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가을, 해수는 오랫동안 사귀어온 남자에게 시집을 갔다. 해수의 남편도 형우처럼 말하자면 가업을 이어받은 젊은 사업가였다. 하지만 얼추 같은 동네에 있는 가게라도 <영진선루프><성득상회>와 급이 달랐다. 해수의 월급은 <영진선루프> 사장의 수입에 비하면 고급 레스토랑 음식의 팁에 불과했다. 물론 그래도 해수는 일을 그만 두지 않았다. 다음 해에 아이가 태어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처럼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나이가 들면 어린이집을 차리는 것이 해수의 꿈이었다.

 

그렇게 우리 애를 태우던 형우도 서른을 좀 넘긴 뒤에 제 짝을 만나 장가를 들었다. 올케는 형우보다는 제법 어렸지만 생활력이 강하고 허영심이라곤 없는 여자였다. 하긴 안 그랬다면 시장바닥에서 막일을 하는 남자의 아내가 되진 않았을 거다. 형우 내외는 <훈이네 복덕방>의 작은아들처럼 결혼식 거의 직후에 아이를 낳았다. 형우처럼 커다랗고 동그란 눈에 쌍꺼풀이 깊고 애 엄마를 닮아 얼굴이 뽀얀 딸아이였다. 88년에 전세로 들어온 집을 나중에 아빠가 완전히 샀기 때문에 이 집은 형우의 집이 될 것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시장 일을 슬슬 접고 손자 보는 재미로 살았다. 아래층에 사는 형우 내외는 오래 전 엄마와 아빠가 그랬듯 새벽같이 일어나 별을 보며 시장에 나가고 또 별을 보며 집에 돌아왔다. 결혼 전엔 걸핏하면 농땡이를 치던 형우도 이젠 아이까지 생긴 터라 악착같이 일에만 매달렸다. 물론, 젊은 날의 아빠처럼 주기적으로 술을 마셔 마누라 속을 발칵 뒤집어 놓았지만, 역시나 젊은 날의 아빠처럼 술을 마신 다음날에도 머리통이 깨질 것 같은 통증을 참으며 시장에 나갔다. 아옹다옹, 옥신각신 하는 와중에 그들의 아이는 무럭무럭 커갔다.

 

*

 

서른일곱 번째 생일을 맞은 해수의 눈에 <훈이네 복덕방>은 참 새삼스러워 보였다. 앙다문 입술처럼 굳게 닫힌 미닫이 유리문 너머로 낡은 소파, 낡은 탁자, 낡은 난로가 보였다. 난로 위의 싯누런 주전자도 군데군데가 우그러져 주글주글했다. 복덕방의 유리문 위에 붙여진 종잇장들에서는 왠지 오래 묵힌, 벌레마저 쓸기 시작한 폐지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이 너무도 낯익어, 오히려 작년인가에 고용한 젊은 직원의 모습이 낯설어보였다.

 

해수는 골목 안쪽으로 발길을 꺾었다. 오늘도 낡은 검정 소파가 보였다. 어김없이 거기엔 <훈이네 복덕방>의 노부부가 앉아 있었다. 이제는 노부부 없는 검정 소파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해수는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노부부는 모두 말이 없었고 표정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겉표지도, 속지도 노랗게 바라다 못해 바스라질 것만 같은 책이 오늘도 할머니의 손에 들려 있었다. 할머니 옆에 음전한 신부처럼 다소곳이 앉아 있는 할아버지는 천연산 장식품 같기도 했다.

 

해수가 집을 떠날 때 엄마는 늘 그렇듯 골목 앞까지 배웅을 했다. 노부부는 여전히 자연의 손이 만들어놓은 최고의 박제처럼 소파에 앉아 있었다. 할머니의 고개가 할아버지 쪽으로 약간 기울어졌다. 할아버지의 손이 할머니의 손을 살포시 쥐고 있었다. 그렇게 소파에 앉은 채로 노부부는 죽은 듯 잠을 자고 있었다. 그들의 목엔 큰아들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힌 명찰이 걸려 있었다.

 

좀 춥지 싶은데?”

엄마의 말에 해수는 <훈이네 복덕방> 안으로 들어갔다. 해수가 말을 꺼내자, 아까부터 그곳을 지키던 젊은 남자는 복덕방 한 쪽에 개져 있는 담요를 내밀었다.

괜히 깨우지는 마시고요.”

자주 저러시나 봐요?”

저 정도면 점잖죠. 접때는 두 양반이 손잡고 초읍까지 갔다 아입니까. 공원에서 간신히 찾았어요. 요즘은 멀리 나가 봐야 저 앞 파출소지만.”

해수는 담요를 껴안은 채 <훈이네 복덕방>을 나왔다. 담요를 덮어줄 때도 노부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들의 콧구멍과 살짝 벌어진 입에서는 웅장한 합창에 붙은 조용한 후렴구처럼 낮은 숨결이 뿜어져 나왔다. 그 따뜻한 숨결에는 성별을 구별할 수 없는 늙은 몸뚱어리의 향내가 배어있었다.

 

얼렁 가자.”

해수의 손을 당기며 엄마가 말했다.

저 양반들, 그래도 곱게 늙었제. 저라다 하나가 죽으면 다른 쪽도 금방 죽을 기라. 나랑 너거 아빠도 저래 늙으면 좋겠구만.”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엄마도 이미 늙으면이라는 가정법이 별로 어울리지 않는 나이였다. 버스나 전철을 타도 경로우대증만 보이면 됐다. 그렇기에 엄마는 누가 자기를 할매라고 부르면 하루 종일 별 일 아닌 것에도 짜증을 냈다. 그러다 갑자기 생각이 난 듯 미친 놈, 누가 할매라고!”하며 투덜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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