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과 윤리

 

 

 

 

 

 

1984년 초가을, 전포초등학교 4학년 몇 반 김연수는 운동장에서 오백원 짜리 동전을 발견했다. 친구와 함께 집에 가는 길이었다. 잠시 고민하다가 교무실로 갔다. 

"선생님, 이거 주인 찾아주세요."

"어? 어, 그래."

선생님의 얼굴에 번진 웃음이 참 묘했다. 김연수는 자신을 기특한 저학년생처럼 취급하는 선생님이 이상했다. 선생님의 얼굴은 잊혔으나 그 웃음은 36년이 지금도 뇌리에 남아 있다. 참으로 귀한 은빛 학과 함께.    

 

 

*

 

 

 

 

 

 

 

 

 

 

 

 

 

국어 3-2, 정확히 국어활동 중 돈 찾아주는 만화를 보다가 생각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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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 vie en rose:

시골의사, 프란츠 카프카의

 

 

 

 

1

 

"교수님, 저를 죽게 내버려두세요!"  

 

그러나 확대촬영한 자궁 경부는

암은커녕 이형도 없는 정상 이상의 정상이다

연분홍빛 살덩어리, 한복판의 작은 새까만 점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  하, 그럴 리가!

 

아니나 다를까, 몰랑몰랑 촉촉한 표면에 

깨알처럼 작은 새빨간 점이 드문드문 보인다

하, 이건 빛을 향해 대가리를 쳐든

물컹물컹 새빨간 구더기들이구나

 

"교수님, 저를 살게 내버려두세요!"

 

교수는 난처한 척 휘파람을 불며 역병 의사 가면을 벗고

나는 의젓한 척 진찰대 위에 벌려놓은 생식기를 수습한다

 

2

 

고급한 감색 바지 정장에 카멜색 모카신 신고 

올려다 본 가을은, 하늘 본연의 하늘색이었다

송구스러워라, 薔薇疹 감춘 다리는 어디로 가야 하나

 

버스를 탔다. 서서 갔다. 성욕을 느꼈다. 정녕, 그뿐. 

 

"개자식, 나의 장밋빛 볼에 이빨 자국을 내놓았어!"

 

버스 기사는 까마귀 가면이다

흑사병 버스는 멈추지 않는다

나는 계속 서서 간다 성욕은

외설스럽게 點을, 紅點을 간질이고

薔薇疹은 염치없이 깊은 암흑을 덮친다

아, 장밋빛 인생!

 

3

 

"교수님, 저를 구해주실 거죠?"

 

나의 양식화된 질문에

시골의사는  슬그머니 역병 교수 가면을 뒤집어쓰고 꽁무니를 뺐다. 

 

 

 

*

 

 

 

 

 

 

 

 

 

 

 

 

 

 

 

 

<시골의사> 무섭고 웃기고 황당한 소설이다. 이걸로 논문 안 써도 돼서 다행이다. 어제 암검사 받을 때 웃긴 악몽처럼 되살아났다. 간만에 다시 읽었는데, 새 번역이 좋았다. roseola,  la vie en rose. 시골의사의 하녀의 이름은 로자.  

 / "버스를 탔다. 서서 갔다." *** 학생 소설 원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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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의 이타주의에 대해 생각했다

 

 

 

 

 

사과는 참 착한 과일이야

 

강의실에서도 먹을 수 있어 

걸을 때도 버스 기다릴 때도

버스 안에서도 먹을 수 있어

 

아이 주먹만한 사과 한 알

모양도 냄새도 소리도 좋아 

껍질도 뼈대도 씨앗도 좋아 

 

아삭아삭 살 맛 나는 그 맛

공기와 치아가 시리기 전에 

더 많이 먹어야지 단맛 참맛

 

사과로부터 목구멍의 갈증과 배의 굶주림을 구원받고 

이기적인 나에게도 이타주의 따위는 껌, 아니, 사과야,

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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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처음이라(2)

 

 

 

 

 

시는 처음이라

자신감이 생겨요

못해도 되니까 부담없이

마음 편하게 써요, 시는

 

처음에는 알약 한 알 삼키기도 얼마나 힘들었어요, 우리?

 

개구리가 올챙이 적 생각 못하는 건

아가미로 숨쉬던 낙원을 잃은 설움 탓 아닐까요

개구리의 허파는 왠지 트라우마 같아요,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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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적으로(5) - 더럽고 소중해

 

 

 

 

1.

 

아이가 막 경련을 시작할 참이었다. 안 돼, 조금만 참아! 아이는 정말로 '잠깐멈춤' 같은 표정을 지으며 경련을 참는 것이었다. 엄마, 힘들어. 아이가 용케도 말을 해주었다. 경련보다 더 고통스러워 보였다. 차라리 그냥 해라, 엄마가 살려줄게. 이 말이 내뱉어진 즉시 나는 꿈을 탈출했다. 12시간에 육박하는 잠을 즐긴 아이 역시 빛나는 가을 아침을 맞이했다. 변기는 아이의 쾌변을 선사 받았다.

 

 

 

2.

 

    - "엄마, 내 똥은 더럽고 소중해!"

 

세상 해맑고 천진한 웃음, 까르르  

 

 

 

3.

 

세상에 살다 살다, 무슨 주사가 그리 아프노. 5시간 짜리 주사도 있는데 이건 아픈 것도 아니고 온몸에 진이 쫙 빠지고 잠도 슬슬 오고 억수로 힘들다. (그럼 주무시면 되잖아요?) 아니, 그렇다고 잠이 자지는 것도 아니거든. 집에서 맞는 주사도 약 들어갈 때 어찌나 아픈지. (그러게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지, 솔직히, 너무 막 사셨잖아요?) 그야 그렇지, 인정, 아빠가 인정한다.

 

 

4.

 

아빠의 항암은 12분의 8 완료, 남은 건 12분의 4

인생은 분모를 알 수 없고, 고로 분자도 알 수 없다

나-너는 몇 분의 몇 지점에 와 있는가

 

 

5.

 

내-네 인생은 더럽고 소중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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