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잇, 오늘 엄마 힘들다니까! 뼈다귀나 먹어, 얼른!”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선글라스 아줌마는 자기에게 달려들어 긴 혀로 얼굴을 핥아대는 누리를 선뜻 내치지 못했다. 누리는 뒷발로 땅을 짚고 앞발을 든 채 서 있었고, 그녀의 몸은 누리에게 가려 잘 보이지도 않았다.
“아, 저 개 말입니까?”
낯선 남자의 목소리에 선글라스 아줌마는 개를 떼어 내고 고개를 돌렸다. 키가 크고 깡마른 젊은 아가씨가 보였다. 복덕방 아저씨도 옆에 있었다.
“집 보러 온 사람입니다.”
“우아, 개 정말 크다! 이리 와, 이리 와봐!”
소영이는 어린 계집애처럼 종종 걸음을 치며 누리를 향해 다가갔다. 겁을 먹기는커녕 내가 너를 좋아하는 만큼이나 너도 나를 좋아하리라는 확신에 찬 행복한 표정이었다. 누리는 눈꼬리가 축 처진 커다란 눈을 잠시 굴리더니 이내 아가씨를 맞이했다.
“이거 골든 레트리버죠? 그것도 순종인 것 같은데요?”
떡붕어 아저씨가 선글라스 아줌마를 쳐다보며 물었다. 이렇게 누추한 Y섬에, 또 이렇게 허름한 집에 족보도 좋은 영국산 개가 있는 것이 다소 의아했다. 더욱이, 날도 아직 훤하건만 술 냄새를 풍기는 중년 여자 옆에 붙은 맹인견이라니.
“예, 뭐 그런 거 맞아요.”
“아줌마, 이거 여자애야, 남자애야?”
소영이의 질문에, 더 정확히 너무도 어린애 같은 몸짓과 표정에 선글라스 아줌마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녀는 소영이와 떡붕어 아저씨를 번갈아 보며 말을 이어갔다.
“이렇게 늠름하게 생겼어도 여자야. 전에 누리 주인이 교미 시키려고 저어기 포항에서 수컷을 한 마리 데려왔는데, 영 잘 안 됐어요. 얘도 영영 애를 못 낳을 거예요. 개는 주인을 닮는다잖아요?”
딱히 술기운이 돌아서는 아니고, 그저 습관적으로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역시나 또 습관적으로, 눈앞의 이 얼빠진 처자가 조금만 더 어렸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들었다.
복덕방 아저씨는 손님들을 2층으로 안내했다. 방은 겨우 두 칸이었고 큰 방 작은 방 할 것 없이 무척 작았다. 소영이는 벽에 손을 짚고 힘을 주었다. 그대로였다. 옷장 문을 열어보고 싶어도 옷장이랄 것이 없었다. 화장실은 마루 끝에 있었다. 방에 비하면 넓은 편이었지만 벽이 얇은 탓인지 한데 기운이 그대로 들어왔다. 조그만 창문을 열고 바깥을 보았다. 맞은편 족발 가게 간판과 그 옆에 늘어선 가게, 그 뒤로 교회의 십자가가 보였다. 치렁대는 머리채 계단 따위는 물론 찾을 수 없었다. 마법의 성은 이제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바로 그날 떡붕어 아저씨와 소영이는 새 집으로 들어왔다. 선글라스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도배를 하고 장판을 새로 깔았다. 세간을 사는 일은 선글라스 아줌마가 도와주었다. Y섬의 오붓한 집에서의 삶이 시작됐다. 방문만 열어도 넓고 푸른 바다가 펼쳐지고 크루즈호 떠나는 소리가 수시로 들리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