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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시는 섬에서 제일 가까운 도시였다. 항구도시라는 이름은 바닷가와 부둣가에 있을 때만 실감났다. 무엇보다도 직장으로서는 T시와 다를 바 없었다. 조금만 안으로 들어가면 버스와 자동차가 매연을 내뿜고 땅 밑으로 지하철이 다니는, 평범한 지방 도시일 뿐이었다. 도심 번화가로 들어가면 갑갑하고 텁텁한 냄새에 숨이 턱턱 막혀왔다. 시민들은 적절히 촌스러웠지만 적절히 멋을 부렸고, 또 적절히 세련됐지만 적절히 촌닭 짓을 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바빴고 하나같이 비루했다. 떡붕어 아저씨도 곧 그 일원이 되었다. 그의 업무, 만나는 사람들의 종류는 T시와 별반 다를 바 없었다. 통장에 찍히는 입금액의 숫자를 높이기 위해 그는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새로이 직장을 구한 것이 기적이었다.

 

일이 끝났을 때, 그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P, 기차역 근처 슬럼가로 갔다. 천연의 빛이 하나도 들지 않는, 어둠 속에서 화려한 네온사인과 전깃불만이 반짝이는 곳, 그곳 깊숙이 박혀 있는 그 음습한 가게. 주인은 가게 한 구석의 나지막한 의자에 앉아 있었다. 단골손님을 보고도 일어설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말을 붙여보았다.

그간 안녕하셨지요? 워낙 오랜만에 와서.”

그래도 그는 묵묵부답이었다. 초점이 없는 멍한 두 눈이 모든 것을 말해주었다. 인기척을 듣고서 안에서 사람이 나왔다. 10여 년 전 주인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환시가 일었다. 떡붕어 아저씨는 눈앞에 나타난 젊은 남자와 의자에 붙박여 있는 노인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젊은 남자는 손님의 탐색이 끝날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떡붕어 아저씨가 돈을 내놓자 그는 차분하게 돈을 셌다. 그러고는 또 안으로 사라졌다. 다시 나타났을 때 그의 손에는 무척 작은 금괴 몇 개가 들려 있었다. 떡붕어 아저씨는 의아스러운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요즘 금이 정말 금값입니다.”

구태여 이런 말까지 해줘야 되냐는 식의 표정이었다.

 

떡붕어 아저씨는 가게를 나왔다.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기차역 광장이 보였다. 환한 낮이 시작됐다. 역사는 화려하고 투명한 수정궁이었다. 완만하게 뻗은 에스컬레이터가 묵묵히, 꾸준히 움직였고, 여행객들은 인상파 화가의 그림 속 신사숙녀처럼 정적인 자세와 표정으로 그 위에 서 있었다. 기차역 광장의 풍경은 좀 더 생기로웠다. 곳곳에서 비둘기들이 종종 걸음을 치고 푸드덕거리며 저공비행을 시도했다. 의자나 벤치에는 노숙자들과 노인들이 한가롭게 봄의 오후를 즐겼다. 떡붕어 아저씨는 그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의 자리는 햇빛이 잘 드는,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시큼한 지린내와 삭막한 노린내가 코를 간질였다. 어느 것이 노숙자 냄새고 어느 것이 정갈한 노인 냄새인지 알 수 없었다. 이 특이한 냄새들은 바닷바람에 실려 곧 허공중으로 흩어졌다. 그 냄새처럼 익숙한 한 마디가 실려 왔다.

 

밤돌아! 아이고, 내 새끼!”

이 사람이 노망이 들었나? 밤돌이가 어디 있어? 아이고! 밤돌이 이놈!”

밤돌은 떡붕어 아저씨의 본명이었다. 그의 반생은 이 난감한 이름으로부터 도피하는 시간이었다. 첫 아이의 이름을 절대로 순수 한글로, 덧붙여 누구의 귀에나 쏙 들어오는 낱말조합으로 짓고자 했던 부모의 존재는 모종의 상징 같았다. 이제 어쩔 수 없다. 또 다시 밤돌의 시간이 도래했다.

 

밤돌의 부모는 평생 P시 바깥을 나가 본 적이 없었다. 그들이 주말마다 기차역 광장에 나오는 것은 하나의 의식이었다. 처음에는 바로 어제집을 나간 아들을 기다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10년이 넘도록 반복되다 보니 이제는 그저 잠에서 깨면 눈을 뜨듯 자연스레 이곳으로 나왔다. 각각 절과 교회를 다녀온 뒤였다. 남편의 손에는 불경이, 아내의 손에는 붉은 장정의 성경이 들려 있었다.

 

한때는, 물론, 그들도 대한민국의 성실한 노동력이었다. 남편은 동네에서 조그만 병원을 경영했고, 아내는 P시 외곽에 있는 한 사립대에서 교편을 잡았다. 은퇴는 예정된 죽음의 순간처럼 찾아왔다. 이와 더불어 정말로 예기치 못한 죽음의 선언이 있었다. 바로 아들의 가출, 아니 출가 선언이었다. 그 무렵 아들, 즉 밤돌은 한창 왕성하게 사회생활을 하던 젊고 건강한 대한의 아들이었다. 그가 갑자기 장가가 아니라 낚시를 가겠다고 하자 부부는 껄껄 웃었다.

그래, 쉬는 법도 배워야지.”

하지만 아들이 말하는 낚시는 좀 달랐다.

아예 섬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이어 밤돌은 자신의 결심을 간결하지만 단호하게 설명했다. 한참 뒤에야 부부는 아들의 터무니없는 진의를 깨닫곤 아연실색했다.

아니, 지금 정신이 있는 거냐?”

그럼에도 설마, 하는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그 설마가 정녕 사람을 잡았다. 다음날, 밤돌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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