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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반쯤 꺼진 응급실의 적막을 핸드폰소리가 깨놓았다. 수아였다.
“뭐냐? 수업도 안 오고 웬 전화질이야?”
나는 병원에 누워 있다고 얘기했다. 내 귀를 때리는 내 목소리가 제법 처량했다. 잠에서 막 깬 탓이었다. 하지만 환자 역을 맡는 것이 본능적으로 마음에 들어, 일부러 더 힘이 없는 척 군 것도 사실이다.
반시간쯤 뒤 수아는 내 옆에 와 있었다. 나의 환자연하는 처지가 꽤 부러웠던 모양이었다. 당황하고 놀라워하는 수아의 얼굴이 재미있었다.
“아니, 이걸 이렇게 방치해 두면 어떡해요? 저렇게 계속 토를 하는데!”
수아는 토사물이 가득 한, 내 침대 옆 쓰레기통을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 애꿎은 조무사는 입을 삐죽 내밀며 쓰레기통을 들고 나갔다.
“그렇게 대책 없이 살 때 알아 봤어. 민영이 너, 일부러 이런 거지, 엉?”
어깃장을 놓긴 했지만 수아는 나를 은근히 부러워하는 것 같았다.
“연애는 잘 돼 가?”
“지금 네가 남 연애 걱정하게 생겼냐?”
수아는 한 반 시간쯤 앉아 있다가 기숙사로 돌아갔다.
요즘 수아는 연애의 몽상에 젖어 희망이라는 괴물을 붙잡고 있었다. 오랫동안 짝사랑해온 남자가 드디어 수아에게 마음을 열어준 것이다. 적어도 수아의 말로는 그랬다. 나는 연애의 몽상보다는 그 희망이라는 괴물 때문에 수아를 조금은 질투했다. 역시나 그 때문에 수아가 그 남자와 연결되지 않기를 바랐다. 연애의 몽상이 실현되면 희망이라는 괴물도 꼬리를 감출 테니까. 가히, 유치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유치하다는 것을 안다는 이유로, 나는 나를 성숙한 남성의 형식쯤으로 간주하고 뿌듯해했다.
이튿날 아침, 수아가 잠이 덜 깬 얼굴을 하고 나타났다. 지금껏 관객의 등장을 기다린 양 나의 구토는 절정을 향해 치달았다. 증세는 어젯밤보다 더 심해져, 싯누렇고 쓰디 쓴 시큼한 액이 뱃속 깊은 곳에서 숨을 헐떡이며 기어 올라왔다. 내가 의식하는 나는 조그만 쓰레기통에 머리를 처박고 구토에 몸을 내맡긴 나였다. 이쯤 되면 연극이 아니었다. 이제 그만 이 구토하는 더러운 실존을 때려치우고 뱃속에다 음식물을 가득 채워 넣는 아름다운 실존이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바람을 깡그리 무시하고 시골 의사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던졌다.
“저 학생 말이야, 어디 큰 병원으로 데려가.”
과잉된 친절이 쏙 빠진, 마냥 정감 있는 어투였다. 그랬기에 또한 건조했다.
“예? 그렇게 심각해요?”
“아니, 저 학생이 심각한 게 아니고 우리 병원이 심각해. 병실이 없어.”
“병실요? 그럼 입원해야 돼요?”
“글쎄, 그게 지금쯤은 나아져야 되는데 저렇게 계속 구역질을 해댄단 말이야. 도무지 왜 그럴까? 알다가도 모르겠어. 애가 선 것도 아니고, 무슨 죽을병에 걸린 것도 아니고….”
시골 의사는 만화 속 주인공처럼 머리 위에 물음표 하나를 그린 채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의 솔직함에 나는 은근히 감동했다.
한편, 수아는 생명의 은인으로 거듭났다. 수아의 부축을 받으며 나는 택시를 탔고 근처에서 제일 가까운 종합병원으로 옮겨갔다. 모든 검사가 다시 시작됐다. 그동안에도 나에게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각인시킨 것은 저 살인적인 구토였다.
정신을 차렸더니 어느 병실의 구석 침대였다. 담당 의사는 위장 내시경을 권했다. 머릿속에 동네 병원의 시골 의사의 잔영이 남아 있는 탓인지 그는 왠지 도시 의사라는 말이 어울려 보였다. 내가 인상을 쓰자 젊은 도시 의사는 언뜻 미소를 내비치었다.
“요즘은 수면 내시경이 있어서 별로 힘들지 않습니다.”
실은 내시경이 아니라 수면이 싫었기 때문에 나는 있는 힘껏 말했다.
“그냥 해도 돼요.”
내 목소리가 너무 작은 것이 나 스스로도 놀라웠다.
“그럼 그러시죠.”
도시 의사는 사라졌다.
뱃속은 어차피 하루 종일 비어 있었다. 간호사는 불쾌한 물약을 갖다 주었다. 끈적끈적하고 질척질척한 물약이 입안으로 들어가자 목구멍까지, 식도까지 한 대 얻어맞은 양 얼얼하게 마비되는 느낌이었다. 절로 인상이 써졌다.
“야, 내시경에 정 들었냐? 또 내시경 하려고 일부러 밥 굶었지?”
수아가 옆에서 연신 툴툴댔다. 서울로 유학 온 뒤 위장 내시경을 한 것이 벌써 세 번째다. 그때마다 수아는 내 옆에 있어 주었다. 그러니 툴툴댈 권리쯤은 충분히 있는 셈이다. 물론, 나의 내시경의 근원은 수아가 알 리 없다.
*
중학교는 읍내에만 있었다. 몹시 추웠던 1월말, 나는 아빠와 함께 읍내로 향했다. 간만의 외출이라 정류장 앞에서부터 마음이 달떴다. 하지만 멀리서 달려오는 버스를 보자마자 속이 메슥거려 왔다. 신기한 노릇이었다. 어른들의 등에 업혀 갈 때는 전혀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다. 구토 덩어리였다. 구토가 내 몸 안이 아닌, 내 몸 밖에도 존재할 수 있다니.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버스, 아니, 모든 탈것에 대한 공포의 시작이었다.
버스 안으로 들어가자 시큼한 기름 냄새가 코를 찔렀다. 몸은 점점 더 쪼그라들었다. 나의 고통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버스는 달리기 시작했다. 덜커덩거리는 소리와 진동이 뱃속은 물론 머릿속과 마음속까지 휘저어 놓았다. 5분도 지나지 않아 토악질이 시작됐다. 아빠는 머리에 쓰고 있던 털모자를 황급히 벗어 토사물을 받아냈다.
“아이고, 무슨 멀미를 이래 하노? 아를 잡네, 잡아.”
버스에서 내렸을 때 아빠가 말했다.
귀갓길은 더 참혹했다. 뱃속의 내장이 제 맘대로 꼬이며 구토를 턱턱 뱉어냈다. 장터에서 아빠와 함께 먹은 뜨끈하고 얼큰한 돼지국밥이 내 뱃속에 잠시 머물렀다가 추한 모양새를 하고 뭉텅뭉텅, 다시 세상에 나왔다. 버스에서 내렸을 때 나는 끓는 물에 삶아낸 우거지 꼴이었다. 집까지는 가파른 산길을 한 시간 쯤 올라가야 했다. 아빠는 나를 등에 업었다. 달빛을 받은 거무스름한 산길과 검푸른 하늘 위에 금강석처럼 톡톡 박혀 빛나는 별들 사이를, 열 네 살짜리 딸을 업은 마흔 살의 남자가 가로지르고 있었다.
며칠을 고민한 끝에 부모님은 나를 읍내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마침 고등학생인 육촌 언니가 읍내에서 하숙을 하고 있던 덕분이기도 했다. 우리의 방은 조그맣고 아담했는데, 초등학교 교사 부부가 사는 정갈한 양옥집에 딸려 있었다. 봄이면 몇 그루의 감나무가 노란 감꽃을 소보록하게 피웠다. 하지만 나의 자취생활은 감꽃 마냥 다부지고 예쁘지는 못했다. 주중은 금식의 시간이었고, 주말은 폭식의 시간이었다. 집에만 올라가면 주중에 오그라뜨려놓은 배를 풍선처럼 부풀리겠다는 듯 다섯 끼, 여섯 끼를 먹어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