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만에, 우연찮은 기회에 평론가 신형철의 칼럼을 읽었다. 자리 잡은 지 오래 된 것 같은데 여전히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쓰는 그의 모습에 물론 탄복하고, 예전에도 그랬지만, 그의 문체의 색깔(이게 동어반복이구나^^;), 무엇보다도, 힘있는 전언에 또한 탄복한다.

 

 

 

 

 

 

 

 

 

 

 

 

 

 

 

 

글의 처음을 여는 합평 얘기는, 딴에는 소설(시) 창작을 어느덧 몇 학기째 강의하고 있는 나도 새겨 들어야 할 부분이다. 방법론적으로! 말이다. 참 흥미롭게도, 마음에 드는 작품일 수록, 잘 쓴 작품, 애쓴 작품일 수록 더 많이 '씹게' 된다. 여기에 어떤 오류는 없는지,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나의 '거시기한' 화법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진심을 알아주리라는 믿음이 있다!^^;) 학생들 상호간의 태도, 그런 것을 또한 어떻게 이끌어야할지 등. 무엇보다도 -  

 

인위적으로 상처를 입혀야 누군가를 성장시킬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낡은 생각일 수 있다. 성장은 자신을 알게 되는 체험인데, 그가 제 작품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은 ‘자기도 잘 아는’ 단점이 아니라 ‘자기는 잘 모르는’ 장점이다. 예술가로 성장한다는 것은 단점을 하나씩 없애서 흠 없이 무난한 상태로 변하는 일이 아니라 누구와도 다른 또렷한 장점 하나 위에 자신을 세우는 일이라고 말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7230300035&code=990100#csidx6d45f03cbe6ab3f8c1c4adf039d7944

 

그의 잘 쓴 글에는 항상 힘이 들어 있다. 그는 항상 부정이 아니라 긍정을 호소한다. 어릴 때, 젊을 때는 소위 '부정의 파토스'(낭만주의^^;)에 심히 경도되었으나 결국 '하지 않음'(아님)이 아니라 '함'(임)이 이긴다는 것을 요즘을 절실히 깨닫는다. 많은 단점을 볼 것이 아니라 단 하나의 장점을 보고 그것을 키워갈 것. 김영하가 어떤 동영상에서 얘기하듯, 쓰지 말아야 할(혹은 쓰지 못할) 여러 이유 대신에 써야 할 단 하나의 이유를 생각하자.

 

그 다음 '잉여 쾌락'에 대한 얘기는 현재 문단 얘기인 듯싶다. 어떤 선배가 누군지도 조금만 검색해봐도 알겠다. 세 가지 잉여 쾌락 중  "쌤통(샤덴프로이데)의 쾌락", 당연하기에(!) 재미있다. 결론인즉, 나는 저자의 말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본다. 그리고 (아이에게(만) 쓰도록 강요하는^^;) 나의 반성문으로 여긴다. 나 자신에 대한 증오와 환멸을 타인에게 투사하지는 않는가.

 

작가 제임스 볼드윈은 꼬집었다. “사람들이 그토록 집요하게 누군가를 증오하는 이유는 그 증오가 사라지면 자신의 고통을 상대해야만 한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단지 흑인이라서, 다른 이유는 없다>) 이 글의 문맥에 맞게 저 문장을 함부로 바꾸면 이렇다. “사람들이 그토록 집요하게 누군가를 비판하는 이유는 그 비판을 그만두면 자기 자신을 비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7230300035&code=990100#csidxd30af99eb0bf71b86dbcaca8c190192

 

 

*

 

주말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지금도 썩 좋지 않다. 사흘째 죽 먹는데, 일상이 가능한 것에 감사한다. 아마 아이가 7월에 경련을 두 번이나 한 것 때문에 나도 너무 놀란 것 같다. 뇌파도 찍고 약도 새로 바꿔보고 그 약의 반응도 살피고 다행히 부작용이 없어 일단 시도해보기로 한다. 간단히 두 개의 문장이지만 7월에 계속 병원을 다닌 셈이다. 그리고 나는 어디 가는 데 몸도 마음도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런 일상의 스트레스 외에, 아플까봐 무척 무섭다 ㅠㅠ 정말이지 달팽이나 선인장이라도 먹어야 하나.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무슨 '부정'(비판/욕)까지. 약발 떨어지기 전까지 빨리 최종 교정 작업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

 

우리 사회가, 우리 나라가 충분히 먹고 살 만한 곳인데(7-80년대를 복기하는 지금에는 더 그렇게 여겨진다) 다들 너무나 전근대적인(!) 악의에 차 있는 건 아닌지. 이 포스트근대(요즘은 안 쓰는 용어?)의 시대에 말이다. 새로운 비판의 (새로운) 화법이 필요하다. 그런 시점인데도, 전근대적인(!) 새타이어, 알레고리, 아이러니에 매몰되어 있는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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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국어 교과서 <문학의 향기> 사실상 마지막이 <강아지똥>이다. 동화책을 각색해서 만든 3D애니메이션. 캐릭터와 에피소드도 첨가하고 기왕 있는 얘기에 살(대사)도 더 넣었다. 하지만, 너무 감상적인 버전이라, 보기가 좀 딱했다. 교과서에서 '감정'을 핵심어로 독해(영화도 독해^^;)를 가르치기는 좋긴 하겠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은 이렇게 격한(?) 것을 좋아하는지, 우리 아이도 굉장히 흥미를 보였다. "뭐, 내가 똥이라고?" 흑흑 ㅠㅠ

https://www.youtube.com/watch?v=mpyBkxOZAn4&t=8s

 

이렇게 감상화된(?) 버전의 원작은, 실상, 상당히 담백한 편이다. 세상에서 제일 쓸모없는 '개똥', 즉 강아지똥 얘기. "하느님은 쓸모 없는 건 만드시지 않는다"(이 역시 원작에는 없고 애니-션에서만 첨가된 말로서 지나치게 해설적인 문장이다 ㅠㅠ 톨스토이 민화냐?ㅠㅠ), 누구나 다 가치 있고 쓸모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누구에게나 존재 가치가 있다, 이런 식의 메시지에 덧붙여 희생도 분명히 얘기한다. 마지막에 강아지똥은 자기 몸을 녹여서 민들레의 싹이 자라 꽃을 피우도록 한다, 그것에 기여한다. 하지만 이 동화(아마 나아가 그의 모든 동화)의 백미는 화법인데, 화자가 지나치게 불쌍한 척 굴지도, 그렇다고 설교를 일삼는 성인군자처럼 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가난이 벼슬인 양 떠벌리는 것 역시 질색이다^^;

 

 

 

 

 

 

 

 

 

 

 

 

 

 

 

어릴 때는 오히려 이런 식의 휴머니즘^^; 스토리가 싫어서(울기 싫어 ㅠㅠ) <몽실 언니>를 일부러 읽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내가 안 읽어도(봐도) 항상 우리 곁에 있었던 책(영화/드라마)이 있는데 <몽실 언니>가 대표적이다. 이제 보려고 한다. 전에도 찾아보았지만, 그는 교회의 종지기로 살다가 나중에는 무슨 언덕에 작은 집을 짓고 혼자 동화를 쓰며 살았다고 한다. 이런 삶도 있다.

 

 

 

 

 

 

 

 

 

 

 

 

 

 

 

<강아지똥> 얘기를 <낙서-장>에 하는 이유는 다음의 얘기 때문이다.

 

*

 

처음에는 남동생 때문에 '뇌종양' 이렇게 검색을 했던 것 같다. 그런 것이 올 봄에는 암, 대장암이 됐다. 그와 맞물려 아이의 경련이 잦아져 검색어는 '뇌전증'이 되었다. 이런 것들이 또 몽땅 '일상'이 되어 검색을 멈추어도 유투브 알고리즘(넘나 어려운 용어!!!)은 나를 또 그렇게 이끈다. 그렇게 마주친 여러 동영상에서 공통적으로 보는 것은,,,

 

'아픈 아이 엄마'(자폐든 뇌전증이든 지적이든 뇌병변이든), 고로 아이는 '아픈 아이', 그다음 '암 환자'(뇌종양 환자)이다. 그리고 공히, 그들은 일상의 소중함, 부러움을 이야기한다. 가방 메고 학교 가는 저 평범한 행복이 왜 나에게는 주어지지 않았을까. 20대 암환자 보다 더 힘든 것이 10대 암환자라고 하는데, 그럴 법하다. 나는 아이가 아직 소아라 그쪽을 더 찾아 보게 되지만, 인생에 대한 표상이 생겨버린 10대 중후반 이후, 즉 중교생에게 심각환 질환이 생기는 것은 참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칠순 노인에게도 암은 힘든, 무서운 것인데, 더 말해서 무엇하랴.

 

다시 앞으로, 그런데 이들 중 이 환부, 아픔 외에, 그것 때문에 손상을 입은, 입을 위기에 처한 자신의 다른 정체성, 자신이 그동안 해온 일에 대해 얘기하는 동영상이 있어서 무척 인상적이었다. <단 한 편의 사소설>은, 사실, (그동안 여러 매체에 의해 축적된 말들에 덧붙여) 이 동영상을 보고 떠올린 것이었다.  cell은 세포이자 세일러문에서 왔다고 한다. 몇 년전에 인터뷰 기사가 실릴 만큼, 또 개인전도 열고 초상화 주문도 받고 팔고 할 만큼 왕성한 화가, 작가다. 소녀 감성 충만한 세밀한 그림들, 유화로 그린 세밀화 느낌의 세필 초상화(?) 이런 것들이 많다. 지금 그림을 그리는 순간이 그녀에게 얼마나 소중할지, 감히 공감에 대해 생각해본다. 

 

https://www.youtube.com/c/cellormoon/videos 

 

 

*

 

<강아지똥> 애니-션에서 바람에 날려온 감나무 잎은 원작에는 아예 없는 것이었다. 그랬던 것으로 기억된다. "한 번 태어난 것은 다 죽게 마련이야.(-죽어야 한다)"(?) 라는 식의 말을 남기고, 쌩 하니 불어오는 늦가을-초겨울 바람에 날려 어디론가 사라진다. 동화라 그렇지, 여기저기 날려 부딪치고 찢기는 나뭇잎이나, 태어난 순간 한곳에 붙박혀 온갖 존재의 멸시를 받는 강아지똥이나, 병아리들을 거느린 어미 닭이나, 흙덩어리(소똥)나 다 비슷한 신세다. 저 '신-하느님'의 눈으로 보면 말이다. 이 점을 안다고 해서(이렇게 생각해서) 현재 내 몸의 통증과 마음의 우울, 불안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그 역시 엄연히, 또렷이 존재한다.

 

 

 

 

 

 

 

 

 

 

 

 

 

 

 

 

질병이, 통증이 일상인 나이가 되었다. 건강검진 역시 말하자면 우리가 예비환자임을 말하는 것.

 

역시나 유튜브 알고리즘이 이끈 동영상 중 서울대 의대생 인터뷰 영상. 반드시 11시에 잔다, 일어나는 건 주로 새벽 4시 반, 밥 먹을 때 잠시 쉬고, (직접적으로 얘기는 안 해도) 그 다음은 거의 다 공부. 나도 그 무렵엔 내 머리통 수준에 맞게, 내 깜냥껏 원 없이(-라고 하자니 원한이 좀 남지만^^;) 공부해봤다, 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한데, 지금 눈에 들어오는 건 체력이다. 대여섯 시간을 자더라도 수면의 질이 좋고, 또 깨어 있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때 학업(=업무) 성취도가 높다. 스트레스 관리, 즉 마음 건강 유지도 필수다. 이 모든 것이 한덩어리다. 그렇게 왕성했던 시기가 10대, 20대, 대략 20년 정도였던 것 같다. 30대 때에는 체력이 소진되고 있음에도 담배를 너무 피웠고 또 수면 조절을 너무 못했고, 거기다가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원 없이 공부'가 힘들어졌다. 대신 다른 걸 얻었다고 위로할 수는 있겠지만, 협소한 의미의 공부 관점에서 보자면, 그건 어쨌든 낭패^^;였다. 공부라는 것이 만만한 것이 아니다, 그 어떤 틈새도 허용하지 않는다. 저 수험생처럼 하지는 못해도, 이 점을 명심은 해야 할 터.

 

*

 

 

"뭣 땜에 웃니?, 넌?"
강아지똥이 화가 나서 대들 듯이 물었어요.
"똥을 똥이라 않고 그럼 뭐라고 부르니?
넌 똥 중에서 가장 더러운 개똥이야!"

강아지똥은 그만 "으앙!"
울음을 터뜨려 버렸어요.

한참이 지났어요.
"강아지똥아, 내가 잘못했어. 그만, 울지 마."
흙덩이가 정답게 강아지를 달래었어요.

 

 

 

*

 

요즘 내가 간이 콩알만하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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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마나한 얘기일까.

집에 아픈 사람이 많다 보니 이런 쪽으로 생각을 많이 한다. 의료적 개입의 정도도 중요하지만, 결국, 내 목숨, 내 삶은 나의 문제다. 수술을 하든, 약물 치료를 하든 평소 식생활, 수면 패턴, 운동 습관, 사고 방식 등은 전적으로 내 몫이다. 하루 아침에 갑자기! 어림도 없다.

 

나의 부모(가족)와 남편의 부모(가족)를 비교해보면, 중산층과 빈곤층의 대비가 이 분야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적절한 노동과 적절한 휴식의 조화, 건강에 대한 염려, 규칙적인 검진, 소득과 지출의 균형 맞추기, 무엇보다도! 현실적이고(때론 냉정) 낙관적인 태도. 몸이 아프면 쉰다, 그래도 아프면 병원에 간다, 진단이 내려지면 거기에 따라 치료를 한다, 하다가 안 되면 할 수 없다, 하지만 하는 데까지는 한다. 여기서 필요한 건 돈과 시간과 여유인데, 역시 이런 것들이 중산층과 빈곤층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한 개체가 70년을 살며 세포 하나하나에 축적된 습관, 가치관을 어떻게 바꾸랴.

 

https://news.joins.com/article/23831265

 

어제밤에 읽은 김영민의 칼럼은 '시민사회'(혹은 대한민국 시민의 정치의식의 현주소)에 관한 것이지만, 나는 현재 나의 상황과 맞물려 '건강 관리법'으로 읽었다^^; 읽는 건 내 마음대로 -

저작권 때문에 이미지를 가져올 수 없는데, 저자가 읽는 광고판을 나도 한 번 소리 내어 읽어보고 싶다. 세상에, 서울에 아직도 저런 곳이! 놀랍지만, 우리 동네에도 물론, 있다. 한편, 이렇게 자기 자신을 찍어 올리는 저자의 모습에서, 굉장한 창작 욕구를 본다. 인생이 잘못(^^;) 풀렸으면 소설가가 되었겠다 ㅋ

 

"흑염소·가물치·장어·붕어·잉어·미꾸라지·달팽이·닭발…. 아니 언제부터 닭발이 가물치와 흑염소의 반열에 든 것인가. 배즙·양파·호박·포도·양배추·사과즙·야채즙·선인장. 아니 언제부터 선인장이 야채의 반열에 든 것인가."
[출처: 중앙일보] [김영민의 생각의 공화국] 시민사회란 무엇인가

 

헉, 닭발과 선인장이라니, 미친 ^^; 아무튼 이른바 '후다닥' 저런 것을 먹기 보다는, 꾸준히, 생활 속에서 매일매일 맛있게, 꼭꼭 오래오래 씹어(다작!!!) 먹고 잘 자는 것이 중요하다. 쉽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쓰면서 다짐한다. 

 

암뿐만이 아니다. 고혈압, 당뇨, 신부전, 심부전, 뇌전증, 통풍, 디스크 등 각종 질환이 '선고' 이후부터는 생활-일상이 된다. 한마디로, 꾸준한 관리의 대상이다. 그 중 먹거리가 제일 중요하다는 건 누구나 공감할 터. 아이가 중증 간질(웨스트증후군/레녹스-증후군)은 아니지만, 이런 것이 권장된다. 찾아보니 세 부류의 사람이 주로 한다. 1) 뇌전증, 뇌종양 환자 2) 암 환자 3) 다이어트 - 즉, 예쁘고 건강하고 싶은 모두 사람, 한마디로, 거의 모두에게 좋다. 

 

 

 

 

 

 

 

 

 

 

 

 

 

 

요리를 너무 싫어해서 제대로는 못하고, 흉내라도 내본다. 소위 크리미한 과일을 좋아하지 않지만, '저탄고지'에 가장 권하는 음식이 (바나나와 함께) 아보카도. 처음에는 토할 뻔 했는데 아이가 먹으니 나도 옆에서 조금씩 먹게 된다. 그런데 넌 어디서 온 과일이니? 색감이(-은) 올리브 같아, 너무 예쁘다.

 

그밖에 생선은 주로 담백한 흰살 생선 류보다는 기름진 등푸른 생선, 연어 같은 것을 권하고, 견과류도 좋다고 한다. 역시나 아이에게 하루에 한 줌 정도는 꼭 먹게 하는(잘 먹는다!) 마카다미아.

 

 

여기서도 드러나는 나의 초록색 사랑. 연한초록, 즉 연두색(올리브 그린)도 좋고 짙은초록, 즉 수박색도 좋다. 하지만 파랑이 섞이는 청록으로 가면 호감도 조금 떨어진다. 아마 시골에서 태어나서가 아닐까 싶다. 여름에 논문 한 편을 더 쓰려던 계획을 접고 다시 장편으로 왔다. 문동도 떨어지고 한겨레도 떨어졌지만, 나로서는, 지금 읽고 있는 나의 이 소설, 이 소설의 느낌이 좋다! 내 소설이 좋은 이 느낌, 이것이 또한 좋다!^^; 그러나 ---  

 

아보카도든 마카다미아든, 하다못해(?!) 장편소설 출간이든 죄다, 모조리 돈이구나!

여름에 번역서 인세가 많이 들어와 할 텐데, 쩝^^; 역시 돈의 흐름을 알아야 - 겸사겸사 장하준의 영어 강의를 들어보다가, 이른바 '영어를 잘 한다'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심사숙고하게 되었다. 중요한 건 (발음이 아니라) 콘텐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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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SF는 오늘의 세태소설, 오늘의 SF는 미래의 세태 소설. SF와 환상소설은 결국 한 끝 차이다. 소재를 무엇으로 취하느냐에 따라 차이는 있겠으나, 가장 많은 흥미를 자극해온 건 아무래도 생명 창조 아닌가 싶다. 그것에 초점을 맞추든, 거기서 출발하든, 혹은 그것과 심지어 무관하든, 사회적 관심사 역시 언제나 중요하다. 그래서, 응당, 디스토피아 소설. 이걸 몽땅 같은 궤로 묶어 볼 수 있겠다.

 

 

 

 

 

 

 

 

 

 

 

 

 

 

 

<프...인>은 상대적으로 조금만 건드렸지만 제일 먼저 건드렸기에 최고의 고전이다. <개의 심장>에는 약간의 암시만 있지만, 정치의 문제와 닿아 있다. <나를 보내지 마>도 사회적 맥락에서 읽어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작가는 좋아하지 않을 듯, 그런 독법.^^; 더 확실한 견본은 다음 같은 것.

 

 

 

 

 

 

 

 

 

 

 

 

 

 

 

 

풍자나 알레고리에 초점을 맞춘다면 <1984>는 물론 <동물농장>과 짝을 엮어야 할 것이다. 그게 참 묘하다. 동식물을 의인화한 각종 판타지, 환상 문학과 SF, 풍자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현실 비판, 풍자에 덧붙여 미래에 대한 예언, 경고 등을 시도하거나 포함한다. 미래소설, 이라는 장르가 있던가. 문득, 떠오르는 영화들.

 

 

 

 

 

 

 

 

 

 

 

 

 

 

 

*

 

과연 세계는 지금 -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

 

오래 전에는 '암'이다, 하면 다 죽는다 생각했다. 심지어 주로 보호자에게만 얘기했던 것으로 안다. 추상적으로만 알던 것을 비교적 옆에서 보니, 수술, 항암 등의 과정이 뭐랄까, 굉장히 일상적이고 산문적이어서 놀랍다. 하루를 살든, 1년, 10년을 살든 어쨌든 통증을, 또한 불안을 최소화하고 일상(!!!)을 가능하게 하는 것, 이게 중요하다. 어떤 질환, 어떤 장애든.

 

*

 

사회성. 소통은 우리 인간의 굉장히 고유한 속성 중 하나이다. 동물도 물론 소통하고 교감하지만, 이른바 추상적 차원의 그것은 우리 인간만 가능하리라. 지난 학기 비대면 수업 때문에 많은 것들이 시도되었다. 올 여름에 PPT 검정 투명 화면(?)에 내 강의 영상을 겹쳐 넣는, (어떻게 묘사해야 하는 거냐? --;;) 그런 걸 찍었다. 힘들었지만 무척 신선한 경험이었다. 초등 3학년 아이의 인터넷 강의 동영상(사람-선생님이 직접 나오는)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대략 짐작이 되었다.

 

 

 

내가 키가 너무 작아서 촬영PD가 단상(?)을 가지러 간 동안 얼른 찍어보았다, 그 일부. 그래본들 보통의 정상적인(!) 신장을 가진 사람보다는 밑으로 꺼지게 되겠지만, 아무튼 이런 강의 촬영에서는 나의 왜소한 몸이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다^^; 얼굴과 상체가 작아 화면을 조금만 먹는다. 물론, 더 중요한 건 뛰어난 콘텐츠 확보(즉, 공부 많이 하기), 양질의 PPT를 만들고 그 슬라이드를 토대로 강의하는 기술 익히기 등이다. 시간과 호흡조절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다른 분들의 강의 영상을 보면서도, 알았다. 한 슬라이드당 2-3분 이상 강의가 이어지면 루-즈-하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콘텐츠로^^; 그 점을 보상할 수 있다. 그럼에도,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사전에 간단한 회의를 하고, 옷도 무척 고심해서 맞춘 것이다. 화면이 흑백이라 감색, 검정, 흰색 옷을 입을 수 없고 무늬가 화려해도 좋지 않고 뒤에 마이크를 꽂아야 해서 원피스도 지양 대상. 패션을 살리기에 좋은 외모가 아닌지라, 그래도 딴에는 예쁘게^^; 보이고 싶어 자켓, 블라우스도 새로 샀다. 얼굴에 분장-화장을 좀 받았으면 더 좋았겠다.^^;  

 

나도 몇 년전에는, 저는 PPT 안 써요~ 전자책 안 봐요~ 교정지 PDF 파일 안 돼요~ 이런 식이었다. 불과 몇 년 사이, 특히 지난 학기를 계기로 확 바뀌었다. 위의 저 프로젝트는, 여러 정황상(무엇보다도 밥벌이!) 도무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기에 하겠다고 한 것이다. 도중에 아이가 아파서, 여러 준비가 무척 힘들었지만(아직 완료된 것도 아니다 - 촬영 파일?을 또 손보는 모양이다) 아주 보람 있었다. 강의료가 많이 책정된 것이 다 이유가 있었다. 새로운 것은 항상 힘드니까.

 

하지만, 새로운, 힘든 것을 시도하면서 조금이나마^^; 의욕을 느끼는 나를 보면서 내가 아직 살아 있음을, 얼마간은 더 살아도 됨을  (사는 데도 허락이 필요하다면!) 깨닫는다. 강의료 등등보다도 이게 제일 소중한 '페이-보상'이었다.   

 

 

*

 

내 고향 마을의 탱자밭을 뚫고 길이 났다. 무주로 통하는 터널을 뚫은 것이 2013년인가 보다. 정말이지 넘나 먼 곳, 높은 곳. 좋든 싫든 세계는 저, 이 방향으로고 가고 있다. 우리가 그 길에 서 있는 것도 잠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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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아보니 그날은 2009년 5월 23일이었다. 그 무렵 나는 정치에는 아무 관심도 없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되던 때에는 러시아에 있었다. 그럼에도 그의 부고에는 너무 놀라, 벌떡 일어나 시내로 달려갔던 기억이 있다. '시내'라고 쓴 건, 그때 분향소가 설치된 곳이 정확히 어디였는지도 잘 모를 만큼 내가 서울 지리에 어둡기 때문이다. 주변에 이른바 '노빠'들이 워낙 많았는데, 나의 이 행동에 다들 무척 놀라워했다. 나는 그의 팬도 아니었고 집밖을 나가는 걸 무척 싫어, 힘들어하기 때문이다.

 

야밤에 서울 시장의 실종 뉴스를 보고 잠들었다. 아침 뉴스는 다들 아는 대로다. 나이 들 수록 외모지상주의인 나는 인물이 별로라고 생각되는(역시나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박원순 전 시장에게 큰 관심이 없었다. 지방선거 때 그를 찍었음에도 그렇다. 그런데 이렇게 되고 보니 그가 우리 곁에 항상 가까이 있었던 사람임을 알았다. 그런 줄 알겠더라. 코로나 우울에 부산 시장이야 그렇다 쳐도(난 부산 시민 아님) 서울 시장까지. 그간의 이력을 봤을 때 본인의 죽음이 불러올 여파를 모를 사람 아닐 테고 오죽하면, 이라는 생각이 든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대학, 대학원 시절 그 유명한 **조교 사건을 받은 변호사가 그였던 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현재 가장 큰 문제가 되는 사안은 이제야 알았다. 하지만 현직 시장이 죽었는데 장례 절차를 두고 다른 식의 의견을 내놓는 것, 저 기본적인 무죄추정의 원칙을 무시하는 것, 조용히 문상을 안 가면 되지 굳이 안 가겠노라고 선언하는 정치적 행위 등. 나라 안팎이 참 시끄럽다. (나도, 나의 아이도, 집도 시끄럽다.) 우선은 애도가 먼저일 터. 전두환이 죽으면 나도 모르겠다, 에라이~

 

거의 같은 시기에 돌아가신 다른 분도 잠깐 생각했다...라기보다는 기사들을 쭉 보았다. 싸우는 건 엉뚱한-_-;; 사람들이고 정작 본인(-의 유족)은 참으로 의연하다.

 

- 대전이나 서울이나 다 같은 대한민국... 국가에서 하라는 대로...

 

*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들)와 사소한 트러블이 있기도 하고, 그보다는 내가 자주 아이와 다툰다. 아이에게 화도 자주 낸다. 사과, 화해하고 자주 덧붙이게 되는 말이 있다.

 

- 엄마도 잘 한 거 없다! / - (친구도 잘못했지만) 너도 잘 한 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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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일면식도 없지만 그 갑작스러운 떠남이 크나큰 충격과 여운을 남기는 이들이 있(었)다. 장국영, 최진실, 신해철, 얼마 전 '봉순이'까지. 내가 그만큼 나이 들었다는 뜻이리라. 본인의 부고까지 직접 작성해 놓은 '시네마 천국' 음악가. 어쩌면 죽음을 한 번 체험했기에 정작 소설 속에서는 죽음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많이 쓰지 않는 도스토옙스키. 반면, 죽을 위기를 거의 겪지 않고 실제로 건강하게 장수한 톨스토이는 죽음에 대해 참 한 말이 많은 작가다. 빨리 죽지 않아서 더 그럴 터.  -  맛나는 걸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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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시외버스, 멀미를 궥궥하는 와중에 정신을 차려 보면 '고령' '현풍' '부산' 그랬다. 반대로 갈 때는, '거창'이 마지막. 다 자란 다음에야 기억 속의 '현풍'이 창녕군의 한 지역임임을 알았다. 경상도, 참 멀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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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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