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것들의 공존에 관한 이야기는 나의 석사논문의 마지막 장, 결론의 내용이기도 했다. 어쩌다(정말 어쩌다가, 인지 도통 기억이 안 난다!) 존 덴버와 플라시도 도밍고가 부른 <퍼햅스 러브>를 듣게/보게 되었다. 엉망진창인 영상 속의 그들이 너무 젊어서 놀라웠다. 저 노래, 저 버전은 대학 1학년, 영어 랩시간에, 동글동글 강아지를 닮아 귀엽게 생겼던 선생님(자기는 키츠 전공이라고 첫 시간에 소개했다: "여러분, 키츠라는 시인 아세요?")이 틀어준 것이다. 그리고 부르라고 하셨다. 나도 불렀는데, 그 시절이 정말 까마득한 옛날.

 

두 가수를 좀 뒤적이다가 그 무렵엔 '파바로티와 친구들'로 먼저 알게 된 파바로티도 뒤진다. 엊그제 돌아가신 것 같은데 그게 벌써 10년도 더 전의 일이다. 아무튼 이른바 세계 삼대 테너. 세 사람이 함께 공연하는 영상을 본다. 1994년 <오 솔레 미오>. 아, 이탈리아어를 좀 알면 좋겠는데, 프랑스어를 공부한 짬밥으로 제목만 좀 짚어진다. 태양 - 솔레이. 역시 비슷하네^^;

 

 

키가 제일 큰 도밍고가 왼쪽, 쬐금 더 작은 파바로티가 오른쪽, 가운데는 호세 카레라스. 사실 호세의 키가 그리 작은 건 아닐 텐데(의외로 남 유럽 남자들이 크지 않다, 북쪽으로 갈 수록 커지지만) 두 거구 사이에 있으니 다소 왜소한 느낌. 셋을 같이 놓고 보니 무척 정겹다. 파바로티는 사람 좋은 아저씨, '털보 만두', 이런 아저씨 같은 느낌과, 동시에, 아동 상대 온갖 흉악범의 느낌을 가진, 정말 양가적인 얼굴 같다.(물론 나는 그의 얼굴이 좋지만^^;) 도밍고는 젊어서는 뭐랄까, 수컷의 느낌이 너무 강해서 좀 부담스러웠는데(너무 또렷한 이목구비와 너무 검은 털들), 중년을 넘기면서 아주 멋있다. 이제는 진정한 유럽 노신사의 느낌. 가운데 카레라스는 성악가, 음악가라기보다는 엄정하고 꼬장꼬장한 남유럽 지식인의 느낌을 오히려 더 많이 준다. 몸이 저리 날씬하여 소리를 어찌 내시는지, 오른쪽 옆의 파바로티와의 정반대다.

 

엄격한 콘서트 무대가 아니라 그냥 사이 좋은 친구 셋이 나와 노래 부르는 느낌, 기껏해야 리허설 느낌. 오케스트라도 왜 이리 헐렁(?)한지, 뒤에서 바이올리스트, 계속 웃는다. 밑의 댓글들 중 하나. "저 세 사람이 참 행복해 보인다, 오케스트라도 행복해 보인다, 관(청)중도 행복해 보인다, 나도 행복하다." 여기에 '나도' 라고 덧붙인다.

 

이른바 타고난 천재의 느낌은 파바로티가 강하게 준다. 숫제 감추려고도 하지 않고 항상 한 손에 들고 수시로 땀을 닦아대는 하얀 손수건. 뭐 비싼 것일 테지만, 느낌에는 거의 행주, 걸레 같다^^; 심지어 자기가 노래 안 부를 때는 껌도 씹는 것 같다.(이건 정녕 실화냐 -_-;;) 노래를 부를 때 고생한다는 느낌을 별로 주지 않는다. 그냥 서서 부르는데 그게 노래다. 보는 사람이 행복하다, 감동하고 그렇다. 외국어를 전혀 몰랐다고 한다. 실제로 그의 영어 노래는 정말이지 -_-; 공부 머리가 별로 없었을 법하지만, 이런 것에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자기 노래를 부르는 데 열과 성을 다했을 터. 아이들도 넷이 된다. 그러게, 오래 전 유산 소송이 기억난다. 그 많은 돈을 (전처 소생의) 세 딸들에게, 나머지는(절반?) 두번째 부인과 딸에게. 젊은 날의 파바로티는 또 그 모습대로 새롭다. 오페라를 모르지만, 좀 알고 싶어지는 순간이다. 당최 가사를 못 알아들으니, 게다가 맥락을 모르니 -_-;

 

이른바 노력한/하는 천재의 느낌은 카레라스와 도밍고에게서 받는다. 특히 도밍고는 외모의 등급이 점점 업그레이드 되는 것 같은데, 여기에도 노력의 몫이 크리라. (파바로티는 왜 살을 안 뺐나, 팬들이 마음 아팠을 법하다. 127킬로그램인가 그랬다니.) 음악을 잘 모르지만, 노래도 듣기 좋고 매너랄까, 분위기랄까 그런 느낌. 파바로티와 비교하면, 흡사, 프레디 머큐리와 브레이언 메이를 같이 놓고 보는 기분이다.

 

각자가 다 '잘난' 이 천재들이 함께 저렇게 아름답게 노래를 부르며 노는(!) 모습, 참 보기 좋다. 문제는 다시금 '사회성'인가. 조화로운 공존의 전제는 각자가 자기 자신을 적절히 사랑하는 것이다. 내가 미워지면 대책이 없다, 남도 사랑할 수 없다. 사랑은커녕 남의 존재를 제대로 견디지 못한다. (최근 진주 사건 ㅠ.ㅠ) 적절한 수위의 자존감을 갖는 것이 중요한데 쉽지 않다.  

 

미국과 미국의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순위가 밀렸는데 다시 존 덴버. 그의 <테이크 미 홈, 컨트리 로드>는 지브리의 애니-션 <귀를 기울이면>에 삽입되어 무척 예쁘게 편곡되었다. 그 버전을 나는 참 좋아한다. 그 다음, <애니즈 송>인데, 음, 이 '애니'와 결국 이혼했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온다. 이혼도 젊으니까, 에너지가 있으니까 하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아무래도 싸울 힘이 없어, 또 인생에 다른 기대가 없어 많은 것이 참아지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헐, 이런 문장도 가능하다니!) "너와 **의 아름다운 한 시절을 축복한다." 아주 오래 전, 한창 연애할 때 선배가 해준 말대로, 이 '한 시절'을 즐길 필요가 있다. 다 한철, 한시절, 한순간이다. 

 

*

 

거리가 멀수록 타인의 다름을 참기가 쉽지만, 심지어 사랑할 수도 있지만, 이반 카라마조프의 말대로 이웃(가까운 사람)을 사랑하긴 정말 힘들다. 극히 재미없는 사생활이지만, 지난 주 부부싸움의 요지는 이거다.

 

전형적인 중산(중하)층 출신의 성실한 직장인 남편: 여분의 돈을 뺄 수 있는데 왜 부동산에 신경쓰지 않느냐, 이런저런 조건을 따져서 분양도 시도하고 이사도 다니고 대출도 받고~ 그렇게 알뜰살뜰 허리 띠 졸라매고 열심히 살아서 아이한테 유산도 좀 주고~. 

전형적인 빈민층 지방 출신의 퇴폐적인 작가/번역가, 만년 시간강사 아내: 지금 살 집 있고 빚 없으면 그냥 쓰면서(모아지면 모아지는 대로) 사는 거지 뭐 하러 그렇게 사냐~ 위장 멀쩡할 때 맛있는 거 실컷 먹고 건강할 때 예쁜 옷 사입고~.  

 

결국 싸움의 끝은 "각자 자기 식으로"이다. 원칙은 그렇지만 충돌이 불가피하다. 가령 오늘 마트, 나는 주꾸미도 먹고 싶고 낙지도 먹고 싶어 다 사자고 했다. 남편은 그건 낭비다, (늘 그렇듯!) 과일도 많이 샀으니 둘 중 하나만 고르라는 것이다. '더럽고 치사해서'(!) 내가 삼만원 줄 테니 다 사자고. 돈 많은 내가 이겼다, 결국 다 샀다. 정녕 대화와 갈등의 '퀄러티'랄까 '클래스'랄까, 이런 것이 너무 낮은 것이다. 그래서 결혼은 사랑의 무덤, 우리를 낭만주의에서 사실주의 밑바닥, 자연주의의 밑바닥을 뚫고 범주화할 수 없는 어딘가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그렇다면 연애(불륜)나 이혼이 답일까.

 

지속 혹은 반복되는 연에서 결혼 생활과 똑같은 권태를 맛보는 보바리가 우리에게 해답을 제공하리라. 그러게, 이 '한 철'을 즐기라는 말씀. 오늘은 주꾸미도, 낙지도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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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nessy 2019-07-19 0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존이라는 단어가 기본적으로 다름에 대한 이해가 바닥에 깔려야 하는거겠죠.. 저희집은 다름을 같게 만들려는 강한의지의 한사람 때문에 오늘도 힘드네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