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학교(컴퓨터실)에서 마저 하지 못한 과제를 집에서 하도록 한다. 어마어마하게 뭉그적대다가 간신히 다 끝낸다. 자기 소개를 하는 글이다.

 

 

그 중 한 질문. <내가 소중한 이유는> - 아이가 쓴 답: <이 세상에 없으면 안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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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있는 존재는 없으면 안 된다. 죽을 때까지, 죽도록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그와 동시에 한 번 있는 존재는 언제가는 없어지게 되어 있다.

 

 

- "네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고 있었어."

- "그럴 수는 없어! 모든 사람은 언젠가는 태어나게 되어 있어."

 

이건 무슨 궤변?? 아마 "모든 사람은 언젠가는 죽게 되어 있어"라는 나의 말을 변주한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곱씹을 수록 아이의 말에도 모종의, 심지어 크나큰 진실이 담겨 있다 싶다. 일단 '사람'이라 하면 그건 태어난 사람인지라, 언젠가는 태어난(태어나게 된) 사람이 맞는 것이다. 동어반복이지만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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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소중한 이유는 - 이 세상에 없으면 안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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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중한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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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바쁘기도 했지만, 정신없이 게으른 것도 사실이다. 과연 코로나 기준, BC-AC가 될 법도하다. 어느덧 비대면 강의에 익숙해지니 종강이 다가온다. 마지막 한 번만이라도! 학생들 얼굴을 볼 수 있기를 바랐으나,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의 기여도 있고 하여, 아주 불가능해져버렸다. 괜찮아, 이런 것도 괜찮아, 다 괜찮아~ 대신 몇 개의 어구와 문장을 떠올린다.

 

/ 암이 전염병이 아니라니, 얼마나 다행인가. / 쎈 놈은 약하게 퍼지고 약한 놈은 강하게 퍼져라, 라는 신의 배려인가. / 아빠의 쭈글쭈글 뱃가죽 위에 구멍 다섯 개. / 나한테 혼 좀 나 볼 테야? / 씨발, 죽여버리겠어! / 나는 저렴한 인세생활자, 유언장을 써야겠다 / 아니, 공증 변호사가 아니라 정신과에 가보세요 / 괜찮아요, 나도 약 먹어요 / 보세요, 이 파란 알약 하나면 잠이 잘 와요 / 보험을 들어요, 그건 필수죠 / 초당옥수수가 나왔대 / 아, 당장! / 오늘 저녁은 노란 초당옥수수랍니다 / 행복은 5월에 나온 초등옥수수에 있구나

 

아, 역시 시는 아무나 쓰는 것이 아니구나 ㅠㅠ 이번 학기에 시를 쓰는 학생들이 유난히 많아, 나도 덩달아 시집을 또 뒤적이고 백석과 정지용 시집도 샀다. 오랜만이다, 시가.

 

 

 

 

 

 

 

 

 

 

 

 

 

 

 

 

(백석 시집. "엄마는 이런 책 봐? 나도 좀 보자!" / 정지용 전집은 그 사이 하드 카버로 바뀌어서 불만이고, 이원하 시집은 아주 상큼했다.)  

 

 

 

 

 

 

 

 

 

 

 

 

 

 

(이런 것도 사서 읽어, 들추어 보았다. 말할것도없이, 우리문학, 좋아, 왜냐면, 우리꺼니까!)

 

 

*

 

아이와 함께하는 일상이 너무 고맙고 소중하다. 나는 방학을 준비할 시기에 아이는 개학을 준비하게 생겼다. 아주 그로테스크한 시즌이다. 조만간 시즌2, 시즌3 등이 올 것 같아, 이런 그로테스크 시슨도 일상이 되겠네.  

 

(오전)

 

(오후)

 

아이 학교 앞, (남의) 아파트의 찔레꽃. 특별한 건 없고, 5월 18일이었다.  

 

월화 컴실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고마운 사진 한 장, 마스크 안 쓰고 있다가 딱 걸림^^;

이 더위에 참 고생스러운 노릇이다. 솔직히, 나도 일상 생활의 공간에 '사회적 거리'만 확보되어 있으면 잘 안 쓰게 된다. 

 

 

작년 봄-여름부터 산을 자주 간 것 같은데, 최근에 아이의 양말 뒤꿈치 부분에 '구멍 일보 직전'을 발견했다. 워낙 걸음이 늦었고 보다시피 잘, 많이 못 걷고 그래서 양말이 낡아서 버린 적이 없다. 전부 작아져서 버렸다. 이제야 비로소 낡은, 구멍까지 난 양말을 보게 생겼다. 기쁜 일이다. 그와 나란히, 나는 5월 9일에 새치가 발견되었다. 아주 많이 자란 새치였다. 완전히 하얬다. 뽑아서 보관 중이다. 헉, 너마저도!   

 

  

아이의 자세가 나와 너무 똑같아, 참, 할 말이 없다 ㅠㅠ 딸아이로 태어났더라면 정말 싱크로율 100프로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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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아 2020-05-22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이 쓰신 시를 몇 번이나 읽어요. 자꾸 읽게 하는 시가 좋은 시라고 들었어요. 시작도 끝도 인상적이에요. 님의 시도 반갑고, 이원하 시집을 비슷한 느낌으로 읽은 것 같아 괜스레 반갑고, 안부를 알게 돼 반갑고... 반가워요! 이렇게 반가워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푸른괭이 2020-05-22 19:48   좋아요 0 | URL
헉, 시로 읽어주시다니, 감개무량합니다!!!
스무살 이후 시를 써본 적이 없는데요 -_-;;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