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간肝>

 

 

 

 

 

바닷가 햇빛 바른 바위우에 습한

肝을 펴서 말리우자.

 

코카사쓰 山中에서 도망해온 토끼처럼

둘러리를 빙빙 돌며 肝을 지키자.

 

내가 오래 기르든 여윈 독수리야! 

와서 뜯어 먹어라, 시름없이 

 

너는 살지고 

나는 여위여야지, 그러나, 

 

거북이야! 

다시는 의 誘惑에 안떨어진다.

 

푸로메디어쓰 불상한 푸로메디어쓰

불 도적한 죄로 목에 맷돌을 달고

끝없이 沈澱하는 프로메디어쓰

 

 

1941. 11. 29.

 

*

 

 

 

 

 

 

 

 

 

 

 

 

 

 

프로메테우스 신화 관련 문학 작품. 읽지 못했으나 퍼시 셸리의 시(?).  

 

 

 

 

 

 

 

 

 

 

 

 

 

아주 어린 시절(중학교??), 큰집에서 가져온, 세로 활자 사전판형 세계문학전집에서 "사슬에서 풀려난 프로메테우스"(?)라는 제목의 작품을 본 것 같다. 작가는 지드였다. 그나마 쉽게(ㅠㅠ) 읽힌 <좁은 문>, <전원교향곡> 등에 비하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는, 굉장히 어려운 책이었지 싶다. 최근에 갑자기 생각나서 찾아보니 "잘못 묶인(결박된) 프-스"라고 번역되었던데, 오역이지 싶다. 프랑스어 원제 "Prometheus Illbound"의 영어 번역은 "prometheus unbound"이다. 

 

 

그다음, 우리는 항상 프로-가 결박된 채 독수리에게 고문당한 것만 기억한다. 어쨌든 그가 해방되었음을, 풀려났음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 이후의 삶을 아는 사람은 좀 가르쳐주시길. 간 뜯어먹히는 건 아니지만, 비슷한 유의 고문을 당하던 시시포스(시지프)는 어떻게 되었는지. 아무튼 실존주의 그룹은 이런 주제를 좋아했나 보다.

 

 

 

 

 

 

 

 

 

 

 

 

 

다시 윤동주. 비교적 쉽게 읽히는, 그렇게 읽어도 충분히 감흥이 오는 <서시>, <별 헤는 밤>, <쉽게 쓰인 시> 등등과 달리 <간>은 굉장히 지적인 시인 것 같다. 토대는 프로-스 신화(불)와 별주부전(토끼와 자라)의 종합. 더 자세한 건, 더 반복적으로 읽어보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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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바람벽이 있어>(<흰 바람벽이 있어> 수록)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十五燭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어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늬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골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 하눌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야 릴케'가 그러하듯이

 

 

*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함주시초> 수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치킨을 기다리며 타이핑해보았다. 요즘은 도연명도, 프랑시스 잠도, 릴케도 잘 안 읽는 것 같다. 그나마 릴케라면 어릴 때 <글방문고> 판으로 <말테의 수기>를 읽은 적이 있다. 저 제목처럼

'지하의 수기' 혹은 '지하인의 수기'로 번역하고 싶은 욕심이 컸다. 하지만 너무 의역인 것 같아, 당시 편집자와 상의하여 지금의 번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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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man 2020-10-02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석 시인의 시는 참 읽는 재미가 있어요

푸른괭이 2020-10-02 16:42   좋아요 0 | URL
요즘 제일 많이 읽히는 시인인 것 같습니다^^;
 

 

시를 쓰고 싶다 보니 ㅋㅋ 요즘 시집을 뒤적이게 된다. 이른바 고전 말고 말 그대로 요즘 나오는 시들. 좋은 시도 있고 별 감흥 없는 시도 있고, 시는 전체적으로 좋은데 뭐랄까, 감히, 몇 줄, 몇 자 빼서 더 좋게 만들고 싶은 시도 있고 그렇다. 다음 학기 강의할 때 아이들과 공유해 봐도 좋겠다.

 

 

 

 

 

 

 

 

 

 

 

 

 

 

 

 

이원하, 김민정 시집은 이미 어느 정도 공유의 작업을 거쳤다. 문동 편집자이기도 한(그런 걸로 알고 있는) 김민정의 시는 여러 모로 너무 '쎄서' 읽기 불편한 감이 있었고, 신예인 이원하는 정말이지 시가 너무 예쁘고 상큼해서 자꾸 읽게 된다. 지금 읽는 허연은, 좋다. 기시감도 있는데, 그러고 보니 예전에도 그의 시집을 들춘 기억이 있다. 고전 리뷰집도 꾸준히 내는 걸로 안다.

 

 

 

 

 

 

 

 

 

 

 

 

 

 

 

 

 

누군가에는 조금 뜬금없을 수도 있지만, 새로 나온 박상순의 시집도 읽었다. '완독'했지만, 시집에는 왠지 '완독'이라는 말이 별로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이게 스토리-구성이 중요한 소설이나 희곡, 다른 인문서나 연구서와는 다른 점인 것도 같다. 아무튼, 그의 시를 주지주의(?) 계열로 보나, 모르겠지만, 나는 그의 연애시(처럼 읽히는 시)가 좀 더 와 닿는다.

 

 

 

 

 

 

 

 

 

 

 

 

 

 

 

 

단시간에 시를 마스터^^;하기 위해 모음집을 샀다가, 말하자면 낭패를 보았다. 역시 학문에는 왕도가 없음을 깨달았다. 이때 학문은 시 읽기이지만, 이미 늦은 건 어쩔 수 없고 시간 되는 대로, 여유가 되는 대로 꾸준히 읽으려고 한다. <가재미>를 가져온 건 저 모음 시집에서 제일 마음에 든 시가 문태준의 시였기 때문이다. 이러나저러나 시집은 가볍고 휴대가 간편하여 아이를 기다리리는 동안에도 몇 편은 족히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고교 시절, 영단어 외우던 생각난다.

 

마음에 드는 시들을 좀 옮겨 적고 싶은데, 이거 원 '빨간 날'이라 아이가 돌봄도 안/못 가고 코로나 확진자 폭증에 스트레스 폭발하여 당장 진정부터 해야될 지경이다. 모두모두 힘내자! 우리에겐 (아름다운) 시가 있다, 꼭 완독하지 않아도 된다, 듬성듬성 발췌독을 해도 충분히 감동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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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만한 사람은 다 알았을 것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망할 것임을. 작년인지 재작년인지 모심사장에서 만났던 한 국문자의 말대로, '**사는 회생이 불가능할 만큼...' 망가졌다. 참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출판사는 그나마 <이상문학상> 때문에 연명되고 있었다...라고 다들 생각할 것이다. '왕년에는'(! - 세상에 이보다 더 슬픈 말이!) 좋은 책들이 참 많았는데 이제는 쓸 만한 책이 거의 없고 심지어 이 상조차!

 

 

 

 

 

 

 

 

 

 

 

 

 

 

 

 

 

 

 

 

 

 

 

 

 

 

 

아주 오랫동안 이 상은 모든 작가의 로망, 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93년도 이상문학상 <얼음의 도가니>(최수철), 94년 <하나코는 없다>(최윤) 등 문학회 세미나 목록 1순위가 이 책이었다. 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단편이 여기 실리는 것만으로도 감격했을 법하다. 젊은 독자들은 비단 수상작뿐만 아니라 여러 수록 작품을 읽으며 현대 소설의 흐름, 방향을 가늠해보고 자신의 나아갈(^^;;) 바를 그려보기도 했다.

 

 

 

 

 

 

 

 

 

 

 

 

 

 

 

대략 위에 가져온 이미지의 작품 정도는 나도 읽었다. 그다음에도 꾸준히 샀다. 수업에서 다루려고 비교적 열심히 읽었으나 도무지 작품이 안 되는 것이다ㅠㅠ 좋은 작품도 있으나 너무 재미가 없기 일쑤고, '잘' 썼다기 보다는 '애'쓴 작품이 많았다. 한 상이 이렇게 망하구나, 하는 슬픔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던 차, 다른 상들이 이 상의 자리를 가뿐히 대체한지 오래다. 단편의 경우, 권위로 치자면 이미 황순원문학상, 현대문학상, 이효석문학상, 김유정문학상 등이 가져갔고, 소위 지형도를 읽기에는 오늘의작가상이 좋다.

 

<이상...> 수상작의 조건 중 하나가 작가의 작품집에 수상작의 제목을 쓰지 않는(못하는) 것, 이었던 것으로 안다. 상 받은 모든 작가들이 동의했다는 것인데, 이상의 얼굴 옆에 자신의 이름과 작품 제목이 붙는다는 사실에 대한 자부심의 방증이기도 하겠다. 최수철의 <얼음의 도가니>는 <내 정신의 그믐>에 수록되었다. 3년씩 발표를(재수록) 못하게 한 줄은 이제야 알았는데(아니, 그 문구가 편집자의 실수로 들어갔다니!!! 이 변명이 더 슬프다!!!)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말하나마나, 나도 등단했을 때 제일 받고 싶은 상이 <이상문학상>이었다.

결국 못 받았고 이제는 줘도 흥~이게 되어버렸다.

나의 단발머리도 윤기가 없고 그저 세지 않은 것, 빠지 않은 것을 감사해야 할 처지.

"그 소녀 데려간 세월이~~~~"

 

무엇이 문제인가.

시간은 흐르는데, 나이는 먹는데, 저 변함없는 도도함이 문제인 것이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변함없음은 결국 퇴행/퇴보를 말한다.

 

'숭고미'가 '추'로 바뀌는 데 몇 년 안 걸렸다.

저러다가 이럴 줄 알았지.

 

*

 

차라리 아주 조현병이나 치매나 그 수준의 질환으로 넘어갔으면 모를까, 그 직전의 상태가 참 무서운 것 같다. 정상과 비정상의 애매한 경계 말이다. 특히, 중증(주로 정신) 질환에 인식 거부증까지(용어를 까먹음-_-;;) 들러붙으면 사태는 정말 심각해진다.

 

"**야, 너 그 약을 매일 매일 꼬박꼬박 먹어라. 그래야 앞으로 더 큰 실수를 막을 수 있다."

 

아버지의 유산-연금을 받기 위해 최근에 정신장애등급까지 받은 (왕년에는 정말 명민했던!) 한 사촌 오빠에게 큰엄마가 해준 충고였다. '완치'는, 물론, 없다!ㅠㅠ '그래야 병이 낫는다~' 이런 건 없다는 말이다. 백모의 충고는 '더 큰 실수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미 진단되고 인지된, 그래서 열심히 치료-관리 중인 질환보다 더 무서운 것이, 강조하건대, '의증-경계' 단계의 질환이다. 본인이 '노망' 든 줄 모른 채 여전히 '왕년'을 외치며 기세등등 굴며 시대착오적인 말을 늘어놓는 (시/친정)아버지들의 망언을 다들 조금씩 경험하리라. 비슷한 짓을 중년의 나/우리는 또 청장년에게, 심지어 소아청소년(자식들)에게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멋진 중년? 멋진 노년?

꿈도 야무져, 욕심도 많지.

민폐나 끼치지 말자.

출판사든, 문학상이든, 사람-개인이든

망하는 건 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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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7 14: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푸른괭이 2020-01-07 14:53   좋아요 0 | URL
이어령 선생님 시절이야 정말 전성기였을 테고, 권영민 선생님 주간이실 때도 잡지 <문학사상> 월평란에만 언급되어도 감개무량, 감지덕지의 시절이 있었지요.

‘너무 고고해서‘ 망하기론 비단 <문학사상사>뿐만이 아닙니다. 시대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하는 <창비>에 비하면 <문지>도 실은 많이 아쉽고요ㅠㅠ 우리 개개인도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2020-01-07 1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푸른괭이 2020-01-07 14:54   좋아요 0 | URL
아, 그것이 사실 ‘저작권‘ 개념이 지금과는 달랐던 시절이라서요. 저도 97년 첫 소설집을 <문학과지성사>(당시로서는 상당히 좋은^^;)에서 냈는데, 계약서도 안 썼답니다^^; <열린책들>에서 나온 첫 번역도, 역시 계약서 쓴 기억이 없어요 ㅎㅎ 저는 지금도 계약서 똑바로 안 읽는다고 남편한테 혼납니다 -_-;

문제는 세상에 달라지고 현재 삼사십대(혹은 더 젊은) 작가들의 세계관이 전혀 다른데, 그걸 출판사가 전혀 모르고 있다는 점이죠 ㅠ
 

 

 

<월간에세이>

 

뇌종양이 일상이 되었다

   

 

 

여동생의 다급한 문자를 확인한 건 8월 말, 저녁이었다. “언니야, ** 뇌종양이란다.” **는 우리의 남동생이다. 문자 그대로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줄 알았다.

뇌종양. 실로 대단한 낱말이다.

남동생은 추석 연휴 직후에 P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도 뇌종양 중 양성인 청신경초종이었다. 작년 봄 현기증이 잦아 메니에르병 진단을 받고 잠시 휴직했다. 올여름, 현기증이 더 심해지고 왼쪽 귀도 잘 안 들리고 입안의 근육도 불편, 심지어 마비되는 느낌이 들었다. 왼쪽 눈의 시력도 급격히 나빠졌다. 정밀 검사 결과 종양의 존재가 확인되었다. 정말 힘든 것은 수술보다 그 이후였다. 귀 뒤에는 10는 족히 되는 흉터가 생겼고 의식이 돌아오면서 각종 통증과 불편이 시작되었다. 왼쪽 눈이 감기지 않아 잠이 엄청난 사치가 돼 버렸다. 밥 한 끼 먹는 것도 고역이었다. 심하게 비뚤어진 얼굴, 영락없이 장애인이었다.

장애인. 더더욱 대단한 낱말이다.

그나마 혼자서 화장실을 갈 수 있는 것이 고마웠다. 수술 전 입원까지 포함하여 정확히 2주일 만에 남동생은 혼자서 병원을 나왔다.

지난 103, 남동생의 얼굴을 보았다. 앞서 열거한 낱말들의 위력에 지레 질려서인지, 썩 괜찮아 보였다. 혼자 고기도 굽고 먹기도 잘 먹었다. 수족을 쓰고 말하는 데 큰 지장이 없는 것이 아무래도 비장애인에 가까웠다. 그러나 아홉 살, 일곱 살 아이가 있는 마흔 살 가장으로서 당장 밥벌이가 큰 문제다. 남동생은 2년 전 재수까지 하며 힘겹게 환경미화원이 되었다. “내가 지금 노가다 하고 있었으면 어쩔 뻔했노.” 수술과 회복 기간에도 자리가 보존되고 기본급까지 나온다.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한 술 담배를 끊었다. 마침 아이 엄마도 마음에 드는 직장을 얻었다. 여러모로, 불행 중 다행이다.

 

혈육이 이렇다 보니, 세상에는 뇌종양 환자가 참 많다. 초점을 소아에 맞추면 소아암 중 가장 많은 것이 백혈병, 즉 혈액암과 뇌종양이라고 한다. 먼 나라 얘기처럼 들리는 질병, 장애, 사고 등이 실은 굉장히 가까이 있다. 물론, 남의 일에 지나치게 감정 이입을 한 나머지 값싼 동정에 사로잡힐 필요도, 미리부터 불안해할 필요도 없다. 다만, 타인의 불행이 많은 경우 인과응보가 아님을 명심할 필요는 있다. 선천적인 중증 장애나 희소병도 뭔가 잘못해서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운명-팔자라는 말을 떠올려도 좋겠다. 초등특수교사인 여동생이 40를 출퇴근하며 가르치고 돌보는 아이들 대부분이 중증이다. 그들 역시 누군가의 소중한 자녀로서 그런 장애와 질환을 갖고 태어날 궁극의 원인은 없었다. 그냥 그리된 것이다. 아홉 살인 나의 아이 역시 운동 발달이 장애 수준으로 지체되어 있다. ? 이 물음 앞에 한없는 무력함을 느낀다.

2019년을 넘기면 만으로도 마흔다섯 살이다. 질병은 눈먼 장님과 같아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의 뜻을 알겠다. 비단 질병뿐이랴. 어떻든 사람은 다 죽는다. 이건 결코 입방정이 아니다. 필멸의 존재임을 기억할 때 우리의 삶은 더 농밀해질 수 있다. 오랜만에 폴 발레리의 시구를 떠올린다. “바람이 분다!살아야겠다.”(해변의 묘지)

 

*

  

 

 

 

 

 

 

 

 

 

 

 

 

 

 

 

 

'운명-팔자'와 관련하여 떠올린 건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이다. 럭키-포조 커플은 이런 운명의 역동성을 대변한다. 누가 주인이고 누가 노예인가. 누가 정상이고 누가 장애(장님)인가. 모든 것은 운명의 테러-장난의 산물일 뿐이다. 물론, 이렇게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힘이 빠진다. 더군다나 이번 2학기, 특히 12월은 아이가 '작은 장난'의 희생양이 되어 두 번이나 아프고 있다. 즉, 현재 진행형. 12월 초에는 편도선염으로 고생하더니 마지막주는 기관지염이다. 지난 금요일, 기침이 안 좋긴 했으나 열이 없어 학교를 보냈으나 한시간 남짓 뒤 담임 선생님이 전화를 주셨다. 세아이의 엄마이자 20년 이상 경력의 교사의 촉은 참 정확하다. 두 세시간 뒤 열이 오르기 시작, 항생제와 소염진통제의 도움을 받아도 계속 콜록콜록의 연속이다. 그나마 어제밤에는 열이 나지 않아 한숨을 돌렸으나 '기관지염 -> 폐렴' 이런 도식을 아는지라 조마조마하다. 그래도(아니, 그래서?) 나는 논문을 써보려고, 쓰기 시작하려고 간만에 주말 외출(외근?!)을 감행했다. 덕분에 아이는 아빠와 단둘이 깨가 쏟아지는(반대인가?) 시간을 보내고 있으리라. 질투가 나서 곧 들어가려고 한다. 

 

이 '엄마'라는 자리가 아주 웃긴 것이,,

자기가 딱히 더 잘 하지도 않으면서 왠지 남이 더 잘할 것 같으면 약 오르는 그런 자리다!

 

*

 

아이는 눈을 기다리는데, 이 역시 '팔자-운명'.

 

 

*

 

 

 

 

 

 

 

 

 

 

 

 

 

 

 

 

(제목의 '마담'은 바꾸고 싶당~^^:)

 

'운명-팔자'의 극 사실주의 버전. 너무 사실(주의)적, 심지어 자연주의적이라 소름 돋는 소설. 아주 오래 전 어느 술자리에서 불문학자이자 소설가인 은사가 술에 취해 꼬인 혀로 밑바닥을 보면서 혼잣말처럼 "<보바리>는 진짜(끔찍하게) 잘 쓴 소설이야"라고 말했던 기억이 되살아나고, 이제야 비로소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엠마가 음독했음을, 곧 죽을 것임을 알게 된 후, 샤를르와 그녀의 대화. 엠마의 음독부터 사망까지 무려 17쪽의 분량, 즉 시간이 필요하다! 놀라운 대목이다. 겸사겸사, 나도 매사에, 내가 맡은 모든 역할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난 그래도 한다고 했는데!"

 

 

"왜 그랬어? 누가 시켰어?"

그녀는 대답했다. 

"하는 수 없었어요, 여보."

"“당신은 행복하지 않았어? 내 잘못이야? 난 그래도 한다고 했는데!"

"네... 맞아요... 당신은 좋은 사람이에요!"

그리고 그녀는 샤를르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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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9 1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푸른괭이 2019-12-29 17:58   좋아요 1 | URL
가까운 사람(들)에게 큰일이 닥치면 욕심을 많이 버리게 되더라고요^^; 그게 또 좋은 점입니다. 그런데 왠지 요즘은 하얀 눈 위에 빨간 꽃 이미지가 좋네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