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망했다, 나도. 망한, 망하고 있는, 망할 나(우리)에게는 픽션이 필요하다. 허구가 필요하다. 동식물 어떤 생물에게나 있는 짝짓기에게 인간은 '사랑'이라는 허구를 만들어 붙인다. 사랑하지 않기에, 혹은 사랑이 의심스럽기에, 그 부재가 두렵기에 끊임없이 묻는다. 연인들끼리. 사랑해? 사랑해. 심지어 아이와 엄마도. 엄마 나 좋아? 엄마는 너 좋아. 나도 엄마 좋아. 아니면, 이건 오직 인간만이 '언어'라는 것을 가졌기 때문에 생겨나는, 순수한 잉여인가. 그러니까 기왕지사 언어-말이 있으니, 한 번 써 본다, 이런 것. 어떻든 이런 픽션이 없으면 우리의 삶은 지독히 힘든 것이리라. 정말 못 견디리라, 라는 점에 동의한다. 픽션, 이라는 말 좋다. '신화'라는 말보다 편하다. 번역하여 '허구'라고 해도 좋다, 더 좋다.

 

왕권신수설. 오랜만에 들어보고, 또 한 번 적어본다. 권력이 왕에게 있고 그것이 신으로부터 받은 것이다(맞는가?^^;), 라는 생각 역시 픽션이다. 마찬가지로, 유발 하라리가 얘기하듯, '인권' 역시 얼마나 허구인가, 즉 발명된 것이다. 그러니까, 권력이 왕에게 있다는 것만큼이나, 국민 주권 역시 허구다. 국민이 주인이 되는 국가? 사원이 주인이 되는 회사? 학생이 주인이 되는 학교? 우리는 이런 허구 속에, 허구 위에 살고 있고, 살기 위해 또 다른, 새로운 허구를 만든다. 만들려고 한다. 어떤 픽션이 또 필요할까. 줄줄이 되는 대로 써봤다. 유발 하라라리라면 '상상력'이라고 불렀던 그것. 

 

슬슬 또 새 칼럼이 나왔을 것 같아 검색해봤다가, 대박, 건졌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809935

 

잠을 설쳤다면 거짓말이지만, 그의 내공에 탄복하고, 픽션이 없으면 살지 못하는 우리 인간 존재의 나약함이랄까, (역설적으로!) 강인함이랄까, 아무튼 그런 것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이번 생은 망했지만 다음 생은 괜찮으리라는 픽션.

 

<찬실이는 복도 많지> 이 영화평은 디저트로. 감독이 여성이던데 포스가 후덜덜. 다른 한편, 요즘은 어느 분야를 보든 70년대생이 참 많다. 딱 중간, 75년생인 내가, 나의 나이가 어느 지점에 있는지를 한 눈에 보여준다. "하고 싶은 거 빨리 해야 돼." 마흔 즈음에 만난, 대학 선배 언니의 충고. 그렇다. 그래도 그때는 둘째도 낳을 수도 있었는데^^: 그것도 과거지사. 김영민의 지적대로, (물론 나는 영화를 안 봤지만-_-;;) 지금 중년이 된 자들은 쉽게 알 만한 코드가 많다. 그 와중에 상기된 '정영음'. 나는 이미 라디오를 끊어버려 듣지 않은 프로그램이지만, 주변 선배들의 슬픔은 기억난다. "**야, 고미과 87학번 **가 죽었다." 그 문구가 생각나 다시 찾아보니 사망년도가 2004년. 지금은 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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