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만에, 우연찮은 기회에 평론가 신형철의 칼럼을 읽었다. 자리 잡은 지 오래 된 것 같은데 여전히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쓰는 그의 모습에 물론 탄복하고, 예전에도 그랬지만, 그의 문체의 색깔(이게 동어반복이구나^^;), 무엇보다도, 힘있는 전언에 또한 탄복한다.

 

 

 

 

 

 

 

 

 

 

 

 

 

 

 

 

글의 처음을 여는 합평 얘기는, 딴에는 소설(시) 창작을 어느덧 몇 학기째 강의하고 있는 나도 새겨 들어야 할 부분이다. 방법론적으로! 말이다. 참 흥미롭게도, 마음에 드는 작품일 수록, 잘 쓴 작품, 애쓴 작품일 수록 더 많이 '씹게' 된다. 여기에 어떤 오류는 없는지,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나의 '거시기한' 화법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진심을 알아주리라는 믿음이 있다!^^;) 학생들 상호간의 태도, 그런 것을 또한 어떻게 이끌어야할지 등. 무엇보다도 -  

 

인위적으로 상처를 입혀야 누군가를 성장시킬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낡은 생각일 수 있다. 성장은 자신을 알게 되는 체험인데, 그가 제 작품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은 ‘자기도 잘 아는’ 단점이 아니라 ‘자기는 잘 모르는’ 장점이다. 예술가로 성장한다는 것은 단점을 하나씩 없애서 흠 없이 무난한 상태로 변하는 일이 아니라 누구와도 다른 또렷한 장점 하나 위에 자신을 세우는 일이라고 말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7230300035&code=990100#csidx6d45f03cbe6ab3f8c1c4adf039d7944

 

그의 잘 쓴 글에는 항상 힘이 들어 있다. 그는 항상 부정이 아니라 긍정을 호소한다. 어릴 때, 젊을 때는 소위 '부정의 파토스'(낭만주의^^;)에 심히 경도되었으나 결국 '하지 않음'(아님)이 아니라 '함'(임)이 이긴다는 것을 요즘을 절실히 깨닫는다. 많은 단점을 볼 것이 아니라 단 하나의 장점을 보고 그것을 키워갈 것. 김영하가 어떤 동영상에서 얘기하듯, 쓰지 말아야 할(혹은 쓰지 못할) 여러 이유 대신에 써야 할 단 하나의 이유를 생각하자.

 

그 다음 '잉여 쾌락'에 대한 얘기는 현재 문단 얘기인 듯싶다. 어떤 선배가 누군지도 조금만 검색해봐도 알겠다. 세 가지 잉여 쾌락 중  "쌤통(샤덴프로이데)의 쾌락", 당연하기에(!) 재미있다. 결론인즉, 나는 저자의 말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본다. 그리고 (아이에게(만) 쓰도록 강요하는^^;) 나의 반성문으로 여긴다. 나 자신에 대한 증오와 환멸을 타인에게 투사하지는 않는가.

 

작가 제임스 볼드윈은 꼬집었다. “사람들이 그토록 집요하게 누군가를 증오하는 이유는 그 증오가 사라지면 자신의 고통을 상대해야만 한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단지 흑인이라서, 다른 이유는 없다>) 이 글의 문맥에 맞게 저 문장을 함부로 바꾸면 이렇다. “사람들이 그토록 집요하게 누군가를 비판하는 이유는 그 비판을 그만두면 자기 자신을 비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7230300035&code=990100#csidxd30af99eb0bf71b86dbcaca8c190192

 

 

*

 

주말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지금도 썩 좋지 않다. 사흘째 죽 먹는데, 일상이 가능한 것에 감사한다. 아마 아이가 7월에 경련을 두 번이나 한 것 때문에 나도 너무 놀란 것 같다. 뇌파도 찍고 약도 새로 바꿔보고 그 약의 반응도 살피고 다행히 부작용이 없어 일단 시도해보기로 한다. 간단히 두 개의 문장이지만 7월에 계속 병원을 다닌 셈이다. 그리고 나는 어디 가는 데 몸도 마음도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런 일상의 스트레스 외에, 아플까봐 무척 무섭다 ㅠㅠ 정말이지 달팽이나 선인장이라도 먹어야 하나.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무슨 '부정'(비판/욕)까지. 약발 떨어지기 전까지 빨리 최종 교정 작업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

 

우리 사회가, 우리 나라가 충분히 먹고 살 만한 곳인데(7-80년대를 복기하는 지금에는 더 그렇게 여겨진다) 다들 너무나 전근대적인(!) 악의에 차 있는 건 아닌지. 이 포스트근대(요즘은 안 쓰는 용어?)의 시대에 말이다. 새로운 비판의 (새로운) 화법이 필요하다. 그런 시점인데도, 전근대적인(!) 새타이어, 알레고리, 아이러니에 매몰되어 있는 건 아닌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