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본다(7) - 상록수

 

 

 

 

 

 

엄동설한에도 초록을 못 벗는 상록침엽수가 징그럽다

안쓰럽다, 저 초록은 결코 새로 돋지 못하는 것이더냐

 

세상에 죽어도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안 죽는 사람도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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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본다(6) - 나무, 땡감, 도덕

 

 

 

 

 

아침에는 나무자세, 손을 위로 뻗고 태양경배까지 할 기세다

황혼녘이면 나비자세도 고달프고 제대로 송장자세도 버겁다 

앞마당 감나무는 밤에도 나무자세, 본디 나무니까, 땡감 달고

 

땡감을 소금물에 며칠 담가두면 땡감의 고유한 맛이 사라진다고 국어책에 적혀 있기에 

실행에 옮겼더니 정말로 땡감의 떫은 맛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으나 그 대신 소금물의

고유한 짠맛이 너무 그윽해져 도무지 먹을 수 없게 되었다. 짠 땡감, 내다 버릴 수밖에.

 

그렇다, 국어는 모호함과 애매함의 책이기에

견고함과 명석함과 판명함의 책이 필요하다

 

도덕과 윤리를 주세요, 자연과 과학을 주세요

앙상한 나무에 몇 안 남은 주황 땡감은, 까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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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본다(5) - 枯木

 

 

 

 

'나무'와 '오래'의 조합에 필멸의 당위가 포함되어 있다

말라죽었음에도 서 있어야 한다 나무는 때가 올 때까지

완벽히 눕는 일, 완벽히 쉬는 일은 나무도 힘든가 보다


枯木에 매일 물을 주면 싹이 튼다고 한다

'희생'의 보상인 양 아이는 말문이 터진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무슨 뜻이죠, 아빠?

'고향의 봄' 시인의 눈에는 '겨울나무'가 딱하지만 
나무의 눈에는 움직여야 하는 인간이 딱하리라

겨울 裸木 앙상한 가지에서 핏줄과 신경줄이 보인다

 

겨울은 모든 생명에게 혹독한 시간, 속에 들고 싶다 

완벽히 쓰러지길, 완벽히 드러눕길, 완벽히 말라죽길

이곳은 우주보다 낯설고 먼 - 내 기억의 솔라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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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강의의 상상

 

 

 

 

 

 

학교가 좋다


1981년 3월 부산시 전포동 성전국민학교에 입학 
2020년 12월까지 단 한번도 학교를 떠난 적이 없다

대학 갈 때, 대학원 갈 때, 유학 갈 때, 귀국할 때 

아이도 방학 때 낳고 젖가슴에 젖을 가득 품고 학교에 갔다 

 

1년은 1학기 더하기 2학기, 한 학기는 수업과 시험과 방학의 총합

이런 순환은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위대한 일상

감옥과 병동을 닮은 학교 안에서 나는 충분히 자유롭다

나의 수용소 바깥은 엄동설한, 얼어죽을 asylum

 

'마지막 연애의 상상'을 본 따 '마지막 강의의 상상'을 해볼까

 

 

 

 

*

 

 

<마지막 연애의 상상> 이미지도 뜨지 않는다 ㅠㅠ

 

 

 

 

 

 

 

 

 

 

 

 

 

 

 

종강 및 평가를 생각하며 한 번 써봤다. 이인성 소설 <마지막 연애의 상상>은 김영민 칼럼(에세이)에서 <마지막 강의의 상상>의 밑텍스트가 된다. 이번 학기에 시집을 들추느라 에세이들을 못 읽고 있다. 할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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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추워서 못 피겠어요

 

 

 

  

 

 

"너무 추워서 못 피겠어요..."

 

뒤늦게 꽃봉오리 맺은 봉선화가 이렇게 애원하는 것 같다. 난감해진 나는 <시골의사>처럼 내뺄 궁리를 하며 눈맞춤을 회피한다. 그 사이 베란다에 방치된 식재료 감자에서 싹이 나서 잎이 나서 무럭무럭, 또 꽃봉오리가 맺혔다.

 

"너무 추워서 못 피겠어요..."

 

감자 꽃봉오리도 보채는 것이 분명하다. 겨울이 올 참인데 이 철 없는 것들은 웬 뒷북인지. 난감해진 나는 또 눈맞춤을 피한다. 그 사이 봉선화는 너무 삐졌는지 꽃봉오리 채로 굳었다, 얼었다. 나는 죄스러운 회심의 미소를 슬그머니 감춘다. 

 

무릇, 식물이란 눈이 없어 얼마나 좋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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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2 12: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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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2 16: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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