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전에 담임의 문자가 온다. 아이가 오늘 너무 잘했다고, 칭찬해주라고. 그 다음, 3시쯤 교문에서 만나고, 가방 보니 알림장 가져왔고, 내용도 다 잘 써왔다. 자기 스스로도 오늘 잘 한 날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전사(!)가 있다.

 

*

 

그저께, 담임의 문자, 이어 전화 통화. 아이가 체육 시간에 말을 너무 안들어서 힘들었다고(이번 주부터 4교시에는 보조교사가 와주신다), 집에서 패널티를 주라고(무슨 핸드폰 게임 좋아하는 거 같은데 그거 못 하게 하라고) 하신다. 3시쯤, 교문에서 만남, 알림장을 사흘째(즉 월,화,수) 빼 놓고 왔다. 반성문을 쓰게 한다. 앉아서 한 문장씩 꾸역꾸역 쓴다.("민패(민폐) 끼쳤다, 알림장 학교에 두고왔다, 친구들한테 예쁜 말 안 했다, 까불었다) 분위기가 싸~하니까 수학 연산 문제, 과장 보태, 빛의 속도로로 푼다. 작업치료, 너~무 열심히 한다, 그룹 체육 마찬가지. 다시 집, 게임은 고사하고 무척 혼나고 엄청난 벌(!)을 받는다. 국어 교과서 일부 베껴쓰고, 박완서 동화 <7년동안의 잠>(무척 길다!) 절반 읽고 등등. 밤에 잘 때 안아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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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어제. 엄마도 몰랑몰랑하고 분위기도 새록새록하고, 국어 독해를 하다가 몇 번을 자리에서 일어난다. "다시 가서 풀어~" 그래도 또 엉덩이가 들썩들썩, 몇 자 쓰다가 고개를 들더니 한마디.

 

- "엄마, 그런데, 나, 어제를 생각하니, 왠지 눈물이 난다?"

마지막의 억양, 위로 살짝 높이는. 그러고는 코끝이 빨게지고 삐질삐질, 울기 시작한다. 나도 아이를 붙잡고 운다.

 

- "엄마도 알림장을 사흘씩이나 학교에 두고 온 것이 그렇게 화낼 일이었나 싶어..ㅠ.ㅠ 엄마도 어제 너 잘 때 많이 울었어..ㅠ.ㅠ"

- "어, 그랬어? 왜?"

- "엄마가 자기 아들한테 잡아 죽인다고 그러고, 엄마가 왜 그랬는지 ㅠ.ㅠ (지금 풀고 있는 독해문제) 주인마님이 거위를 잡아 죽이는 거지 ㅠ.ㅠ "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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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아침부터 <전쟁과 평화> 논문을 쓰려고 했는데 아이 관련 잡글(-_-;;)을 하나 쓰고 작은 원고 하나를 마감하고, 그리고 저 장면을 복기해둔다. 나름으론, '엄마 반성문'이지만, 흑, 또 반복될 테지. "엄마, 알림장 못 챙겨온 것이 그렇게 큰 잘못이야? 심각해?" 그러게, 아이의 질문을 곱씹게 된다. 매사에 이렇다. "엄마, 내가 이 문제도 못 풀면 장애인이야?" "엄마 2학년이면 이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해? 못하면 심각한 거야?" 나의 말들, 그리고 점차 학교에서 접했을 친구들과 선생님들의 말씀들을 자기 식으로(?) 저렇게 변주해서(혹은  잘 못해서)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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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도서관에 이 책이 있어 깜짝 놀랐다. 휙, 훑어보고 동영상을 잠깐 봤는데, 격하게 공감되는 대목이... 1) 퇴근하면 당장 TV에 손 부터 얹어보고(TV 얼마나 봤나 확인) 그때부터 아이들을 '심문', '감시'했다는 것. 숙제, 시험 성적, 독서 등등. 2) 그 다음, 스스로 의지와 자제력, 성취력이 강하고 대략 입지전적 인물이라 아이들에게 칭찬을 해주는 데 인색했다는 것. 잘 하면, 뭐 이 정도는 당연한 거지, 더 잘해, 이런 식. 

두 대목 다, 지금 나한테 너무 적용되는 것이다.

"알림장 내용 뭐야? 가져왔어? 오늘 수업은 뭐 했어? 국어(수학), 내용 뭐야?"

엄마가 아니라 수사관, 취조관, 뭐 대심문관이다 -_-;;

"어, 그 정도면 잘 했어, 자 그 다음은~"

헐, 나의 아이는 심지어 지적 장애가 있는데, 이렇게까지 하면 장애아 학대?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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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니 어제도 가통파일 빼놓고 오고 파일 안에 접때 시험본 단원평가문제지를 가져왔어야 했지 싶다. 알림장 내용 중 하나가 <단원평가 재시험, 공부하기>(?)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제는 별로 화를 내지 않았다. 전날 화를 너무 낸 까닭, 그래서 에너지가 부족(ㅠ.ㅠ)한 까닭이고, 또 목요일이 사실상 일주일의 마감이라(금에 수업이 없어서) 그렇기도 했으리라. 즉, 일관성이 없는 것이다. 덧붙여, 바로 이런 태도. 마치 이걸 하지 않으면, 그것도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마치 지구가 멸망하는 것 같은 이런 태도 말이다.

 

"엄마, 이거 안 하면 내일 지구가 멸망해?"

"엄마, 국어 문제 꼭 풀어야 돼?"

"엄마 이 책 오늘까지 다 읽어야 해?"

 

사실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이래도 흥, 저래도 흥, 다 상관없는데 말이다. 그래서 나도 스스로에게 말해본다. 꼭 장편소설 써야 해? <전.평.> 논문 꼭 써야 해? 그 교수 꼭 되어야 해? <악령> 번역, 꼭 올해까지 끝내야 해? 그러게 말이다 ㅠ.ㅠ 다 내려놓으면 편하긴 할 텐데 말이다.

 

*

 

첫 단원평가. 말이 수학이지 문장 해석이 안 되면 못 푼다. 그 다음 20문항. 뒤로 갈수록 주의집중력이 약해지는 것이 보인다. 난이도도 높아진다. 그럼에도 시험 시간에 친구들과 같이 열심히 풀었다는 것이 기특하다.   

 

 

 

 

*

 

아이 하교. 4월부터 교실(돌봄)까지 가지 않고 교문 앞에서 전화를 드리면 돌봄 선생님이 보내주신다. 그러면 아이가 나온다. 첫 주에는 교문 안에서 기다리고 이번주부터는 교문 밖, 심지어 어제오늘은 교문 밖 길건너(1차로지만 차들이 더러 다닌다, 학원 셔틀도 있고)에서 기다린다. 아침에 등교할 때도 오늘은 사실상 교문 앞에서 헤어졌다. 교실이 3층인데 혼자서 올라간다.

일반 아이들 같으면 한달음에 휘리릭,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발달이 우리 아이는 한 단계씩, 이렇게 거쳐야 하는 것이다. 그나마 경계에 가까운 3급이라서 그렇지, 치료실을 보면 다들 너무 늦다, 정말 너무 더뎌서 옆에서 보는 내가 희망을 다 잃어버릴 정도다 ㅠ.ㅠ 다섯살부터 보아온 아이들이라 더 그렇다. 그나마 희망이라면 절망 역시 허망하다는(루쉰) 것일뿐.

 

 

철제 교문 너머에서 아이를 지켜본다. 걸음이 여전히 너무 흔들거려 제일 마음 아프다. 어쩌랴. 그래도 아이가 많이 좋아진 것이, 그런 단적인 증거인즉, 내가 아이의 급우들을 잘 모른다. 작년에는 4층까지, 심지어 교실 앞까지 데려다 주고 금요일에는 내가 직접 교실까지 데리러 갔다. 하원하는 아이들을 (심지어 옆반 아이들까지) 다 보고 더러 애들과 대화도 나누고(^^;) 그랬는데, 요즘은 사실상 교문 앞에서의 이별과 만남이다. 아이의 급우들을 보는 건 주로 교문 근처나 학교 바깥(학원, 방과후수업 등을 오가는)이다. 그때마다, 헉, 한다. 우리 아이의 발달 속도가 그만큼 미미한 것이다. 이른바 '따라잡는다'라는 말을 적용하는 시기를 만 6세로 정해놓은 이유를 알 것 같다. 만 8세까지 넉달도 남지 않았다니, 우울하다. 그나마 덜 우울한 건 각종 행정 처리를 다 해놓은 것, 그리고 사실상의 제자리걸음(심지어 퇴행! ㅠ.ㅠ)까지는 아니라는 것.

 

*

 

날씨가 무척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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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9-04-12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돌아보게 하는 글이네요. 아이가 대견합니다.

푸른괭이 2019-04-13 09:46   좋아요 0 | URL
갈 길이 멉니다. 결국에는 자립과 직업 활동인데요..ㅠ.ㅠ

hailey312 2019-07-10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장애아도 한국엄마 아래에서 키우면 이렇게되는군요. 같은장애라도 학습수준은 세계 최고일듯ㅋㅋ..

푸른괭이 2019-07-10 10:03   좋아요 0 | URL
님은 외국인 엄마인가요?^^;
우리 아이는 장애등록을 하긴 했으나 언어성 지능이 정상 범주입니다. 학습도, 담임선생님 말씀으론, 평균은 족히 웃돈다고 하시네요.(1단원 평가는 50점 이하 수두룩 -_-;;) 그나마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이마다 장단점이 다 다르니까 엄마가 잘 살펴보시고(병원 가서 검사 꼭 받아보시고) 이런 치료나 활동을 도와주시면 될 듯합니다.

hailey312 2019-07-10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뇨 한국인입니다 외국 학교를 잠시 다니긴했습니다 .. 저는 초등학교때 60점50점 맞았었는데. 저렇게 소통도되고 수학도 풀고 70점80점맞는데도 장애로 구분되는게 신기해서요..제가 무지한건지 ㅠㅠ .. 글이 너무 재밌어요!! 계속읽게되네요. 답글감사합니다^^

푸른괭이 2019-07-10 14:33   좋아요 0 | URL
음, 저도 우리 아이 공부하는 거 보면 장애 같지 않아요 -_-;
점점 더 그런 생각 들어요, 엥, 이거 나보다 잘 풀잖아? 이런 생각요 -_-;

그런데 바지 뒤집어진 것을 아직도 바로잡지 못합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