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은영의 시를 읽다가 문득 대학원 시절에 읽은 시 한 편이 떠올랐다. 요즘 '작업기억' 능력이 퇴행하여(노화), 브로드스키까지는 금방 생각해냈으나, <나비>인지 <정물화>인지 찾아보고야 알았다. 마지막 연이 뇌리에 남았다. 너는 (내) 아들이냐, 신이냐 / 필멸의 존재냐, 불멸의 존재냐 / 죽은 것이냐, 산(영원히 살) 것이냐.  확실히 러시아 시인이라 형이상학적인(이 경우에는 종교적인) 물음 없이는 안 된다. 소비에트 시인들은 그 자리에 이데올로기를 넣은 듯하다.

 

*  

 

 

 

브로드스키, <정물화>

 

 

 

1.

 

사물과 사람이 우리를

에워싼다. 그리고 이것도,

저것도 눈을 찌른다.

차라리 어둠 속에 사는 게 낫겠다.

 

나는 공원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가족의

뒤를 본다.

나는 세상이 역겨워졌다.

 

1월이다. 겨울이다

달력에 따르면.

어둠이 역겨워질 때

그때 말을 시작하리라.

 

 

(....)

 

 

10.

 

어머니가 그리스도에게 묻는다:

- 너는 나의 아들이냐 아니면 나의

   신이냐? 네가 십자가에 못박혔다.

   내가 어떻게 집에 가겠니?

 

   어떻게 문지방을 넘겠느냐,

   (다음을) 이해하지, 해결하지 못한 채:

    너는 나의 아들이냐, 아니면 신이냐?

    즉, 죽은 것이냐 산 것이냐?

 

그가 대답으로 말한다:

- 죽은 자든 산 자든

  여자여, 차이가 없다.

  아들이든 신이든 나는 네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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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시스 잠,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

나무병에 / 우유를 담는 일,

꼿꼿하고 살갗을 찌르는 / 밀 이삭들을 따는 일,

암소들을 신선한 오리나무들 옆에서 떠나지 않게 하는 일,

숲의 자작나무들을 / 베는 일,

경쾌하게 흘러가는 시내 옆에서 / 버들가지를 꼬는 일,

어두운 벽난로와, 옴 오른 / 늙은 고양이와, /

잠든 티티새와, / 즐겁게 노는 어린 아이들 옆에서

낡은 구두를 수선하는 일,

한밤중 귀뚜라미들이 날카롭게

울 때 처지는 소리를 내며 / 베틀을 짜는 일,

빵을 만들고  

 

 

CE SONT LES TRAVAUX...

 

Ce sont les travaux de l'homme qui son grands:

celui qui met le lait dans les vases de bois,

celui qui cueille les epis de ble piquants et droits,

celui qui garde les vaches pres des aulnes frais, 

celui qui fait saigner les bouleau des forets,

celui qui tord, pres des ruisseaux vifs, les osiers,

celui qui raccommode les vieux chat galeux,

d'un merle qui dort et des enfants heureux;

celui qui tisse et fait un bruit retonbant,

lorsqu'a minuit les grillons chantent aigrement;

celui qui fait le pain, celui qui  fait le vin.

 

 

 

 

 

 

 

 

 

 

 

 

 

 

 

 

 

원문에 시행이 12행인데 왜 이렇게 많이 벌려 놓으셨는지ㅠ 최대한 올려서 맞추어 보았다. / 표시한 것이 번역본과는 다른 부분.  "즐겁게 노는 어린 아이들" 같은 것도 그냥 "즐거운(행복한) 아이들"로 해도 될 법한데, 상세하게 풀어주고 싶으셨나 보다. 시 번역도 정말 어려운 일이다!!!  

 

 

*

 

 

http://frwinder.egloos.com/1038123

 

프랑시스 잠의 시를 읽으며 떠올린 화가는 밀레. 그의 유명한 <만종>의 원어인 "Angelus"은 프랑시스 잠의 시, 저 시집의 표제작의 제목(?)과 같은 단어다. 여기서 시인은 자신을 무거운 짐을 진 당나귀에 비유하고, 마지막 구절.

 

"삼종의 종소리가 웁니다. L'Angelus sonne"  

 

*

 

어젯밤에 찾아보니 벌써 지적이 된 문제였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404881&CMPT_CD=P0010&utm_source=naver&utm_medium=newsearch&utm_campaign=naver_news

원작의 분위기를 더 잘 살린 것 같은 번역을 가져와본다.

 

진실로 소중한 일은...

사람이 하는 일 가운데 진실로 소중한 일은
나무통에 우유를 담고
따가운 밀 이삭을 따고
오리나무 그늘 아래 암소를 지켜보는 일.
자작나무에 칼집을 내고
잘잘잘 흐르는 개울 옆에서 버들바구니를 짜는 일.
옴 오른 늙은 고양이와 티티새와 아이들이 잠들 때
잦아든 벽난로 곁에서 낡은 구두를 수선하는 일.
한밤중 귀뚜라미 절절하게 울 때
베틀 소리는 이내 잦아들고.
빵을 굽고 포도주를 담그고
텃밭에 양배추 씨를 뿌리고 마늘을 심는 일.
그리고 따뜻한 달걀을 가져오는 일.

(김찬곤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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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저 사람 편에 서 있구나. 고우영, <십팔사략> 중 항우 유방 다룬 부분에서 나온 대사. 진인사대천명. 결국엔 '천명'인지라. 푸틴의 여러 정치적 오류에 덧붙여 최근에 스캔들 (묻혔다가) 터지는 걸 보니, 즉, 그걸 막아낼 힘이 더 이상 없는 걸 보니 이미 하늘은 그에게 등을 돌리는 것 같다. 류드밀라의 이혼의 변은 대략,,, 영부인 역할 하기 너무 힘들어서, 였는데, 아마 여자 문제였던 것 같다, 역시^^; 아무리 그래도 푸틴도 쉽게 쓰러질 것 같진 않은데 정말 강적인 듯. 하늘이 저 사람 편에 있는 듯.  부인, 너무 예쁩니다 ㅠㅠ 잠깐 사진에 나왔던 자식은 아들과 딸인데, 아들도 너무 예뻐서 많은 네티즌이 딸로 오해할 정도.

 

 

"안녕(하세요), 나발니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5pMl6InVBlA&t=42s

-> 흥, 내가 무서워 할 줄 알고? 빨리 나아서 돌아가겠소~

 

 

나발니 인터뷰 2시간이 넘는다는 것 자체가 그가 살아 있음을 증명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vps43rXgaZc

- > 으악, 이런 상태가(남의 부축을 받아 세수하는) 정말 오래가면 어떡하지 ㅠㅠ

이런 상태는 지나갔고 지금은 ~

 

 

말도 너무 빠르고 거칠고 제멋대로, 한마디로, 너무 러시아식이다. 술은 드시는지? 오래 전 옐친의 악몽이 되살아난다. 보는 우리야 즐겁지만^^; 

 

비슷하게, 도람프의 각종 광대짓도 어찌나 흥미로운지. 의외로(?!) 그가 연설과 토론을 잘 해서 놀랐다. Oh really? Oh, did you? Your son~ 참, 사람 사는 곳 다 비슷하지만, 저 어마어마한 추진력과 막가파적인 면모와 거대한 덩치와 칠순에도 반짝이는 노랑머리(금발) 등등 그 역시 대륙의 힘이겠지. 젊은 날의 그를 보면, 또 (그때는 안 봤지만) 오래 전 힐러리와 맞붙던 모습을 보면 왜 미국이 그를 선택했는지도 짐작이 된다.

 

https://ngs55.ru/text/incidents/2020/08/20/69430855/

사방이 다 떡대에 깡패 -_-;;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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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다시 읽는다. 자료를 뒤지면서 새로웠던 것이, 이 소설을 쓸 때 메리 셸리가 18세 소녀^^;였다는 사실에 덧붙여, 이미 두 아이를 출산한 경산부(얼마나 정겨운 말인가! - 이상의 소설인가에서 처음 알았다)라는 사실이다. 그 중 한 아이는 죽은 모양이다. 어떻든 셸리는 <프-인>을 쓸 때 이미 아이 엄마였다. 뭘^^; 좀 하는 엄마들은 요즘도 죽겠노라고 울부짖는데, 18세기후반 19세기 초반의 그림은 어땠을지. 저 소설이 창조되는 배경 중 하나가,,, 오두막(??)에 둘러앉은 퍼시 셸리, 바이런, 또 누구(?), 메리 셸리 등의 잡담-이야기다. 이런 그림 자체가 가능하다는 것이 이미, 영국이 얼마나 선.진.국.이었는지를 모여준다. 그들은 먼저 갔고 지금 보면 당연히 저만큼 가 있는  것이다. 테레사 메이 전 총리 옆에 항상 다소곳이(약간 꺼벙하게?^^;) 서 있는 남편 필립이 항상 인상적이었다. 필립-메이 vs. 트럼프-멜라니아.

 

아무튼. '엄마' 셸리가 쓴 <프-인>은 어쩌면 그 무엇보다도 '피조물(창조물)에 대한 사랑'을 얘기하는 듯도 싶다. '괴물'이 가장 괴로워하는 것은 사랑받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의 편견과 달리 '괴물'은 굉장히 명민하다. 이른바 EQ를 측정할 수 있다면 그 역시 결코 낮지 않을 법하다. 그는 사람들 속에 들어가고 싶어 하고 그들과 함께 어울리고 싶어한다. 또래 집단(2차 집단)에서 그게 힘들더라도, 그를 품어줄 수 있는 존재가 바로 부모, 특히 엄마이다. 하지만 이 괴물은 안타깝게도, 태어나자마자 자신이 저주와 경멸과 분노의 대상이었음을 알게 된다. 자기처럼 흉하게 생겼기에 오히려 자기를 사랑해주고 함께 살 '짝'을 만들어달라, 라는 부탁, 절규가 참 절절하다.

 

이른바 '제2의 성'으로서 메리 셸리의 입장은 프-인 박사보다는 '괴물'에게 더 가 있었을 법도 하다. 하지만 '엄마'로서 그녀의 입장은 후자보다는 또 프-인 박사 쪽이었을 법도 하다. 내가 낳은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입장. 우리가 손쉽게 사랑이라고 부르는 그 본능적 감정, 감각의 덩어리야 크지만(왜 감각이냐 하면, 아이에 관한 한, 항상 몸이 먼저 반응하기 때문이다!) 그 역시 굉장히 복잡다단한 것이다. 특히, 내가 낳은 아이가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보아야 하는 엄마의 입장이란.... 다시금 상기한다, 박완서의 수필을 통해 알게 된 표현. 참척의 고통.

 

전기를 보면 메리는 총 5명의 아이를 낳고 그 중 4명이 사망하는 아픔을 겪는다. 아시다시피 메리의 엄마 역시 메리를 낳다가(낳은 거의 직후) 사망한다. 출산이란 그런 것, 두 생명의 치열한 각축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 이후, 양육과 교육은, 요즘 내가 많이 고민하는 것이지만,  더 큰 시련을 예고한다.(많은 정치인들이 여기서 걸린다^^; - 조 바이든은 정치적 올바름을 떠나서 트럼프보다 재미가^^; 없다 ㅋ) 아마 메리가 '엄마'로서 체험한 것, 고민한 것이 없었더라면 이 소설이 문학사에 남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비슷하게, 어린 처녀^^;가 쓴 <폭풍의 언덕>과 비교해도 그렇다.

 

 

 

 

 

 

 

 

 

 

 

 

 

 

 

 

로맨스(사랑과 열정과 배신과 복수와 죽음 등) 이상의 어떤 것, 그것과 함께 혹은 그 이후에 오는 것  - '아이. 쉽지 않은 문제다. 특히, 아이-피조물이 이렇게 외칠 때.

  

- 제가 청했습니까, 창조주여, 흙으로 나를 인간으로 빚어달라고? / 제가 애원했습니까, 어둠에서 끌어올려달라?”(...)

 

 

 

 

 

 

 

 

 

 

 

 

 

 

<실낙원> 아담의 영국 버전이 프-인 피조물의 절규.

그것의 소비에트판, 싸다각^^; 싸가지 없음의 절정 버전이 샤리코프의 절규.

 

 

 

 

 

 

 

 

 

 

 

 

 

 

 

 

그래, 당신은 항상 그랬어... 침 뱉지 마라. 담배 피우지 마라. 저리로 가지 마라... 이게 정말 뭐야? 여기가 전차 안이라도 되는 모양이군. 어째서 날 못살게 구는 거지?! 그리고 아빠란 단어와 관련해서 이건 순전히 당신 잘못이야. 내가 수술해달라고 청한 적이나 있냔 말이야?”

사내가 흥분해서 계속 짖어댔다.

그래, 정말 멋들어진 일이야! 나 같은 동물을 잡아다가 칼로 머리를 길쭉하게 잘라서 줄무늬처럼 만들어놓고는 이제 와서 이렇게 경멸한단 말이지. 난 수술을 허락한 적이 없어. 마찬가지로... (사내가 무슨 간단한 공식이라도 기억해내려는 듯 천장 쪽으로 눈을 돌렸다) 내 친척들도 허락한 적이 없어. 따라서 난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가 있단 말이야.”(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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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이번 주말까지 논문을 완성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자 갑자기 시간이 무척 많아졌다. 참 아이러니하다. 지난 여름의 무리를^^; 반복하고 싶지 않기도 하고, 아이의 등교 수업 일수도 많아진 까닭도 있다. 그 와중에...

 

 

 

 

 

 

 

 

 

 

 

 

 

 

 

 

 

정작 직에 계실 때는 만난 적이 없는 듯한데, 최근 10여년 간 오다가다 한 번씩 마주치는 얼굴. 그저께도 커피숍에서 스치듯 뵈었고, 그 참에 그의 책을 찾아보았다. 물론 제일 신세를 진 건 푸코 번역이 아닌가 싶다.

 

 

 

 

 

 

 

 

 

 

 

 

 

 

 

 

내가 그를 알았을 때는 이미 (체감^^;) 중년-노년, '할아버지'였다. 저렇게 많은 책을 쓰고 번역한 사람도 늙는다, 죽는다, 라는 평범한 사실이 지금 막 칼로 벤 상처의 통증처럼 알싸하다. 오생근 선생의 모습에 프랑스 시들이, 그것들을 읽던 이십대의 내가 떠올라 오랜만에 찾아본다. 몇 편은 다시 읽으려 한다. 보들레르는 그 사이 역자가 김붕구에서 황현산으로 (지당하게도^^;) 바뀌었다. 김붕구의 <보들레에르>를 감사히 읽은 기억이 있다.

 

 

 

 

 

 

 

 

 

 

 

 

 

 

 

 

 

 

 

 

 

 

 

 

 

 

 

 

 

 

영미권 시보다, 또 독일어권 시보다 프랑스(어) 시를 좋아한 건 무척 당연했다, 당시로서는.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프랑스어를 배웠는데, 그건 처음부터 너무 좋은 외국어, 남의말이었다. 그래서 대학에 가서도 계속 공부를 하려고 애썼고, 외국어 공부를 겸하기에, 시를 읽고 외우는 것이 참 유익했다. 팝송 가사도 많이 쓰고 외웠던 것 같다. 좋은 시절이었다, 그립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못할 건 없다^^; 시간을 조금 내어 짬짬이 읽은, 읽고 있는 시집은 윤동주와 백석이 사랑한 그대 -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옛날 판본을 구했다. 앞서 가져온, 내가 어릴 때 읽은 상징주의, 모더니즘, 아방가르드, 초현실주의 등등의 시와는 정반대되는 결의 시다. 이 모든 것이 다 소중하다.

 

 

 

 

 

 

 

 

 

 

 

 

 

 

 

 

*

 

아이의 원격수업 링크 동영상 중 5세부터 75세까지 사람들에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묻는 것이 있었다. 흥미로운 것이 대략 20대까지는 남녀 답변의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다가 30대부터는 제법 커진다. 30대 이후 적잖은 여성이 '아이'와 관련된 답변을 한 반면, 남성은 결코 그렇지 않다. 여자들: 첫 아이 낳았을 때, 우리 아들 낳았을 때, 우리 딸 낳았을 때, 우리 아들 둘이 박사학위 받았을 때(심지어 더 자랑하고 싶어 안달하는 모습^^;), 손주들 볼 때 제일 행복해요  등등. 물론,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여자-암컷'에게 '새끼'가 의미하는 바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인 것 같다. 엄마는 아이의 시간표까지, 학습 내용까지 다 알고 있어도 아빠는 아이가 오늘 등교일인지 아닌지도 모른다는 것만 봐도 이미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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