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시절 <철학> 교과서가 있었으나 주된 과목은 아니었다. 철학을 그나마 맛이라도 본 건 아마 도덕(윤리)이나 사회 교과서를 통해서가 아니었나 싶다. 달리 말해, 철학은 모든 학문, 적어도 인문학의 토대. 심지어, 자연과학조차 (어제도 김상욱 강의를 좀 들으며 생각했지만) 철학에서 나왔으니 그 위엄이 과연 대단하다 할 터이다. 하지만 철학은 무엇인가.

 

<도덕> 책에 '실존철학', '실존주의'를 설명하는 부분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 옛날이여! 기억나는 건 단어 몇 개. 키에르케고르, 실존철학의 창시자(선구자), '신앞에 선 단독자', '죽음에 이르는 병' 등. 이 정도만 외워도 적어도 이 주제 때문에 서울대 떨어질 일은 없었다. 돌이켜 보면, 그 무렵 우리는 얼마나 많은 공부를 했던가. 얼마나 많은 정보/지식의 더미 속에 살았던가. 당장 미분적분, 확률통계, 삼각함수 등만 떠올려도 머리가 빙빙 돈다.

 

대학에 들어와 한국문학 강의를 듣는데, '키-'의 이름이 출몰한다. 김윤식 선생님 강의에서이다. 그의 책을 쭉, 쭉 찾아본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이런 책이 인용된다. 기억나는 대로 빼 보면. 결혼해라, 후회할 거다, 결혼하지 마라, 후회할 거다. 이런 식이다. 뭘해도 너는 다 후회할 거다, 라는 것. '이것'이든 '저것'이든 우리를 후회(회한)로부터 구원하지 못한다. 그 기저에 깔린 건?? 저 도저한 시간-권태이다. 차라리, '권태'보다는 '나태'가 극복하기 쉽다. '나태'는 게으름인바, 의지력을 발휘하여 일을 하면 된다. 그 즉시 극복된다. 그러나 '권태'는?  일을 하면서 오는 권태야말로 최악의 권태이다. 그러나 극악한 권태 없이는, 그것을 이겨내지 못하면 어떤 창조도 없다.

 

쓰다 보니 뒷부분은 지금 내가 읽은 책에서 얻은 지식이다. 어릴 때는 저기까지는 안/못가고 김윤식 선생이 긁어다 놓은 부분을 반복해서 읽고 언제 원서를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는 잊혔다. 그러다가...

 

 

 

 

 

 

 

 

 

 

 

 

 

 

<지루함의 철학>을 읽으며 '키-'를 다시 떠올린다. 그와 나의 명실상부한 첫(!) 인연은 1999년 여름에 맺어졌다. 그해 나는 박사과정에 다녔고 과에서 마련된 여름 연수차 페테르부르크에 있었다. 정말 황홀한(!) 여름이었다. 8주인가, 그랬는데, 러시아-페테르부르크란 딱 그만큼만 체험하면 정말 좋은, 황홀한 시공간이다.(다른 곳도 그런가?^^;) 그때 내가 챙겨간 책이 당시 민음사에서 '이데아총서'라는 이름으로 나오던 시리즈 속 <두려움과 떨림>이다. 러시아어 страх и трепет. 두 단어의 운을 맞추자면 '불안과 전율'. '공포와 전율'. 이런 조합도 생각해볼 수 있고, 우리말을 살리고 싶으면 '떨림'도 그대로 두어도 좋겠다. 오래 전에 읽었지만, 그 책에서 아브라함-이삭, 아가멤논-이피게니아 얘기를 다뤘다는 기억은 남아 있다. 즉, 신의 뜻에 따라 귀한 아들을 제물로 바쳐야 하는 아비, 마찬가지로 대의를 위해(여기도 신탁) 딸을 바쳐야 하는 장군-아비의 고뇌 등. 후자는 괴테의 희곡의 소재이기도 하다.(그랬던 듯.)

 

 

 

 

 

 

 

 

 

 

 

 

 

 

 

흐억, <두려움과 떨림>은 이미지도 뜨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당신을 잊고 있던 사이 이런 책들이 나와 있었다. 낼름 주문하며 지금 1권을 삼분의 이 정도까지 읽었다. 아, 잘 읽힌다! 생몰연도를 다시 본다. 1813-1855. 19세기도 한참 초반. 활동기를 따져도 초중반. 하지만 글만 던져주고 가늠하라면 줄잡아도 니체 이후, 그 언저리로 보지 않을까 싶다. 내가 과문한 탓?^^; 그럴 수도 있겠지만, 지금도 '키-'가 읽힌다는 사실 자체가 그의 현대성과 의미를 증명해주는 것이리라. 덧붙여, 혼자서 이거 다 번역하신 님은 누구심? 고 임춘갑, 이라고 소개되는 걸 보면 작고하신 듯도 한데, 당신이 누구든 정말 대단하시다!

 

 

 

 

 

 

 

 

 

 

 

 

 

 

덴마크가 인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안데르센과 키-르일 것이다. 이삼십대 청년이 쓴 글을 세월이 흘러흘러, 아시아의 웬 아줌마가 읽고 감동하는 이런 정황이야말로 '사피엔스'의 본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인 듯하다. 대체 어떻게 썼기에! 기회가 되면 몇 부분 옮겨 놓겠지만,  어떤 장르를 쓰든 '필력'이 나날이 '쇠-'해지는 것을 느끼는 요즘, 무엇보다도 부러운 건, 열정!이다. 즉, 이 글은 쓰고 싶어서 쓴 글이다, 쓰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쓴 글이다, 몸과 마음에서 절로 터져 나와서 쓰인 글이다, 이런 느낌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진정성이라고 해도 좋을 법하다. 

 

나이 들 수록 이런 욕구, 열정을 잃게 되어 있다. 세포 분열이 더디기 때문에, 기초 대사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그 시간이 긴 사람이 대가로 남는 것 같다. 톨스토이가 대표적. 최근에 근처(?)에서는 이어령 같은 분. 자, 그럼, 모든 청춘은 다 이런 에너지를 갖고 있나? 절대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기에 키-르의 글이 더 절절히 읽힌다.

 

*

 

상당히 미남처럼 보이는데 (칸트나 아인슈타인처럼) 살짝 위트랄까, 유머랄까, 이런 것이 느껴지는 얼굴이라 더 좋다.

 

*

 

겨울의 코펜하겐, 이라고 한다. 굉장히, 모스크바 뒷골목스러운 느낌이라, 가져와 본다. 가끔씩 그립다, 모스크바 유학 시절. 나도 한 때는 자작나무의 나라에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난 주에 알프레드 드 뮈세의 <세기아의 고백>을 읽었다. 아주 꼼꼼, 은 아니더라도 아무튼 다 읽었다. 다 읽고 알았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읽는 것임을. 세상에. 오랫동안 읽은 책인 줄 알았는데 아마 그 이유는 내가 번역하기도 한 레르몬토프의 <우리 시대의 영웅> 탓인 것 같다. 이 소설의 경우 오래 전 논문도 한 편 썼는데, 무수한 레퍼런스에서 뮈세의 책에 관한 언급을 읽었고 아마 그때문에 오랫동안 기시감(기독감??)을 가졌던 듯하다. 

 

'우리 시대의 영웅'은 제목이 말해주듯,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보편적 경험으로 확대하고자 하는, 즉 '역사'의 차원까지 넘보려려는 젊은/어린 작가의 야망이 담긴 작품이다. 야망이 항상 실현되는 건 아니지만^^; 레르-프는 여러 모로 '선전'했다고 할 만하다. 이 책의 말하자면 원조 격이 <세기아의 고백>이다. 스물을 전후한 청년이 스스로를 '세기아'로 내세우고 일견 '일기-수기'나 다름 없는 글을 '고백'이라는 거대한 장르로 내세운다. 여기에는 유구한 문학적(기독교 문학) 전통이 들어 있기도 하다. 아무튼 뮈세 역시, '선전 이상의 선전'을 한 것이다. 사실 소설이 좋으니 뒷 얘기가 궁금한 것이다. 그가 조르주 상드와 뭘 했든, 문학이 좋지 않다면, 아무도 관심 없을 터. 중요한 건 '사소설'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내용의 퀄러티(^^;)이다.

 

 

 

 

 

 

 

 

 

 

 

 

 

 

 

찾아보니 뮈세의 책은 꽤 있는 반면, 조르주 상드는 거의 찾기 힘들다. 비슷한 작업을 대학 초년 시절, <광장>과 <그날> 서점을 뒤지며 해보았다. 그때 상드의 책을 읽은 듯도 싶고 아닌 듯도 싶다. 분명한 건, 그녀는 문학 작품보다는 삶-형상으로 문학사에 남았다는 점이다. 사실 요즘 같으면 '-깜'도 아니었을 텐데, 그 시대에는 애(들?) 딸린 유부녀(이혼녀?)로서 무슨 활동을 한다는 것 자체로 큰 의미가 있었던 것이리라.

 

그리고 다시 보니, 뮈세도, 상드도 이십대. 뮈세는, 레르-프도 그렇지만, 요즘 같으면 대학 초년생이다. 글 재주 좀 있는 어린/젊은 제자가 연상의 여자(남자라도 좋다)와 연애한 이야기를 쭉, 쓰면 이 정도는 충분히 쓸 수 있을 법하다. 하지만 이런 가정법은 아~~~무 의미가 없다.

 

의미는 뭔가를 할(쓸) 때 비로소 생긴다.

 

말이 길어진 건, 솔직히, <세기아의 고백>이 '-시피' 보이기 때문이다^^; 아마 이십대 초반에 읽었다면, 레르-프의 경우처럼, 탄복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중년에 읽으니 그렇고 그런 것이다. 문득, 어린 천재의 걸작(^^;)을 '씹고' 있는 중년 아줌마를 발견한다. 그러는 너는 도대체 뭘 썼니? 아, 이럴 줄은 몰랐다. 내가 이 나이 되도록 변변찮은 소설 한 권 못 쓴 주제에 계속 남욕이나, 즉 남이 쓴 책 욕이나 할 줄은 참 몰랐다는 소리다. 지금까지 해온 일을 갑자기 안 하기는 힘들 테고, 좀 줄여가며 대신, 내 글을 쓰는 일에 좀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중학교 국어시간, 지금 생각하면 '폭력', 심지어 '변태'지만, 국어 선생님은 우리의 귀를 꼬집는 버릇이 있으셨다. 그것이 체벌의 한 형태였다. 아, 다행히(?!) 남 선생님 아니고 여 선생님이었는데, 어쩌면 그렇기에 더 변태? 어느 날, 선생님이 '인간돼지' 얘기를 해주셨다. 아주 옛날 중국에, 어떤 왕비가 왕(남편)의 첩을 질투해서 눈, 귀를 멀게 하고 말도 못하게 하고 팔다리도 다 자른 다음 돼지우리에 던졌다고, 그렇게 사람 인분을 먹고 살게 했다고. 하! 과연 저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도다! 아마 역사(정사)가 아니라 어디 야사나 신화, 설화에 기록된 것이겠지.

 

 

 

 

 

 

 

 

 

 

 

 

 

 

세월이 흘러흘러, 갑자기 뭔 바람이 불었나, 지난 주말에 천 카이거 감독의 <풍월>이 궁금해졌다. 나는 심지어 이 영화 보지도 않았고(-_-;;) 장국영이 부른 주제곡을 아주 좋아했다. 오랜만에 <패왕별희>의 추억도 떠올리고 천- 감독이 <시황제암살>이라는 영화를 찍었음을 알게 된다. 그 동안 내가 영화로부터 얼마나 멀어져버렸는지 알게 되는 슬픈 순간이었다. 여기까지 온 김에 불현듯(!) 중국사가 궁금해져 여기기저기 뒤지니, 가없어라, 유튜브-플랫폼이여, 춘추전국시대, 진나라 설립, 진시황제 암살(특히, 형가, 고점리 등), 초한지 등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갑자기 미친 척, 중국 현대사도 다시 복습. 다시 보니 정겹다, '마지막 황제 푸이'. 서태후는 과연 그렇게 악녀였을까, 나이 드니 새삼 의문이 든다. 동태후보다야 그랬겠지만서도... 그리하여, 추억은 방울방울, 여중시절 국어 시간으로 돌아가고, 앗, 전설 속 주인공-여귀신인 줄 알았던 그녀는 바로, 한나라를 세운 유방의 아내 여씨(여태후)였다. 게다가 이것은 엄연한 정사, 옥소독스의 기록이었던 것이다!

 

 

 

 

 

 

 

 

 

 

 

 

 

 

 

정녕 <역사란 무엇인가>. 내가 죽기 전에 저 책을 다시 읽을 수 있을지. 대학 들어온 1학년, <서양문화사> 서평 책 1호였는데, 그때는 문화적 충격이 너무 컸고 공부에 몰입한 형편이 아니어서 뭘 읽었는지도 모르겠다.(학점이 C+이었고, 나중에 3학년 때 '세탁'하여 A로 올려놓는다.) 굉장히 도발적인 물음. 역사란 무엇인가. 더 현실적으로(!!!), 역사 기록(역사 읽고 쓰기)이란 무엇인가. 사마천의 <사기>를 읽지 않았음이 너무나 유감스럽지만, 이제라도 -_-;; 이것저것 뒤지다가 유시민이 다시 푼 한나라 이야기 등을 본다. 그 속에 여씨, 여태후. 보는 관점은 다 다르다. '아줌마'인 내가 보기엔 그렇다.

 

유방이 동네 양아치 시절일 때(점잖게는 '시정잡배') 그의 인물됨을 알아본 놈이 딸을 그놈한테 준다. 즉, 여치라고 해서 유방이 딱히 좋아서 결혼했겠나. 이른바 '사랑-결혼'은 낭만주의 이후의 컨셉이다. 그 전에는 모두 (특히 상류층일 수록) 정략결혼이라고 보면 된다. 결혼하고 보니 얼씨구나 좋을 수도 있지만, 순서가 그렇다는 것이다. 둘은 아들딸을 낳은 것 같다.(그 중 아들이 왕이 된다.) 이후 유방은 항우랑 싸운다고 정신 없고, 심지어 여치는 (아마 자식들까지?) 시아버지와 함께 항우의 포로가 되기도 한다. 무려 4년이나! 그렇게 진정한 조강지처의 삶을 사는데, 돌아와보니 남편 옆에서는 새파랗게 젊은 년(!)이 붙어 있다. 척부인(척희)다. 당시의 도덕률을 생각한다면, 이거야 그렇다 치자. 남편은 황제가 되고 아내는 황후가 된다. 첩이 아들을 낳는다. 이것도 좋다. 이런 고대에도 꼭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이 있는데, 바로 '서열'이다. 유방은 척부인이 낳은 아들(유여의?)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이미 나라도 세웠고 본인도 나이가 들었고 점점 더 안정의 욕구가 컸을 법하다. 측근들도(저 유명한 한신!) 너무 많이 '팽'하지 않았나. 여태후의 입장에서, 다른 여자를 보는 건 참아도, 아들을 건드리는 건 폭발할 일. 결국 그녀가 이기고, 왕위는 아들이 갖게 된다. 그러나...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 라는 말답게

 

여태후는 척부인의 아들(왕자)를 독살하고 척부인도 위에 쓴대로 정말 잔인하게 응징한다. 심지어 '인간돼지'가 된 그녀를 자기 아들(혜제)에게 직접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 아들이 한 말이, 내가 그때 국어 선생님 애기를 듣고 생각했던 것과 비슷하다. 정말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ㅠㅠ 그로 인해 충격 먹은 아들-혜제는 정사를 그만 두고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다. 원래도 병약했던 것으로 나오는데, 이것이 유방이 그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저어했던 이유이기도 할 터.

 

여태후에 초점을 맞추면, 과연 프랑스 속담대로, 복수는 식혀서 먹는 음식(이름 까먹음 -_-;;)이다. 당장에 분을 못 이겨 길길이 날뛰는 성정의 여자라면, 저 난세(!)에 남편을 황제로 만들지도, 그녀 또한 태후가 되지도, 또 아들을 황제로 만들지도 못했을 것이다. 척부인에게는 또 그나름의 스토리가 있겠지만(젊은 과부로서 황제의 아들을 낳기까지, 또 황제의 성은에 발맞추어 자기 아들을 황제로 올릴 꿈을 꾸기까지, 그녀 역시 만만한 캐릭터는 아니었을 것 같다) '아줌마'로서(^^;) 여태후에 집중하면, 그녀의 행동이 무척 이해된다.

 

잔혹함에 관한 한, 아마 그 주체가 여자여서 다들 깜놀(!)하는 건 아닌지. 고대와 중세(심지어 마녀사냥이 있었던 근대 초입에도!) 저런 일화는 비일비재하다. 그런 것으로 안다. 다만, 감히 여자가! '사람/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던 여자가 저런 잔인한 응징의 주체라는 사실에 우선 놀라고, 그다음, 그것을 추동한, 복수욕, 정치욕, 정복욕 등등에 또 놀라고 이런 식인 것 같다. 여태후의 이후 인생은 비극이지만 아마 측천무후의 모델이 아니었을까하나 싶다. 그런데 당나라까지 갈 시간이 없고, 잠깐 현대사(!)에 눈을 힐끗 하면 - 

 

1) 신격호 회장의 장례식에 이른바 첩과 첩의 자식은 참석하지 않았다(못했다?).

첩에게는 또 첩의 스토리가 있을 터, 비난은 금물이지만, '법도-서열'은 그렇다는 것. 그것이 없다면 가정도, 왕조도 지탱되기 힘들 터.

2) 노태우는 싫어해도, 참고 참다가 때를 봐서 이혼 소송을 낸 노소영은 국민 대다수가 응원한다,

댓글러들이 남자든 여자든 애를 셋씩이나 낳은 '조강지처'를 두고 불륜에 혼외자를 낳고

심지어 떳떳이(^^;) 공개하고 이혼소송까지 한 '유책자'에 대한 시선은 따갑다,

대한민국이 언제부터 일부다처제였나!

3) 멀리 영국, 브렉시트 못지않게 '매그시트' 역시 현대사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면 권리도 포기함이 당연할 터, 왕실과 구성원은 그 자체가 '문화재'이다,

문화재가 문화재로 존재하길, 행동하길 포기함은 당연히 떠나주셔야.     

 

*

 

 

 

 

 

 

 

 

 

 

 

 

 

(흑, 홍콩 배우들, 넘나 멋있다...장국영은 뭐하러 그리 빨리 갔더나, 어차피 곧 가는 인생인 것을. 장만옥을 무척 좋아하지만 '중국-대륙'을 생각하면 역시 공리만한 배우가 없는듯. 늙어서 보니 더 예쁘다, 흑흑ㅠㅠ)  

 

다시 앞으로. 문제는 남녀가 아니라,,, '혁명 이후'이다.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500년이나 이어진 난세를 통일한 진나라의 영정은 정녕 신의 선택을 받은 사람이었을 터. 장예모의 <영웅>의 해석도 맞을 법하다. 그가 아니면 천하를 통일할 자가 없었을 터. 문제는,,, 통일 이후이다. 현재 우리의 정치 상황도 비슷하다. 저 아름다운 촛불 혁명 이후? 그 다음이 문제인 것. 천하통일보다 어려운 것이 정치(!)임을 알겠다. 진시황제가 정치력을 발휘한 건 그의 인생, 또 역사 전체를 놓고 보면 아주 잠깐이고, 그 다음은 (로마제국) '몰락사/쇠망사'가 된다. 그를 미치게 만든 것, 그것은 결국 불멸의 욕망이다. 참 슬프다... 나도 죽기 싫다 ㅠㅠ

 

그 점에서 유방은 보다 더 양반(?), 적어도 점잖았던 것 같다. '술과 계집'을 좋아하고 천성이 무르고 게으른(과연 그랬을까? 이 역시 '컨셉' 아니었을까?) 시정잡배 출신이라서 그런가? 어째서 운명은, 귀족 출신에 젊고 건장한(심지어 순애보 - 우희) 항우가 아닌, 그의 손을 들어주었나. '혁명 이후' 정치가로서 그가 빛난 시절은 역시나 짧았던 것 같다. 각종 토사구팽에 덧붙여, 그는 어쩌면 연장할 수도 있었던 삶을 53세(?)에 종결한다. 사는 것도 이제 귀찮다? 이꼴 저꼴(여태후와 척부인, 그밖의 여자들이 싸우는? 꼴??) 다 보기 싫다? 글쎄, 그 마음을 우리가 어찌 알겠는가.

 

그럴수록 더더욱, 저런 역사를 기록한 자의

거룩함(!)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인걸-영웅은 죽지만 역사 기록물은 영원하다.

역사에는 나라를 세운 영웅만 있지 않다,

어쩌면 실패한 자들, 엑스트라였던 자들이 더 많다, 

그들까지 일일이 기록하다니(열전), 확실히 난놈이다.

어릴 때는 사마천=궁형, 이렇게 외워졌던 것 같은데,

중국사의 맥락에서 '궁형'은 수치스럽긴 하지만

어쩌면 제일 약한 -_-;; 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

 

세상에 공짜가 없다. 주후반에 저렇게 놀며 흥분(!)했더니 월화는 상태가 좋지 않았다. '주지육림'(유시민 강연보다가 꽂힌 단어인데, 너무 어렵고나 -_-;;)에 빠져 있었으니 당연한 일. 눈을 뜨며 '죽음'을 생각했다. "아픈 거 싫어~" 게다가,,, 죽기 싫다ㅠㅠ 싸움을 좋아하는 자는 결국 싸우다가 죽고(그런 자들이 가만히 앉아 정치를 하려면 더 미칠 듯, 그래서 진압할 반란이나 침입해올 외적을 더 기다린 건 아닐지?) 이야기를 좋아하는 자는 결국 이야기 속에서 허덕이다 죽는다. 역사는 이야기다. 언제 들어도, 언제 읽어도 너무 재미가 있어 도끼 자루 썩는 줄 모르겠다. 그래서 더더욱, 그것을 즐기는, 누리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기록하는 것이기도 하다. 에효, 나 같은 인간은 다 읽기도 힘들겠지만, 한 번 시도해보려고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중고교 시절에 처음 만나는 이상은 [날개]의 작가(소설가)이거나 [오감도]의 시인이기도 하지만 [권태]를 쓴 수필가이기도 하다. 요즘식이면 정말 작가. '권태'의 놀라운 점은 그 모던(!)함이다. '권태' 자체가 우리식 정서가 아니다. (그 무렵의 한국문학을 잘 모르지만-_-;;) 이광수 <무정>, 염상섭 <삼대> 이런 것이 쓰이고 읽히던 시절, 권태는 너무나 이국적? 너무나 뜬금없는 것? 귀신 씨나락? 아무튼 현실과는 굉장히 동떨어진 심리적 정황일 법하다. 병리적, 도착증적, 변태적, 이런 수식어를 붙여도 될 법하다. 한마디로, 이것은 '이식된'(=식민화) 것. 유럽에서 직수입이 아니라 일본을 통해 이중, 간접 수입된 것이다. 원조는 어떠했나.

 

 

 

 

 

 

 

 

 

 

 

 

 

 

영국과 프랑스의 (초기)낭만주의는 '이상'이 중요했던 독일의 그것(1기 - 노발리스, 슐레겔 형제 등)과는 다소 다르게, 권태와 (나아가) 환멸의 정서가 강하다. 러시아에 수입되어 인기를 누린 건 이쪽이다. 독일 낭만주의로는 일세대보다는 말기에 붙은 호프만이 오히려 더 큰 호응을 얻었다. 아무튼 우리(=동양) 문학의 입장에서는 이 모든 것이 몽땅 '서양-것'인데, 20세기 전후 일본 지식인-작가들이 배우고 익히고 닮고자 했던 것이기도 하다. 물론, 루쉰은 빠져야 할 것이다,행동하는 지식인, '메스' 대신 '붓을 든 작가로서 그의 정서는 권태와는 아주 거리가 멀다!  

 

 

 

 

 

 

 

 

 

 

 

 

 

 

 

다시 원조로 가서. 권태란 오랫동안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여자가 어찌 감히 권태를!!! 권태를 느끼려면 많은 것이 갖추어져야 한다. 무엇보다도 돈, 돈, 돈이다. 최소한의 물리적 안정 없이 권태는 절대로 불가능하다. 그다음, 이것을 행동 차원으로 옮기려면(주로 여행을 가는데) 역시나 돈이 필요하고, 그다음은 육체적 자유가 필요하다. 여러 정황상, 여자는 감히 누리기, 혹은 실천(?)하기 힘든 것이 권태이다. 자, 그런데, 1857년(버버리가 <버버리>를 만든지 1년 뒤^^;) 삼십대 작가가 <보바리 부인>이라는 소설을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여자가 감히 권태를! 그것도 소설을 많이 읽어서!  그러다가 주제 파악 못하고 파멸하는 얘기라니. 그 파멸은, 결코 남자주인공들의 경우와 같은 비극이 아니다. 오히려 어처구니없는 세태극이다.

 

 

 

 

 

 

 

 

 

 

 

 

 

 

 

 

엠마의 여자로서의 열등감은 결코, 적은 비중을 차지 않는다. 그녀가 아들을 바라는 가장 큰 이유는 '복수'하기 위해서다. 여자로서의 자신의 삶에 대한 복수.

 

 이렇게 사내아이를 갖게 된다고 생각하니 마치 과거의 모든 무력감에 대하여 희망으로 앙갚음하는 느낌이었다. 남자로 태어나면 적어도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온갖 정념의 세계, 온갖 나라를 두루 경험할 수 있고 장애를 돌파하고 아무리 먼 행복이라 해도 붙잡을 수가 있/. 그러나 여자는 끊임없이 금지와 마주친다.(...) 여자는 언제나 어떤 욕망에 이끌리지만 어떤 체면에 발목이 잡혀 있다.”(131-2)

 

'다른 것'의 가능성에 대한 상정에서 권태는 생겨난다. 내가 아닌 다른 나, 여자가 아닌 남자, 이 남자(여자-애인)가 아닌 다른 남자(여자-애인), 이 집이 아닌 다른 집, 이 세상이 다른 세상 등등. 남편 샤를르는 멀쩡 이상의 멀쩡이지만 엠마는 계속 다른 가능성을 꿈꾼다. 그럴 수록 현재(남편)는 싫어지고 권태는 더 강해지고 급기야 환멸로 이어진다.

 

그녀는 우연의 다른 짝맞춤으로 누군가 딴 남자를 만날 도리는 없었을까를 자문했다. 그리고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그 사건들, 달라졌을 그 생활, 알지 못하는 그 남편은 어떤 모습이었을까를 상상해 보려고 애썼다. 과연 어느 누구도 저 남자와는 닮지 않았다. 그는 미남이고 재기발랄하고 품위있고, 매력적인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옛날의 수도원 친구들이 결혼한 상대는 정녕 모두 그럴 것임에 틀림없다. 그녀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도회지에 살면서 거리의 소음, 극장의 술렁거림, 무도회의 광채를 만끽하면서 가슴이 터질 듯하고 관능이 활짝 피어나는 생활을 하고 있는 거다. 그런데 그녀는, 그녀의 삶은 마치 햇빛받이 창이 북쪽으로 나 있는 지붕 밑 골방처럼 냉랭했고 소리없는 거미와도 같은 권태가 그녀의 마음 구석구석의 그늘 속에 거미줄을 치고 있었다.”(70)

 

엠마의 불륜(정사)은, 영화로는 제법 야하게 표현되지만, 소설 속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모든 것이 너무 '연극적'이고, 작가-화자 입장에서는 너무 분석적, 메타적이다. 권태에 대한 소설적 탐구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 끝은 결국, 여주인공의 파멸인데, 가장 의미심장한 대목은, 강조하거니와, 결코 '사랑' 때문이 아니라 '돈-빚' 때문이라는 것이다. 엠마 역시 끝까지 인정하지 못하는, 심지어 모르는 대목이 바로 이것이다. 로돌프한테 돈 빌려달라고 했다가 퇴짜맞고 나온 뒤.

 

물론 아직은 몽롱한 상태였다. 그녀는 자기를 이토록 끔찍한 상태에 몰아넣은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를, 즉 그게 돈문제였음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괴로운 것은 오로지 사랑 때문이었다.”(452)

 

엠마의 음독은 바로 이런 자기기만에 대한 미학적 단죄이다. 이미 숨이 끊어진 엠마를 염하고 장례 치루는 과정에서 미학적 죽음은 더 잔혹하게 진행된다. 작가는 그녀에게 왜 이리 잔혹했을까. 어쩌면 그보다 마흔도 안 된 작가는 왜, 이렇게 멍청하고(ㅠㅠ) 허영심 많은, 예뻐 본들 중치 수준인 시골 의사의 부인을 자신의 페르소나로 내세운 것일까.  게다가, 이런 '된장녀-유부녀'의 자살을 완료하는 데 왜 (번역본으로) 20쪽에 가까운 페이지를 써야 했던 것일까.  많은 의문이 생기는 소설, 새삼스럽지만, 걸작임에 틀림없는 소설이다. 명불허전.

 

 

 

 

 

 

 

 

 

 

 

 

 

 

 

 

이미 낭만주의가 저물고 사실주의가 자리를 잡았을 무렵, 작가 자신 역시 감상주의, 낭만주의로부터 완전히 떨어져 나왔을 무렵, 1860년대 분위기를 십분 반영한 <악령>에서 도-키는 전형적인 '권태-환멸'의 캐릭터를 창조한다. 스타브로긴. 사십대 중반에 읽는 그는 실은 이춘재(ㅠㅠ)급의 극악범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만, 대가의 붓은 이런 극악범을 '위대한 죄인'으로 만들었다. 스타브로긴의 내면이 조명되는 이른바 <스타브로긴의 고백>(티혼의 암자에서)의 일절. 핵심적인 사건(마트료샤 사건 이후) 한 문장, "... 지겨웠다", 권태에 간만에 꽂힌다.

 

나는 대체로 그 무렵 사는 것이 머리가 멍해질 만큼 몹시나 지겨웠다. 위험이 지나자 고로호바야 사건도 당시의 모든 일처럼 완전히 잊어버렸을 텐데, 내가 겁을 집어먹었음을 회상하며 계속 분해하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나는 아무에게나 분풀이했다. 그 무렵에는 아무 이유도 없이 어떻게든 삶을 불구로 만들자, , 가능한 한 훨씬 더 역겹게 만들자는 생각이 떠올랐다. 벌써 1년째 권총으로 자살할 생각을 했다. 뭔가 더 좋은 것이 나타났다. 한 번은 빈민굴에서 잔시중을 좀 들기도 한 절름발이 마리야 티모페예브나 레뱌드키나를, 당시에는 아직 돌아버린 건 아니고 나에게 남몰래 푹 빠져서(우리 패거리도 눈치챘는데(выследили)) 그저 환희에 젖은 백치 여자를 보고서 갑자기 그녀와 결혼하기로 마음먹었다. 스타브로긴이 그야말로 이런 밑바닥 존재와 결혼한다는 생각에 나의 신경이 꿈틀거렸다. 이보다 더 추악한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내 결단 속에 무의식적으로나마(당연히 무의식적으로!) 마트료샤의 일 이후 나를 사로잡은 저열한 비겁함에 대한 분노가 개입된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을 해결하려고 하지는 않겠다. 사실 그러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도-키의 후기작의 주인공들이 대부분 권태-환멸을 알지만, 이렇게 허랑방탕한 놈은 없었다. 라스-프도, 이반도 다들 열심히 공부(!)하는 자였다. 스타브로긴처럼 '몹쓸 짓'을 일삼지는 않았다. 어릴 때는 굉장히 문어적으로, 형이상학적으로 읽었던 것 같은데, 지금 읽으니 (심지어 아이의 엄마로서!) 이런 처 죽일 놈! 어린 아이를! 물론 이런 극악범죄는 스타브로긴의 말그대로 '십자가'를 위해서 필요한 장치였기도 하다. 권태에 절어 방탕과 범죄를 일삼는 귀족 도련님은 그 존재만으로 '악령'이고 그 출처(원조^^;)는 물론 서유럽이다. 서유럽에서 수입(이식)된 권태와 환멸. 확실히 이것은 고급(!)한 것이라 충족을 모른다. 엠마의 권태와 같은 것이다. 상대적으로 저급(!), 혹은 원시적이고 즉흥적인 권태는 욕망을 채울 대상이 나타나면 이내 해결된다. 가령 <레이디 맥베스>의 권태 같은 것.

 

 

 

 

 

 

 

 

 

 

 

 

 

 

 

-나 리보브나는 빈 방들을 돌아다니며 지루함에 하품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고는 계단으로 이어진, 그다지 크지 않은 다락의 부부 침실로 올라간다. 여기서도 잠깐 앉아 사람들이 광 앞에서 삼의 무게를 달거나 밀가루 담는 것을 내려다본다. 다시 하품이 나온다. 나른한 기분에 젖어 한두 시간 누워 잠을 잔다. 깨어나면 또다시 러시아의 권태, 상인집의 권태가 찾아온다. 그걸 견디느니 차라리 목을 매고 죽는 게 낫다고 말할 정도이다. -나 리보브나는 독서를 좋아하지 않았다. 게다가 집에는 책이라고 해봤자 키예프의 교부전이 전부였다.(14)

 

저렇게 집안을, 마당을 돌다가 만난 하인과 소위 살을 섞는 데 하루도 걸리지 않는다.  세르게이의 농간(?)이기도 하지만, 어떻든 이런 경우 뭔가의 부재와 권태와 욕망과 그것의 충족 등은 굉장히 단순하게 이루어진다. 소재가 성-섹슈얼리티(치정살인)여서 그렇지, 아니라면, 거의 동화를 읽는 느낌이다. 민중 작가가 파악한 민중의 진면목, 혹은 적나라한 실체이기도 할 터.

 

*

 

권태. ennui. 이 주제를 무척 좋아했다. 이 단어를 좋아했다. 그리고 환멸. 한동안 잊고 살았는데 <보바리>를 읽으면서 다시 상기되었다. 권태와 환멸의 끝은 구토, 다. 만약에 우리가 '구토' 이후에 살아남아 '놀이(게임)의 끝'을 볼 수 있다면, 그것이 <고도를 기다리며>이다. 세계멸망(=2차대전) 이후 폐허, 잔해의 정서. 네 늙은이의 놀이에 비하면 19세기의 권태는 굉장히 생산적이고 역동적이고 음탕(!)한 것이었다. 심지어 연애도, 섹스도, 살인도 한다! 젊으니까, 젊었으니까.

 

 

 

 

 

 

 

 

 

 

 

 

 

 

 

 

 

*

 

 

 

 

 

 

 

 

 

 

 

 

 

 

 

2016년 소설집은 중고샵에서 사주지만 2018년 경장편은 '매입불가', 흑. 전자에는 '권태/환멸'이 있다. 후자에는 '권태/환멸'이 없다. 소설들이 쓰인 시기를 놓고 볼 때 '비포-애프터'. '비포'에는 권태와 환멸이 가능했고, '애프터'에는 그게 불가능하다. 엠마 보바리는 '비포-애프터' 변화가 없는 훌륭한(아이러니다!^^;) 인물, 훌륭한 여자다. 갓난아이를(더불어 어린아이를) 내팽개치고 연애에 몰입하기 쉽지 않은데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아닐 수 없다. 이 때의 에너지는 성적, 육체적 에너지라기보다는(물론 이것이 뒷받침되어야 하지만!) "소설처럼!" 되고자 하는 모방 욕망, '형이상학적 욕망'의 엄청난 에너지다. 작가는 그녀를 명백히 바보로 그렸지만, (비단 플로-르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엠마 보바리, 혹은 워너비-엠마인 것을, 어쩌랴! 말마따나, 지금 이 순간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연애!^^;

 

권태여(환멸이여), 다시 한 번!

Yesterday, once mor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1869)와  생활-일상의 힘

 

(...)

 

 

 

 

 

 

 

 

 

 

 

IV. 평화: 나타샤 로스토바의 형상과 입지

 

(...)

 

 

문제는 어떤 여성이든 19세기 러시아 귀족사회라는 시공간적 특수성 때문에 결혼 상품으로서의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다. 그들 중에서도 나타샤가 단연코 돋보이는 것은, 첫째 예쁘고 사랑스러운 귀족 여성이며, 둘째, 삶에 대한 반성적 사유 없이 오직 삶을 사는 데만 집중하기 때문이다. 귀족 작가로서는 우선 전자가 중요하다. 번역본에서는 전혀 표현되지 않았지만 <전쟁과 평화>의 상당 부분이 프랑스어로 쓰였음이 강조되어야(김진영, 19-40) 한다. 한마디로, 이것은 귀족(혹은 그런 수준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면, 작가가 직접 첨부한 러시아어 번역의 도움 없이는 읽을 수 없는, 언어적 진입장벽이 높은 소설이다. 나타샤의 태생이나 가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그녀의 성격이다. 소설의 에필로그까지 염두에 둔다면 남성적 원칙(‘전쟁’)이 여성적 원칙(‘평화)에 의해 극복된다는 것, 여성성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 핵심이다. 나타샤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다산한(아이를 잘 낳는) 암컷 плодовитая самка이라는 점은 그래서 중요하다.

 

 

나타샤는 1813년 이른 봄에 결혼했다. 그리고 1820년 그녀에게는 이미 세 딸과 그녀가 간절히 바라던 아들이 있었다. 요즘 그녀는 아들에게 직접 수유를 했다. 그녀는 살이 찌고 펑퍼짐해졌다. 이 강인한 어머니에게서 예전의 날씬하고 발랄한 나타샤를 알아보기가 힘들 정도였다. 얼굴선은 또렷해졌으며, 차분하고 부드럽고 맑은 표정을 띠었다. 얼굴에는 예전에 그녀의 매력을 이루던 그 끊임없이 타오르는 생기의 불꽃이 없었다. 지금은 종종 얼굴과 몸만 보일 뿐 영혼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직 강인하고 아름다운 다산의 암컷만 보였다.(4, 528)

 

예전의 불꽃이 타오르는 경우는 아픈 아이가 회복되었을 때, 마리야와 함께 안드레이를 회상할 때, 그리고 지금처럼 남편이 오랜 출장에서 돌아왔을 때이다. 이어, 소설은 어린이 방의 부부를 포착한다. 청년 루카치는 유럽의 '환멸적 낭만주의' 소설(<돈키호테>, <마담 보바리> )의 마지막에 톨스토이의 소설을 위치시키고 위대한 순간의 허허로움을 지적하면서 <전쟁과 평화>, 특히 에필로그 부분에 주목한다. “모든 정열과 찾음의 시도가 그 종말을 고한 뒤의 아기방의 조용한 분위기는 문제적인 환멸 소설의 종말보다도 더 서글프고 더 우울한 것”(루카치, 199)이라고 그는 쓴다. 모든 정신적인 것이 동물적인 자연에 완전히 흡수되어 완전히 ()’가 되기 때문이다. 전일성과 총체성(서사시의 시대)의 강박에 사로잡힌 채(Lukacs, 78-94) 분열(소설의 시대)을 읽어냈던 젊은 루카치의 환멸과 권태가 보이는 대목이다. 과연 위대한 순간이후 자연과 관습(사회)의 세계를 굳이, 청년 루카치의 감상대로 따분함과 지루함의 극치로 봐야 할까.

 

 

 

 

 

 

 

 

 

 

 

 

 

 

 

 

 

 

소설을 마저 읽어보면 요절한 안드레이의 아들인 니콜렌카가 나온다. , 피에르를 좋아하고 또 동경하는 그의 마지막 말이 사실상 이 기나긴 소설의 마지막이다. “하지만 피에르 아저씨! ,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가! 그런데 아버지는? 아버지! 아버지! 그래, 난 그분조차 흡족해하실 그런 일을 해내고 말 테야.”(4, 588) 여기서 환멸적 낭만주의-사실주의 소설의 최고봉인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를 떠올려 보면, 러시아 귀족 작가의 시선이 냉혹한 만큼이나 따뜻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영미권 연구자의 도식대로 <전쟁과 평화>는 픽션과 역사와 메타역사, 현재와 과거와 영혼의 세 차원을 아우르는(A. Wachtel, 180) 방대한 소설이다. 달리 말해, <전쟁과 평화>는 역사소설(과거)의 외피 밑에 현재의 찬미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얘기하는 소설이다. 여느 유럽 환멸 소설에는 아예 없거나 소품처럼 취급되는 아이()’가 여기서는 큰 의미를 지닌다. 작가 자신처럼 조실부모한 니콜렌카는 (다른 아이들과 더불어!) 이 불멸의 걸작의 유일한 희망이자 가능성이다. 아이 없이, 시간-성장 없이 소설의 2부는 쓰일 수 없다. 톨스토이가 고슴도치였든 여우였든(벌린, 21) 바로 이 점을 소설화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

 

논문 쓸 준비를/공부를 하는 동안, 논문을 쓰는 동안 절실히 깨달았다. 이 글은 <전쟁과 평화>, 어쩌면 그보다는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을 (어쩌면 마지막으로?) 다시 읽기 위해 쓰였음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