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읽다, 쓰다

 

 

 

 

* ‘얕고 넓음에서 좁고 깊음으로: 학자의 책읽기

 

올해 출간될 독서에세이집의 서문을 구상하던 중 나의 44년 인생을 요약해보았다.

 

19751, 태어났다.

10, 공부했고, 자랐고, (부모) 집 떠났다.

20, 공부했고, 소설 썼고, 담배 피웠고, 연애했고, 번역했다.

30, 공부했고, 강의했고, 논문 썼고, 소설 썼고, 번역했고, 결혼했고, 담배 끊었고, 아이 낳았다.

40, 공부하고, 강의하고, 논문 쓰고, 소설 쓰고, 번역하고, 책 내고, 아이 키우고,

암과 치매와 실명 없는 노년을 꿈꾼다.

 

십대부터 지금까지 빠지지 않는 것이 공부였다. 공부가 진척될수록 그 대상은 문학에 집중되었다. 누군가에게는 하강일 수 있는 문학이, 경상남도 거창군의 으슥한 산골에서 의무 교육만 간신히 받은 농부의 장녀로 태어난 나에게는 시종일관 상승이었다. 여섯 살이 되던 해 여름, 부산에 사는 삼촌의 결혼식에 가던 길에 아빠의 손을 잡고 조만간 내가 다닐 학교를 구경 갔던 일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해 겨울 우리 가족은 고향을 떠나 부산의 어느 산동네에 단칸방을 얻었다. 이듬해 봄, 나는 학교에 들어갔다. 이 역사적인 1981년에 읽고 쓰는 법을 배웠고 책의 세계에 진입했다. 질 나쁜 종이에 조잡한 그림이 들어간 교과서가 전부였음에도 그것은 문학의 형식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때부터 문학은 놀이가 아니라 공부였지만, 신통방통하게도, 공부가 곧 놀이이기도 했다.

이른바 책읽기는 대략 중학교 시절 문고판으로 시작되었다. 장학금과 과외비 덕분에 현금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된 대학 시절에는, 과장하건대, 읽고 쓰는 일만 했다. 고전에 한정되었던 독서에서 이청준, 김승옥, 최인훈, 박완서 등 현대 작가로 영역을 넓혔다. 각종 사회과학 서적은 물론 명화집과 사진집도 많이 사보았다. ‘얕고 넓은독서의 절정이었다.

19973,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독서의 양상이 달라졌다. 3년에 걸친 유학 기간 동안에는 일부러 우리말 책을 보지 않으려고 했다. 러시아의 도서관은 대부분 폐가제인데, 최대한 일찍 기숙사를 나서서 하루 종일 도서관에 틀어박혔다. 빛바랜 원서를 읽고 요약하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 독서의 범위는 더 한정되었다. 러시아문학, 19세기 소설, 도스토예프스키, 소설 분신혹은 분신 테마. 2001, 레닌 도서관 귀퉁이에 앉아 서지를 훑어보는 데만도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좁고 깊은책읽기의 쾌락을 최대한 만끽하던 시절이다.

20043, 처음으로 모교의 강단에 섰다. 이후 15년 동안 러시아문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선생으로, 그것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번역가로 살았다. 여전히 비정규직 신분임에도 어느덧 스무 살 이상 차이가 나는 아이들 앞에서 강의하고 그들의 마음에 들고 싶어 하는 나의 모습을 사랑한다. 스물다섯 살에 <악령>을 시작으로 <죄와 벌>,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등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번역한 것에 대한 자부심도 크다. 년 초에 출간된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 번역 역시 이 소설을 아끼는 독자들의 기대에 부응하리라 생각한다.

 

* ‘좁고 깊음에서 얕고 넓음으로: 소설가의 책읽기

 

나름대로 아카데미즘을 고집하던 내가 대학 밖의 공간에서 틈틈이 강의를 시작한 것이 2010년쯤이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카프카의 변신, 이광수의 <무정>과 염상섭의 <삼대>까지 다시 읽었다. 이런 식으로 좁고 깊은독서에서 얕고 넓은독서로의 회귀를 시도해보았다.

2016년부터는 서울대 국문과에서 개설하는 소설 창작 강좌를 맡게 되었다. 커리큘럼의 절반 이상이 동서양의 고전 중단편인지라 여중고시절 같은 세계문학 공부의 쾌감을 다시 맛본다. 더불어, 대학 시절에는 방학 때 강의실 밖에서 읽었던 요즘 소설들을 강의실 안에서 학생들과 함께 읽는 호사를 누린다. 보르헤스 말마따나 읽기는 쓰기 후에 일어나는 행위”, “보다 체념적이고, 보다 문화적이고, 보다 지적인 행위이다. 요컨대 읽기가 지적노동이라면 쓰기는 육체노동이다. 대학교 4학년이었던 1996년 소설가로 등단, 곧바로 첫 소설집(<고양이의, 고양이에 의한, 고양이를 위한 소설>)을 낼 무렵에는 몰랐던 사실이다.

작품의 수준을 떠나 일단 쓰고 보는 학생을 보면 이십여 년 마흔을 넘기면 소설이 한 줄도 쓰이지 않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라던 스승의 말이 떠오른다. 나 역시 마흔을 넘긴지 오래, 한 문청을 통해 내 꿈을 환기해본다. “꿈을 꿀 무렵의 나, 꿈속의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꿈꾼 것은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존재였는지도 모르겠다.(<다시, 스침들>(2018, )) 어쨌든 사람은 원래 자기가 원하던, 그래서 걸어가던 그 길의 끝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성취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자기가 원하던 모습을 하고 있다. 소설가로 태어나지는 않았으나 죽을 때는 소설가로 죽고 싶다.

 

* 동물-인간에서 사람-인간으로: 아이 엄마의 책읽기

 

다시 맨 처음으로 돌아가자. 2010121일을 맞이하는 새벽, 나쓰메 소세키의 <그 후>에 관한 글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담배냐, 아이냐.’ 열아홉 살부터 15여년을 하루 두 갑, 명실상부한 골초로 살아온 나에게는 사느냐 죽느냐수준의 문제였다. 결국 아이를 선택했으나 솔직히 담배가 피우고 싶어 죽을 지경이었다.

문제는 출산 이후였다. 담배를 안 피워도 나는 사람이지만 책을 읽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새끼를 낳아 젖을 먹이는 포유류의 암컷일 뿐이었다. 물론 이 역시 숭고한 실존이지만 그 와중에 책의 삶이 또한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스레 깨달았다. 조리원에서 미시마 유키오의 <가면의 고백>을 읽었다. 9월부터는 강의 준비 차 러시아명작을 다시 훑었다. 2학년이 될 아이 역시 책을 읽기 시작한지 오래다. 동물-인간에서 사람-인간으로 진화한 것이다.

지금껏 공부는 내 인생의 거의 전부였다. 이제 와서 뭘 어쩌겠는가. 우리는 언제까지나, 여전히 모범생일 필요가 있다.

 

https://blog.naver.com/todayslibrary

 

지면이 좁아 많이 못 썼다. 나중에 책 나올 때 마저 써야지, 했는데 지금 보니 딱히 더 안 써도 되겠구먼. 그게 말의 본성이기도 한지.

원고료가 설 연휴 전에 들어왔다. 20만원 넘었다, 캬아! 너무 오랜만에 받아보는 것이라 무척 기뻤다.

 

*

  

 

 ландыш покупаем. 은방울 꽃. 할머니들이 근처 숲, 들에서 꺾어와 시장에서 들고 다니며(가만히 서서) 판다. 너무 약해 보여 산 적은 없는데, 지나고 나니 그립다.  들꽃을 많이 꺾어본, 그래서 집안까지 많이 가져와 본 경험상, 들꽃은 그렇게 피어 있을 때(만) 아름답다. 정말 금방 시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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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서사의 매혹>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략(1812년 대조국전쟁)을 다룬 역사소설인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는 로스토프 집안과 볼콘스키 집안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두 집안은 각각 작가의 친가, 외가로서 그의 입장에서는 가 어떻게 생겨나 성장했는지를 추적하는 과정이 곧 소설 집필 과정이었다. 이 압도적인 분량의 책이 주목하는 것도 실은 남성적 서사인 전쟁’(국가의 역사)보다는 여성적 서사인 평화’(‘개인의 이야기’)이다. 특히, 열세 살 소녀에서 시작하여 네 아이의 엄마, 아줌마가 되는 여주인공 나타샤 로스토바는 톨스토이의 인간관과 세계관을 오롯이 보여준다. 로스토프 백작 집안의 이 귀염둥이는 볼콘스키 공작의 두 번째 아내가 될 뻔했으나 결국 모스크바의 대부호인 베주호프 집안의 안주인이 된다. 볼콘스키 공작 집안과 혼인관계를 맺는 자는 그녀의 오빠인 니콜라이 로스토프 백작이다. 그로써 나타샤는 남편(안드레이 볼콘스키)의 여동생이 될 뻔한 마리야 볼콘스카야와, 정반대로, 오빠의 아내로 다시 만난다. 이런 개인()의 성장의 이야기가 곧 일국의 역사이기도 한바, 개인사와 보편사의 총합에 관한 파노라마는 대하소설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반면, 제목만 놓고 보면 가족서사의 전범처럼 보이는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은 작가의 독특한 시간 사용법이 돋보인다. 그는 대하처럼 흐르는 시간의 총체가 아니라 그러한 시간의 한 순간을 포착하여 그 단면을 확대한다. 주인공들의 성장은 한 순간에 완성된다. 드미트리는 하루아침에 아비 죽은 패륜아로 전락하고 이반은 그로 인해 광인이 되고 스메르쟈코프는 자살하고 알료샤는 이 모든 것을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모두 하루아침에 망하거나 흥한다. 톨스토이의 교과서와 비교하면 성장 없는 성장소설, 가족 없는 가족소설에 가깝다. 그럼에도 세계문학사에서 단연코 돋보이는 것은 바로 이 이 독특한 서사 구조 덕분이다.

 

 

 

 

 

 

 

 

 

 

 

 

 

 

 

우리 문학의 근대소설사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성취인 염상섭의 <삼대> 역시 잘 쓴 가족소설의 전범이다. 조의관, 조상훈, 조덕기 등 조 씨 집안 삼대를 대표하는 세 남자들의 흥망성쇠, 성장에 관한 기록은 동시에 그들이 속한 세계의 백과사전이기도 하다. 최서희의 성장소설인 󰡔토지󰡕 역시 그녀 주변의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은 가족서사이자 역사대하소설로서 앞으로도 추월을 허용하지 않을 법하다. 물론, 가치평가 여부를 떠나, 이미 이런 규모의 소설이 읽히지도, 쓰이지도 않는 시대가 왔음도 기정사실이다.

 

어릴 때부터 성장소설을 쓰려는, 나아가 가족서사를 축조하려는 꿈이 있었다. 대학교 4학년 때 등단한 이래 일곱 권의 소설책을 냈다. 지난 9월에는 작은 장편 <다시, 스침들>이 나왔다. 그동안 러시아문학 전공자로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비롯하여 작년 말에 출간된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까지 굵직한 러시아 소설을 번역해왔다. 올해는 러시아문학 연구서와 독서에세이집이 출간될 예정이다. 한 달만 있으면 마흔 다섯 살이다.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렵다. 최근에 이 말을 곧잘 되뇌는 것은 가족 구도 속에서 나의 생물학적, 사회적 입지를 비로소 실감한 탓인 듯하다. 나에게 가족은 양친과 두 동생, 이렇게 다섯이었다. 서른여섯, 결혼한 뒤에도 그랬다. 서른일곱, 아이를 낳았을 때도 그랬다. 20183,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나보다 먼저 결혼한 두 동생도 아이()의 부모가 된 지 오래다. 지금 나의 가족은 남편과 아이다. 과거의 가족은 문학적 현상이 되어버린 것 같다.

 

우리 삼남매의 고향은 경상남도 거창군 수내 마을이다. 내가 태어난 것은 19751월이다. 여동생은 2년 뒤 한창 바쁜 모내기철에 태어났다. 막내인 남동생이 태어난 이듬해인 19811, 우리 가족은 부산으로 이사 갔다. 11월생인 막내 동생은 문자 그대로 핏덩어리였다. 우리의 첫 정착지는 부산진구 전포동 기찻길 위 산동네의 단칸방이었다. 1920년생인 할머니가 돌아가신 다음 해인 2007, 당시는 육십 대였던 아버지와 함께 우리가 살았던 곳을 답사하며 쓴 소설 초고의 1장은 이렇듯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 거창과 부산을 배경으로 한다. 과거는 우주보다 더 멀고 낯설다. 성장소설은 그 시간을 상대해야 한다. 다시금 문제는 새로운 시간 사용법의 발견이다.

 (<월간에세이> 2월호: http://www.essayon.co.kr/kr/)  

 

*

    

어제 잡지 한 권이 배달되었다. 나는 "할 일 없는 사람"이라서 이 에세이 역시 언제 나오나 열심히 기다렸다. 원고료 10만원. 이렇게 '원고'에 대한 '료'를 받으면(아직 안 들어왔지만!) 작가(글쟁이, 혹은 매설(문)가)로서의 정체성을 실감한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도 기분이 좋은 것이다.

'책'(=판매상품)과는 엄연히 다르다. 원고료는 진짜 한 자, 한 자 쓴 글에 대한 대가이다. 저 글은, 지난 학기 시간표가 애매한 탓에, 학교 커피숍과 도서관을 오가며 쓰고 다듬은 것이다.

솔직히 청탁 받을 때는 귀찮았다. 아, 이런 대책 없는 거드름, 좋아, 너무 글쟁이스러워, 잃을 것은 하나도 없고 얻을 것은 온 세상인 프롤레타리아-작가의 본성!

하지만 막상 쓰다 보면 또 글을 쓰는 그 행위 자체가 너무 좋은 것이다. 그 다음, 이렇게 잡지에 실린 내 글을 보면(실은 안 보는데) 또 기분이 묘하다.

종이가 재생지. 그 느낌도 좋았다. 요즘도 나오는지, <좋은 생각> 같은 잡지.

 

'에세이' 아닌 '수필'. 이 단어 역시, 어딘가 아늑한 데가 있다.  

하지만 저 글은 좀 많이 매정하다. - 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아닌가.

 

   *

 

게티이미지 뱅크에서 하나 찾아왔다. 모양새는 튤립과 비슷한데, 들꽃이고 왜 이름이 할미꽃인지. 아무튼 좋아하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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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재작년인가, 계절 수업에서 한 학생이 '나'를 대상으로 소설(초고)을 썼다. '헐'이라는 말을 참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나 말고도 나를 미적(글의) 대상으로 삼는 자가 있다니. 나름 당혹스러운, 그러나 신선한 경험이었다.

 

시선은 권력이다. 사람을, 사물을 보고 그릴(쓸) 때 나는 권력자다.

사진 찍힐 때는 어떤가. 오랜만에 당혹스러운, 그러나 신선한 경험을 해보았다. 맞아, 이런 것이었지. 왕년에는 잘 나갔다고.

 

이렇게 화보 수준으로 많이 찍어야 하는 지면인 줄 알았으면 (솔직히 너무 부담스러워, 또 - 시간 맞추기도 힘들어) 안 갔을 것을, 일단 원고도 쓴 다음이라 가서 찍게 되었다. 몇 컷 올려본다.

 

(나는 얼굴의 정면이 나오는 것을 좋아한다.)

 

(구도와 배경은 좋았는데 '오브제'가 망쳤다.) 

 

  (전신컷은 싫어하지만 잘 나왔다. 내 마음에 드는 나의 익숙한 표정이다.)

 

(예쁜 배경에 비해 조금은 아쉬운 컷들.)

 

 

(책과 사람보다 빛이 좋다. 나에게 저런 표정도 있구나, 싶은 사진.)

 

 (나를 대상으로 사진을 찍어주는 자가 없어진 지 오래라, 이런 사진 건지기(!) 참 쉽지 않다. 어깨를 좀 내려야, 허리를 세워야 디스크가 심해지지 않을 텐데.)

 

*

 

의도하지 않았으나 내가 갖고 간 책이 제일 훌륭한 소품이 되었다. 이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가장 예쁜 모습은, 파마도 염색도 하지 않은 원래 나의 머리를 단발로 자르고 흰색 셔츠 블라우스에 약간 짙은색 청바지, 트렌치코트를 입고 사시사철 감기를 예방할 머플러를 두른 모습이다. 날씨가 추워서 두툼한 스웨터에 패딩 입고 가야했지만 사진을 찍으려고 무리를 했다. 그래도 고생한 보람이 있어, 한 몇 년은 쭉 쓸 수 있겠다.

 

그럼 이제 문제는...

 

소설을 쓰는 것이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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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책 나왔다. '연작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편집부에서 '장편소설'로 읽어주어, 또 요즘 문단 풍토를 고려하니 그래도 될 것 같아, 그러라고, 그러자고 했다. 그리하여.

 

 

 

 

 

 

 

 

 

 

 

 

 

 

이렇게 손바닥만한 경장편까지 치면 세 번째 장편이다.

 

 

 

 

 

 

 

 

 

 

 

 

 

 

 

 

*

 

이 사진을 쓰려고 했는데 화질이 나빠 다른 것으로 바꾸었다. 이러나저러나 한 3, 4년 된 것이다.

 

 

*

 

읽히려고 쓴 건 아니나 잘,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 팔려고 낸 건 아니나 기왕지사 나왔으니 잘 팔렸으면 좋겠다. 삭신이 쑤시는 와중에 뭔가 좋은 예감의 스침이 있다. 앗, 벌써 누가 샀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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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8-09-19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페크(pek0501) 2018-09-20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2

푸른괭이 2018-09-23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감사합니다^^;
 

 

순전히 단어만 놓고 볼 때 얼마나 우아한가. '현기증'. 검색해 보면 이런 저런 것이 뜨지만 아무래도 나한테는 히치콕의 <현기증>(Vertigo)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제발트의 소설은 언제 읽어야지 하면서도 결국 못/ 안 읽는 책.  

 

 

 

 

 

 

 

 

 

 

 

 

 

 

반면 '구토'는 순전히 말만 들어도 '구토'스럽다. 그래도 토한다, 역하다, 멀미 난다, 우웩, 토사물 등등 비슷한 의미의 다른 단어들과 비교하면 여전히 우아하다. 무엇 때문인지 잘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어릴 때부터 좋아한 책. La nausee(맞나?), 아무튼 원어도 어딘가 좋았던 듯. 아주 오래 전인데, 옛날 남자친구가 마침 교보에 간다기에 원서를 사다 달라고 부탁한 기억이 난다. 그러고 몇 장 뒤졌던가. 적어도 그런 야망도 있던 시절이다.  

 

 

 

 

 

 

 

 

 

 

 

 

 

 

지난 수요일, 더도 덜도 말고 딱 이 두 단어의 조합을 떠올렸다. 현기증과 구토. 복지관이었고 아이가 작업치료를 끝내고 4시쯤, 그룹체육을 하러 들어갔다. 웬일인가. 항상 비교적 얌전해보이던 홍**씨가 웬일로 괴성을 지르고 난리다.(지난 금요일, 나 대신 아이를 데려간 남편이 얘기해준 대로다.) 자폐, 바로 이게 문제다. 무발화 중증, 이것도 문제지만, 아무리 훈련을 해도 이런 식의 돌발 행동이 제어되지 않는 것이다. 아마 '시즌'인 모양이다. 그가 '엄마'와 함께 떠났다.

 

얼마쯤 지났나, 갑자기(그야말로 '갑자기'여서 놀랐다!) 손에 들고 있던 출력물의 글자열이 흔들흔들, 휘청휘청거리면서 시야가 급속도로 망가졌다. 이건 뭐지. 가끔, 한 2, 3초 시야가 흔들리거나 약간 노르스름해지다가 멈추는 일은 더러 있었지만(물론 많지는 않았고), 이건 질적으로, 양적으로 아주 다르다. 머리통이 뒤로 툭 젖혀지는데, 아, 사람이 이러다가 곧장 기절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종잇장들을 내려놓고 머리를 벽에 기대도 보고 의자(여러 개가 붙여진)에 다리를 올리고 앉아도 본다. 시야가 너무 흔들려 눈을 감는데, 몸이 화끈, 훅 달아오르는 느낌도 든다. 잠시 뒤 화장실. 나온 다음에도 편치 않아, 저쪽 복도 구석으로 가서 쪼그리고 앉는다. 또 화장실. 정녕 현기증과 구토.

 

아이가 나왔다. 너무 힘들어 아이와 함께 좀 앉아 있는다. 또 구토.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3층 대기실로 내려간다. '태양에 지친 자들'이라는 미할코프의 영화 제목이 생각나는 풍경. 여기서 '태양'은 스탈린인데, 내가 말하는 건, '희망'. 장애가 이른바 '극복'될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그래서 나날이 더 지쳐가는 듯한 엄마들. 사실 더 큰 절망은 대부분의 아이들이 이런 정황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지적 장애 2급에 최근에 뇌병변 4급까지 추가. 겉보기에는 그렇게 심해 보이지 않던데, 그래서 등급이 나오더라도 훨씬 더 낮게(좋게) 나올 줄았는데, 엄마가 아는 아이의 실제 상태는 그토록 심각했던 것이다.) 대기실에 좀 드러누워 있다가 다시 일어난다. "엄마, 다른 엄마들은 다 가는데 엄마는 왜 이러고 있어?" 다시 화장실. 토하는 엄마 옆에서 "엄마 내가 도와줄게" 그러면서 등이 아닌 엉덩이를 두드리는 내 아이라고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옆에서 수돗물 틀어보며(걸레 빠는 곳) 키득거리기까지. 아이고, 내 팔자야.

 

간난신고 끝에 택시 타고 귀가, 집에 오자마자 엄청 토하고 방으로 들어가 눕는다. 다시금 시야. 세상이 이렇게 흔들린 적이 없는데, 이 흔들림의 양상과 지속 시간이 무섭다. 거물거물 천정을 보다가 곧 잠들었다. 깨 보니 7시였다. 한 시간 넘도록 잔 것이다. 이후, 또 다시 구토와 현기증의 연속. "엄마가 아프니까 내가 위로해줄게." "엄마, 나 배고픈데?" 늘 그렇듯, 이런 날은 꼭 남편이 출장 중이다.

 

나중에 곰곰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급체한 것 같다. ("엄마가 아까 배아프다고 했잖아?") 증상은 생각보다 빨리 호전되어 다음날 아침에는 일상 생활이 가능해졌고 오늘, 아이의 개학이 연기되어 나도 계속 '놀탱이' 모드다. 그런데, 활자열, 문자열과 마주하며 그저께와 비슷한 그 현기증이 미약하게 다시 재발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유학 시절부터 시작되어 최근들어 잦아진 이명까지 합세. 나이가 우리에게 안겨준, 참 달갑지 않은 종합선물세트다. 아, 고맙지만 됐어요~ 그래도 자꾸 떠미는 것이다, 이 선물. 문제는 그런데 이게 아니다.

 

 

 

 

 

 

 

 

 

 

 

 

 

 

이 책이었지 싶다. 김현 선생의 일기 어딘가에, '매일 혈변을 본다, 무서운 건 혈변 자체가 아니라 그걸 무서워하는 나 자신의 모습이다'하는 식의  문장이 나왔던 듯하다. 20여년 전에 읽은 문장이 새록새록 '재발', '재생'한다. 원래 위장이 약해 구토를 많이 하는 편이다. 한 번 꼬이면 이삼일은 족히 간다. 찬겨울이거나 다른 요소와 겹치면 일주일씩 앓기도 한다. 그래서 구토에 관한 소설도 한 편 썼다.

 

 

 

 

 

 

 

 

 

 

 

  

 

 

 무서운 건 이토록 상습적이고 하찮은(!) 증상 앞에서 의기소침해지는 나 자신이다. 그저께 그 현기증이 너무 아뜩하여, 한참을 뇌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 아주 쫄아버렸다. 바로 직전에 오른쪽 어깨가 너무 아파 계속 파스 부치고 약을 먹던 중이라, 혹시 이 모든 것이 더 무서운 어떤 것의 일환이 아닐까 말이다. 죽을병에 걸릴(-렸을)까봐 너무 쫄다보니 자살 따위에 대한 생각이 아주 없어져, 이것 하나는 좀 좋다. 더 이상 많은 것을 의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그럴 힘이 없다는 것에 감사해야 하나. 하나만 해야 한다. 우리 말 번역 [구토]도 다시 읽기 힘들다, 원서는 고사하고.

 

*

 

- 엄마 좀 누워 있을 테니까 아까 읽은 책 제목만이라도 써봐.

 

 

다음 날 보니 진짜로 사실상 제목만 딱 써놨다. "이름을 이렇게 쓰면 어떡해? Carle 이렇게 써줘야지!" "어, 너무 길어서 짧게 줄였어." -_-;; 아이 방학 숙제의 마지막으로 고른 것은 다 음식, 먹는 것 관련 책이다.

 

 

 

 

 

 

 

 

 

 

 

 

 

 

작업 치료 들어가기 전에 대기실에서 아이와 함께 <투데이 이즈 먼데이>를 봤다. '읽었다'라고 하기에는 글자가 너무 적다. 아무래도 노래 책이니까. 그런데 마지막 페이지에서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했다. 바로 왼쪽 아이가 휠체어를 타고 있다는 것. '사대주의'라는 단어가 무색하지 않나, 달리 선진국이 아니다. 어떤 아이도 저 아이의 장애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저 다 같이 차려진 음식을 맛있게, 신나게 먹을 뿐이다. 이 책은 그냥 평범한(?) '노부영' 중 하나이지, 딱히 장애에 관한 책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배려가 있는 것이다. All you hungry children, come and eat it up!

 

 

보다시피 지체장애는 그래도 괜찮다. 문제는 정신장애(지능장애와 정서장애)이다. 말 한마디 못하고 괴성을 지르며 뛰어다니는 **씨를 보면, 누구라도, 심지어 우리조차도 무서워할 만하다. 지난 주에 남편은 애 귀를 막았다고 한다. 참 어찌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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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로 아이의 방학 중 돌봄교실 생활은 끝이다. 다음 주부터는 다시 학기 중 스케줄로 간다. 어제, 활보 선생님이 아이 점심 먹는 걸 도와주러 오셨다가 그냥 가셨다.(-라고 한다.) "친구들하고 웃으면서 밥 잘 먹고 있어서요~" 제발 좀, 이렇게만 자라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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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먹는 것이 중요하다. 초등학교 식판이 엄청 크다. 많은 아이들이 싹싹 긁어먹는다. 아이가 적게 먹는 편이지만 그럼에도 내 식사량의 두 배는 되는 듯하다. 그런데도 체중 증가 속도는 내가 더 빠른 듯하다. 체형의 변화 역시 눈에 뜨인다. 역시 나이. '청년' 속도로 질주하던 태풍이 졸지에 '노인'이 되었다더니, 나는 계속 귀가 먹먹하다. 다시 현기증이 올까봐, 세상이 흔들릴까봐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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