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테르부르크, 환시를 보다
1. 부활에 관하여: “주님!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벌써 냄새가 납니다.”
노작가가 130년 만에 음습한 지하 골방에서 나왔다. 싸늘한 공기에 오한이 일고 한낮의 햇살에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그는 갓 세상에 나온 아이처럼 간신히 눈을 떴다. 정신이 멍했다. 아니, 나는 분명히 죽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눈이 뜨일 수 있지? 이어 그는 자리에 앉은 채로 손발을 살피며 움직여보았다. 볼도 꼬집어보았다. 몸뚱어리는 물론 통증마저 버젓이 존재했다! 그는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았다. 즉, 살아생전 그의 믿음대로 완전한 소멸이란 없었다. 거봐, 죽고 나면 부활한다니까, 헤헤. 그는 히죽거렸다. 아무래도 매장을 한 건 잘 한 일이었어. 태워버렸으면 부활도 못하고 큰일 날 뻔했잖아.
노작가는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했다.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오랫동안 안간힘을 쓴 뒤에야 간신히 두 발로 설 수 있었다. 하지만 걸음을 떼기는커녕 몸을 지탱하기도 힘들었다. 그는 판판한 묘석 위에 드러눕듯 걸터앉았다. 이런, 부활한다 함은 가장 젊고 아름다운 모양새로 생명을 다시 얻는 것이 아니었나? 하지만 그의 모습은 죽기 직전 그대로였다. 수염과 머리카락은 성글고 푸석푸석했으며 허연 손등에는 거뭇거뭇한 반점과 쭈글쭈글한 주름이 번져 있었다. 입술 주변에는 간질발작을 할 때마다 물었던 게거품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어라, 폐동맥이 파열돼서 죽었는데, 이건 또 뭐람? 노작가는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마냥 투덜대고 있을 여유도 없었다. 부활한 작가들의 모임에 가려면 서둘러야 했다. 행색이 마음에 안 든다고 빠질 수도 없었다. 세상에 나올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기 때문이다.
칼바람이 너무 거세 걸음을 떼기도 힘들었다. 2월초, 페테르부르크, 혹한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였다. 그나마 죽은 것도 이맘때여서 옷가지는 두터웠다. 한데 서너 발짝도 채 옮기기 전에 노작가는 갑자기 요의를 느꼈다. 오랫동안 망각했던 이 욕구가 한편으론 생경하고 또 한편으론 신통방통했다. 그는 슬그머니 주위를 둘러본 다음 자신의 동상을 둘러싸고 있는 쇠창살을 조심스레 붙잡고 바지춤을 끌렀다. 샛노란 오줌이 콸콸 쏟아지면서 삼십 센티는 족히 쌓인 눈 더미를 거침없이 뚫었다. 그 동안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는 처지였는데 어떻게 이렇게 많은 오줌이 몸속에 고여 있을 수 있을까. 노작가는 정말 놀라웠다. 부활이라는 것이 이토록 철저하게 유물론에 지배된다니! 이제 갈증과 허기가 동시에 찾아왔다. 점입가경이었다.
“역시 육체를 갖는다는 것은 불편한 일이야. 만족시켜줘야 되는 욕망이 한 두 개라야 말이지, 젠장.”
노작가는 혼잣말을 중얼대며 혀를 끌끌 찼다. 한데 자기 무덤 앞에는 꽁꽁 언 카네이션과 장미 몇 송이만 초라하게 얹혀 있는데 저쪽 차이코프스키의 무덤 앞에는 음식이 놓여 있었다. 그는 예의 그 욱하는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질투심에 이를 갈았다. 뱃속에서는 간만에 소생한 위액들이 밥을 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고픈 배를 한 손으로 부여잡고 거의 기다시피 해서 가보니 빵은 물론 연어알과 소시지, 햄, 치즈도 살짝 얼어 있었다. 설마 상한 건 아닐 테지? 하긴 얼었으니 그럴 리는 없겠군. 아뿔싸, 이러나저러나 나는 이미 죽은 몸, 더 이상 무엇을 두려워하랴! 노작가는 하이에나 같은 추잡스러움과 게걸스러움을 뽐내며 남의 무덤 위에 차려진 음식을 다 먹어치웠다. 종이컵에서 반쯤 얼어버린 보드카도 그 맛이 기가 막혔다. 깊고 굵은 트림이 올라왔다. 이 길고 둔중한 울림 속에 인간과 세계의 비밀이 오롯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역시 진리는 술 속에 있는 거야, 암. 노작가는 터벅터벅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간혹 노작가의 축 처진 주름덩어리 살들이 출렁거렸다.
2. 타자는 지옥: “도무지 가까이 있는 사람을 사랑할 수 없어!”
네프스키 거리, 레스토랑 ‘수정궁’, 저녁 6시 경.
러시아문학사에 안치된 대가들이 하나둘씩 몰려들었다. 위대한 망자들의 향연이 시작됐다.
“죽어도 젊어서 죽을 일이야. 늙어 죽었더니 이런 잔치에 한 번 나오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구먼.”
이렇게 엄살을 떨며 잔치판으로 들어선 자는 노백작 톨스토이였다. 그는 아스타포보 역에서 마지막 숨을 내쉬던 때의 복장 그대로 허름한 농민 복장에 보따리를 두르고 있었다. 지팡이도 짚고 있었지만 그냥 멋이었다. 팔순을 넘긴 나이에도 그의 허리는 여전히 꼿꼿했으며 눈에는 정염의 불꽃이 이글거리고 뺨에는 홍조가 어리어 있었다. 세월도 타고나길 무쇠 같았던 그의 체력을 별로 망가뜨리지 못한 것 같았다.
“젊어서 죽은 놈이 더 골치야. 생각 좀 해보게, 이 도덕군자 양반, 오죽하면 젊어서 죽었겠나? 필경 죽을병에 걸렸을 테니 그 몰골이 얼마나 추하겠나.”
서른일곱 살의 비평가 벨린스키의 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낭만주의 소설 속의 병약한 주인공의 몰골을 한 채 연신 캑캑거리며 각혈을 해댔다. 하얀 손수건이 금방 붉게 물들었다.
그때 문단의 원로인 고골리와 푸쉬킨이 나타났다. 8대 2 비율로 정교하게 옆 가르마를 탄, 뾰족하고 커다란 코의 얼굴과 곱슬곱슬하고 윤이 반들반들 나는 원숭이 수염을 가진 얼굴은 아무래도 영원히 한 쌍인 것 같았다. 말년에 정신이 나가 기괴한 단식 끝에 굶어죽은 고골리는 힘이 없어 비실댔고, 푸쉬킨은 결투에서 총상을 입은 지라 비틀거렸다.
곧이어 투르게네프의 등장! 그는 오랜 유럽 생활로 다져진 세련된 자태와 빛나는 미모를 뽐내며 잔치판으로 들어섰다. 진즉에 환갑을 넘겼건만 젊었을 때의 습관 그대로 화려한 프릴 장식이 달린 최신 유행의 와이셔츠를 입고 있었다. 오늘 모임을 위해 네일 아트, 헤어, 메이크업 등에도 유달리 신경을 쓴 것이 보였다. 화장은 거의 분장 수준에 가까워, 암을 앓았던 흔적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투르게네프를 보자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예의를 갖추었다. 때문에, 별로 크지 않은 키에 어깨만 보기 싫을 만큼 떡 벌어진 도스토예프스키가 쭈뼛쭈뼛 들어오는 것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투르게네프 선생은 나이를 거꾸로 드시나 봅니다. 미중년, 꽃중년이 따로 없군요!”
한 시간쯤 전에 도착하여 자리를 지키고 있던 노시인 네크라소프가 운을 뗐다.
“나이를 거꾸로 먹는 것이 아니라 아예 안 먹고 있습니다. 죽고 나니 이 점 하나는 좋군요, 허허.”
투르게네프는 미소를 지으며 점잖은 어투로 응수했다. 한편 도스토예프스키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구석에 앉아 인상을 팍 쓰고 있었다. 영락없이 꿔다 놓은 보릿자루에 이제 막 상경한 촌뜨기 시골 쥐, 그것도 열패감에 사로잡힌 시골 쥐의 행태였다. 이런 비사교적인 태도가 귀족 작가들 눈에는 제법 거슬릴 법했다.
“그나저나 체호프 선생은 안 오신답니까?”
투르게네프가 좌중을 향해 물었다.
“거, 젊은 양반이 꽤나 잘 쓰는 것 같던데.”
다들 그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역시나 도스토예프스키만 계속 똥 씹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체호프에게 불만이 있을 리는 물론 없었다. 그저 이런 유의 사교 모임을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당최 왜 왔느냔 말이다! 전 인류를 내 가슴에 껴안고 총체적인 화해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아니, 솔직히 말해, 지하의 고독과 소외를 견디지 못해 돌파구를 찾기 위해? 그의 머릿속에서는 오래 전에 자기가 휘갈겨 쓴 말들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분명히 무덤 속에 있을 때는 이 자들이 그리웠는데, 정작 이렇게 만나니 왜 이리 싫은 걸까. 투르게네프의 저 화장품 냄새, 머리가 깨질 것 같다. 톨스토이 백작은 또 어떻고. 그냥 한 자리에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불편하고 괜히 약이 오른다. 살아생전에 한 번도 안 만난 것이 차라리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소문대로 정말 추남이군. 하지만 그러는 나는? 영락없이 소크라테스의 골상(骨相)인걸. 에잇, 할 수 없다, 지하로 돌아갈 수밖에!
도스토예프스키는 샴페인 잔을 조용히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홀의 뒷문으로 나온 탓에 그가 증발한 줄은 아무도 몰랐다. 또 관심도 없었다.
3. 지하의 수기: “지하 만세!”
레스토랑 ‘수정궁’을 빠져나온 노작가는 센나야 광장의 지하 술집을 찾아갔다. 그는 제일 구석진 곳의 자리로 가서 앉았다. 보드카가 나왔다. 그는 혼자 홀짝홀짝 술잔을 기울이며 오이피클을 아작아작 씹었다. 금방 취기가 돌았다. 삼삼오오 떼를 짝을 지은 군중들이 하나 같이 처량해 보였다. 구원! 또 이 단어가 떠올랐다. 그리고 숨을 놓기 직전까지 열심히 구상했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2부가 그의 뇌수를 간질였다.
그 순간 그는 지금 자신의 모습이 술집에 앉아 있는 라스콜니코프를 닮지 않았나 싶었다. 스물넷의 청춘, 몹시 여위었음에도 젊음과 힘이 넘쳐나는 팔다리, 파리하면서도 앳된 얼굴, 삶이 열기로 번득이는 두 눈, 자기만의 몽상에 몰입할 수 있는 힘…. 하지만 실제 그의 몰골은 며칠째 노숙 생활을 한 다음 딸내미가 몸을 팔아 번 돈으로 술을 퍼마시고 있는 마르멜라도프에 더 가까웠다. 슬라브족 특유의 하얗고 푸석푸석한 얼굴은 바늘로 찌르면 피를 뿜어낼 것 같은 위태로운 분홍색으로 바뀌었고, 흐리멍덩한 두 눈은 취기로 인해 시뻘겋게 충혈 됐다. 몸에도 점점 힘이 빠져갔다. 결국 그는 탁자 앞에 엎어지듯, 빈 부대 자루처럼 찌그러져 버렸다. 그 모습이 너무 초라했기 때문에 말을 걸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그러나 내 사정도 제법 구차했다. 나에게도 나만의 지하가 있었던 탓이다.
페테르부르크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지 어언 7년. 나는 계속 비정규직 대학 교원, 즉 시간 강사의 삶을 살았다. 좀 과장하면, 좌절의 연속이었다. 그 설움이 엉뚱하게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유감으로 나타났다. 그 사이에 여러 편의 단편소설과 한 편의 장편 소설을 썼다. 단편은 청탁이 들어오지 않았고, 장편은 출간해주겠다는 출판사가 없었다. 역시나 좀 과장하자면, 열패감에 사로잡힌 지하인 신세였다. 그 소설이 하필이면 <죄와 벌>을 패러디한 것이라, 도스토예프스키를 향한 애증은 한층 더 커졌다.
그러던 어느 날, 통장 계좌에 어마어마한 숫자가 찍혔다. 내가 번역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세 권의 인세가 한꺼번에 입금된 것이었다. 이 인간이 병 주고 약 주는구나! 솔직히, 눈이 빙글빙글 돌았다. 황홀경에 사로잡힌 나는 어느 일본영화 속의 주인공 흉내를 내보았다. 우선 세계지도 한 장을 샀다. 그리고 눈을 감고서 손가락을 놀려가며 한 장소를 골랐다. 내가 은근히 바란 곳은 그린란드나 빈란드처럼 왠지 한 번 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 같은 곳이었다. 하지만 눈을 떴을 때 내 손가락은, 정말 안타깝게도, 페테르부르크에 찍혀 있었다.
한겨울의 페테르부르크라니! 추억 속에서나 거룩하지, 실제 현실 속에서는 혹한과 눈보라와 늪 같은 눈밭을 견뎌내야 하는 최악의 시공간이었다. 그렇다고 유학 시절처럼 방구석에만 처박혀 있을 수는 없어서, 거의 군장이나 다름없을 만큼 철저히 중무장을 하고서 센나야 광장으로 나갔다. 얼마나 걷지도 않아 코끝을 면도날로 박박 긁는 것 같은 통증이 찾아왔다. 나는 라스콜니코프와 마르멜라도프가 술을 마셨을 것으로 짐작되는 지하 술집으로 들어갔다.
사흘을 연거푸 출몰한 탓에 주인장은 심드렁했다. 그 심드렁함이 예나 지금이나 참 좋았다. 나는 구석 자리에 앉아, 독한 맥주 한 잔에 각종 빵과 파이를 잔뜩 주문했다. 버섯과 고기가 들어간 파이를 우걱우걱 씹고 있을 때였다. 이 음습한 지하로 ‘그’가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과연 ‘그’일까?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그’는 이미 시체마저도 썩어문드러졌을 옛날 작가가 아닌가. 혹시 ‘그’를 숭배하여 ‘그’를 모방한, 심지어 러시아식으로 참칭하려 드는 미치광이는 아닐까? 이러나저러나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별달리 할 일도 없잖은가.
4. 소멸과 불멸에 관하여: “우리 두 존재는 무한 속에서 만났습니다…”
“저어기, 도스토예프스키 선생 맞으시죠?”
그는 푹 수그렸던 고개를 들어 올렸을 뿐, 가타부타 대꾸는 전혀 없었다. 그래도 나는 용기를 내어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는 역시나 묵묵부답에 무반응이었다.
“혹시 방해가 된 건 아니겠지요?”
묻는 사람 민망하게 이번에도 침묵뿐이었다. 취기와 피로에 전 게슴츠레한 눈빛 때문인지 그 침묵이 제법 시적으로 느껴졌다. 아, 그렇다. 어딘가 애처롭고 우스꽝스러운, 그렇기에 더 절절한, 침묵하는 그리스도! 평생 그리스도의 소설적 형상을 만들려고 애쓰더니 절로 그리스도의 모상이 됐나. 이쯤 되면 인신 공양 끝에 탄생한 등신불이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힘든 걸음을 다 하셨습니까? 하긴 저도 제법 멀리서 왔지만 이반 카라마조프의 악마처럼 무한의 시공간을 넘어온 선생만 하겠습니까! 그래, 무슨 일로 여길 다시 오셨습니까? 그냥 세상을 한 번 둘러보시려고요? 하긴 선생이 소설로써 구원하고자 했던(당최 이런 꿈은 소설가가 꾸기엔 너무 가당치 않지만) 세상이 1881년 이후에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하셨겠지요. 흠, 그래, 이렇게 와 보시니 어떻습니까? 사실 페테르부르크는 19세기 이래로 별로 발전한 것이 없어요. 선생이 살아 있을 때만 해도 근대의 명암이, 온갖 미덕과 악덕이 공존하던 이곳이 이제는 살아 있는 박물관처럼 됐거든요. 그러니 라스콜니코프의 니힐리즘이나 그런 유의 범죄는 찾아볼 수가 없지요. 아니, 대체로 뭔가 그럴 듯한 사건 자체를 찾기가 힘들답니다. 지금 태어났으면 아무리 선생이라도 별 수 없었을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예? 이런, 계속 아무 말씀도 안 하실 겁니까? 아, 거참, 괜히 과묵한 척 하시네….”
정녕 혼자 애가 달아 설치는 꼴이었다. 나는 그가 제발 무슨 말이든 해주길 바랐다. 흠, 과연 무슨 말이 나올까나? 「대심문관」에 묘사된 것처럼 그리스도의 기나긴 침묵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것은 촌철살인의 키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기대와는 달리, 술 취한 그리스도는 졸지에 수다스러운 대심문관이 됐다.
“과묵이고 뭐고 시끄러워! 다들 인생이란 것이 뭔가 대단한 것인 양 떠들어대지만 참 별 것 없어. 오죽하면 부활을 해봐도 똑같을까. 겉모양새야 좀 변했을지 몰라도 본질적으론 살아생전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걸. 무덤 뒤의 세상이 무덤 전의 세상과 똑같다면, 무덤 뒤에는 차라리 어둠만 있는 것이 낫겠어. 다들 어쩔 수 없이 죽어야 되는 것이 서럽고 억울하니까 이것저것 상상해보지만, 아무래도 스비드리가일로프의 말이 명언이야. 내세란 옹색하고 지저분한 시골 목욕탕 같아, 거미줄이 덕지덕지 쳐진. 흠, 이런 걸 다 생각해 내다니, 나는 가히 천재야! 아니, 천재는 무슨! 먹고 살려고 평생 죽도록 쓰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지. 아무리 그래도 내 소설이 이렇게까지 읽힐 줄이야. 뭐, 잘 쓰긴 잘 썼지. 내가 봐도 놀랍다니까. 아니, 잘 썼다기보다는 독특하다고 할까. 하긴 어찌나 독특했는지 톨스토이 백작은 아주 대놓고 내 소설을 씹어댔지, 소설 같잖다고….”
꼬인 혀를 타고 말들이 마구잡이로 쏟아졌다. 표도르 카라마조프가 코냑을 홀짝홀짝 마시며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눅눅하고 음탕한 넋두리를 연상시키는 횡설수설이었다. 바로 이 노인이 슬라브족 특유의 매력을 뽐내는 마성적인 광기에 사로잡힌 이지적인 청년들의 아비이다. 문득 가슴이 뭉클해온다.
페로프가 그린 초상화 속의 그는 소설가 이상의 소설가, 거의 예언자처럼 보인다. 악의 심연을 들여다본 자, 동시에 신의 배꼽을 간질여본 자랄까. 여하튼 그것은 무한한 거리감을 안겨주는 얼굴이다. 반면 지금 내 앞에 구겨지듯, 널브러지듯 앉아 멍한 시선을 어딘가 애매한 곳에 던져 놓은 이 얼굴은 인간적임과 동시에 참 소설가답다. 후줄근하고 익살스러운, 돈키호테 같은 노인네, 꽤나 마음에 든다. 그는 말에 걸신들린 자답게 계속 웅얼대고, 나는 그의 말보다는 그 말이 흘러나오는 분위기를 만끽한다. 어차피 말이라면 그의 소설 속에 충분히 들어 있으니까.
* 소제목 인용 문구 출처:
1. <죄와 벌>: 소냐가 라스콜니코프에게 읽어주는, 복음서의 나사로의 부활 부분.
2.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이반 카라마조프가 알료샤에게 하는 말.
3. <지하로부터의 수기>: 주인공-화자의 말.
4. <악령>: 샤토프가 스타브로긴에게 하는 말.
(<대산문화>. 2011년 봄호. <가상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