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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슬기 할매는 구덩이 오막살이 옆, 가짜 대궐에 살았다. 구덩이 오막살이보다 못한 흙집을 가짜 대궐로 바꾼 것은 민박을 치기 위해서였다. 할매는 여행객들에게 다슬기 해장국을 끓여 팔았다. 하지만 손님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때문에 할매가 잡은 다슬기는 대개 동네 사람들이 먹어치웠다. 남는 것은 도회지로 팔려나갔다. 그렇게 번 돈으로 할매는 가짜 대궐을 다듬었다. 어쩌다 여행객이라도 한두 명 와서 묵고 간 다음 날엔 가짜 대궐의 벽 색깔이나 처마의 장식이 조금씩 달라졌다.
다슬기 할매는 이 동네에서 제일가는, 또 유일한 점쟁이이기도 했다. 다들 수시로 할매를 찾아가 뭘 물어보았다. 정작 그녀의 대답은 썰렁하고 시큰둥했다. 그런데도 다들 이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언제 돼지를 잡아야할지, 언제 메주를 쑤어야 할지, 큰 아이를 학교에 보내야할지 말지 알 수 없다는 식이었다. 큰일이 있을 때도 다슬기 할매를 불렀다. 누구 며느리가 물에 빠져 죽었을 때도 다슬기 할매 없이는 장례도 치루지 못했다. 누구 손자 돌잔치에서도 다슬기 할매는 상석에 앉았다. 누구 아들 군대 갈 때도 혼자서 돼지 머리 하나를 다 먹어치웠다. 그때마다 다슬기 할매의 머리카락 속에는 이가 한 마리씩 늘어났다. 오래 전 겨울, 다슬기 할매의 머리카락에 서캐가 주렁주렁 열렸을 때 할매를 위한 잔치가 있었다. 그것이 몇 번째 생일인지는 아무도 몰랐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어쨌거나 그날을 기점으로 다슬기 할매는 그냥 점쟁이에서 연금술사이자 점성술사로 책봉됐다. 심지어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는 것도 할매의 몫이었다.
그 때부터 할매의 가짜 대궐 옆에는 허름한 비닐하우스 가게가 세워졌다. 이제 할매는 사업가로 거듭났다. 귀한 물건들이 하나둘씩 비닐하우스를 채워갔다. 조선시대를 살았던 물고기로 만든 통조림, 삼일운동이 있던 해 거둬들인 밀로 만든 과자, 또 다슬기 할매가 시집가던 때 지어진 공장에서 막 출시했던 라면 등. 다슬기 채처럼 원시적인 물건도 있었지만 조그만 전구가 별처럼 무수히 박힌 손전등처럼 최첨단 전기제품도 보였다. 형형색색의 찌를 비롯하여 낚시 용품들도 팔았다. 미끼용 지렁이와 구더기도 우글거렸다. 죄다 할매의 가짜 대궐의 가짜 대들보 밑에 똬리를 틀고 있는 구렁이만큼이나 늙은 것들이었다. 하지만 굵은 산 지렁이만은 무척 싱싱했다. 매일 새벽 산 속에서 지렁이를 생포해오는 것이 또 할매의 일이었다.
소영이는 다슬기 할매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배가 다 차지는 않았지만 공깃밥의 삼분의 일을 남겼다. 다슬기 해장국도 그만큼 남겼다. 국물 밑에는 굵직한 다슬기 몇 마리가 보였다. 건져 먹고 싶어 죽을 지경이었지만 애써 참았다.
“이놈의 가시나 봐라, 밥을 왜 남기노? 사람은 밥심으로 산다니까!”
“나도 알아. 우리 할머니도 배고파.”
“새로 퍼준다니까, 이 가시나가 참, 어른 말을 안 듣네! 다 그래 니 멋대로 해라!”
다슬기 할매는 성질을 부리며 남은 밥과 국을 조그만 쟁반에 담아, 신문지로 덮어주었다.
“안 쏟고 들고 가겠나?”
“응!”
소영이는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다슬기 할매는 혀를 끌끌 찼다.
“문디 가시나, 늦되는 건지 아예 안 되는 건지, 원. 가자!”
그러고선 쟁반을 머리에 이었다. 신기하게도 이 자세만 취하면 다슬기 할매는 한창 때처럼 허리가 빳빳하게 섰다. 심지어 양손을 모두 허리에 대거나 그냥 놀리면서도 나긋나긋 잘만 걸었다. 할매의 머리 위에서 쟁반이 가볍게 일렁였지만 절대 떨어지는 법은 없었다. 소영이는 할매를 뒤를 졸졸 따라갔다. 자기 할머니와 다슬기 할매가 커다란 늙은 호박을 하나씩 머리에 이고 걷던 장면이 낡은 흑백 사진처럼 떠올랐다. 왜 할머니가 걸음마를 멈추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다슬기 할매보다도 훨씬 더 젊은데 말이다.
소영이의 구덩이 오막살이는 강 아래쪽, 고무신 공장 옆에 있었다. 길을 가는 내내 다슬기 할매는 혼잣말로 주문을 외웠다. 한참 뒤에 철도가 나왔다. 더 이상 기차가 다니지 않는, 버려진 기찻길이었다. 거기를 건너 좀 더 내려가자 조그만 골목이 나왔다. 닥지닥지 붙은 나무 쪽문 중에 제일 초라한 것이 소영이네 구덩이 오막살이였다. 쪽문은 평소처럼 빠끔히 열려 있었다. 소영이가 손을 대자 활짝 열렸다. 그래본들 성인 둘은 함께 지나기 힘들 만큼 좁은 공간이었다. 소영이가 먼저 문 안으로 들어갔다. 다슬기 할매는 투덜투덜 거리며 그 뒤를 따랐다. 아주 좁고 제법 가파른 돌계단이 땅 밑으로 이어졌다. 돌계단이 끝나자, 편편하고 넓은 구덩이 같은 뜰이 나왔다. 뜰의 끝에는 수돗가가 있고, 뜰 오른쪽엔 뚱딴지와 감나무, 상추와 파가 심어진, 꽃밭과 텃밭의 중간쯤 되는 것이 있었다. 구덩이의 가두리를 쭉 에워싸는 식으로 게딱지만한 반 지하 단칸방들이 붙어 있었다.
구덩이 오막살이에는 열두 명이 살고 있었다. 연탄집, 배추집, 쌀집, 사과집 등 이곳 사람들은 그들이 파는 물건이 곧 이름이었다. 하지만 변소 바로 옆, 계단으로 올라가, 2층에 사는 부자만은 예외였다. 그곳은 조장집이라고 불렸다. 그 집 아저씨는 고무신 공장의 조장이어서 월급을 많이 받았다. 뇌물도 많이 받았다. 아저씨에게 일자리를 부탁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던 것이다. 뇌물은 늘 막걸리였다. 형편이 좀 되는 사람은 소주를 사주기도 했다. 때문에 조장 아저씨는 늘 술에 취해 있었다. 그 집 딸이 난쟁이인 것도 아저씨가 술을 너무 많이 먹고 아이를 만든 탓이라고들 했다. 어떻든 조장집은 방도 세 칸이나 되고 수도도 따로 딸려 있었다. 그래서 늘 복작대는 공동 수돗가를 쓸 필요가 없었다.
조장집이 아무리 부자여도 변소를 따로 가질 순 없었다. 사람이 이렇게 득실대는 구덩이 오막살이에서 딱 하나 밖에 없는 것이 바로 변소였다. 그 앞에는 늘 두엇의 대기자가 있었다. 변소는 빨리 차올랐고 이에 맞추어 구더기도 빨리 증가했다. 쌀집 아줌마는 정기적으로 변소에 염산을 뿌렸다. 그날이 구더기의 제삿날이었다. 살아서 스멀거리는 놈이든, 새카맣게 타죽어 널브러진 놈이든 구더기는 죄다 지옥이었다. 구더기가 너무 싫어 소영이는 심심찮게 똥오줌을 참았다. 그 바람에 어린 나이에 방광염에 걸리고 걸핏하면 변비를 앓았다. 그러니까 딱히 배추집 아들이 무슨 잘못을 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한 번 변소에 들어가면 10, 20분은 족히 앉아 있는 이 오빠가 소영이는 죽도록 미웠다. 그런 일이 하루에도 두 세 번은 족히 됐으니 더 미웠다. 돌계단이 끝나자마자, 그리하여 변소 옆에 이르자마자 소영이는 습관적으로 요의를 느꼈다.
“나, 오줌 마려워.”
“오줌 한 번 싸는 게 무신 유세라고 이리 떠들어쌌노? 얼른 갔다 오든지.”
다슬기 할매는 퉁명스럽게 한마디 던지곤, 맞은편으로 침침하고 비좁은 동굴로 들어갔다. 소영이는 변소 문을 잡아당겼다. 잠겨 있었다. 또 배추집 아들인 게 분명했다. 소영이는 성질을 부리며 변소 문을 두어 번 쾅쾅 쳐주었다. 나무판자를 붙여서 만든, 닫힌 문틈으로 해묵은 악취가 배어나왔다. 소영이는 하는 수 없이 방금 다슬기 할매가 들어간 그 비좁고 침침한 동굴로 들어섰다.
소영이네 방은 구덩이 오막살이 안에서도 제일 구석에 있었다. 미닫이문은 늘 열려 있었다. 문 뒤에는 곧장 비좁고 어두침침한 부엌이 있었다. 거기에는 기름때가 낀 석유곤로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지저분한 식기 몇 개가 돌 선반 위에 제멋대로 엎어져 있었다. 엉덩이를 간신히 붙일 수 있는 옹색한 툇마루에 방문이 붙어 있었다.
소영이의 할머니는 오늘도 무릎을 세운 채 문지방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할머니의 앙상하고 쭈글쭈글한 무르팍은 축 늘어진 주름덩어리 같은 귀를 덮고 있었다. 그 옆에는 다슬기 할매가 온화하고 자비로운 죽음의 사자처럼 앉아 있었다. 한 시절엔 어머니와 딸과 같았지만 이제는 둘 다 알맹이와 물기가 쏙 빠져나간, 텅 빈 거죽 같았다. 말을 잃어버린 한 노파의 손 위에 말이 너무 많은 다른 노파의 손이 얹혀졌다. 하지만 다슬기 할매도 이곳에 오면 고집 센 조개 마냥 입을 다무는 버릇이 있었다.
“할머니들!”
소영이의 날카롭고 높은 음성에 다슬기 할매는 정신이 번쩍 드는 성 싶었다.
“어딜 갔다가 인자 오노?”
“변소에 누가 있어. 배추집 오빠일 거야, 분명히.”
“어? 그래, 아까 오줌 마렵다 켔제. 여기만 오면 나도 정신이 오락가락 하네, 참. 오줌 참으면 병난다, 수돗가 가서 누고 와라.”
“우리 할머니 밥 먹는 거 보고 갈 거야.”
“문디 가시나, 어른이 말을 하면, 예, 알겠습니다, 해야지!”
소영이는 문지방에서 잠깐 뭉그적거렸다. 오늘은 할머니가 밥 먹는 모습을 꼭 보고 싶었다. 모든 걸 알고 모든 걸 할 줄 아는 다슬기 할매가 옆에 있지 않은가. 사람은 밥 힘으로 산다고 다슬기 할매도, 또 구덩이 오막살이 어른들도 말했다. 소영이는 할머니가 밥을 영영 못 먹게 된 것이 아닐까 무서웠다. 그럼에도 아직은 할머니가 밥을 먹을 줄 안다고 믿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반쯤 차 있던 밥그릇이 비워지는 것이 그 증거였다. 또한 이 때문에 할머니가 밥을 먹는, 아니 전혀 먹지 못하는 장면은 차마 볼 수 없었다.
수돗가에서는 마침 연탄집 언니가 빨래를 하고 있었다. 매일 연탄을 날랐지만 언니의 얼굴은 보름달처럼 둥그렇고 뽀얬다. 덩치도 커서, 쪼그려 앉은 소영의 몸이 다 가려졌다.
소영이가 다시 방으로 돌아왔을 때 다슬기 할매는 사라지고 없었다. 소담한 밥상도 치워진 상태였다. 소영이는 할머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할머니는 힘겹게 손을 들어 올려 소영이의 얼굴을 매만졌다. 할머니의 미소가 유난히도 흐뭇해보였다. 배 안에 금방 한 밥과 따뜻한 국물이 들어가서일 것이라고 소영이는 생각했다.
“할머니, 다슬기도 먹었어? 쫄깃쫄깃, 맛있어, 그치?”
할머니는 묵묵부답이었다. 말을 잃어버리면서 할머니의 표정은 더 다채롭고 섬세해졌다. 흐뭇한 미소에는 이내 서글픈 우수가 어리었다. 간혹 눈물이 고였다가 눅눅한 물방울이 되어 할머니의 척박한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하지만 대낮에도 빛 하나 들지 않는 이 침침한 방이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것 같았다. 소영이는 할머니의 손길을 느끼며 조잘조잘 오늘 일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할머니, 할머니! 나 오늘도 그 이상한 아저씨 봤어. 그 아저씨 되게 이상해. 뭐가 이상한 줄 알아?”
할머니는 여전히 하회탈 같은 미소만 머금은 채 말이 없었다. 하회탈의 두 눈에서 또 싯누런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슬퍼서가 아니라 몸의 다른 기관들처럼 나이를 너무 많이 먹어버린 눈이 저도 모르게 진물을 쏟아내는 것이었다. 소영이는 혼자 키득대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매일 물고기 잡으러 오는데 한 마리도 못 잡아, 히히. 날도 더운데 옷 껴입고 있어. 그 아저씨 바보야, 나처럼. 할머니, 근데,”
소영이는 요즘 늘 그랬듯 떡붕어 아저씨의 모습을 할머니에게 전해주려고 애썼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말을 해놓고 보면 실제로 보고 들은 것과 차이가 나는 것만 같았다. 소영이는 슬슬 짜증이 났다.
“아이, 어떻게 말해야 되지? 정말 커다란 아저씨인데, 냄새도 이상하고, 무슨 냄새라고 해야 될까? 에이, 할머니, 이제 영영 못 일어나? 옛날에는 뛰기도 했잖아, 엉? 이제 사과집 아기도 걸음마한단 말이야. 할머니, 손 좀 줘봐, 응? 내가 걸음마 가르쳐줄 게, 응?”
하지만 곧 바스러질 것처럼 약한 할머니의 손은 소영이의 손을 꽉 쥐지도 못했다. 소영이는 금세 풀이 죽었다. 하루 종일 방과 툇마루만을 간신히 오가는 할머니가 안쓰러웠다. 구덩이 오막살이 사람들은 그런 소영이를 안쓰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