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에나방의 행복한 한살이

 

 

 

 

안녕하세요, 누에나방이랍니다!

저는 연수네 외갓집 안방에서 태어났어요

봄여름 연한 뽕잎 먹고 무럭무럭 5령 애벌레 되어 

내 몸에서 뽑아낸 하얀 실로 고치를 만들었어요

명주실이 될 것이냐 누에나방이 될 것이냐

운명의 간택 앞에 가슴이 두근두근거렸지요

 

어느 날 하얀 알을 깨고 밖으로 나오는 저를 발견했어요 

뽀얀 분가루 묻은 축촉한 날개를 말리고 자, 날아볼까!

아, 색시야, 너는 못 날아, 날지 않아도 돼!

멋진 서방님이 나를 향해 걸어오는 거 있죠!

짝짓기를 끝낸 다음 오 백개가 넘는 알을 낳았어요 

돌볼 필요 없이 낳기만 하면 끝이랍니다 

 

아기들아, 귀여운 누에가 되어 맛있는 뽕잎을 잔뜩 먹으렴

그리고 비단결보다 더 고운 비단 속에 영원히 살아 있으렴  

엄마는 그럼 이만! 태어난 그 자리로 다시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뽕나무의 갸륵함

 

 

 

 

 

봄에는 뽕잎 나물을 무쳐 먹었다

여름에는 자줏빛 감청빛 오디를 따먹었다 

손바닥과 입 주변이 형형색색 물들었다

 

뽕잎은 누에도 같이 먹는 것이었다

이 많은 통통 흰 벌레들은 어디로 갈까

독한 회의에 사로잡혀 잠들었다 눈을 뜨니 

 

짙은 갈색 숲 앙상한 나뭇가지마다  

하얀 고치들이 전설처럼 매달려 있었다 

아직도 자고 있니, 누에야?

 

가을이면 또 무수한 누에가 방안 가득 꿈틀거리며

한 잠 두 잠 세 잠 네 잠  나이를 먹고 꿈을 꾸었다

 

 

 

 

*

 

오디가 새카만 뽕나무를 사랑했다. 박목월.

 

 

https://m.blog.naver.com/007crr/8019002889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가을의 블루베리

 

 

 

 

 

나는 올해도 가을을 보고 있다

 

*

 

원래 나는 먼 고향으로 떠날 계획이었다. 갑자기 두개골을 뚫고 뇌수에서 빨간 심장 하나가 태어났다. 저 먼 고향에는 나의 백골을 몰래 떠나 보냈다. 곧 따라갈게, 딱 하루만이야. 그 약속은 십년째 매일 지키지 못하고 있다.

 

*

 

블루베리 열매는 감청색이다

맛은 결코 달지 않다, 시큼하다

가지는 갈색, 나뭇잎은 빨간색이다

심장 아기를 더 빨갛게 만들고 싶어

소의 선혈로 콩나물 선짓국을 끓였다

아기의 뇌수를 더 노랗게 만들고 싶어

타조알을 깨지 않고 노른자만 쏙 꺼냈다

 

*

 

나는 올해도 가을을 보고 있고

블루베리와 선짓국과 타조알을 먹고 

내년에도 봄을 볼 것이다, 보고 싶다

저 먼 고향이 아닌 여기, 이 고향에서

나의 심장 아기와 함께

저 먼 고향에는 나의 백골이 몰래 

 

 

___

 

- 지난 주 한 학생의 '미니픽션' <늦가을의 블루베리>를 읽고...

- 윤동주, <또 다른 고향>. 좀 전에 '백골'이 떠올라서 '분신'을 대체.

- 며칠째 윗층 어르신이 보이지 않고 이상 기류(?)가 감도는 것 같아, 떠오른 문장. 아, 할아버지가 올 가을을 못 보시는구나, 라는.  나는 7시부터 막 졸리고 지금은 거의 비몽사몽, 배도 고파오지만(허기인지 통증인지) 참으려고 한다. 나 역시 코로나 확찐자, 체중이 1-2킬로 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내 동생

 

 

 

꼬리라면 얌전히 붙어라도 있지

마지못해 따라오기라도 하지

 

개구쟁이 내 동생 곱슬머리 내 동생

두 살이나 어린 녀석이 말도 안 듣고

또 어디로 튈까 축구공 같이 

 

게 섰거라, 요 녀석!

 

 

 

 

*

 

코로나 때문에 작년 같지는 않(았)지만, 등하굣길에 여전히 형제자매들을 본다. 1-2살 터울은 같이 다니는 경우가 많다. 성격의 차이도 있겠지만 보통 누나나 언니는 동생을 잘 챙기지만 오빠나 형은, 넘 귀여운데^^, 온 얼굴에, 온 몸에 불만이 가득하다. 마지못해 동생이랑 학교 가고 마지못해 같이 집에 가고. "빨리 안 와!" "야, 씨!" 한 패 퍽, 툭. 힝 ㅠㅠ 까불다가 형한테 맞았어 ㅠㅠ 아이 엄마 입장에서는 사실 저렇게 두살 안팎 터울로 두 아이를(기왕이면 누나 남동생이 좋지만 아무래도 좋아^^;) 키우는 엄마가 제일 부럽다, 거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협박

 

 

 

 

 

아이의 손바닥 위에 얹힌 무당벌레를, 노란 액을 보았다.

침일까 토일까 똥일까 아무튼 협박, 이라고 한다.

건들바람이 소소리바람보다 더 찬 어김없는 가을날이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