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서울대 교수 되기, 란 무엇인가.

이렇게 물어야 할 것 같다.

 

은사가 나간 다음 공고가 났으나 '러시아문학사(19세기 제외) 혹은 문화'로 났고, 나는 지원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한 이른바 내정자는 A였는데, 다수가 반대하였고 그들이 미는 자는 B였고, 형식상 C가 들러리였다.(물론 C본인은 그리 생각지 않으리라.) 결국 '나가리'가 났다. 한학기는 애도의 차원에서 조용. 이번 학기에 공고가 났고, 문구가 똑같았다. 나는 명실상부한 19세기문학(소설) 전공자이지만, 20세기도 최소 업적(두 편 - 최대 4편)을 채울 만큼은 되어 지원을 해보았다. 지난 월요일 오후에 떨어졌다는 메일 받고 무척 상심했다. 혹자는 아니 당연하지! 라고 하겠지만 당사자는 그렇지 않은지라, 상심한 마음을 다독이고 앞으로 나아갈 바, 당장 지금 해야 할 일을 새겨보고자 한다.^^;

 

속사정을 어느 정도 전해들은 뒤라 '어부지리'를 얻고자 하는 목적, 정확히 욕심이 있었다. 나는 이런 경우에, '그냥 내봤어~' '내가 되겠어?'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수사법도 물론 이해가 되지만, 그냥 내는 건 없다. 되고 싶으니까 내는 것이다. 될 확률이 아주 낮더라도 그럴 수록 더더욱 되고 싶은 마음이 커서 내는 것이다. 그냥? 서류 준비하는 데 꼬박 2주(3주?)가 소요되었다. 단순히 업적, 각종 증명서, 계획서 등은 그나마 일주일이면 해결된다. 문제는 저 공포의 추천서. 러시아의 지도교수까지 괴롭혀 힘들게 서류를 만들고 여기저기 전화, 메일을 통해 추천자를 구하고 그 서류가 제대로 들어갔는지 확인하고 하는 번거로움에 '그냥'은 없다. 되고 싶은 것이다. 이 성가신 일을 함에 있어, 그래도 내가 될 거야, 될 수 있을 거야, 라는 믿음, 적어도 바람이 없다면 일 자체가 진척이 안 될 것이다. 다 알지 않나. 서류 행정만큼 무의미하고 한심한 것, 그러나 꼭 필요한 것은 없음을. 기왕지사 1차 탈락이지만 이 참에 서류를 한 번 정리해본 것은 그래도, 슬프지만, 아무튼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굳이 내숭 떨지 않고 말하거니와, 결과를 기다리는 요 1-2주의 고통은, 과장 좀 보태면, 내시경(혹은 각종 생검) 이후 조직검사의 결과를 기다리는 것에 비할 수 있으리라.  

 

- 문구만 봐서는 지난 번 재탕이구먼.

 

누가 봐도 뻔한 구도에도 불구하고 고생하며 지원하는 데는...

 

 

 

 

 

 

 

 

 

 

- 알료샤, 아버지한테 가서 좀 (3천루블을) 부탁해봐.

- (드미트리)형, 아버지는 안 주실 거야.

- 안 주시지, 주실 리가 있냐. (한 템포 쉬고.) 알료샤, 절망이 뭔지 아니?

 

드미트리는 희극적인 인물인데, 이 비극에 있어서도 참 희극적이다.(드미트리에게는 항상 미안했다^^;) 그렇기에 더더욱 그의 저 절망에 깊이, 격하게 공감하게 된다.

 

- 19세기제외라고요? 그래도 한 번 내 볼 테니 고려해주세요, 예? 뽑아주면 열심히 할게요! 내 자리 아니라고요? 그건 아는데요, 혹시 절망이 뭔지 아세요?

 

현재 '패컬티'가 모두 한솥밥 선배들(심지어 전공은 아주 다르나, 동기까지)인지라 더더욱 그런 희극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경우 흔한 일이지만, 온갖 말들과 온갖 표정들이 되살아나면서 나를 거의 섬망상태로 몰아간다. 헉, 다 집어쳐, 더럽고 치사해서, 원! 이러고 싶지만, 잠깐잠깐, '건전한 상식'이 나의 발목을 잡는다. 첫째, 마땅히 집어치울 것이 있지 않다. 기껏해야 다음 학기 강의 정도인데, 그냥 둬도 절로 폐강될 수도 있거니와, 개설되는 경우라면 그것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한달 강사료가 100만원에 육박한다. 일주일에 3시간 강의하는데 이만한 벌이가 어디 있나. 둘째, 행여 저나마 집어치운다면 그다음 뭘하지? 전업작가? 전업 번역가? 사실 지금도 다를바 없지 않나. 셋째? 마땅히 생각나는 것도 없지만 더 이상 생각하는 것이 무의하게 느껴진다.

 

*

 

무릇, 사람은 직업이 필요하다. 나는 직업이 있다. 직업 정도는 있는 인간이다. 직장도 필요하다. 직업은 있는데 직장은 없다? 비정규직 형식의 직장이 있다고 해야겠다. 그러니 더 정확하게는 비정규직 강사에서 정교직 교수로의 신분 상승을 꾀한다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서울대를 나왔고 서울대 교수가 되고 싶다. 욕을 많이 먹고 그럴 만하지만 그래도 나는 서울대가 좋고 서울대 나온 내가 좋다. 명백히 '개룡'인 나의 이력에서 쓸만한 몇 안 되는 이력 중 하나가 '서울대 졸'(그리고 쓰고 번역한 책들이다)이다. 계속 이곳에 머물다가 이곳에서 (뭘?) 떠나고 싶지만, 이것이 실은 '소박'은 고사하고 무척 '사치'스러운 것임을 알겠다. 

 

*

 

 

 

 

 

 

 

 

 

 

 

 

 

 

 

김영민의 에세이를 뒤적이다 <마지막 강의의 상상>(?)인가 하는 제목의 글에 잠시 머물렀다. 놀랍게도, 처음에 언급되는 것은 이인성의 <마지막 연애의 상상>이었다. 지금은 이미지도 뜨지 않는(솔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다) 책인데, 이런 것까지 챙겨읽은 그의 성향이랄까, 부지런이랄까, 아무튼 그런 것에 놀란다. '마지막 강의'를 하기 위해서는 사실 여러 요건이 충족되어야 하는데, 전임 교원인 그가(고려대 철학과 졸, 하버드박사, 정치학 중에서도 취직하기 제일 어렵다는 정치사상-철학, 더욱욱이 중국-동양 정치사상사 전공인 그가 이렇게 취직이 된 것도 참 천운이리라, 넘 부럽다^^;) 이런 문제를 제기함에 있어 언급하는 내용을, 내 식으로 재구성해 보면 이렇다.

 

첫째는 교수가 되어야 한다. 지금의 나처럼 불안정한 신분 상태에서는 '정년' 자체가 없다. '마지막 강의'란 계획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냥 담 학기에 짤려, 강의를 못 받아, 어쩔 수 없이 현재 이 강의가 마지막이 되는 것이다. 둘째, 학령 인구가 급감하는 상황에서 내가 속한 학과, 학교가 폐과, 폐교되지 말아야 한다. 이 농담 같은 일이 실현된지 오래다. 특히 나처럼 제2외국어 전공은 허다하다, 라고 할 수도 있다. 러시아어과 교수로 임용되어 교양 영어 가르치다 퇴직, 이런 식이다. 시인 이성복도 불문과 교수로 취직, 문창과 교수로 퇴직한 것으로 안다. 셋째, 돌연사하지 말아야 한다. 옛날 같으면 푸핫, 하고 웃음을 터뜨렸을 것을, 지금은 숙연, 심지어 모골이 송연해지는 대목이다. 사람은 다 죽는데, 그 죽음의 시기가 재직 기간이지 말라는 법은 없다. 좀 웃기지만, 쓰다 보니 첫째와 셋째는 상당히 통하는 면이 있다.   

요컨대 (시간) 강사에게 '마지막 강의'란, 바로 지금 이 강의다. 마치 오늘 이 순간이 내 생애의 마지막일 수 있는 것처럼(고맙게도, 배가 덜 아프게도, 이건 교수나 시간강사나 다 똑같다!) 다음 주 화요일에 할 강의가 마지막일 수 있다. 위에 열거한 1번, 3번의 이유에서 그렇다.

 

그리하여...

매 시간 내가 하고 있는 강의에 최대한 충실할 것,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을 열심히 할 것.

 

19세기를 당당히 제외한 교원 공채에는 20세기를 열심히 공부하겠노라고 썼지만 사실 내가 올 겨울에 쓰고 싶은 논문은 <마담 보바리>와 <레이디 맥베스>(레스코프)를 비교하는 논문이다. 즉, 19세기 소설 연구다. 에효, 송충이는 솔잎 먹어야지. 그리고 당장 좋아하는 사람 따로 있는데 엉뚱한 데 붙어 있는 것도 힘들다. <악령>이 끝나면 톨스토이 단편선 번역을 후다닥(^^;) 해치우려고 한다. 도스토-키 연구서도 더 미룰 상황이 아니다. <백치> 번역은 쉰 살 전에 끝낸다고 나 스스로에게 약속했으니 정말 코앞이라고 할 수 있다. 정말, 마지막이다!

 

'마지막'을 앞에 두고 - 그러게

 

-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오늘 아침 나는 살아 있고

어젯밤에 일찍 자서 비교적 상쾌하게 아침에 제때 일어났고  

아이의 등교를 도와주고

("*** 왜 이래요? 병원은 가봤어요? 얘, 이래 뵈도 머리는 좋은 애예요" 이런 말도 듣고 ㅠ)

보다시피, 잡글이지만, 아무튼 글을 쓰면서

'생각'도 정리해보았다. 

 

*

 

오늘 하루도,

남은 이번 달, 남은 올해도, 심지어 조만간 올 내년도

딱히 좋은 일이 있기 보다는,,, 딱히 궂은 일이 없기를,

조심스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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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웅 2020-11-19 0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연히 들어왔다가 서울대, 노문과, 내 연구, 이 글을 읽고 댓글 하나 답니다. 학부 때 노문과 시간강사 백선생님 수업을 듣고 군대 가서 그 분의 별세 소식을 들었습니다. <러시아 명작의 이해> 강의를 시작하실 때 카세트를 들고 오셔서 차이코프스키, 쇤베르크 등 클래식 음악만이 아니라 빅토르 최 노래도 들려주셨지요. 신세계였습니다. 버들골에서의 야외 수업도 있었고, 감상문에 대한 피드백도 꼼꼼히 받았습니다. 푸른괭이님의 ˝오늘 아침 나는 살아 있고˝라는 글귀가 와닿게 씁니다. 참 그리운 분입니다. 카프카즈의 경계성이 떠오르는 밤입니다.

푸른괭이 2020-11-19 09:27   좋아요 0 | URL
1년 전 글이지만, 댓글이 반가워 저도 한 마디 씁니다. 백** 오빠(^^;)가 굳이 왜 그런 선택을 해야했는가, 하는 원망 섞인 의문은 여전히 있습니다. 참고로, 두번째 공고 역시 ‘나가리‘였고 그 이후는 계속 공석이죠 -_-;
우리가 전임교원 안 된다고(다른 식의 말을 만들어봐도 좋겠습니다) 뭐 큰일 나는 것도 아닌데, 어느 순간, 어느 자리에 있든 적절한 만족과 정신승리^^;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사람 안 죽으면 됐지, 라는 어르신들의 말을 떠올려 봅니다. 비도 오고 울쩍한 아침입니다^^;

신현웅 2020-11-19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전임이 아니더라도 연구에 대한 열정을 안정적으로 풀 수 있는 환경이 어떻게든 마련되어야 할 텐데 그것은 참 소원한 일인 듯합니다. 그러려면 학내 연구소에 양질(?)의 자리가 즐어야 한다는 빤한 생각만 떠오릅니다.

각설하고, 우연히 들른 서재를 살금살금 탐방하다가 푸른괭이님의 성함이 익숙하다 싶어 봤더니, 열린책들 도스토예프스키 <<악령>> 번역자시군요! 2002년 봄에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을 구입해 <<악령>>을 세 번인가 읽었습니다. 좋은 번역 고맙습니다, 꾸뻑. 눅눅하지만 빗방울 연주곡이 썩 괜찮은 아침입니다.

푸른괭이 2020-11-19 12:19   좋아요 0 | URL
<악령>은 내년에 새 번역이 나올 겁니다. 다시 읽어주셔도 좋겠습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