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그러니까 4월 20일 화요일에 거의 넉달만에(!) 아이가 가방(2킬로 남짓)을 직접 메고 하교했다. 추체외로증후군일 것이 확실시되는 증상 이후 처음이다. 거의 항상 내가 이렇게 가방을 들고 오거나, 아이가 메더라도 거의 부축하다시피 데려온 것 같다.

 

 

경련을 하고 있기 때문에(부디 소거발작이라면 좋을 텐데! ㅠㅠ) 약을 아주 안 먹일 수는 없으나, 정말이지 약이라는 것이 너무 무섭다.(코로나 보다도, 지난 금요일 내 동생이 맞은 저 백신이 더 무섭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이의 학교 생활이 상당 부분 궤도에 오르고 있다는 것. 지난 주에 이어 이번 주도 엘리베이터를 전혀 타지 않고 계단으로 올라간다. 3월말부터 알림장을 제대로 다 써오고 있다. 그다음 교과목 학습 수준인데...  

 

4학년 1학기, 첫 한 두달 동안 아이는 네 과목 단평을 다 봤다. 수학은 두 번이나 봤다. 지난 주는 시험을 세 번(즉 삼일) 봤다. 시험지를 보니 난이도 높은 응용 문제가 많지 않은, 그야말로 기본적인 수준이다. 그걸 감안하면, 수학 정도만 따라간다고 할 수 있고, 나머지 교과는, 솔직히, 학창 시절의 나를 생각한다면, "저런 아이들은 왜 학교 오지? -_-;;"하고 생각했던 수준이다, 음.(그 생각에 대한 벌을 지금 받고 있는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수학은 1, 20점도 있다고 하니, 음 -_-;; 일단 기록 삼아 남겨둔다.

 

사회를 워낙 싫어하고 어려워하는데(쓸 게 넘나 많다!!) 아이 평생 첫 단평치고는 선전했다고 본다. 많이 틀려서 다시 풀 것이 많았다.  

 

과학. 진짜 반타작. 집에 와서 풀리니 조금 낫긴 한데, 하나마한 소리. 시험이란, 점수의 세계란 냉정한 것. 컨디션 관리까지도 시험 점수의 영역이다. 사회보다는 과학을 좀 더 좋아하는 것도 점수에서 증명된다. 딱 10점 더 좋아하나보다^^;

 

 

수학 2단원 각도. 실행증이 심해서(요즘은 손떨림도 더 심하고) 각도기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른바 이론은 거의 다 맞았더라, 감동했다. 삼각형 세 각의 합, 사각형 네 각의 합 등. 수학을 할 때는 아이도 행복해 보인다. 못 하면 속상해 하기도 한다. 100점 받은 친구가 부러웠다고.

 

 

 

*

 

 

 

비온 뒤의 장미. 주말에 많이 아팠지만, 봄이 너무 예쁘다! 아프고 나니 봄이 더 예쁘다!

 

 

지난 주 수, 학교에 시냇물 ㅋ

 

네가 봄이다, 아이야!

 

*

 

 

과학 3단원 식물의 한살이. 강낭콩을 키우고 있습니다. 4월 13일부터. 아침에 3센티였는데 지금 재보니 8센티. 식물의 성장, 생장이 동물보다 더 역동적, 육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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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때문에, 또 돌아온ㅠ 경련 때문에 늘 조마조마 등교 중인 아이. 4학년 1학기 수학 1단원, 국어 2-3단원 단평을 봤다. 수학은 아이가 쓴 숫자 판독 문제 때문에 -_-;; 실제 점수는 90점인 것 같다. 국어는 짤 없다, 40점. 내 평생 본 적이 없는 점수다.

 

 

 오, 다시금 국어 40점이라니 ㅠㅠ 나름대로 주말에 복습도 쭉 시켰지만, 그나마 그거라도 해서(?? ㅠㅠ) 저 점수이다. 다른 한편, 이른바 장애아 - 특수교육 대상자 아동들이 대부분 일반 학급에서 시험을 보지 못하는 수준임을 고려하면(그 수준이 되면 많은 부모가 우리 아이의 경우처럼 완통하려고 할 것이다) 제 딴엔 서술형 문제까지 답을 다 쓴 것은 아주 훌륭하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음... 쓰긴 썼으나, 내용이 -_-;;  집에 와서 틀린 문제를 쭉 정리하다보니 1시간이 지났다. 이러니 계속 처지는 것이다. 오행시를 쓰라니, 저건 나도 어려워서 통과. 역시, 국어는 어려운 과목이었어!

 

주말에는 텃밭도 가꿔야 해서 여간 바쁜 것이 아니다. 2주 전 비가 오는 가운데 '도시농부증'을 밭고 텃밭 방문. 호미, 괭이 들고 고생했다. "농사 무시하지 마라, 그거 아무나 짓는 거 아니다."라는 엄마의 말을 상기하면서, 작업용(!) 옷과 신발을 따로 준비해두었다.

 

 

밭고랑을 내놓고 쑥갓씨를 뿌려보았다. 마침 지난 목요일, 아침 등굣길에, 아이 학교 코로나 확진자 발생으로 인한 등교중지(!) 알림이 왔다. 이 무슨 봉변?! 역사상의 많은 참사가 이렇게 어처구니 없이 이루어졌겠구나,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나도 일정이 있었는데 바로 취소되었고, 아이도 이틀간 원격 수업(심지어 휴강)했다.

 

 

텃밭에서 내려오는 길. 봄의 색깔.

 

 

이렇게 알록달록 예쁜 봄날, 금요일 아침 - 오전에 아이가 무척 아파서 나도 많이 울고 애를 먹었다. 집에서 상태를, 경과를 지켜보며 회복되길 기다렸는데, 엄마의 '촉'이 옳았던 것 같다. 38도 찍은 열도 12시간 안에 빠지고 24시간 정도(즉 하룻밤 잔) 뒤에는 밥도 먹을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주말에 텃밭 가꿀 형편은 되지 못해, 아빠 혼자 이렇게 꾸렸다. 우리가 받은 ** 텃밭은 빛이 들지 잘 들지 않는 곳이라, 그늘에서(도) 잘 자라는 작물 위주로 심어야 한다.

 

지금 비어 있는 두 개의 밭고랑에는 뭘 심을지 고민이다. 저런 것도 생명이라 물도 계속 주어야 한다. 하긴, 없던 것에서 뭔가 생겨나려니까. 잘 생겨(나)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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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1-04-08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그런데 국어 시험 너무 어려운데요? 수학 시험도 잘 보고 아이가 대견한데요. 저라도 이런 시험 보라면 틀릴듯. 더 단단해지고 건강해지기를...

푸른괭이 2021-04-08 19:00   좋아요 0 | URL
국어가 정말 어렵더라고요 ㅠㅠ 4단원(?)은 사실과 의견 구별하는 건데 솔직히 답지 안 보면 우리도 마구마구 틀려요 ㅠㅠ 사회와 과학은 암기량이 너무 많고요 ㅠㅠ 수학은 갈수록 첩첩산중, 일반(?) 아이들도 굉장히 힘들어한다고 하더라고요.
 

 

2020년 코로나로 인해 '학교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가장 절실하게, 진지하게 대두된 곳은 대학보다도 초중고가 아닐까 한다. 당장 초3을 마친 아이의 1년을 (또한 각각 1, 2, 3, 4학년을 마친 네 명의 조카들) 돌아보면 이렇다. 건축학자 유현준의 요약대로 학교의 기능은 크게 세가지. 1) 교육 2) 보육(탁아) 3) 사회성 훈련. 사실 3은 1과 2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사회성이란 교육과 보육 과정에서 그것을 통해 많은 부분 형성(훈련)되기 때문이다. 발달이 늦은 우리 아이의 경우에도, 심지어, 굳이 학교가 아니라도 학습이(-은) 어지간히 가능했다. 학력 격차는 물론 벌어지지만, 그렇다고 학습 자체가 불가능한 건 아니다. 이 경우 학교(등교일)는 우선 얼굴보기(대면!!!), 평가(시험), 모둠 활동 및 예체능(특히 체육)에 수업의 초점을 맞춘다. 협소한 의미의 학습은 온라인으로 이루어진 셈.(어떤 제자 말마따나 고등학교 ** 선생님보다 그가 수업 시간에 틀어주는 EBS 강사 선생님이 더 잘 가르친다고 -_-;;) 문제는 우리가 이미 '이 맛'(!!!)을 알아버렸다는 것이다.

 

학교란 무엇인가.

 

이 물음은 이제,앞으로 이렇게 바뀌어야할 것이다.  

 

학교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순전히 학습의 문제라면, 주변의 사례를 들어봐도, 이른바 홈스쿨링이나 학원이 더 효율적이라고 한다. 1년치 학습량을 심지어 6개월 안에(더 빨리?) 떼고 검정고시 봐서 대학 가고 혹은 안 가고 바로 공무원 시험 붙거나 다른 식으로 사회에 나가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비단 학교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의외로 여러(많은, 까지는 아니더라도^^;) 가능성이 있음을, 적어도 두 셋가의 가능성은 더 있음을 염두에 두면 좋겠다. 인생 짧다!

 

살다 보면 이런 식의 주관식, 서술형 통지표도 있는 것.

그런데 아이들이 자랄 수록 학력에 대한 엄정한 평가도 굉장히 중요한데(학력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학교에서 그 부분을 자의반, 타의반 등한시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아마 그러니 모르긴 몰라도 4학년 정도부터는 학군찾아삼만리^^; 전학이 슬슬 시작되는 듯하다.

 

 

서술된 내용을 꼼꼼히 읽어보니 과학이 엉망이다!!! 하나도 이해를(혹은 답을) 못했구나, 요녀석! 사실 집에서 <우공비> 풀리고 실험하면 제법 잘 했는데, 솜씨 없는 대장장이가 연장 나무란다고, 과학선생님(나도 익히 아는^^;;)과의 관계에도 도 문제가 있지 않나 싶다. 이러다가 내년에 담임되실라..^^; 대체로 남녀의 차이가 교사의 경우 확실히 도드라지는 것 같다(아, 남선생님들의 과묵함과 무심함이란!!!). 음악의 경우, 담당 선생님이 작년 담임선생님이었다. 야무진 성격답게 KF80이상 마스크 착용시켜 가창 시험까지 보셨다.(리코더 시험 안 봐서 다행 -_-;;) <송이송이 눈꽃송이~> 아이도 가사를 다 외워 잘 불렀다. 이번 학기에 등교일에 <도덕> 수업을 해주지 않아 유감이었다. 아무튼 담임 선생님들, 또 각각 교과목선생님들이 올해도 많이 도와주시면 좋겠다. 어디든 인력풀은 한정적이라, 이게 또 좋은 점이다.

 

*

 

지난 1월 아이가 총 세 번의 경련을 하여 무척 힘들었는데, 그래도 전반적인 체력과(물론 운동실조는 여전하다!ㅠㅠ) 학력은 딱히 더 치지지 않은 것 같다. 무척 다행이다. 수학의 경우 학교(돌봄원격/등교수업)에서도 어지간히 풀고 있다. 그리고 무엇 때문인지 아이가 과학을 싫어하지 않는다. 심지어 어떤 분과(생물, 물리)는 좋아하기까지 한다. 실험의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굉장히 열성적이다. 지난 1년, 돌봄 오후 프로그램인 영재과학을 꼬박꼬박 했다.(혹시 빨리 하교해서 못 할 때는 재료를 나중에 받아서 집에서 하곤 했다.) 엄청난 성과(!)라고 할 수 있다.그럼에도 정작 교과 과학이 저 모양이니, 음! -_-;;  

 

문제는 국어(+사회)인데, 독해력 교재를 기탄에서 <독해력 비타민>으로 바꿨다. 3단계를 너무 어려워하고 싫어하기에 2단계로 낮추었다. 학습은 흥미와 자신감이 정말 중요하다. 남은 2월에 지난 교과목 복습을 마치는 것이 목표다. 하, 2월, 너무 짧다! (나도 톨스토이 초역과 논문 초고를 끝내려고 했는데, 다 못하게 생겼다.) 읽기(나아가 쓰기)는 무조건, 동어반복이지만, 읽어야 하는데 사람이 이야기책(동화 -> 소설)을 이렇게 안 좋아할 수도 있다니, 슬프고 놀라울 따름이다. 아무튼 독해력 없이 할 수 없는 건 없으므로, 무조건 의무적으로! <훈민정음>은 개학하면 하려고 미루어 두었다.

 

 

 

 

 

 

 

 

 

 

 

 

 

 

*

 

지난 주말, 금요일부터 상태가 좋질 않아 몸을 사렸는데도 일요일에는 아주 드러눕고 말았다. 그래도 그 사이 1년째 미루어둔 큰일을 해치웠다. 아이의 책상을 바꾸는 것. 대략 다섯살 봄-여름에 산 것 같으니 정말이지 뽕 뽑았다. 새 책상이 너무 좋아 여러 장을 찍어보았다. 책상 위주로 다른 것들도 좀 정리하고 생활 공간도 살짝 바뀌었다. 방바닥에 앉아 책 읽는 것이 참 편해졌다. 너무 편해져서, 실은 책을 읽기 보다 그냥 책 사이에 앉아 멍때리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것 포함, 여러 모로, 탐 나는 책상이다! 내가 책상을 처음 가진 건 중2때였던 것 같은데, 어찌나 기뻤는지 정말이지 공부를 열심히 했던 것 같다^_^  저렇게 스탠드가 달린 책상 앞에 앉아 <닥터 지바고> 읽었다... ㅋ

 

 

약을 줄였더니 (초)저녁에도 공부할 수 있는 체력을 회복했다. 아, 정말 무서운 약이었다 ㅠㅠ 지난 11-12월에는 아이가 5시만 되어도 눈이 거물거물했는데 요즘은  7시 넘어도 더 놀고 싶어하는 걸 억지로 재우려고(=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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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오장원 2021-02-09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정고시가 좋은 선택일 수도 있을것 같습니다. 중고교과정 초단기간에 통과하고 바로 대학가는 케이스가 늘어나고 있더라구요.. 공교육이 많이 망가진 상황에서 충분히 가능한 선택지인것 같습니다.

푸른괭이 2021-02-09 15:44   좋아요 0 | URL
워낙 출중하신 분이라 비교할 건 아니지만^^ 수학자 김민형 선생님도, 인터뷰 보니, 고등학교 중퇴하시고 바로 대학 가셨더라고요.
 

2020년 3학년은 아이에게 어떤 해였던가. 아팠던 것과 (순전히 학습적으로!) 배운 것이 많았다는 것 외에는 참 기록할 것이 없다. (아이의, 또한 나의) 학교 생활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또한 여실히 배웠다. 이 점에서 (순전히 학습적인 것 외에!) 아주 크나큰 진리를 깨달았다고 할 수 있다. 

 

방학 전 마지막 줌 수업. 지난 학기의 집중력은 '약발'이었나 보다, 흑. 30분 수업 중 절반은 코를 파는 것이었다... 하... 게다가 역시 초등인가, 빵을 먹는 놈이 있는가 하면 팔다리를 휘젓고 엉뚱한 소리들이나 하고 -_-;;

 

 

방학을 했으나 학기 중과 다를 바가 없다! 코로나에 한파에 이래저래 의기양양이 의기소침으로 바뀌기 딱 좋은 상황이다. 도저히 양심상(!) 아이를 돌봄에 보내지 못하겠고, 또 나도 도무지 나갈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커피(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배달도 안 될 만큼 도로 상황이 좋지 않아 잠깐 나갔다 왔다. 포장주문. 어젯밤부터 일어난 일의 여파가 적나라했다.

 

 

(너무 추워서 몇 장 못 찍었다.)

 

 

커피숍 가는 길이 구만리.

문 열어주셔서 감사하고, 주문한 걸 '픽 업' 하여...

 

 

내려가는 길이 또 구만리. 에휴, 그냥 이 속도로 살아야지.

 

 

요즘 밤마다 내일은 뭘 주문해 먹을까, 고민하며 잠드는데, 흑 ㅠㅠ 이 참에 라이더분들도 좀 쉬시고, 우리 모두 삶의 템포를 늦추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정도가 아니라, 다른 선택지가 없다. 어쨌든 겨울방학 시작! 간만에 끓인 소고기 무국도 먹고 학기 중에 미뤄둔 기탄국어와 기탄수학, (우공비), 방학숙제인 일기쓰기, 독후감 숙제 바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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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07 14: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푸른괭이 2021-01-07 15:11   좋아요 0 | URL
그게 의젓하고 똘똘한 애들이 있는 반면, 존재감이 전혀 없는 조용한 애들도 있고, 반대쪽으로 존재감 넘치는 애들도 있고, 암튼 너무 웃겼네요 ㅋ 엄마란 또 자기 아이한테는 필요 이상으로 엄격한 것 같기도 하고요.

2021-01-07 15: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푸른괭이 2021-01-07 15:49   좋아요 0 | URL
헉, 진짜 웃기네요 ㅋㅋ 우리 애 학교는 인원수가 적어요, 한 반에 24명인가? 줌은 16명 전후로 들어온 것 같아요. 아무리 길어도 30-40분 정도가 전부고요. 줌 수업이 길어지면 별별 문제가 다 생길 듯요^^;

2021-01-07 18: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08 08: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동굴 아래로 내려가려니 당연히 겁이 나서 흠칫 물러섰지만, 다시 정신을 차리고 생각하니 더 이상 바랄 게 아무것도 없고, 가진 게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갖고 싶지 않아서 기분이 짜릿했다."<브렌타노(1)>- P437

(https://blog.aladin.co.kr/inua10)

 

".... 더 이상 바랄 게 아무것도 없고, 가진 게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갖고 싶지 않아서 기분이 짜릿했다." 라는 문장이 너무 마음에 들어 (그 블로그 출처와) 책의 이미지를 긁어왔다. 책을 직접 읽으면 좋겠지만, 시간이 여의치 않다. 아무튼. 비슷한 느낌을 체호프의 마지막 희곡을 읽으며 받았다. 아등바등 살고 항상 뭔가를 손에 넣으려고 애쓰는 도-키나 톨-이와는 아주 다른 작가. 톨-이가 그랬다고? 말년의 톨-이야말로 '무소유'를 소유하려고 애쓴, 말하자면 기왕지사 다 '소유'했음에도 심지어 '무소유'마저 '풀소유'하려고 했던 위인, 그런 인간이다. 이른바 구도자-되기. 그에 비하면 제법 많이 어린 체호프는 극히 성숙된 모습을 보여주었던 듯하다. 모든 것을 다 날리자 오히려 행복해지는 이 역설은 무엇인가.

 

 

 

 

 

 

 

 

 

 

 

 

 

 

 

그토록 지키고자 애썼던(과연 그랬나?) 벚꽃동산이 팔리자 홀가분해졌다, 라고 가예프가 참 좋아한다. 모두가 동의하는 것이기도 하다. 비슷하게 나 역시...

 

아이가 거의 석달째 경련을 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항상 조마조마했다. 덧붙여, 이것이 약의 도움이라 생각하여, 약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아졌고, 아이의 운동 기능이 현저히 약화되는 시점에서도 약을 줄일 용단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 22일 새벽에 아이가 경련을 했고, 그 덕분에! 약에 대한, 내가 생각하기에 그동안 너무 지나쳤던 의존도에서 해방되었다. 마침

상담(진료)에서 약의 부작용 가능성을 의사도 인정(?)해서, 다시 원래대로, 하루 2알에서 1알로 줄여보기로 했다. 내가 내심 너무 불안해한 중증 질환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가벼운 코웃음을 보이셨다. 전문가의 이런 반응이 무척 위안이 되었다. 대체로 문장이 깔끔하지 못한데, 핵심인즉: 

 

심지어 암 같은 중증 질환도 그런 것 같은데, 약을 비롯한 각종 의학적 처치는 (아주 응급이 아니라면) 하나의 방법론일 뿐이다. (병원에서 들은 어르신들의 대화 중. "의사는 그냥 좀 도와주는 거야, 이렇게 약 먹고 치료 받으면 뭐해, 집에 가서 술 처먹으면 말짱 도루묵이지.") 결국, 질병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 득과 실을 따져서 의료적 개입의 양을 조절하는 건 결국 의료 소비자의 몫이고, 그 과정에서 전문가의 의견을 참고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마음 맞는, 내가 그 권위를 인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의사는 반드시 필요하다. 다른 한편, 그게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이른바 플라시보 효과도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믿음!^^), 의사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약효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믿음.

 

 

 

 

 

 

 

 

 

 

 

 

 

 

 

약을 줄였음에도 운동 기능이 예전처럼 회복되지 않으면 정말 어쩌지. (지난 월요일, 치과 가는 길,11월만 해도 둘이 같이 신나게 걸어갔을 거리인데, 너무 힘이 없고, 심지어 횡단보도를 제 시간에 건너기 힘들고 뛰는 일은 아예 못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당장은, 경련과 발작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아이를 아주 못 움직이게 하는 일은 하지 말도록 하자. 조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이지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코로나^^;) 믿음.

 

정녕 믿음이 없다면 인간이란 무엇인가. 우리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건 믿음 밖에 없다. 나-악마의 소원은 뚱뚱보 상인 부인(부전시장의 돼지국밥집 아줌마^^;)이 되어 성상 앞에 촛불을 켜놓고 열심히 하느님한테 기도하는 거, 그런 부인이 되는 거라네^^; <카라마조프..> 속 '악마'처럼 나도 신심을 갖고 싶다. 왜냐면 정말이지 이런 믿음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고도'는 요제프 K 앞에 나타난 두 명의 집달리(=형리 = 깡패, 건달, 양**^^;)와 같은 것인데, 그 불안과 공포를 견딜 수 있게 해주는 건 결국, 믿음이기 때문이다. 단, 무엇에 대한? 

 

 

 

 

 

 

 

 

 

 

 

 

 

 

 

열심히 읽으며(옮기며) 탐구 중이다^^; 특히, 소설가 김연수가 번역한 저 <세 가지 질문>의 답은 정녕 금과옥조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 지금, 가장 중요한 사람은 -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 가장 중요한 일은 - 지금, 이 사람을 위해서 하는 일.

 

*

 

법정의 <무소유>를 나이 들고 다시 읽었을 때 느낀 것은, 소유에 대한 과도한 불안과 공포, 무소유를 향한 그의 도저한 집착이었다. (풀)소유를 향한 집착 vs. 무소유를 향한 집착. 아마 후자 이전에 분명히 전자가 있었을 것이다.

 

 "동굴 아래로 내려가려니 당연히 겁이 나서 흠칫 물러섰지만, 다시 정신을 차리고 생각하니 더 이상 바랄 게 아무것도 없고, 가진 게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갖고 싶지 않아서 기분이 짜릿했다."<브렌타노(1)>- P437

 

아이가 휠체어 신세가 되면 어쩔까, 라는 공포가 컸는데, 그게 너무 커지니, 한편으론, 그 정도만 되어도 좋겠다는 묘한 위안이 생기는 것이었다. 즉, 지금처럼 말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고 전반적인 컨디션도 나쁘지 않고 그러면 하반신을 못 쓰더라도 최악은 아니라는 거다. 무서운 비유지만, 이렇게 극단을 상정해보니(아, 더한 극단도 물론 있을 수 있다, 슬프게도!) 별로 무서운 게 없어지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신(=약)이 없다고, 적어도 전지전능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무척 편해졌다. 그럼 뭘 믿어야 하나. 신의 부재(무능)가 우리에게 믿음의 무의미함을 얘기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다들 그랬던 것 같다. 새로운 신을 찾아볼 수도 있고 나-우리가 신이 될 수도 있고 신이야 있는 말든 '마이 오운 모드' 하며 살 수도 있고, 아무튼 살아 있으면 되는 것이다.   

 

 

 

 

 

 

 

 

 

 

 

 

 

 

 

 

(토마스: 내려오고 나니까 오히려 너무 좋아, 행복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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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0-12-24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소식에 가슴이 아프지만 운동 능력도 되찾고 경련도 안 하기를 기원해 봅니다. 체호프의 희곡은 한 편도 못 읽어봤는데 <벚꽃동산>부터 시작해 볼게요.

푸른괭이 2020-12-24 12:57   좋아요 0 | URL
그게 불행인지 다행인지 제삼자는 잘 모르거나 관심을 안 두더라고요. 그냥 평소와 같다, 혹은 힘 없다 정도? 하지만 엄마의 촉은 확실히 정확한 것 같아요. 단원별로 그 학습 요구량을 따라가는 반면, 운동은 제자리걸음 정도가 아니라(이것만도 땡큐라는 것을 알았습니다ㅠㅠ) 명백히 후퇴, 퇴행 수준이거든요? 그래서, 엄마들이 다 그렇겠지만^^;, 집에서 간단한 맨손 체조라도 꾸준히 시켰더라면 이 정도는 아니었을 텐데, 경련 때문에 무서워서 지난 두 달을 꼼짝도 못 하게 한 걸 굉장히 후회하고 있어요 ㅠㅠ 뭐, 그 덕분인지 학교를 참 잘 다녔어요, 이번 가을에, 등교일 3일일 때요.

체호프 희곡은 <갈매기>부터 시작, <벚꽃동산>, <바냐 아저씨(외삼촌)>, <세자매> 순으로 가면 좋아요. <세자매>가 제일 난해^^;하다고 하죠. 열린책들 판에 실린 단막극도 재미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