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듬해 여름, 엄마 말대로 <훈이네 복덕방>의 노부부는 거의 동시에 죽었다. 먼저 마지막 숨을 내쉰 건 할아버지였다. 골목 어귀 낡은 검정 소파의 한 귀퉁이를 할머니 혼자 지킨 시간은 일주일 정도였다. 그 짧은 시간 동안 할머니는 말과 표정을 되찾는 일이 더러 있었다. 한 번은 음식을 만들겠다며 하루 종일 부엌에서 부산을 떨었다. 예의 그 큰 손이 건재함을 증명이라도 하듯 아무도 먹을 수 없는 미역국을 잔뜩 끓인 다음 사람들에게 나눠주겠다고 국그릇에 하나하나 담았다. 손놀림이 서툴러 온 집안이 미역국 천지가 됐다. 마룻바닥을 뒤덮은 미역을 닦아내다가 며느리는 급기야 울음을 터뜨렸다. 그날 밤 <훈이네 복덕방> 2층은 초상집이나 다름없었다. 바로 그 뒤에 할머니는 목숨을 놓았다. 부산의 낮 기온이 30도를 훨씬 웃도는 후텁지근한 날이었다. <훈이네 복덕방>은 청도에 있는 선산에 묻혔다. 시신은 화장을 할 것이며 유골함은 반드시 목재를 쓸 것이며 또 봉분도 만들 필요 없이 그냥 오래 된 나무 밑에 묻어달라는 것이 정신을 놓기 전 그들의 유언이었다.

 

지난 추석에 내가 집에 내려갔을 때 <훈이네 복덕방>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 젊은 남자가 아예 그곳을 임대한 것이었다. 그는 <미래 공인중개소>라는 간판을 내걸고 <대표: 정원섭>이라는 말까지 당당히 붙었다. 몇 발짝을 떼놓기가 무섭게 공인중개소가 넘쳐났지만 그는 자신만만했다. 사실 우리 동네도 조만간 재개발 물살에 휩쓸리게 될 테니 영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니었다.

 

<훈이네 복덕방>은 없어졌지만 골목 어귀의 검정 소파만은 그대로 있었다. 뜻밖에 그곳을 지키고 있는 건 엄마였다. 나도 모르게 할머니의 환영이 겹쳐지면서 소리를 질렀다.

엄마! 뭐 할라고 거 앉아 있노?”

니 마중 나왔다 아이가. 백서방은?”

저 밑에 마트에 잠깐 들른다고.”

그래, 그래. 세상 참 좋아졌제, 진수야. 서울역에서 기차 탔다고 전화한 게 언젠데 벌써 이래 왔네. 백지 차 몰고 올 필요도 없는 기라.”

형우네는?”

처가 갔다 아이가.”

형우 얼굴 보기 진짜 힘드네. 희은이 엄마는 잘 지내나?”

올케의 안부를 묻자 엄마는 말이 길어졌다. 처음에는 세상에 그만큼 똑똑한 며느리가 없다라는 칭찬이었지만 슬슬 흉을 보기 시작했다. 입이 짧아서 마른 명태같이 빼빼 말랐다는 둥, 어른 말에 꼬박꼬박 말대꾸를 한다는 둥, 시답잖은 일에도 고집을 부린다는 둥. 나는 맞장구를 쳐주다가 요즘 시부모랑 같이 살아주는 것 자체가 무조건 고마운 거라며 엄마를 타일렀다. 졸지에, 며느리 때리는 시어머니를 말리는 손위시누이 역할을 맡자니 민망해졌다.

소파 이거는 왜 안 치웠는고?”

고마 이래 오가는 사람들 쉬라고 그냥 뒀겠지. 근데 진수야, 훈이네 복덕방 노인들이 저래 정신을 놓았어도, 신통방통하제, 아침이면 딱 7시 반에 일어나고 9시에 귀신같이 복덕방 문 열고 안 했나. 노상 둘이 손 꼭 붙잡고 다니고.”

이 대목에서 엄마는 갑자기 거의 들릴 듯 말 듯 목소리를 죽이며 속삭였다.

근데 마지막엔 결국 간병인을 썼다 아이가. 저 집 며느리 그리 효부라도 나중에는 노상 얼굴을 찌푸리고 다니더만. 사실 구구절절이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옆에 사람도 할 짓이 아니었던 기라. 장례식 때도 눈물 한 방울 안 흘리더라. 나이 앞에 장사 없고 긴 병에 효자 없는 기라. 아무리 그래도 요즘 세상에 병원 안 가고 제 집에서 죽기가 쉽나, 어데?”

말을 쉬며 한숨을 내쉴 때는 눅눅한 감정이 섞여 나왔다. 행여나 자기에게 그런 일이 생겨도 병원에 갖다 버리지는 말아달라고 애원하는 듯.

제 집에 있어서 그런지 저 노인들 고마 자는 잠에 곱게 죽었다 아이가. 너거 아빠랑 나도 저래 죽어야 될 긴데.”

우리 좀 편하게 둘이 한 날 한 시에 죽든가.”

나도 진담이었지만 엄마도 역정을 내지도 않고 진지하게 응수했다.

그래 딱 죽으면 좀 좋겠나? 근데, 진수야, 아는 안 낳을 기가?”

큰사위 기다린다는 핑계 대고 엄마는 소파에서 일어날 생각을 안 했다. 나도 그냥 엄마 옆에 앉아버렸다. 그간 비가 와도 몇 번은 왔을 텐데 누구 손을 탔는지 소파는 무척 깨끗했다.

낳고 나면 니 때문에 내 하고 싶은 일도 못한다고 원망할 거 같은데.”

아이고, 한 번 낳아 봐라, 그런 소리가 나오나. 아한테 더 못 해줘서 니를 원망하면 모를까.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낳아야제. 삼신 할매 노하면 큰일 난다. 피임 하면 안 된다고 몇 번을 말해도 안 듣고.”

사위가 나타나자 엄마는 금방 입을 닫아버렸다. 남편이 소파에 대해 묻자 엄마는 나한테 했던 얘기를 반복했다.

, 그럼, 저도 한 번.”

남편은 그러고서 내 옆에 털썩 앉았다. 가을햇살이 따사로웠다. 적어도 마음만은 우리도 가을걷이가 끝난 논에서 햇볕을 받으며 뛰노는 아이들 같았다. 집 안에서 큰딸 내외를 기다리다 지친 아빠가 급기야 골목 어귀로 나왔다. 때마침 반대쪽에선 해수 부부, 그리고 내년이면 초등학생이 될 그들의 아들의 모습도 얼핏 보였다.

할머니, 할아버지! 승호 왔어요!”

녀석의 목소리가 어찌나 우렁찼는지, 쌀쌀맞기로 소문 난 <뭉치슈퍼> 아저씨, 아니 할아버지까지 히죽 웃을 정도였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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