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의 기둥과 지붕이 새카맣게 타버렸다. 교장은 아침 조례로는 모자라 특수반 아이들과 담당 교사들을 교장실로 따로 불렀다. 아름이는 여기저기 반창고를 붙이고 다리를 절룩거리며 나타났다.

윤은학! 너는 최고참 학생으로서, 민주주의학습단지의 건설 요원으로서 후학들을, 동생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지는 못할망정 불장난이나 주동해서 쓰겠나?”

은학이는 스스로도 책임을 통감한다는 듯 비통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머릿속에선 그건 불장난이 아니라 소꿉장난이었다, 소꿉장난을 하려면 불을 붙여야했다, 이것도 놀이의 일종이다, 아이들은 놀면서 크는 거다, 등의 말이 열심히 쓰였다.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교육의 지표로 삼아 왔건만, 도대체 지금껏 여기서 뭘 배운 거냐? 소꿉놀이는 또 뭐냐? 학생의 본분은 공부이거늘 도대체 정신을 어디 두고 사는 거냐? 경애와 신의에 뿌리박은 상부상조의 전통을 이어받아 명랑하고 따뜻한 협동 정신을 북돋운다는 말은 함께 잘 놀라는 뜻이 아니야!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한다는 건 또 무슨 뜻이냐? 그건 학생으로서 학업에 전념하라는 뜻이야, 알겠나? 스무 살을 넘긴 청년이 이 모양 이 꼴이니 어떻게 새 역사를 창조할 수 있겠나, ?”

 

그때 갑자기 아름이가 교장선생님의 말을 가로막으며 끼어들었다.

할아버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 은학이 오빠는 민주주의 학습단지에서 벽돌 놀이 하는 거 좋아한단 말이야. 하지만 모래 장난을 더 좋아해, 그치, 오빠?”

아니, 이런 꼴통이!”

꼴통? 꼴통이 뭐야? 할아버지도 꼴통이야? 꼴통, 꼴통, 꼴통, 꼬끼오, 꼬리, 꼴뚜기, 꼴통, 꼴통, 꼴통.”

아름이는 숫제 노래를 부르며 제자리에서 발을 꼼지락대더니 점점 더 발을 대담하게 뻗었다. 그러고는 책상 위의 꽃병을 들었다 내리고 거기에 꽂힌 장미꽃을 장검처럼 휘두르며 교장실 안을 성큼성큼 걸어 다녔다. 기어코 교장이 고함을 질렀다.

, 지금 어른 앞에서 뭐 하는 짓이냐?”

옆이 있던 담임교사가 이미 창턱 위로 기어오르기 시작한 아이를 잡아왔다. 아름이는 신경질을 부렸다.

에이! 뭐야, 왜 귀찮게 해? 오빠, 나 목마 태워줘! 언니랑 만두 먹으러 가자, ?”

하지만 오빠언니는 벌벌 떨고 있고 쭈그렁바가지 할아버지는 자기를 노려보고 있었다.

할아버지 나한테 원수 졌어? 왜 그렇게 째려봐?”

허어,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아니, 도대체 이런.(여기서 교장은 또 다시 꼴통이란 말을 내뱉고 싶었지만 적시에 자제력을 발휘했다.) 되먹지 못한 녀석이 어떻게,”

에이, 시끄러워! 할아버지 입 좀 닫아!”

?! 이런 꼴통!”

악에 받힌 교장은 저도 모르게 아이보다 더 못한 아이가 되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아름이의 조그만 머리통을 주먹으로 내리치고 말았다. 아름이는 죽어라고 비명을 질렀다.

 

왜 때려! 할아버지가 뭔데 나를 때리고 지랄이야! 에이, 이 대머리야! 할아버지는 병신 쪼다야!”

아름이는 눈 깜짝할 새에 책상 위로 올라가 할아버지의 머리통을 주먹으로 마구 때리고 귀 언저리에 애처롭게 붙어 있는 머리카락을 잡아 뜯기 시작했다. 교장은 그 간의 교직 생활 동안 처음 당하는 이 수난에 넋이 나갔다. 무엇보다도 머리카락의 수난에 분기탱천했다. 그는 고함을 지르며 아름이를 뜯어내려고 용을 썼다. 그럴수록 아름이는 더 찰싹 달라붙어 머리카락을 온통 다 뽑아버릴 기세였다.

아이고, 아야, 아야, 아이고, 이 놈! 나 죽네!”

 

마지막 말에 다들 얼음망치에서 풀린 듯 부산을 떨었다. 어른들의 손아귀에 붙잡힌 아름이의 몸은 허공중에서 버둥거렸지만, 양손은 여전히 교장의 머리카락을 꼭 움켜쥐고 있었다. 그때 소영이가 책상 위로 기어 올라가 예의 그 토끼 이빨로 아름이의 양손을 힘껏 깨물었다. 아름이는 저도 모르게 교장의 머리카락에서 손을 떼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은학이가 아름이를 온 몸으로 움켜쥐다시피 껴안았다.

오빠 뭐야? 왜 말려? 나한테 죽어볼 테야?”

아름이는 씩씩댔다. 머리카락이 손에 와 닿는 감촉에 재미를 느꼈는지, 은학이의 품 안에서 폴짝 뛰어올라 대뜸 은학이의 머리카락부터 잡아당겼다. 머리카락이 짧고 굵었기 때문에 바싹 붙어야 했다. 은학이는 아픈 걸 참아가면서, 아름이의 편의를 위해 일부러 몸을 숙여 주었다. 그러고는 이제 막 고삐를 단 불쌍한 송아지처럼 어린 깡패에게 질질 끌려 다녔다. 어찌나 아픈지 눈물마저 찔끔 나왔다. 결국 교사들이 달려들어 아름이를 떼 내지 않으면 안 됐다.

 

충격을 받은 교장은 모두 다 돌려보내고 혼자 교장실에 틀어박혔다.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거울을 보며 머리카락을 점검하는 것이었다. 길고 푸석푸석한,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카락이 오른쪽에서 시작하여 왼쪽 귀를 덮고 있었다. 최소한 열 가닥은 빠진 것이 분명했다. 믿거나 말거나, 교장은 책상에 엎드려, 소리 죽여 가며 엉엉 울었다. 한참 울고 난 교장은 원한에 사무친 전사가 됐다.

 

*

 

우물이 폐쇄됐다. 나아가 교장은 일련의 조치를 더 강구했다. 앞으로 있을지도 모르는 가상의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수반에 있던 성냥, 그 성냥의 존재근거였던 낡은 난로와 장작이 모조리 사라졌다. 불쏘시개 구실을 하던 착화탄도 같은 운명이 됐다. 때문에 날씨가 선선해졌음에도 특수반 아이들은 더 이상 난로 구경을 못하게 됐다. 감자, 고구마, 말린 떡가래, 군밤 등도 모두 추억의 음식이 됐다. 이제 추운 겨울을 맡길 수 있는 것이라고는 시간제로 부실하게 나오는 스팀뿐이었다. 실내에서도 아이들의 옷차림은 두꺼워질 수밖에 없었고 행동도 굼떴다. 그만큼 활기도 잃어갔다. 그뿐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각종 도구를 갖고 방종하게 놀다가 무슨 사고가 날지도 모르기 때문에, 위험의 소지가 있는 물건(그러니까 모든 물건!)을 교실 밖에서 갖고 있는 것을 금지했다. 고무줄과 공깃돌도 한 순간에 흉기로 돌변할 수 있기 때문에 소지가 금지되었다. 도구가 없어도 아이들은 거칠게 놀 수 있고 그로 인해 서로 폭력을 행사하거나 적어도 그런 성향을 키울 수 있기 때문에, 아예 노는 것 자체가 금지되었다.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도 밖에 나가지 못하고 교실에 가만히 앉아 있어야 했다. 그러자 아이들은 지우개 따먹기나 실 엮기, 쌀밥 보리밥 놀이를 하기 시작했다. 놀이에 흥미를 붙이기 위해 각자 물건들을 하나씩 내걸었다. 교장은 또 분연히 떨치고 일어났다. 머리띠를 두르고서 학업에 열중해도 뭣할 때 사행성을 조장하는 오락을 일삼는 것은 교육자로서 용납할 수 없는 행위였다. 모든 놀이가 당장에 금지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