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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밤에도 잠든 아이 옆에서 하릴없이 인터넷을 하다가 어느 소설가의 트윗에 들어갔다. '함정임'이라는 이름은 소설가 김소진의 아내로 먼저 알게 되었는데, 그때 이미 김소진은 세상을 떠난 뒤였다. 그녀의 소설을 애독하는 건 아니지만, 그녀의 삶은 간혹 엿보고 있다. 몇 마디 말들이 눈에, 귀에 쏙쏙 들어오고, 사진이 무척 좋다. 무엇보다도, 요리를 잘하는 것 같은데, 음식 사진이 아주 예쁘다. 강된장, 열무김치, 잔치국수, 이런 평범한 음식도 그녀의 사진과 트윗 속에서는 한폭의 그림, 풍경 같아 눈이 즐겁다. 흡사, 우리에게 파스타(스파게티) 같은 것이 아주 낯설던 20여년 전, 그런 음식 사진을 보는 느낌. 은근히 문학적인(!) 느낌이다. 여행도 자주 다녀, 올 여름에는 내가 유럽을 돌고 온 기분이다. 그녀의 트윗에 자주 출몰하는 이름 '가브리엘'이 아들임은, 오래 전에 눈치챘다. 대학 시절, 문학 동아리 서클의 영문과 선배를 통해 '소진이 형' 얘기를 듣곤 했다. 그로부터 벌써 몇 년인가. 그들의 아이가 벌써 저렇게 자랐는데, 아, 놀라워라, 조향사의 길을 걷고 있다. 사진을 보니 소년 '태*'은 시쳇말로 정녕 훈남이 되었다.

 

 

 

 

 

 

 

 

 

 

 

 

 

 

 

생각나는 대로 이미지를 긁어와 봤다. 소설가 함정임의 직장은, 오래 전 나의 큰아버지가 영문학과 교수로 있던 곳이기도 하다. 나의 아버지는 국졸(초졸)이라, 또 7, 80년대라, '교수'라는 것이, 더군다나 '영문학'이라는 것이 까마득히 멀면서도 무척 대단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 무렵 큰집은 구덕산 근처, 구덕운동장 바로 맞은편 문화아파트에 살았다. 반지하 단칸방, 기껏 좋아져서 두칸짜리 반지하방에 살던 나와 동생들에게 그곳은 말하자면, 부와 교양과 문화의 상징 같은 곳이었다.  돌이켜 보면 단지도 작고(정녕 '나홀로 아파트') 평수도 넓지 않고 낡고 후줄근하지만, 그렇게 되었지만, 회상되고 복기되는 그 시절 속에서 문화아파트, 동아대 등은 여전히 난공불락의 성이다. 큰아버지는 "내가 누군데!" 이런 스타일은 아니었으나, 아무튼 지금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상태로 몇 년째다. 몇년인지 세다가 까먹었다.

 

 

 

 

 

 

 

 

 

 

 

 

 

 

 

 

다시 어제의 트윗. 여행과 요리는 작가의 취미로  참 좋은 것 같은데, 유감스럽게도 나는 둘 다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싫어한다. 여행은, 이동 자체를 싫어해서, 심지어 유학조차 모스크바가 아닌 모스크바 기숙사-학교에서 했다고 할 정도다. 이 점에서는, 지난 봄에 재미있게 읽은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그런데 그 사이 표지가 바뀌었네?!)가 정반대의 삶을 보여준다. 낯선 곳으로의 여행이 그렇게 좋다니, 예약된 호텔에 들어가서 짐을 탁 던질 때 그렇게 좋다니^^; 사람은 이렇게 다르다. 나는 그 낯섦(섬?)이 참 싫고 힘들다. 어떨 때는 자폐적인 성향이 조금 있구나, 라는 생각조차 들 정도다. 

 

 

 

 

 

 

 

 

 

 

 

 

 

 

요리는 더 싫다. 아이를 키우느라 마지못해 이유식을 만들고 그 이후에도 음식을 좀 만들다가, 작년부터인가, 반찬 및 음식 만드는 일을, 요리를 무척 좋아하는 남편에게 일임한 다음에는, 정녕 최소치의 세팅(?)만 하고 있다. 심지어 이것조차도 싫다. 아무리 기본이 갖추어졌다고 해도, 데우고 끓이고 굽고 하는 최소한의 노동도 하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가, 특히 여자-작가는 열에 아홉 요리를 한다. 잘하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를 키울 경우에는 특히 그렇고, 또 팔린다. 엄마들은 대부분 저런 책에 끌린다. 아이에게 밥을 해주는 것이 아주 큰일,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리를 좀 해본 사람은 알지만, 이만큼 생산적인(!) 일이 없다. 재료 선별과 손질부터 '클래스/레벨'이 있다. 요리 과정은 말할 것도 없다. 굽고 삶을지, 삶고 구울지, 혹은 구울지 튀길지, 센불로 할지 중불, 약불로 할지, 어떤 채소와 같이 할지, 소스나 양념은 어떻게 할지 등등 미치고 환장할 정도인데, 요리를 잘 하는 사람이 그 과정에서 느끼는 쾌감은 과연 모든 '쓰꾸루'(만들다)의 성취감을 능가할 터이다.

 

 

 

 

 

 

 

 

 

 

 

 

 

 

(김애란의 <가리는 손>의 도입부, 우럭 미역국 끓이는 부분도 참 잘 썼는데, 요리를 해본 사람만이 할 수 있을 법한 묘사였다.)  

 

아이 엄마로서 요리를 하지 않음은 일종의 직무유기 같다. 대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뭘? 다른 한편, 작가로서(또한 학자로서, 번역가로서) 요리와, 앞서 쓴 여행은 참 좋은 취미인데, 그게 싫으니 대신 뭐라도, 그런데 뭘? 여행과 요리는 우리를 '말'로부터 비교적 해방시켜준다. 그런 수준의 놀잇감이 있으면 좋을 텐데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다. 다시금 저 트윗. 사실 저 트윗의 많은 사진 중 핵심은 '나 자신'이다. 작가 본인의 사진도 상당히 자주 바뀐다. 중년의 나이임에도 어쩌면 청년, 장년 시절보다 더 멋있게, 아름답게 사는 모습이 은근히, 아니 대놓고 부럽다. 지난일은정녕일도아니다.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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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는 조교와 통화를 하고 울쩍해졌고(계속 방학이고 싶다!!!), 문학 신간을 보면서 또 울쩍해졌다. 최영미의 시집은 한창 때 것으로 가져와 봤는데, 신간 시집이 잘 팔리는 것이 오히려 울쩍한 건 왜지? 장정일은, 그의 새 시집은 정녕, 한 시대가 저물었음을 반증해주는 것 같다. 주변에 장정일-파가 많았다. 나는 이렇다저렇다할 감정이 없으나 워낙에 많이들 읽고 또 (영화를) 많이들 봐서 그 흐름과 항상 함께 했다고 할 수 있으리라. 여러모로 '잔치가 끝'났음을 알겠다. 어제는 아빠와도 통화했는데, 15년째 혈압약을 (당뇨약 등등과 더불어) 복용중임에도 여전히 알코올중독자(-의존증 환자)일 수 있는 그는 정녕 뭐냐. 그야말로 자유로운 영혼?? 내 아비만 아니면 무협 판타지의 주인공감이다. 약 먹을 때 술이랑 같이 먹나?? 나도 모르게 웃음까지 나온다. 이쯤 되면 부조리극이라고 해야겠다. "아니, 자기 아빠를 어떻게 저렇게 내버려둘 수 있어?"하고 남편이 반문하는데, 아니 그럼 어쩌라고. 가정문제는 그토록 미묘하고 심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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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쓰다가 지쳐서 낙서를 해보았다. 소설을 많이, 열심히 써서 지친 것이 아니라, 내 깜냥이 그것밖에 되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그 적은 용량도, 그것이야말로 '나'인 것이니까 소중히 다루려고 한다. 그러려고 애쓰고 그래야만한다고 다독이는 중이지만(게다가 이제야 깨달았지만 나는 보통 아이 둘 이상을 키우는 시간과 에너지를 한 아이에게 쏟고 있다), 솔직히, 자괴감과 열패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럴 때는 정말 여행이든 요리든 뭔가 취미가 있으면 좋겠다. 대학원 시절에는 잠시 뜨개질을 배웠는데, 이제는 눈도 침침해오고 곧잘 (목 디스크에) 어깨도 아파와서 안 되겠다. '저녁식사가 끝난 뒤'는 왠지 '무도회(잔치/파티)가 끝난 뒤'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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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자나 2019-10-20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덕공원 입구의 정원 딸린 저택들, 문화아파트 ... 당시에는 뭔가 선망의 대상이었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