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 아래로 내려가려니 당연히 겁이 나서 흠칫 물러섰지만, 다시 정신을 차리고 생각하니 더 이상 바랄 게 아무것도 없고, 가진 게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갖고 싶지 않아서 기분이 짜릿했다."<브렌타노(1)>- P437

(https://blog.aladin.co.kr/inua10)

 

".... 더 이상 바랄 게 아무것도 없고, 가진 게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갖고 싶지 않아서 기분이 짜릿했다." 라는 문장이 너무 마음에 들어 (그 블로그 출처와) 책의 이미지를 긁어왔다. 책을 직접 읽으면 좋겠지만, 시간이 여의치 않다. 아무튼. 비슷한 느낌을 체호프의 마지막 희곡을 읽으며 받았다. 아등바등 살고 항상 뭔가를 손에 넣으려고 애쓰는 도-키나 톨-이와는 아주 다른 작가. 톨-이가 그랬다고? 말년의 톨-이야말로 '무소유'를 소유하려고 애쓴, 말하자면 기왕지사 다 '소유'했음에도 심지어 '무소유'마저 '풀소유'하려고 했던 위인, 그런 인간이다. 이른바 구도자-되기. 그에 비하면 제법 많이 어린 체호프는 극히 성숙된 모습을 보여주었던 듯하다. 모든 것을 다 날리자 오히려 행복해지는 이 역설은 무엇인가.

 

 

 

 

 

 

 

 

 

 

 

 

 

 

 

그토록 지키고자 애썼던(과연 그랬나?) 벚꽃동산이 팔리자 홀가분해졌다, 라고 가예프가 참 좋아한다. 모두가 동의하는 것이기도 하다. 비슷하게 나 역시...

 

아이가 거의 석달째 경련을 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항상 조마조마했다. 덧붙여, 이것이 약의 도움이라 생각하여, 약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아졌고, 아이의 운동 기능이 현저히 약화되는 시점에서도 약을 줄일 용단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 22일 새벽에 아이가 경련을 했고, 그 덕분에! 약에 대한, 내가 생각하기에 그동안 너무 지나쳤던 의존도에서 해방되었다. 마침

상담(진료)에서 약의 부작용 가능성을 의사도 인정(?)해서, 다시 원래대로, 하루 2알에서 1알로 줄여보기로 했다. 내가 내심 너무 불안해한 중증 질환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가벼운 코웃음을 보이셨다. 전문가의 이런 반응이 무척 위안이 되었다. 대체로 문장이 깔끔하지 못한데, 핵심인즉: 

 

심지어 암 같은 중증 질환도 그런 것 같은데, 약을 비롯한 각종 의학적 처치는 (아주 응급이 아니라면) 하나의 방법론일 뿐이다. (병원에서 들은 어르신들의 대화 중. "의사는 그냥 좀 도와주는 거야, 이렇게 약 먹고 치료 받으면 뭐해, 집에 가서 술 처먹으면 말짱 도루묵이지.") 결국, 질병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 득과 실을 따져서 의료적 개입의 양을 조절하는 건 결국 의료 소비자의 몫이고, 그 과정에서 전문가의 의견을 참고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마음 맞는, 내가 그 권위를 인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의사는 반드시 필요하다. 다른 한편, 그게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이른바 플라시보 효과도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믿음!^^), 의사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약효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믿음.

 

 

 

 

 

 

 

 

 

 

 

 

 

 

 

약을 줄였음에도 운동 기능이 예전처럼 회복되지 않으면 정말 어쩌지. (지난 월요일, 치과 가는 길,11월만 해도 둘이 같이 신나게 걸어갔을 거리인데, 너무 힘이 없고, 심지어 횡단보도를 제 시간에 건너기 힘들고 뛰는 일은 아예 못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당장은, 경련과 발작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아이를 아주 못 움직이게 하는 일은 하지 말도록 하자. 조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이지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코로나^^;) 믿음.

 

정녕 믿음이 없다면 인간이란 무엇인가. 우리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건 믿음 밖에 없다. 나-악마의 소원은 뚱뚱보 상인 부인(부전시장의 돼지국밥집 아줌마^^;)이 되어 성상 앞에 촛불을 켜놓고 열심히 하느님한테 기도하는 거, 그런 부인이 되는 거라네^^; <카라마조프..> 속 '악마'처럼 나도 신심을 갖고 싶다. 왜냐면 정말이지 이런 믿음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고도'는 요제프 K 앞에 나타난 두 명의 집달리(=형리 = 깡패, 건달, 양**^^;)와 같은 것인데, 그 불안과 공포를 견딜 수 있게 해주는 건 결국, 믿음이기 때문이다. 단, 무엇에 대한? 

 

 

 

 

 

 

 

 

 

 

 

 

 

 

 

열심히 읽으며(옮기며) 탐구 중이다^^; 특히, 소설가 김연수가 번역한 저 <세 가지 질문>의 답은 정녕 금과옥조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 지금, 가장 중요한 사람은 -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 가장 중요한 일은 - 지금, 이 사람을 위해서 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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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의 <무소유>를 나이 들고 다시 읽었을 때 느낀 것은, 소유에 대한 과도한 불안과 공포, 무소유를 향한 그의 도저한 집착이었다. (풀)소유를 향한 집착 vs. 무소유를 향한 집착. 아마 후자 이전에 분명히 전자가 있었을 것이다.

 

 "동굴 아래로 내려가려니 당연히 겁이 나서 흠칫 물러섰지만, 다시 정신을 차리고 생각하니 더 이상 바랄 게 아무것도 없고, 가진 게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갖고 싶지 않아서 기분이 짜릿했다."<브렌타노(1)>- P437

 

아이가 휠체어 신세가 되면 어쩔까, 라는 공포가 컸는데, 그게 너무 커지니, 한편으론, 그 정도만 되어도 좋겠다는 묘한 위안이 생기는 것이었다. 즉, 지금처럼 말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고 전반적인 컨디션도 나쁘지 않고 그러면 하반신을 못 쓰더라도 최악은 아니라는 거다. 무서운 비유지만, 이렇게 극단을 상정해보니(아, 더한 극단도 물론 있을 수 있다, 슬프게도!) 별로 무서운 게 없어지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신(=약)이 없다고, 적어도 전지전능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무척 편해졌다. 그럼 뭘 믿어야 하나. 신의 부재(무능)가 우리에게 믿음의 무의미함을 얘기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다들 그랬던 것 같다. 새로운 신을 찾아볼 수도 있고 나-우리가 신이 될 수도 있고 신이야 있는 말든 '마이 오운 모드' 하며 살 수도 있고, 아무튼 살아 있으면 되는 것이다.   

 

 

 

 

 

 

 

 

 

 

 

 

 

 

 

 

(토마스: 내려오고 나니까 오히려 너무 좋아,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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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0-12-24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소식에 가슴이 아프지만 운동 능력도 되찾고 경련도 안 하기를 기원해 봅니다. 체호프의 희곡은 한 편도 못 읽어봤는데 <벚꽃동산>부터 시작해 볼게요.

푸른괭이 2020-12-24 12:57   좋아요 0 | URL
그게 불행인지 다행인지 제삼자는 잘 모르거나 관심을 안 두더라고요. 그냥 평소와 같다, 혹은 힘 없다 정도? 하지만 엄마의 촉은 확실히 정확한 것 같아요. 단원별로 그 학습 요구량을 따라가는 반면, 운동은 제자리걸음 정도가 아니라(이것만도 땡큐라는 것을 알았습니다ㅠㅠ) 명백히 후퇴, 퇴행 수준이거든요? 그래서, 엄마들이 다 그렇겠지만^^;, 집에서 간단한 맨손 체조라도 꾸준히 시켰더라면 이 정도는 아니었을 텐데, 경련 때문에 무서워서 지난 두 달을 꼼짝도 못 하게 한 걸 굉장히 후회하고 있어요 ㅠㅠ 뭐, 그 덕분인지 학교를 참 잘 다녔어요, 이번 가을에, 등교일 3일일 때요.

체호프 희곡은 <갈매기>부터 시작, <벚꽃동산>, <바냐 아저씨(외삼촌)>, <세자매> 순으로 가면 좋아요. <세자매>가 제일 난해^^;하다고 하죠. 열린책들 판에 실린 단막극도 재미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