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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나왔다.

책이 나오면 항상 마음이 설레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막 신이 나는데 이번에는 정말이지 좀 심했던, 심한 것 같다.

잘 나왔다, 요 녀석, 나오느라 고생했다.

(추천사 써 주신 분의 말마따나)

"우주보다 낯익고 가까운 책"이 되거라!^_^

 

*

 

얼마나 기다렸으면 '태명'까지 지어놓은 셈이다. 밑에 시 아닌 시.

 

*

 

 

 

우주보다 낯설고 먼

 

 

 

 

 

그해 겨울은 추웠네

추워도 추워도 너무 추웠다

 

뒤뜰에 개나리, 뒷산에 진달래, 마당에 목련꽃 피는데

허브가 왔다 로즈마리, 라벤더, 페퍼민트 틈에, 아!

웬일로 우주보다 낯설고 먼 책 한 권이 딸려 왔네

 

멋쩍어진 나는 의뭉스럽게 시선을 내리깔며 중얼거렸다

"이런 걸 내다니 참 어이가 없군."

허브보다 먼저 와 있던 유칼립투스가 다정하게 맞받아치는 말

"미안하지만, 자기가 이제 와서 어쩌겠어?"

 

 

 

*

 

그렇다, 읽지 않으면, 쓰지 않으면 내가 무엇이란 말인가.

손가락 관절이 좋지 않아 요즘 눈치를 많이 봐야 하지만 그래도 쓴다.

 

 

*

 

http://www.sn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0170 

책에 들어간 내 사진은 2년쯤 전 인터뷰에서도 썼던 것이다. 대학신문 지면에서 봤을 때는 얼굴도 좀 부어있고(오전에 도착하자마자 찍은 것이라) 표정도 어리바리한 것 같아 마음에 썩 들지 않았으나, 이번 책에서는 입혀 보니 아주 좋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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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31 18: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4-01 1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연 2021-03-31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괭이님 축하드립니다!!!! 사진도 넘 멋지게 잘 나왔는걸요.

푸른괭이 2021-04-01 11:08   좋아요 0 | URL
사진작가분이 찍어주신 것이라, 무엇보다도 표지랑 잘 어울리죠!

- 2021-04-05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수님 아이디 특별하세요 소설 잘 읽겠습니다

푸른괭이 2021-04-06 08:23   좋아요 0 | URL
석사과정 때 우연히 만든 걸 계속 쓰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제발 소설도 중쇄하면 좋겠어요 ㅎㅎㅎ

ㅎㅂ엄마 2021-04-07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김 선생님 알라딘으로 주문해서 어저께 단숨에 읽었어요! 넘 재밌고, 넘 김 선생님 같았어요.
좋은 소설 읽고 나면 며칠 살아갈 힘이 생기는데 어제 힘이 좀 났습니다. 감사드려요.

푸른괭이 2021-04-07 15:36   좋아요 0 | URL
헉, 감사합니다 ㅠㅠ
다른 분들도 좀 읽어주면 좋으련만, 소설로 먹고살려고 했으면 굶어죽었겠어요 -_-;;

kandalama01 2021-04-15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학교를 떠나 오랫동안 뵙지 못했는데 알라딘에서 오랫만에 뵈니까 몹시 반갑네요 ㅎㅎ
잘 지내시온지!
신간 소설 축하드립니다!! ㅎㅎ
어찌된 연유인지 19세기 러시아 문학 산책이 추천도서로 떠서 (그렇게 문학이라면 안 맞아서 치를 떨던 저한테!! ㅋㅋㅋ ) 갸우뚱하고있던 차에 낯익은 이름이 보여 몹시도 반가워서 저도 모르게 바로 장바구니에 담았습니다.
검색이라면 또 항상 가까이 해야 하는 것이 연관 검색아니겠습니까
올해 3월자로 따끈따끈한 신간도 자매품으로 있기에 반가웠습니다 ㅎㅎ
요즘 히가시노 게이고 라든가 미야베 미유키 같은 누군가 죽고 죽여야 스토리 전개가 되는 추리소설 계열만 읽고 있는데, 누님 덕에 다른 장르도 읽어 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ㅎㅎ
건강하세요!!!

푸른괭이 2021-04-15 09:24   좋아요 0 | URL
잘 못 지내고 있어요ㅠㅠ 그러니까 장바구니에만 담지 말고 한 권 사주세요.
그런데... 넌 누구니?^^; 오랜만에 ‘누님‘(누나)라는 말 들으니 짜릿하네요^^;
 

 

 

 

고도를 기다리는 우리의 자세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이하 <고도>)를 처음 읽은 건 학부 시절이었다. 전공이 러시아문학이다 보니 이후 학교 수업에서는 다룰 일이 없었다. 그런데 2016년부터 맡아온 창작 강좌에서 간혹 극 장르를 시도하는 학생들이 있어 작년 2학기에 커리큘럼에 넣어보았다. 처음이라 걱정도 욕심도 컸다. 청신경초종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인 남동생을 보러 가는 고속열차 안에서 수업 준비를 했다. 부산에 가 있는 동안에도, 서울로 올라올 때도 <고도>를 붙잡고 있었다. 수업이 있는 날, 아홉 살 아이가 한밤중에, 이어 새벽에 경련을 했다. 119로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체온이 40도가 넘었다. 얼마나 호된 악몽이었는지 날짜와 요일을 기억한다. 108일 화요일. 3시간 연강, 마침 잡혀있던 점심 약속까지 이행한 다음에야 입원한 아이를 볼 수 있었다. 그 사이 초등학생의 엄마이기도 한 지인이 얼마 전 유방암 재발 및 전이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편 아이는 사나흘 뒤에 퇴원했으나, 훗날 되짚어보니, 독한 후유증이 생겼다.

 

2020년은 결과적으로 21세기 페스트가 된 코로나와 함께 왔지만, 나에게는 또 다른 사건이 있었다. 지난 4, 1948년생 아버지가 대장암 수술을 받았다. 5월 초 연휴, 항암을 앞둔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부산에 갔다. 역병 창궐기라 KTX 대신 남편의 차를 이용했더니 시간이 오래 걸렸고 이동 중에 책을 한 자도 볼 수 없었다. 도착한 그 날 읽은 책이 또다시, 하필이면 <고도>였다. 신선한 가을과 완연한 봄, 개천절과 어린이날, 남동생의 뇌종양과 아버지의 대장암. <고도>와 나는 또 이렇게 만났다. 이 무슨 황망한 인연인가. 악몽이 반복되고 있다는 불길한 예감에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동영상 강의를 녹화하고 탑재했다. 비대면 쌍방향 수업이 있는 날, 아이와 나는 건강한 아침을 맞이했고 각각 긴급돌봄에, 학교에 갔다. ZOOM 수업은 무사히 끝났다. 특별한 기억이 없는 걸 보면 그날의 <고도>무소식이 희소식이었나 보다. 그럼에도 나는 올해의 108일이 너무 무섭다.

 

고도가 하나의 사건이라면, 고도를 기다리는 일은 어떤 정황 내지는 양상이고 그 기록은 지루할 수밖에 없다. “이 지랄은 이제 더는 못하겠다.” 그런데 무대화된 <고도>(브로드웨이, 2014)를 보면 노련한 배우들의 늙은 부랑아-노숙자 연기에서 달관과 초월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폐허, 몰락, 불모, 부조리 같은 부정적인 낱말이 유쾌하고 유머러스할 수 있음을 알겠다. 어쩌면 그래야 한다는 당위의 산물일까. 모종의 증상, 각종 검사와 진단, 수술이 사건이라면 이후의 치료는 개 구충제 복용 같은 자가 임상이든 각종 의료적 처치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연 치유든 일상이다. 건강 검진은 고도의 도착 시점을 점쳐 보는 일인 듯도 싶다. 고도는 언젠가는 꼭 올 것이다. 그러나 고도가 오기 전에 다른 식으로, 느닷없이 기다림의 행위가 종결될 수도 있다. 그런 의미, 즉 내가 고도의 출현을 볼 수 없다는 점에서 고도는 오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또한 고도는 와도 좋고 오지 않아도 좋다. 목을 매도 좋고 안 매도 좋다. 기껏해야 모든 죽어가는 것일 뿐인 우리는 고도가 올 때까지 이 삶이라는 무대 위에 실컷 존재하면 된다. 소녀 시절에 외운 한 청년의 시구는 중년에 더 깊은 맛이 난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 걸어가야겠다. //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윤동주, 序詩)

(월간에세이 2월호)

 

 

 

 

 

 

 

 

 

 

 

 

 

 

 

 

 

* 10월 8일이 오기 전에 쓴 글이다. 지난 해 가을은 10월 8일은 물론 11월까지, 심지어 12월도 방학 전까지 쭉 '고도'가 없었다. 이어 다른 재앙이 찾아왔고, 감지되었고 지금도 진행형으로 보여 아주 힘들다. 힘든 사람한테 힘내라, 라니, 글쎄, 힘이 없다니까! -_-;;

 

* 소설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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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서 소설로

 

김연경(소설가)

 

어떤 이야기가 나를 찾아올까.

 

*

 

지난 5월 말, 주말에 아이와 함께 연례행사처럼 동물원에 갔다. 홍학부터 기린, 고릴라, 원숭이 등을 둘러보고 코끼리에 이른다. 진짜 코끼리를 구경하고 작은 나무 코끼리 위에 앉아 보고 큰 나무 코끼리를 만져본 다음 넓은 정자에 자리를 잡으니 12시 반이다. 김밥과 샌드위치, 과일을 먹는다. 주변의 대부분이 이런 가족들이다. 점심을 거의 다 먹었을 무렵, 한 중년 남자가 여자애를 데리고 나타난다. 손녀를 정자에 눕히는가 싶은데, 손녀는 벌써 곯아떨어진 상태다. 한 서너 살? 할아버지는 바지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손녀의 머리를 받혀준다. 고전적인 체크무늬가 들어간 짙은 베이지색 닥스이고 다림질도 잘 되어 있다. 손녀는 문자 그대로 큰 대자로 누워 있다. 배를 덮어주었으면 싶지만, 날이 더워 다행이다. 갑자기 자리에 앉지도 않고 약간 불안한 기색을 띠던 할아버지가 말을 걸어온다.

저어, 휴대폰 좀 잠깐 빌려주시면 안 될까요?”

공손하고 조심스러운 어르신의 부탁에 남편의 표정이 굳어진다. 원래도 상냥한 인상이 아니거니와 아침에 면도도 하지 않고 묵묵부답, 무뚝뚝하니 더 살벌하다. 내가 옆에서 쿡쿡 찌른다.

잠시 빌려드려, 그거 뭐라고.”

휴대폰을 아이 유모차 뒤에 넣어두고 와서요전화 한 통만 부탁드립니다.”

마지못해라는 단어를 온 얼굴에 써 붙인 표정으로 남편은 휴대폰을 건넨다. 할아버지가 전화를 건다. 받지 않는다. 다른 번호로 한 번 더 건다. 남편의 삼엄한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점잖은 설명을 덧붙인다.

부인이 안 받아서, 제 휴대폰으로 해봤습니다.”

그 사이, 식사를 끝낸 아이와 나는 화장실을 다녀온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호랑이나 곰을 보러 가지 않고 하마 쪽으로 내려간다. 우리가 걸음을 뗀 지 한참 지났음에도 남편은 계속 정자에서 뭉그적댄다. 내가 전화를 한 다음에야 머뭇머뭇 내려온다.

아까 그 할아버지, 영 기분 나쁘단 말이야.”

, ?”

그제야 남편은 지하철을 비롯한 공공장소에서 횡행하는 휴대폰 사기를 줄줄이 나열한다.

, 그럼 빌려주지 말지!”

아니, 네가 빌려주라고 했잖아!”

나는 그런 사기가 있는 줄 몰랐지!”

심지어 남편은 그동안 할아버지와 손녀의 동영상까지 찍어두었다. 자기 휴대폰에 찍힌 두 전화번호는 각각 동물원 할배’, ‘동물원 할매라는 이름으로 저장되었다. 지금껏 기다린 것은 그 할머니를 두 눈으로 보기 위해서였다.

딱 봐도 사람 점잖아 보이고 어린애까지 있고, 결국 할머니랑 만났다며?”

사기꾼치고 험악하게 생긴 사람이 어디 있냐? 애도 어디서 잡아 왔을 수도 있고, 전화번호도 이상해. 물론 돈 주고 이런 쉬운 번호를 사는 사람도 있지만, 두 개 다 그렇다고. 할머니 말로는, 할아버지 핸드폰도 유모차가 아니라 집에 두고 왔대. 서로 말을 잘못 맞춘 거지.”

원래 겁이 많은지라 남편의 얘기에 나도 귀가 솔깃하다. 세상에! 그래, 진짜 할아버지라면 손수건으로 아이의 배를 덮어주었을 거야. 무엇보다도, 그는 내 남편의 휴대폰 번호를 알고 내 아이의 얼굴을 안다. 하지만 당장 무엇을 할 것인가. 이건 말하자면, 쓰이지 않은 소설이다. 상상력은 우리를 불안의 도가니로 안내한다.

다시 한 주가 시작된다. 월요일도, 화요일도 아무 일 없다. ‘동물원 할배동물원 할매는 완전히 지워진다. 한 보름쯤 뒤 남편이 먼저 그의 존재를 상기해준다.

그 할아버지 있잖아, 그냥 멀쩡한 사람인 거 같아. 업체 하나 갖고 있고 카톡에 사진도 자주 올리고

그게 멀쩡의 증거가 돼?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면?”

다시 시작된 의심의 상상력은 그 촉수가 더 끈질기다. 설마 장기밀매업자? 소설 쓰고 있네, 정말.

 

*

 

프로필을 써야 할 때면 자문한다. 과연 나는 소설가인가. 전업 소설가는 아니지만, 나의 첫 책은 1997년에 나온 소설집이다. 이후 내가 쓴 책과 번역한 책을 쭉 세 보니 권수가 아닌 종수로 따진다면, 그래도 소설책이 제일 많다. 올여름에는 여러 지면에 연재한 세계문학 관련 글을 묶은 책(󰡔살다, 읽다, 쓰다: 세계문학 읽기 길잡이󰡕, 민음사)이 나온다. 그동안에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을 교과서 형식으로 편집, 정리한 19세기 러시아문학 연구서도 내년 초에는 출간될 예정이다. 이런 식의 소위 비평적 글쓰기 역시 대학원에 들어간 1997년부터 꾸준히 해왔고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은 것이다. 소설에 대한 욕심은 더 크다. 우리의 모든 활동처럼 글쓰기도 이력이 쌓일수록 한동안은 좋아지는 양상을 보이지만 분명히 임계점이 있다. 소설 쓰기는 특히 그렇다. 40대도 절반만 남겨놓은 현재, 왜 나는 20대 초반보다 소설 쓰기가 더 힘든가.

20161학기부터 서울대 국문과에서 개설된 소설창작 강좌를 맡고 있다. ‘후생가외라는 말을 실감하는 수업이다. ‘읽기수업에서는 대개 내가 학생들보다 위에, 적어도 앞에 있지만 쓰기수업은 절대 그렇지 않다. 과연 문예창작’(창작으로서의 문학)학문’(학문으로서의 문학)의 영역일 수 있는가. 비슷하게, 소설작법이라는 것이 따로 있는가. 실상 작법을 따로 배우지 않은 내가 당장 강의실에서 실천 중인 그 해법이란 아주 원초적이다. 바로, 읽기와 쓰기다. 전반부에는 고전을 읽고 후반부에는 요즘 우리 소설을 읽는다. 전자는 카프카, 보르헤스, 멜빌, 류노스케, 김승옥, 이청준 등으로 거의 고정되어 있고 후자는 매 학기 절반 이상 바뀌되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문학동네)은 꼭 읽는다.

읽기와 나란히 쓴다. 나는 학생들이 쓰는 것을 꾸준히 읽고 수업 시간에 공유한다. 이미 완성된 채 왔으되 앞으로는 쓰지 않을 것 같은 학생도 있고, 반대로, 아주 잘 쓰지는 않지만 앞으로 계속 쓸 것 같은 학생도 있다. 이들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소설가의 길은 결코 권장 사항이 아니다. 소설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결국 버티는 놈이 이긴다. 한두 쪽, 한두 편 잘 쓰긴 쉽되 끝까지 밀고 나가기는 힘들다. 그다음, 많은 학생이 한 학기 내도록 특정한 소재를 예의 그 자신의 문체로 소설화한다. 그런데 소재와 문체의 측면에서 같은 작가임을 인지하지 못할 만큼 다양하고 넓은 스펙트럼의 소설을 쓰는 학생이 있다. 어떤 이야기를 만나는가가 그만큼 중요함을 증명한다. 그 이야기를 소설로 만드는 과정에서 무한한 방법론적 고민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요컨대, 어떤 이야기가 나를 찾아올까. 다른 한편, 뛰어난 작가일수록 스스로 이야기를 찾아가고(탐구) 찾아내는(상상) 능력이 뛰어나다. 말이 쉬워 상상력이지, 그 저변에 도사린 건 역시나 피나는 노력이다. 톨스토이는 평생 자기 얘기만 썼던 반면, 도스토예프스키는 남의 얘기를 썼다. 주로 사회적 사건을 다루었는데 특정 이야기에 꽂힌 순간, 자기 안의 수많은 가 주인공의 형상으로 살아난다. 청년 김승옥의 소설은 온통 그 자신의 얘기이다. 청년 이청준의 소설 역시 그렇지만, 중장년 이청준은 다소 다르다. 그는 이야기를 찾아다니는, 그런 수고와 고생을 하는 작가이다. 그렇게 찾아낸 이야기 속에서 무수한 의 페르소나를 창조한다. 흔히 성실’, 좀 더 무겁게는 장인정신이라고 부르는 그 고리타분한 자질이 천재성과 동의어임을 알겠다. 소설 쓰기에는 우아한 게으름과 촌스러운 학구열이 다 필요하다.

이 순간에도 기다린다, 나를 찾아올 이야기를.

동시에, 눈을 불을 켜고 찾는다, 그 이야기를.

 

*

 

어제 아침 아이가 갑자기 짜증을 낸다.

가방 메기 싫어!”

가방은 내가 들고 살살 달래며 집을 나선다학교가 보일 무렵 가방을 메 주려고 하자 또 짜증이다.

가방 안 메! 안 멘다고!”

정말이지 너무 속상하고 부끄럽다. 그래도 꾹 참고 간신히 얼러서 학교 안으로 들여보낸다. 다행히 별 탈 없이 하루가 지나간다.

오늘 아침에는 내가 갑자기 짜증을 낸다. 아니, 짜증이 난다, 라고 하는 편이 맞겠다. 잠을 깬 아이가 요 위에서 뒹굴뒹굴하는 것이 오늘만의 일도 아니다. 밥을 빨리 안 먹는 것, 계속 종알대는 거, 엘리베이터 놓치는 것, 다 일상사지만 짜증이 난다. 학교 주변이 조용하니 아이도 긴장하는 눈치다. 학교 안까지 바래다주고 돌아서는데 또 짜증이 확 뻗친다. 닫힌 교문 앞에서 할머니 한 분이 서성이신다. 4학년 손자가 필통을 두고 갔다며 손수 들고 오신 거다. 보안관이 교실로 전화를 건다. 막 뛰어나온 학생의 얼굴에는 창피함이 역력하다. 필통, 그거 뭐라고.

학교 주변, 여전히 명실상부한, 명명백백한 지각생이 더러 있다. 저 여유 있는 표정들! 지각, 그거 뭐라고. 학교, 그거 뭐라고. 인생, 그거 뭐라고.

아이가 학교에 있는 동안 나는 내 할 일을 한다. , 맞다, 모래놀이도구! 하지만 어쩌랴. 손자 필통 들고 뛰어온 할머니처럼 하긴 싫다. 필통, 그거 뭐라고. 사실 할머니 욕심이지. 점심시간쯤 되니 아침의 짜증도 그냥 가시고 없다.

오후 3, 교문에서 아이와 만난다.

“10개를 포함해서 10개 이상 맞힌 사람은 모두 4단원 통과예요! 나도 통과했어!”

단원평가 시험지를 받아보니 75. 반 평균을 웃도는 점수라지만 엄마는 계속 구시렁거린다.

한두 개만 더 맞히지, 하긴 네가 더 아쉬울 텐데 엄마가 자꾸 떠드네.”

나는 하나도 안 아쉬워. 75점이든 80점이든 남이 안 풀고 내가 풀어서 100점이나 다름없거든?”

시험, 그거 뭐라고. 인생, 그거 뭐라고.

아홉 살인 아이는 발달이 장애 수준으로 지체되어 있다. 다행히 학교 잘 다니고 4cm5cm도 잴 줄 알지만 손이 떨려서 마지막 1cm 정도는 구불구불하다. 그런데도 엄마인 나는, 44년 평생 나 자신을 잡아 왔듯, 아이를 잡는다. 내 안에는 여전히 짜증 뻗치는 아홉 살 꼬마가 숨어 있는데, 내 앞에 그런 꼬마가 실제로 존재하고 내 아들이다. , 엄마, 그거 뭐라고.

 

*

 

이야기란 내 머릿속의 관념이라기보다는 내 배 속의 아이 같다. 과연 어떤 아이가 나에게로 올까. 영화 케빈에 대하여로 잘 알려진 소설은 이런 두려움에서 쓰기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케빈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소설과 영화의 출발점이기도 하지만, 케빈의 엄마인 에바에 대한 이야기도 한 번 더 할 필요가 있다. 출산이 고()의 끝이 아니라 시작임을 요즘은 더 절감한다. 아이는 어떤 인간으로 자랄 것인가. 이미 첫 문장, 첫 문단이 쓰인 이야기, 그것은 어떤 소설로 자랄 것인가.

 

*

 

<쓺>에서 청탁이 와서 쓴 글이다. <문학실험실>에서 단행본도 나오고 있다. 물론 주옥(^^;) 같은 작품이 많지만 어느 정도나 반응을 얻고 있는지, 내가 다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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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고독 속으로 도피하라

 

 

 

최근에 사망한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의 사진 속에서 가로로 꽂힌 어마어마한 규모의 장서만큼이나 흥미로운 것이 고양이였다. 유학을 러시아에서 했던 나에게 고양이는 개만큼이나 친근한 동물이다. 20012월 말, 전화번호와 주소 한 줄만 달랑 적힌 쪽지를 들고 눈 언덕이 된 모스크바 거리를 걸어, 함박눈을 맞으며 노교수의 아파트에 도착했다. 러시아의 교수들은 개인 연구실 없이 집이나 도서관에서 연구한다. 현관, 이어 복도 같은 공간을 지나(러시아는 아파트가 우리 같은 거실 형이 아니다) 안으로 들어갔다. 맨 안쪽, 햇볕이 잘 드는 고즈넉한 연구실, 넓은 나무 책상 위에 큼직한 줄무늬 고양이가 앉아 있었다.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는 소파로 옮겨갔다. 울음소리는커녕 사부작대는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가구, 카펫, 책 같은 무생물과 늙은 호모 사피엔스 한 쌍의 사이 어디에 위치한 경계적이고 중간적인 존재랄까. 비단 인문학자뿐만 아니라 고도의 집중력과 창의력을 요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고양이만큼 같이 살기 좋은 존재는 없는 것 같았다.

 

 

 

 

 

 

 

 

 

 

 

 

 

 

 

기숙사 생활이 좀 안정되었을 때 고양이 한 마리를 샀다. 그 무렵 내 삶의 벗은 이렇게 둘, 담배와 고양이였다. 칼 라거펠트의 고양이와 비슷한 종인 샴 고양이 계열이었다. 발끝보다 약간 위쪽에 거무스름한 무늬가 있고 도톰한 앞발 끄트머리는 새하얀 털장갑을 낀 모양새였다. 또 눈 주변이 짙은 회색빛이어서 너구리를 닮은 구석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눈이 무척 아름다웠다. 샴 고양이 특유의 보랏빛과 갈색이 감도는 동그란 눈동자 주위로 터키옥을 섞어놓은 것 같으면서도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푸른빛이었다. 3킬로그램 정도 되는 이 부드럽고 따뜻한 생명체에게 꼬찍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를 죽이다(<내 아내의 모든 것>, 문학과지성사, 2005)에 그와의 인연을 제법 길게 써보기도 했다. “놈은 나의 취침 시간과는 무관하게 제가 자고 싶은 시간에, 자기가 웅크리고 싶은 장소 아무 곳에서나 잘도 잤지만 밤이면 어김없이 침대로 올라왔다. 주로 내 베개 위나 이불 위에서 잠을 청했는데, 간혹 내 다리 사이로 기어 들어오거나, 새우처럼 웅크린 내 몸의 안쪽으로 들어와 엉덩이로 나를 살짝 밀면서 자리를 잡는 경우도 있었다.”(222)

 

내가 집에 없는 동안에도 꼬찍은 허전해하기는커녕 별로 심심해하지도 않는 눈치였다. 내가 돌아오면 몸을 비비거나 더러 안기기도 했지만 주로 배가 고파서였다. 그런 최소치의 욕구만 충족되면 절대 나를 방해하지 않았다. 간혹 논문이나 신문을 찢어놓거나 방안 산책을 즐기다 창턱 위의 책을 떨어뜨리는 정도의 사고가 전부였다. 꼬찍 특유의 우아한 심드렁함 내지는 무심함은 좀처럼 길들여지지 않는 고양이 특유의 야생성과 무관하지 않을 법하다. 그 점이 나는 좋았는지도, 적어도 편했는지도 모르겠다.

 

러시아를 떠나며 꼬찍과는 헤어졌지만 담배는 그대로 가져왔고 그 때 만난 사람과 십년의 연애 끝에 결혼했다. 이듬해, 서른일곱 살에 아이를 낳으면서 세상이 바뀌었다. 꼬찍과 함께한 삶에서 꼬찍은 스스로 자연스레 지워졌지만, 아이가 무대의 전면에 등장한 삶에서 이 존재를 지운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천인공로할 일이었다. 요컨대, 아이는 다르다. 그 다름의 핵심이 무거움이자 촌스러움이다. 2010121, 아이가 생긴 것을 알고서 담배를 끊었고 그 이후 쭉 비흡연자로 살고 있다. 지금처럼 비교적 명징한 정신으로 읽고 쓸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언젠가는 기필코 죽는다는 점에서 우리는 모두 시한부 인생이다. 조만간 출간될 독서 에세이 묶음 책의 서문에 그래서, 이런 사족 한마디를 달아본다. 내가 가끔 아이보다 책을 더 사랑한다고 해서 엄마가 아닌 건 아니다. 밤낮을 잊고 몇날며칠을 담배와 단둘이 골방에 틀어박혀 있던, 아이 이전의 황금시대가 너무 그립다.” 무릇 공부를 하려는 자, ‘부엌을 멀리하고 자신의 고독속으로 도피하라고 했거늘. 그 고독 속에서 담배와 제2의 꼬찍과 함께하는 삶은 정녕 영원한 노스탤지어가 돼 버린 것인가.

 

<민음사, ?? 봄>

 

*

 

점심 먹고 나서 소설을 좀 더 써-고쳐 보려다가 막혀서 몇 초간 망연자실했다가, 갑자기 청탁 받은 원고가 있음을 깨닫고 부리나케 써보기 시작했다. 아니, 겨우 2-30매만 채우면 되는데 이걸 왜 안 쓰고 있었지? 뭘 써도 소설 보다는 쓰기 쉽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 참에 지난 봄에 쓴 원고가 생각나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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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스크바 북쪽, <베덴엔하> 역 주변의 햇볕이 따사로웠다. 한 시간이 넘도록 음습한 지하를 질주하는 동안 11월의 지독한 습설이 수그러들었다. 이곳에는 역의 명칭 그대로 소비에트연방 시절의 부귀영화를 보여주는 거대한 박람회장이 있었지만 나의 목적지는 반대쪽이었다. 고가 도로를 옆으로 낀 채 눈길을 쭉 걸어가니 아름다운 교회가 보였고 한참 뒤에 야트막한 주택가가 나왔다. 조금 더 걸어가자 P대학의 자연대 건물이 나왔다. 담배부터 피우려고 건물의 후문을 찾아갔다. 후미진 곳, 나뭇가지를 얼기설기 엮어놓은 울타리 옆에서 담배를 꺼내는데 손놀림이 영 둔했다. 햇볕이 아무리 그윽해졌어도 장갑을 벗기가 겁날 정도로 쌀쌀한 날씨였다.

공터 한가운데에 한 중년 남자가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의 손에는 싸구려 보드카 병이 들려 있었다. 내가 담배를 한 모금 빨았을 때 그는 울타리에 어설프게 기대다시피 하며 일어났다. 그러고는 이미 반쯤 벗겨진 바지를 마저 내린 뒤 엉거주춤 선 자세로 엉덩이를 뒤로 쭉 뺐다. 싯누렇고 두툼한 똥 덩어리가 모락모락 김을 풍기며 중력의 법칙에 따라 무던히, 서서히 눈 덮인 땅 위로 떨어졌다. 그는 뒤를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몸을 대충 바로 세우고 배를 약간 앞으로 내밀었다. 두 다리 사이에 헐렁하게 달려 있는 조그만 생식기에서 싯누런 오줌 줄기가 흘러 나왔다. 그대로 땅바닥에 떨어져버릴까 봐 전전긍긍하며 그는 벌벌 떨리는 두 손을 그리로 가져갔다. 햇볕을 가르는 이 고마운 오줌에 꽁꽁 언 두 손을 싹싹 비비며 혹한의 고통을 달래는 그의 표정이 천진난만하고 행복해보였다.

울타리 안 벤치에는 여학생들이 전깃줄의 참새들처럼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 젊은 담배 연기들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정신없이 수다를 떠는 와중에도 흡연하는 동양인 여자에게 잠깐 호기심을 보였다.

에잇, 쳐다보지 마세요! 항상 저러는 걸요.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거기서도 여자애들이 담배 피워요?”

 

서류 하나를 처리하고 나니 오후였다. 한층 더 그윽해진 초겨울의 햇살이 얼굴을 간질였다. 고픈 배를 움켜쥐고 거북이처럼 걷다보니 아침에 본 교회가 나왔다. 근처 벤치에 몇 겹의 누더기를 두른 카자크 노파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나에게 손짓을 했다.

이봐요, 아가씨, 조만간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데? 내 말 맞지? 아이쿠, 하지만 이를 어째, 마가 끼였어, 마가! 액땜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겠는걸?”

논문 심사를 앞둔 나는 낯선 노파의 꾐에 넘어가고 말았다. 노파는 내 두 손을 잡고 주문을 외우더니 조그만 실몽당이를 꺼내 손안에 꼭 쥐어주었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말고 소중히 간직하다가 사흘 뒤에 역시나 아무도 모르게 불로 태우라고 덧붙였다. 이어 복채를 요구하는 노파의 표정이 살벌했다.

안 그러면 아가씨 인생에 큰 재앙이 닥친다! 내놓으면 복 받을 거야. 좋은 신랑감도 나타나고 아들도 낳고. 많이 내놓으면 큰 복 받고 적게 내놓으면 작은 복만 받는 거야.”

노파의 말이 군데군데 썩고 빠진 잇새로 새나오는 바람과 함께 기괴한 주문이 되어 살가운 겨울 공기 속으로 흘러들어갔다. 나는 노파에게 100루블짜리 지폐 한 장을 주고 지하철역을 향해 걸어갔다. 그때만 해도 다시 이곳에 오게 될 줄은 몰랐다.

 

*

 

모스크바의 남쪽, <유고-자파드> , 다시 습설이 퍼붓고 있었다. 기숙사에 도착하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802호로 올라갔다. ‘은 지난달에 일본인 룸메이트가 이사를 간 다음 31실에 조카뻘 되는 대학생 과 둘이 살고 있었다. 빈 침대를 보며 불안 섞인 자유의 쾌감을 맛보는 것도 잠시,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새 룸메이트는 중국인이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방안에는 중국 대륙처럼 거대한 그림자가 깔렸다. 190센티미터는 족히 될 것 같은 키에 둥그렇고 넙적한 배가 한 눈에 들어왔다. 각종 소가 가득 든 중국식 왕만두를 서너 배 부풀려 놓은 것 같은 얼굴, 조막만한 입과 얇은 입술, 끝이 둥글둥글한 조그맣고 나지막한 코, 새카만 검은 까까머리, 그리고 검은 깨 가루처럼 작은 두 눈에는 두툼한 오목렌즈가 끼워진 안경을 쓰고 있었다. 척 보기에도 도피유학을 온 아이였다. 아이의 첫 번째 트렁크 안에서 화구가 와르르 쏟아졌다. 두 번째, 세 번째 트렁크, 몇 개의 가방도 속을 드러냈다. 10인용 전기밥솥, 믹서, 프라이팬, 식기국자주걱뒤집개 등 주방 용품이 마룻바닥과 비어 있던 침대를 가득 채웠다. 국수 뽑는 기계, 어묵 만드는 기계, 전자레인지까지 튀어나왔다. 각종 향신료와 양념, 밑반찬, 납작하고 쫄깃한 두부 전병과 육포, 죽순을 비롯한 밀봉된 나물 등 먹거리의 틈새에서 화구가 초라해졌다.

훙은 반쯤 혀를 끌끌 차며 이름을 물었다.

, , 리첸첸, --.”

중국 아이는 커다랗고 넙적한 얼굴 가득 웃음을 띠우며 한자도 또박또박 써주었다.

李沈沈. 이 침침한 아이는 겨우 열여섯이었다.

(...)

 

(- 2015년 ??호 <문학나무>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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