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31 | 32 | 33 | 34 | 35 | 36 | 37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나는 극단을 원합니다.” - 청춘에 바치는 송가:

- 루이제 린저(1911-2002), <삶의 한가운데>(1950)

 

 

아홉 살도 안 된 소녀가 추운 겨울날 밤에 맨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다.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소녀보다 열두 살이 많은 언니의 질문에 소녀가 내놓는 대답이 참 잔망스럽다. “나는 이걸 할 수 있어야만 해. (중략) 언제든 따뜻한 침대에서 나와 차가운 바닥에 무릎을 꿇는 것, 가시나무를 손으로 잡는 것, 사나운 개한테 가는 것, 매질을 견디고 소금을 먹는 일 등 뭐든지 할 수 있어야 해.”(156.)

 

소녀의 성장의 순간들이 스냅사진처럼 스쳐간다. 십대 초반의 니나는 학업을 중단한 채 외진 도시에 틀어박혀 병든 고모할머니와 그녀의 가게를 돌본다. 그녀가 죽으면 가게를 물려받게 돼 있지만, 누군가가 죽어가는 모습을 관찰하며 기록하는 일 자체가 흥미를 자극한다. 오직 글을 쓰겠다는 욕망뿐이다. 이십대 중후반, 니나는 한 남자와 약혼한 상태에서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갖게 된다. 약혼자는 이 사실을 알고서도 결혼을 강행하고, 첫 아이를 출산한 거의 직후에 거의 강제적으로 니나를 임신시킨다. 그녀는 둘째를 임신한 상태에서 자살을 시도한다. “가스는 끔찍해. 다시는 가스를 선택하지 않을 거야.”(304) 결혼 생활은 종지부를 찍지만 삶은 계속된다. 삼십대의 니나는 작가이자 두 아이의 엄마이자 생활인으로 살면서 반()나치 운동을 벌이다가 체포되기도 한다. 어느덧 마흔을 목전에 둔 니나, 그녀의 삶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삶의 한가운데>’, 즉 마르그레트가 오랜만에 만난 여동생 니나의 얘기를 들려주는 식으로 진행되지만, 대부분이 슈타인 박사의 일기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니나를 처음 만난 1930년부터 1947년까지 정확히 18년 동안 때론 가까이서 때론 멀리서 꾸준히 그녀를 지켜봐왔다. 스무 살 연하의 여자를 사랑하되 영원히 그녀를 소유하지 못한 중년 남자의 고백은 꼭 어디선가 읽은 것 같은 낭만적인 연애시의 한 구절을 연상시킨다. “나는 니나의 가벼운 걸음걸이를 사랑했으며, 나에게 버섯을 보여주려고, 그리고 잽싸게 도망가는 들쥐를 손으로 가리키려고 재빨리 고개를 돌리는 모습을 사랑했으며, 니나의 검은 머리에 얹힌 바늘 같은 전나무 잎들과 니나의 치마에 감긴 거미줄을 사랑했다.”(195) 언니의 시선도 니나에 대한 질투 섞인 동경과 애정을 머금고 있다. 이들이 함께 그려 보이는 니나는 물론 신비스럽고 영웅적인 존재이다. 바로 이것, 즉 니나라는 신화를 만들기 위해 이 소설은 쓰였다.

 

소설은 냉담과 무심을 가장한 아포리즘으로 넘쳐나고 그 저변에는 치기어린 나르시시즘이 깔려 있다. 니나, 마르그레트, 슈타인 박사, 심지어 한나 B에 이르기까지 인물들의 목소리와 문체도 좀처럼 구분되지 않는다. 이 소설을 쓸 무렵 작가가 거의 불혹의 나이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청춘의 열기가 넘쳐난다. 니나는 곧 린저이며, 슈타인 역시 린저이다. ‘슈타인-린저가 사랑한 니나-린저는 단순히 한 여자가 아니라 영원히 잃어버린, 그렇기에 더 소중한 청춘의 상징이자 극단삶의 한가운데의 상징이다. “가령 너무 많은 책들 때문에 질식해 죽을 것 같은 느낌, 혹은 이 세상에 돌아다니는 너무 많은 사람들에 의해 질식당할 것 같은 느낌. 그리고, 모든 아름다운 것이 사라진다는 것, 그리고 이런 것에 대한 슬픔. 완전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절망. 철저하게 순수한 절망도 없으며 값싼 혼합물, 값싼 혼합물만 있을 뿐이라는 생각. 인간은 행복할 수 없으며, 행복을 단념해도 평안에 이르지 못한다는 생각.”(206-207) 니나에게서 이런 말들을 배우며 아이는 어른이 된다. 이른바 니나 신드롬 없이 우리가 유년의 뜰을 오롯이 떠날 수 있었을까.

 

 

 

 

 

 

 

 

 

 

 

 

 

 

이 소설을 우리말로 처음 번역, 소개한 이는 전혜린이었고 당시 제목은 ()의 한가운데였다. 그녀가 니나를 묘사할 때 주로 사용하는 단어는 정신, 자유, 두뇌, 지성, 극단, 긍정 등이다. “남성적인 강함과 결단성을 지닌 여자”, “따라서 모험을 - 그게 어떤 성질의 것이든 간에 자기가 선택하기만 하면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여자, 무엇보다도 지적 여자”.(전혜린,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적 인간에 여성은 좀처럼 포함되지 않던 시절이니 니나가 얼마나 도발적인 매력을 발산했을지 짐작이 된다.

 

 

 

니나의 형상에 전혜린이 겹쳐진다. 실상 그녀가 쓴 책은 일기까지 포함해 수필집 두 권이 전부이지만 어떻든 그녀는 요절한 천재’, 적어도 비운의 여성 지식인의 상징으로 남았다. “어느 마녀의 저주처럼 그녀를 따라다닌 절대로 평범해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 심지어 강박관념과, 우리의 실제 삶-생활의 본질적인 속성인 평범사이의 간극, 그리고 충돌! “어렸을 때 내 소원은 결코 평범하지 않을 것이었다./ 지금도 어느 정도 역시 그것은 변함없는 것 같다. 무명으로 남을 용기가 나에게는 없다.”(전혜린, <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 그녀가 이미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이후, 서른을 코앞에 두고 쓴 문장인데, 묘하게도, 열아홉 살의 니나가 던지는 말과 유사한 울림을 자아낸다. “나는 극단을 원합니다. 극단에 대한 특별한 결심이 서 있음을 봅니다.(21)”

 

-- 책&

 

-- 어릴 때는 무척 좋아했던 걸로 기억되는<생의 한가운데>, 다시 보니 몰입(?)이 잘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보시다시피, 전혜린 얘기를 덧붙였는데,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 있습니다. 그녀의 수필집을 오랜만에 들춰보니, 지금 내 상황 탓이겠으나, 딸 얘기가 의외로 많더군요. 아이 식단도 꼬박꼬박 적어놓고... 60년대에 이른바 워킹맘 노릇 하기가 힘들었을 법하네요...쩝.

 

 

 

오직 전혜린이 번역했다는 이유로 찾아 읽곤 했던 책들입니다.

그녀가 번역한(아마 독일어에서 중역해놓은) 파스테르나크 시의 일절이나 니체의 아포리즘을 적어 다니기도 하고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래, 젠장, 인생은 짧고 그저 한두 마디의 농담거리일 뿐이지.”

너무나 평범하기에 너무나 시적인 삶:

- 아서 밀러, <세일즈맨의 죽음>

 

 

 

 

더 이상 뉴욕 본사에서는 자리를 얻을 수 없게 된 63세의 세일즈맨 윌리 로먼은 오늘도 장거리 출장을 나갔다가 아무런 소득도 없이 밤늦게 귀가한다. 오랜만에 두 아들, 특히 외지를 떠돌던 큰아들 비프가 집에 와 있지만, 사소한 언쟁을 벌인다. 다음 날, 힘겨운 하루를 마감한 그는 최근 들어 곧잘 꿈꾸었던 대로 자동차를 과속으로 몰아 반쯤 자살하다시피 사망한다. 불과 스물네 시간에 걸쳐 어느 외판원의 죽음을 포착함으로써 한 인간의 일생, 나아가 한 가정과 한 나라의 역사를 조망해 주는 작품, 세일즈맨의 죽음이다.

 

 

 

 

 

 

 

 

 

 

 

 

 

 

 

윌리의 인생에서 가장 부각되는 것은 비프와의 해묵은 갈등이다. 이들 부자 관계를 오랫동안 지켜본 린다는 말한다. “네가 집에 올 거라는 편지를 받으면 아버지는 온통 싱글벙글이 되어서는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셔. 아주 기분이 좋으시지. 그러다 네가 올 날이 가까워지면 아버지는 점점 더 불안해하시고, 정작 네가 도착하면 화가 난 것처럼 너와 말다툼을 하시지.” 윌리에게 있어 비프는 가장 아름다운 꿈이자 가장 잔혹한 현실이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처럼 장남에 대한 기대와 사랑이 너무 컸던 나머지 그는 아들의 도벽과 시험 중 부정행위를 은근히 장려하고 면허증 없이 차를 몰아도 기백개성의 발현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교육 철학은 그의 직업이나 가치관과 무관하지 않다.

 

윌리는 평생 세일즈맨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살인적인 경쟁의 늪을 헤쳐 왔다. 이런 그가 보기에 사회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적 네트워크”, 즉 인맥이다. 지금도 회사 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바로 잡기 위해 전() 회장과의 친분 관계에 기댄다. 그러나 현() 사장 하워드에게 그것은 시대착오적인 온정주의의 잔재일 뿐이다. 이 점은 친구인 찰리도 통렬하게 지적하는 바이다. “자네가 하워드라는 이름을 지어 줬지만 그런 건 어디 팔아먹지도 못하는 거야. 이 세상에서 중요한 건 팔아먹을 수 있는 것들이야. 명색이 세일즈맨이면서 그런 것을 깨닫지 못하다니, 우스운 일이로군.” 찰리에게 돈을 꿀 수밖에 없는 정황 역시 세일즈의 원칙과는 맞지 않는다. 더군다나 그는 걸핏하면 찰리와 자신을, 또한 찰리의 아들과 자신의 아들을 비교하지 않았던가. , 보다 핵심적인 문제는 온화한 자존감의 부재인데, 가정에서는 권위에 의존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수학과목 낙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버지를 찾아온 아들에게 외도 현장을 들켰을 때 어쩔 수 없이 큰소리를 치는 그를 보라.

 

 

( '세일즈맨' 더스틴 호프만 - 그의 왜소한 체구가 이 역에는 딱 제격.)

 

 

딱히 아버지의 외도를 목격한 탓은 아니겠지만, 어떻든 현재 비프는 아버지의 을 철저히 배반한, 잔혹한 현실이 되어 있다. 성공한 거물사업가는 고사하고 성실한 세일즈맨조차 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형을 동생 해피는 시인이자 이상주의자라고 부르지만, 서른넷이 되도록 방황만 하다가 느닷없이 농장 구입 자금을 마련하겠다며 옛날에 근무했던 회사의 사장을 만나러 가는 비프는 그냥 황당한 바보일 뿐이다. 하지만 올리버 사장을 만난 이후의 그는 현실을 직시한다는 점에서 아버지보다는 훨씬 용감하다.

 

비프 이제 진실을 아셔야 할 때예요. 전 금방이라도 사장이 되어야만 했지요. 이젠 그런 것들을 끝내려는 거예요!

윌리 그러면 나가 죽어라! 아비에게 반항하는 자식아, 나가 죽으라고!

비프 아뇨! 아무도 나가 죽지 않아요. 아버지! 전 오늘 손에 만년필을 쥐고 11층을 달려 내려왔어요. 그러다 갑자기 멈춰 섰어요. 그 사무실 건물 한가운데에서 말예요. 그 건물 한복판에 멈춰 서서 저는, 하늘을 봤어요. 제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것들을 봤어요. 일하고 먹고 앉아서 담배 한 대 피우는 그런 시간들을요. 그러고 나서 만년필을 내려다보며 스스로에게 말했죠. 뭐 하려고 이 빌어먹을 놈의 물건을 쥐고 있는 거야? 왜 원하지도 않는 존재가 되려고 이 난리를 치고 있는 거야? 왜 여기 사무실에서 무시당하고 애걸해 가며 비웃음거리가 되고 있는 거야? 내가 원하는 건 저 밖으로 나가 내가 누군지 알게 되는 그때를 기다리는 건데! 전 왜 그렇게 말하지 못하는 거죠, 아버지? (윌리의 눈을 자신에게 돌리려 하지만 그는 멀리 떨어져 왼쪽으로 간다.)

윌리 (증오심에 가득 차 협박하듯이) 네 인생의 문은 활짝 열려 있어!

비프 아버지! 1달러짜리 싸구려 인생이고 아버지도 그래요!

윌리 (통제할 수 없이 격앙하여 비프에게 돌아서서) 난 싸구려 인생이 아냐! 나는 윌리 로만이야! 너는 비프 로먼이고!

 

제발 절 좀 놓아주세요, ? 더 큰일이 나기 전에 그 거짓된 꿈을 태워 없앨 수 없나요?” 아들의 눈물 섞인 애원에도 불구하고 윌리는 그 거짓된 꿈을 태워 없애지 못한다. 그의 자살은 보험금을 타내 아들의 사업 밑천을 대 주려는 자기희생적인 부성애의 발현이지만, ‘원한’, 즉 보상 심리와 상승 욕망에 사로잡힌 성실한 범인(凡人)이 흔히 그렇듯, 자신과 자신의 꿈에 대한 집착의 산물이기도 하다. 정녕 그의 몽상과 환멸, 나아가 파멸은 참을 수 없을 만큼 평범하지만 그렇기에 또한 참을 수 없을 만큼 시적이고 극적이지 않은가. 그가 현대 비극의 주인공이라면 바로 이런 의미에서이다.

 

린다 (중략) 아버지가 훌륭한 분이라고는 하지 않겠다. 윌리 로먼은 엄청나게 돈을 번 적도 없어. 신문에 이름이 실린 적도 없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인품을 가진 것도 아니야. 그렇지만 그이는 한 인간이야. 그리고 무언가 무서운 일이 그에게 일어나고 있어. 그러니 관심을 기울여 주어야 해. 늙은 개처럼 무덤 속으로 굴러떨어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돼. 이런 사람에게도 관심이, 관심이 필요하다고. 너는 아버지를 미쳤다고 하지만…….

 

윌리의 흥망성쇠는 미국의 경제, 특히 1930년대 대공황과 맞물려 있다. 해피의 말을 빌리자면 최고가 되는 것이 목표이던 시절, 과연 누가 우아할 수 있었겠는가. 한데 이미 그 시절이 지났음에도 우리는 왜 윌리처럼 애면글면, 아등바등하며 곁눈질을 멈추지 못하는가. 존재의 참을 수 없는 촌스러움, 던적스러움이여!

 

-- 네이버캐스트

 

 

-- 연말, 일이 안 되려니 모든 사소한 것들이 단계별로 다 꼬이는군요. 줸장~-_-;;

어쩌면 연관이 없을 수 있지만, 문득, 이 작품이 떠올랐습니다. 미국 문학은, 개인적으론, 소설보다는 희곡이 좀 더 재미있고 또 심오(^^;)한 것 같습니다. 저 글을 준비하며 <세일즈맨의 죽음>도 다시 읽고 더스틴 호프만 주연의 영화도 보고 그랬는데, 무척 감동했더랬습니다.

겸사겸사 미국 지성의 상징이었던 아서 밀러는 '그녀'와 결혼한 걸로도 유명하지요? ^^;  조이스 캐롤 오츠는 '그녀'의 생애를 갖고 엄청 두꺼운 소설도 썼고요. 뭐, 어떤 각도로 어떻게 찍어놔도 예쁘긴 참 예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기만의 방과 돈”:

여성 작가, 아니, 인간에게 필요한 것

-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의 문학에 모더니즘만큼 자주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페미니즘이다. 아마 그녀의 소설보다 더 즐겨 읽힐 법한 <자기만의 방>은 애당초 여성과 픽션이라는 주제를 다룬 강연문이다. 그 때문인지 도입부부터 제법 선언적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해야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 한 가지 의견, 즉 여성이 픽션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것입니다.(10)

 

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도 날카롭게 지적된다. 가령 여성은 연구원을 동반하거나 소개장을 소지해야만 도서관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재산권의 부재와 가난, 출산, 육아, 가사 때문에 지적 활동의 기회도 원천적으로 봉쇄된다. 대체로 남성은 자신의 우월함을 주장하기 위해 여성의 열등함을 증명하는 데 주력해왔으며 여성은 그 희생양이었다. 이쯤 되면 이 책이 오랫동안 페미니즘 비평의 필독서였던 것도 십분 이해된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보다 더 포괄적이고 근본적인 맥락에서 읽힌다.

 

 

 

 

 

 

 

 

 

 

 

 

 

 

 

 

<자기만의 방>은 울프의 문학론이 피력된, 무엇보다도 문학-작가와 현실(환경)의 관계에 대한 성찰이 담긴 책이다. 작가는 작가이기에 앞서 현실이라는 토양에 뿌리를 둔 생활인이라는 것, 문학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 따라서 비단 여성뿐만 아니라 모든 작가에게는 물질적 토대,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숙모에게서 유산을(1년에 500파운드) 상속 받은 뒤 두려움과 쓰라림에서 해방됐다며 울프는 이렇게 쓴다.

 

그 당시의 쓰라림을 기억하건대, 고정된 수입이 사람의 기질을 엄청나게 변화시킨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라고요. 이 세상의 어떤 무력도 나에게서 500파운드를 빼앗을 수 없습니다. 음식과 집, 의복은 이제 영원히 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력과 노동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증오심과 쓰라림도 끝나게 됩니다. 나는 누구도 미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도 나에게 해를 끼칠 수 없으니까요. 또 누구에게도 아부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가 나에게 줄 것이 없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하여 나는 스스로 인류의 다른 절반에 대해 아주 미세하나마 새로운 태도를 취하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59-60)

 

요컨대 은 자유로운 사유와 집필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물론 이 맥락에서 여성은 확실히 고달픈 처지에 있었다. 울프는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가 셰익스피어에게 문학적 재능이 있는 누이동생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라는 가정을 해본다. 그렇다 한들 그녀는 오빠와 같은 대작가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광기에 사로잡혀 파멸했으리라는 것이 울프의 결론이다. 왜인가? 강조하건대, 천재는 일정 부분, 어쩌면 상당 부분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셰익스피어 같은 천재는 교육받지 못하고 노동하며 노예처럼 사는 사람들 가운데서 태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천재는 영국의 색슨족이나 브리튼족에서 태어난 적이 없으며 오늘날 노동 계층에서도 태어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천재가 어떻게 여성들 가운데서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트리벨리언 교수에 의하면 여성들은 아이 방에서 나올 나이가 되기 이전부터 가사를 시작해야 했으며, 그렇게 하도록 부모들에게 강요받고 법과 관습의 강제력에 의해 억눌렸던 것입니다.(75-76)

 

그뿐인가. “여성이 자기만의 방을 갖는 것은 그녀의 부모가 보기 드문 부자이거나 대단한 귀족이 아니라면 19세기 초까지 전혀 불가능한 일”(81)이었다. 공동 거실에서 소설을 써야 했던 제인 오스틴을 생각해 보라. 그에 비하면 울프는 상대적으로 여성에게 우호적인 시대를 살았던 셈이다. 개인적인 여건도 나쁘지 않았다. 비록 공식적으로는 무학이나 다름없지만 그녀의 성장 환경은 상당히 지적이었다. 세간의 편견과는 달리 결혼 생활도 원만했던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그렇기에 그녀는 단순히 페미니즘을 주장하기보다는 남성과 여성의 구분을 넘어 작가로서 바람직한 자세를 갖출 것을 촉구한다. 저 유명한 양성론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기서 책상으로 가로질러 가서 여성과 픽션이라는 제목이 쓰인 종이를 들어 올리며 생각했습니다만, 내가 여기에 쓰게 될 첫 번째 문장은 바로 글을 쓰는 사람이 자신의 성을 염두에 두면 치명적이라는 것입니다. 순전한 남성 또는 순전한 여성이 되는 것은 치명적입니다. 인간은 남성적 여성이거나 여성적 남성이어야 합니다. 여성이 어떤 불평을 조금이라도 강조하거나, 정당한 것이라 하더라도 어떤 대의를 변호하는 것, 어떤 식이건 여성으로서의 의식을 가지고 말하는 것은 치명적인 일입니다.(157)

 

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울프 특유의 부르주아 취향과 건전한 생활 감각이 낳은 현실주의이다. “내가 여러분에게 돈을 벌고 자기만의 방을 가지기를 권할 때, 나는 여러분이 리얼리티에 직면하여 활기 넘치는 삶을 영위하라고 조언하는 겁니다.”(166) 단지 여성, 단지 작가만을 겨냥한 얘기가 아니다. ‘자기만의 방과 돈은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을 향유하기 위해 요청되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20세기 초, 울프가 여성 작가로서 자신의 삶과 문학에서 두루 형상화한 고뇌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럼에도 남존여비와 같은 말이 우스갯소리로 전락한 현 시점에서 그것은 이미 페미니즘이 아니라 휴머니즘의 문제이다.

 

-- 네이버캐스트

 

 

 

울프의 생애와 그녀의 작품(특히 <댈러웨이 부인>)을 갖고 만든 영화. 니콜 키드만이 울프 역을 맡았는데, 그 참혹한 분장이란...-_-;;

 

 

개인적으로 소설 <댈러웨이 부인>보다 더 좋았던 영화 <댈러웨이 부인>. 나이든(즉, 현재의) 미세스 댈러웨이 역을 맡은 바네사 레드그레이브입니다. 아주 옛날 <욕망>(블로우업)에 나왔던 배우인데, 정말 곱게 늙었죠!

 

버지니아 울프의 부르주아적인, 귀족적인 문학을 많이 좋아하지는 않지만 어린 시절 <등대로/세월> 뭐, 이런 작품을 읽으며 정신이 혼미해진 기억이 있습니다. 그녀를 떠올릴 때면 생각나는 작가가 있습니다. 우아한 이미지 탓일까요? ^^; 바로 이분^^;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터치앤업 2015-01-28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읽지않을 때도 편안한 행복을 누리게 하는 럭셔리장소들... 책장, 식탁 , 소파, 책상, 목욕탕 중에서
자기만의 방은 항.....상 침대옆에 두는 친구죠.^^
그냥... 펼치는 페이지를 읽을 때 마다 ...감사하죠.
 

고독 형을 선고합니다”:

인생과 사랑과 고독에 대한 감미로운 스케치

- 프랑수아즈 사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1995년 코카인 소지 혐의로 기소된 프랑수와즈 사강이 한 말이다. 윤기가 흐르는 짧은 금발, 길고 가느다란 목, 약간은 소년 같으면서도 청순가련형의 곱상한 얼굴로 유명했던 사강도 이 무렵에는 이미 환갑이었다. 열아홉 살에 슬픔을 향해 발랄한 인사말을 건넴으로써(<슬픔이여 안녕>)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소녀 작가. 이후 청장년, 중년을 거치며 제법 많은 작품을 썼음에도 우리의 기억 속에는 영원토록 나를 파괴할 권리를 마음껏 향유하는 청춘의 상징처럼 남아 있다. 약물과 마약 중독, 지나친 음주와 흡연, 도박, 목숨까지 앗아갈 뻔한 과속 운전, 두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이혼 등 일련의 스캔들도 소위 사강 신화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그녀가 사망한 이후에도 그녀의 소설이 널리 읽히고 사랑받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전신 컷도 예쁩니다!^^;)

 

가령 그녀가 스물네 살 때 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경쾌한 분량의 연애소설이다. 서른아홉 살의 실내장식가 폴은 꾸준히 다른 여자와의 연애를 일삼는 로제와 6년째 연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 그녀 앞에 스물다섯 살의 청년 시몽이 나타나 열정적인 사랑을 토로한다. 스승인 슈만의 부인이자 14세 연상의 피아니스트 클라라를 사랑한 브람스에게서 은근히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탓일까. 그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물음이 담긴 편지를 보내 그녀를 콘서트에 초대한다. 이 물음, 더 정확히 물음표가 말줄임표로 바뀌면서 폴은 상념에 젖는다.

 

그녀는 브람스의 콘체르토를 듣기 시작했다. 그녀는 첫 부분이 낭만적이라고 여겼지만 음악 중간에는 듣는 것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음악이 끝나고 난 다음에야 그녀는 그 사실을 깨닫고 아쉽게 생각했다. 요즈음 그녀는 책 한 권을 읽는 데 엿새가 걸렸고, 어디까지 읽었는지 해당 페이지를 잊곤 했으며, 음악과는 아예 담을 쌓고 지냈다. 그녀의 집중력은 옷감의 견본이나 늘 부재중인 한 남자에게 향해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자아를 잃어버렸다. 자기 자신의 흔적을 잃어버렸고 결코 그것을 다시 찾을 수가 없었다. (중략) 물론 그녀는 스탕달을 좋아한다고 말하곤 했고, 실제로 자신이 그를 좋아한다고 여겼다. 그것은 그저 하는 말이었고, 그녀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어쩌면 그녀는 로제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한다고 여기는 것뿐인지도 몰랐다.(57)

 

콘서트홀 안에서 폴은 말한다. “내가 브람스를 좋아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시몽의 답은 이렇다. “저는 당신이 오실지 안 오실지 확신할 수 없었답니다. 분명히 말씀 드리지만, 당신이 브람스를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제겐 큰 상관이 없어요.”(59) 둘 모두에게 브람스를 좋아하느냐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사랑도, 삶도 비슷하다.

 

 

 

 

 

 

 

 

 

 

 

 

 

 

 

 

 

폴은 얼마간 시몽과 함께 살기도 하지만 로제가 화해의 손길을 건네자 결국 시몽을 떠나보낸다. 예전처럼 로제를 마냥 그리워하고 기다려야 할 것임을 알면서도 어쩌면 관성 때문에, 어쩌면 정말로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말이다. 한편, 시몽은 폴의 삶 속에 로제가 깊숙이 뿌리박혀 있음을 알면서도 그녀에 대한 사랑을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사랑에 슬픔과 고통을 더하는 것을 은근히 즐기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폴의 집을 나갈 때 그의 눈에 가득 고인 눈물만큼이나 그의 사랑은 진실하다. “삶은 여성지 같은 것도 아니고 낡은 경험 더미도 아니야. 당신은 나보다 열네 해를 더 살았지만, 나는 현재 당신을 사랑하고 있고, 앞으로도 아주 오랫동안 당신을 사랑할 거야. 그뿐이야. 나는 당신이 자신을 천박한 수준, 이를테면 그 심술쟁이 할망구들의 수준으로 비하시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어. 지금 우리의 문제는 로제뿐이야.”(133) 하지만 시몽의 치기 어린 열정은 폴의 삶에 알싸한 자극만 줄 뿐, 본질적인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한다. 브람스를 좋아하느냐마느냐의 물음과 비슷한 셈이다.

 

로제는 어떠한가. 메지(마르셀)와의 관계에 싫증을 느끼고 다시 폴에게로 돌아오지만 여전히 불성실하다. 전화벨이 울리자마자 폴은 그의 용건이 무엇인지 알아차린다. 아니나 다를까 일 때문에 늦을 것이라는 사과 전화이다. 아무래도 문제는 로제를 상대로 계속 사랑의 최면을 걸면서 자발적인 청승에 탐닉하는 폴에게 있는 것 같다. 이 점에서 변호사 시몽이 그녀에게 고독 형을 선고한 것은 타당하다.

 

그리고 당신, 저는 당신을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합니다. 이 죽음의 이름으로, 사랑을 스쳐 지나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당신을 고발합니다. 당신에게도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지만, 고독 형을 선고합니다.”(43-44)

 

그러자 폴은 무시무시한 선고로군요.”라고 말하며 웃는다. 이 웃음이 제법 오랜 여운을 남긴다.

 

폴은 작가가 15년 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창조해낸 인물이다. 청춘의 절정을 구가하던 사강에게 고독 형이 과연 진정으로 무시무시한 선고였을까. 오히려 진정한 고독이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고독에 대해 생각하고 쓰는 것을 즐겼던 것이 아닐까. 말하자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고독마저 감미로운청춘 시절에만 쓸 수 있는 소설이다. “나를 파괴할 권리를 멋지게 행사하기 위해서는 우선 멋지게 파괴될 만한 가 있어야 하는데, 그 역시 청춘에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 네이버캐스트

 

-- 사강은 외모에서 풍기는 청신한 이미지가 워낙에 매력적이어서 오히려 소설이 얄팍해 보이는(실제로도 좀 그렇죠?^^;) 감도 있습니다. 뭐, 그녀 자신도 자기가 어떤 소설을 쓰는지는 알고 있었을 테고요 ^^;

-- 맨 앞에 인용한 사강의 말, 우리 모두 좋아했던, 소설가 김영하의 데뷔작에 제목을 제공했죠? 새 판본이 나왔음에도 저는 역시 처음 표지가 좋네요 ㅎㅎ 영원히 젊을 것 같던 김영하(그에게서는 왠지 하루키 냄새가 납니다만^^;)도 마흔을 넘긴 지 오래...ㅠ.ㅠ 

 

 

 

 

 

 

 

 

 

 

 

 

 

 

 

 

사강의 소설이 계속 언급되는 이런 일본 영화도 있지요?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2-11-18 22: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19 16: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인간, 파멸할 수는 있어도 패배할 수는 없는 존재!

-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1952)

 

 

 

열아홉 살에 전쟁을 경험했고 스물두 살에 결혼했으며 스물네 살에 아버지가 되었고 바로 그 나이에 직업 작가가 된 헤밍웨이.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로 스물일곱의 나이에 일약 스타덤에 오른 그는 <무기여 잘 있어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내놓으면서 문학적인 명성과 대중적인 인기를 한 손에 거머쥔다. 작가의 개인적 체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이 전쟁 로맨스들은 수차례에 걸쳐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사실 헤밍웨이는 그의 분신들을 연기했던 웬만한 할리우드 배우 못지않은 미남이었다.

 

그 때문인지 그 스스로 기꺼이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했으며 적어도 그것에 길들여졌다. 네 번에 걸친 결혼과 화려한여성 편력, 역동적이고 남성적인 취미들(권투, 낚시, 사냥, 투우 관람 등), 잦은 전쟁 체험(그는 주로 종군 기자였다), 모험을 향한 추구와 역마살. 그가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전설과 신화가 만들어졌고 그 출처는 많은 경우 그 자신이었다. 오죽하면 헤밍웨이가 자신의 사망 소식을 전하는 신문을 들고 있는 사진까지 있을까. 이런 영웅과 같은 인기 작가가 십여 년간 침체기를 겪고서 1952년 쉰 살을 넘긴 노인이 돼서 돌아왔다. 헤밍웨이 특유의 압축적이고 간결한 문체가 돋보이는 소설 <노인과 바다>를 들고서 말이다.

 

 

 

 

 

 

 

 

 

 

 

 

 

멕시코 만류에서 낚시를 하는 늙은 어부 산티아고는 벌써 팔십사일 째 물고기를 한 마리도 낚지 못했다. 그를 잘 따르는 소년 마놀린도 부모의 강권 때문에 노인의 배에 타지 못하게 됐다. 노인은 혼자 낚시를 떠난다. 스스로도 운이 다 됐다고 생각하지만 거대한 청새치 한 마리가 걸려든다. 이 녀석을 쟁취하기 위한, 혹은 지키기 위한 노인의 사투가 시작된다. “오늘이 가기 전에 난 너를 죽이고 말 테다.”(55) 이렇게 다짐하는 늙은 어부의 감정은 양가적이다. 요기를 할 때는 녀석이 굶주릴 것이라는 생각에 연민을 느끼고, 캄캄한 밤, 잠이 들 때는 녀석 역시 휴식하길 바란다. 그러다 고기가 나를 데려가고 있는 건가, 아니면 내가 고기를 데려가고 있는 건가.”(100)하고 자문하기에 이른다.

 

 

 

정녕 어느 새인가 청새치와의 투쟁은 둘이 함께 하는 아름다운 항해로 바뀌어 있다. 그 때, 진즉부터 주변을 맴돌던 상어 떼의 습격으로 인해 이 유일한 동반자를 잃게 된다. 그럼에도 노인은 절망이 아닌 희망을 얘기하고 밀려드는 죄책감을 다스린다. “죄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말기로 하자. 그런 것을 생각하기에는 이미 때가 너무 늦었고, 또 죄에 대해 생각하는 일로 벌어먹고 사는 사람도 있으니까 말이야. 죄에 대해선 그런 사람들에게나 맡기면 돼. 고기가 고기로 태어난 것처럼 넌 어부로 태어났으니까.”(107)

 

천생 어부이고자 하는 그의 노획물은 그러나, 앙상한 등뼈와 뾰족한 주둥이와 시커먼 머리통만 남겼을 뿐이다. 노인은 사람들의 조롱을 뒤로 하고 소년이 지켜보는 가운데 잠이 든다. 꿈속에서 그는 바다로 나가기 전, 또 낚시를 하는 동안 계속 그리워하던 사자를 본다. 소년 시절에 가보았던 황혼녘의 아프리카 해변을 뛰노는, 새끼 고양이 같은 사자들. 이것이야말로 낙원의 상징일진대, 노인의 삶은 잇따른 실패와 불운에도 불구하고 결코 비극이 아니다. 소설의 바깥, 작가의 삶은 어떠한가.

 

<노인과 바다>를 발표한 이후 헤밍웨이는 노벨상까지 거머쥐었다. 하지만 정작 그의 삶은 각종 사고와 후유증, 각종 질병과 그 치료 과정에서 발생한 부작용 때문에 극도로 피폐해졌다가 1961년 엽총 자살로 마감된다. 과연 사냥꾼의 마지막 먹이는 자기 자신”(제프리 메이어스, <헤밍웨이>, 2, 899)이던가. 사실 헤밍웨이는 자신의 삶을 문학의 제단에 갖다 바치는 고행자-순교자 유형이라기보다는 삶과 문학을 동시적으로 소비하고 향유하는 유형에 속했으며 그의 작품 역시 동시대의 몇몇 걸작에 필적할 만한 깊이와 무게를 갖추지 못했다.(제프리 마이어스, 916) 그러나 그에게는 대학과 도서관에서 쌓은 지식과 교양 대신 자연과 역사의 현장에서 얻은 산 체험이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그의 문학은 그가 자살로써 완성한 인생과 어우러지면서 진정성을 획득한다. 흐루쇼프 집권 시절, 이른바 해빙기의 소련에서는 그를 모방한 텁수룩한 턱수염과 점퍼 차림이 유행했다. 헤밍웨이라는 이름은 그 자체로 자유로운 정신과 삶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오십여 년이 지났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의 이름에, 바다 위에서 물고기와 바다 새를 향해 미친 듯 혼자 주절대는 늙은 어부에게 열광한다. ‘노인이 주인공임에도 소년이 더 많이 읽는 <노인과 바다>. ‘소년이길 멈추기 위해 필요로 했던 이 소설을 우리는 언젠가 기필코 노인이 되기 위해 또다시 읽게 될 것이다. 한 시절에는 그 역시 소년이었던 산티아고 노인의 말은 그때 더 소중하게 들릴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104)

 

-- <책&>

 

-- 올해 헤밍웨이 저작권이 소멸돼서 그의 소설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는데요, 오랜만에 쭉 다시 보니 나름 새롭더라고요. 글쎄, 소설 자체가 걸작이라는 생각은 안 들었으나, 인물이 참 좋지요? ㅎㅎ 어릴 때 봤던, <주말의 명화>(?)와 같은 이런 프로에서 소개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이런 영화도 떠오르고요.  낡은 티브이 앞에 코를 박고서 봤던 것 같은데요...^^;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이에자이트 2012-11-18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소니 퀸 주연의 노인과 바다 영화는 1990년 작품이니까 우리나라 텔리비전에서 방영한 것은 그보다 몇 년 뒤죠. 어린 시절 보신 노인과 바다는 스펜서 트레이시(1900~1968) 주연의 1958년 작품일 것입니다.

민음사 책 번역하신 분 맞죠? 종종 놀러오겠습니다.

푸른괭이 2012-11-19 16:38   좋아요 0 | URL
예, 차려놓은 건 별로 없지만 자주 오세요^^; 그런데 제가 밑에서 언급한 영화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랍니다.^^;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31 | 32 | 33 | 34 | 35 | 36 | 37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