에 열의를 갖고 일선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 나아가 자연생태계의 보존의 필요성에 이구동성 말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그 필요성에 대해 깊은 고민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과학 에세이지만 <바이오필리아>속에는 과학을 넘어선 심오한 철학이 담겨져 있다. 바로 생명사랑은 우리 모두, 인간과 생물들 모두가 하나 하나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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