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교실에서 숨이 막혀 죽을 지경이었다. 새벽부터 불려 나와 수업을 하느라 힘들었던 탓에, 낮잠을 자며 쉬는 시간을 때우는 아이들도 있었다. 이런 아이들은 곧바로 교장의 호출을 받았다. 담임교사 역시 호된 꾸중을 들어야 했다. 도무지 이 교장은 쉬는 시간에도 쉬지 않고 학교 안을 순찰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야말로 이 위대한 민주주의 사회의 가장 세련된 시민이요 국민을 위해 무조건 봉사하는 공무원이요 덧붙여 아이들을 위해 몸과 마음을 희생하는 뛰어난 교육자이자 타의 모범이 되는 귀감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교장이 속편한 자기기만에 빠져 시대착오적인, 정말 촌스러운 정책을 실행에 옮기고 있을 때 특수교사가 중병에 걸렸다. 도르래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 교실은 무척이나 황량했다. 병가를 낸 특수교사의 자리는 특수보조교사가 지켰다. 드디어 그녀가 주인공이 되는 시간이 찾아왔다.

 

그녀는 코바늘뜨기, 대바늘뜨기에 이어 퀼트에 푹 빠져들었다. 교장은 그것을 근무태만이라 꾸중하며 연일 징계를 내리겠다고 협박했다. 보조교사는 억울했다. 특수교사가 없기 때문에 보조할 일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처지를 윗사람에게 하소연하는 것은 비굴하고 누추한 일이었다. 그녀는 차라리 혼자 속으로 억울함을 삭히면서 더 큰 사랑과 희생을 베풂으로써 교장을 감화시켜야 된다고 생각했다. 명예욕에 눈이 먼, 불운한 가정생활로 인해 괴로워하는 불쌍한 교장에게 하느님의 크나큰 사랑을 보여주자. 그러고는 저 괄괄한 교장 부인을 위해 벽걸이, 가방, 냄비 받침, 주방용 장갑 등을 만들어 갖다 바치기도 했다. 그것이 효과가 있어, 교장 부인은 교장을 갈구는 수위를 약화시켰다. 사실, 출근해서 식사 때를 제외하곤 절대 교실 밖을 나가지 않는 그녀의 무던함과 묵묵히 퀼트에 몰입하는 뚝심은 높이 사줘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특수반은 여교사들의 사랑방이 됐고, 다들 여기 모여 너나할 것 없이 퀼트를 했다.

 

이런 상황에서 특수반에 인턴교사가 배정되었다. 교장은 인턴교사를 감시하기 위해 아주 작정을 하고서 수시로 특수반을 찾았다. 그리고 항상 그녀의 근무태만을 꾸짖었다. 서른을 목전에 둔 인턴교사는 정말 억울했다. 일을 하기 싫어서 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정말로 할 일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그녀라고 이런 깍두기 인생이 달가울 리 없었다. 결국 그녀는 완곡하나마 자기 처지를 하소연하기에 이르렀다.

아이는 셋밖에, 아니 둘밖에 안 되는데 선생님은 둘이나 되고.”

그럴수록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힘써야지!”

슬슬 노처녀의 반열에 올라서게 된 그녀는 목구멍 너머로 히스테리가 밀려오는 것을 꾹꾹 집어 삼켰다.

하다못해 일지라도 쓰면 될 거 아니요?”

물론 일지를 써야지요. 하지만 도대체 무슨 얘기를 써야 될지.”

여기서 교장도 숨이 턱 막혀왔다. 퀼트 감을 옆에 둔 채, 다소곳이, 하지만 오만하게 서 있는 보조교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 보다시피 우리 인턴교사가 모르는 게 많으니, 잘 지도하도록.”

 

보조교사는 정말로 성심성의껏 인턴교사를 지도했다. 보다 효율적으로 퀼트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아이들을 교육하는 것은 전부 인턴교사 차지가 됐다. 물론 아이들은 정반대로, 자기들 쪽에서 이 불쌍한 왕따선생님을 거두어 준다고 생각했다. 숙제도 해왔다.

 

, 아름이가 먼저 읽어볼래?”

소영이 언니가 읽으면 안 될까?”

?”

소영이 언니가 나보다 더 잘 읽으니까.”

그러자 인턴교사는 소영이를 보며 고개를 까딱했다.

제목은 요일!”

요일? 그래, 이제 작문해온 걸 읽어봐.”

어제는 화요일입니다. 오늘은 수요일입니다. 내일은 목요일입니다. 일주일은 무엇일까요?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이지요.”

? 그게 다야?”

인턴교사가 웃음을 참으며 물었다.

요일이 더 없는 걸 그럼 어떡해?”

, 이제 아름이?”

에이, 나 글자 못 쓰는 거 알잖아? 그래서 내가 소영이 언니한테 불러준 거야, 헤헤.”

인턴교사는 오늘의 일지를 요일이라는 작문으로 채웠다. 방학 전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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