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가 거의 다 돼서 아이와 엘리베이터를 탄다. 요즘 둘 다 '군기'가 빠졌다. 방학 초반에는 그래도 8시 50분 도착을 목표로 움직였는데. 엘리-터 안에 이런 종이가 붙어 있다. 비교적 멀쩡하게 쓴 글이라서(의외로 이 정도의 문장, 맞춤법을 갖춘 글을 일상에서 찾기 힘들다! - 우리 국어 교육의 현주소를 짚어보게끔 한다^^;) 아이에게 읽어보라고 한다. 엘리-터가 15층(?)까지 올라갔다가 1층으로 내려갔지만, 마지막 한 문장은 못 읽었다.

 

 

밖으로 나간 다음 아이에게 무슨 내용이었냐고 묻는다. "어, 담배를 피우면 연기가 들어오니까 낮은 층에서는 어, 담배를 아주 피우지 말라고~"  없는 말('낮은 층')도 마구 집어 넣고, 표현도 바꾸고(나가서 피워달라는 것이지, 피우지 말라는 게 아니다), 발음과 억양의 어눌함은 말할 것도 없고, 문형도 중언부언이다. 그럼에도 한 1, 2분(?) 정도 저 정도의 텍스트(!)를 읽고 '다시 말하기' 할 정도로 내용을 접수했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 "뭐에 대한 내용이었어? 1. 담배, 2. 술, 3. 연필, 4. 사과~"

- "1. 술~"

- "뭐??"

- "아니. 2. 담배~"

- "그럼 뭘 하라는 내용이야? 1. 술을 많이 마시지 마라, 2.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지 마라, 3. 밥을 많이 먹어라 ~~"

- "2번~ 담배를 피우지 말아라~"

 

말하자면 이런 것이 언어치료실에서 이루어지는 내용이다.(내가 더 심화-_-;;시켰다.) 들려주고 답하게 함으로써 청각적 집중력을 높인다. 보여주고 하면 시각적 집중력도 높아진다. 물론 이 경우에는 한글을 읽는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혹은 반대로, 이런 식으로 한글/글자와 더 친해지게 한다. 단순히 읽는 게 아니라, 빨리 읽고 빨리 내용을 파악하도록 한다. 비언어성 지능이 낮은 경우, 그림 카드를 많이 활용하도록 한다. 말이 아닌 그림을 놓고서 시퀀스, 즉 전후, 선후 관계를 쭉 파악하도록 하거나, 한 장의 그림을 놓고 상황을 예측하게 한다. 가령, 염소 울타리 문이 열려 있고 밖에는 빨래가 널려 있다. 자, 어떻게 될까. 아이로 하여금 말하도록 한다.

 

 

 

 

 

 

 

 

 

 

 

 

 

보통 아이들이 많이 보는 듯하여 나도 1권을 구입, 조금씩 해보고 있다. 최근에는 다른 쪽이 너무 급해 잠깐 접어두었다.(그리고 독해란 곧장 책읽기이므로.) 바로 이것.

 

 

 

 

 

 

 

 

 

 

 

 

 

 

<지각발달 영역>은 지각추론, 즉 언어적 정황을 최대한 배제한다. 반면, <언어발달영역>은  거의 100프로 언어적 영역이다. 처음부터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지적이든 자폐든 3급에 가까운 2급도 따라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왜냐면 도입부터 이미 문장-문단 단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뒤로 갈수록 말이 많아진다. 수준도 무척 높아져, 초등학교 고학년, 심지어 중학교 수준이라 여겨질 정도다. 상식-지식의 영역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이 두 가지가 말하자면 '핵'. 그 다음 방법론적 영역이 작업기억과 처리속도이다. 아이의 처리속도가 낮은 건 물론 슬프지만, 그보다 더 절망적인 것은 지각추론(이게 하드웨어인데!)이 60점대라는 것이다. 이게 최소한 70점은 넘었어야 했는데, 에효. 

 

 

 

 

 

 

 

 

 

 

 

 

 

다시, 언어지능으로 와서, 어느 지점부터 아이의 수준은 문장에서 문단으로, 문단에서 슬슬 텍스트로 이동하고 있다. 위의 종잇장만 해도 짧지만 텍스트라고 할 만하다. 소재, 주제, 논점(더 생각해보라~) 등이 다 있다.

 

한 반년 정도 아이의 언어 치료를 담당했던 선생님이 이 부분을 잘 해주셨다. 언어 텍스트와 비언어 텍스트도 적절히 활용하고 중간중간 아이의 컨디션에 따라 인형, 블록, 보드게임 등으로 놀이치료까지 병행해주신 셈. 40분이 결코 짧지 않다!(10분은 상담.) 그 시간을 얼마나 쫀쫀하게 사용하느냐, 아이의 지능과 장단점과 그날그날의 컨디션을 파악, 그에 맞는 '워크시트'(!)를 어떻게 준비하느냐 등에서 역량이 드러난다. 대부분 수업 준비물이 많아서, 다음 시간으로 미루거나, 엄마, 즉 나한테 '숙제'로(-_-;;) 주셨다. "오늘 서준이가 컨디션이 안 좋은지 ㅂ 발음이 좀 새는 것 같아요, 집에 가실 때 이런 단어 좀 연습 시키세요." 그러고는 단어 목록을 짧게 보여주신 적도 있다. 김밥, 주먹밥, 밥솥, 고추밭~. 무척 좋았던 아이의 첫 언어 선생님 이후, 이렇게 잘 맞는 사람 찾기 쉽지 않은데, 건강상의 이유로(ㅠ.ㅠ) 그만 두셨다.

 

그렇게 새 선생님으로 바뀌고 두 달. 아무래도 언어 치료는 이제 그만 접고  정녕 '엄마표' 언어 치료, 혹은 논술(초등에 논술이라니-_-;;)로 가기로 한다. '읽고 쓰기'란 무엇인가. '듣고 말하기'의 문어 버전. 이 두 영역(세분하면 네 영역이지만)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며 꾸준히 발전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이 된다!

 

- "동물이 글 읽고 쓰는 거 봤어?"

- "아니."

- "글을 읽고 쓰는 건 사람 밖에 없단 말이야. 그러니까 열심히 읽고 써야겠지?"

- "아, 내가 요즘 글 쓰는 게 왜 이렇게 힘들지!" 툴툴 ^^;;  

 

당장 '바른글씨 쓰기'도 제대로 안 되지만 작업치료를 병행하면서 꾸준히 쓰기.  그리고 한 문장이라도 자기화된(?!) 말/글이 필요하다. 

 

- "제목(<헨젤과 그레텔>)은 재미있지만 마음에 드는 그림이 하나도 없어~"

- "그럼 그렇게 써."

- "이건 과자로 만든 집이고, 어, 이건(점들) 설탕을 표현한 건데 설탕 같아?" 

 

 

 

 *

 

학회를 잘 안 가지만(자꾸 거절하니 부르는 데도 없고) 간만에 토론하러 갔다. 공개된 공간에 앉아 타인의 정돈된/준비된 말을 집중하여 경청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실감했다. 차라리 말하는 게 낫다, 라고 할 정도다. 지능 낮은 아이들의 가장 큰 특징이 오랫동안 잘 앉아 있지 못하고 오랫동안 잘 듣지/보지 못하는 것이다.

 

어제 돌봄교실, 다른 반, 아이들의 고개와 시선이 일제히 앞을 향하고 있다. 뭐지? 점심 식사 전, <검정고무신> 시청. 일전에 다소 문제적으로 보였던 그 이** 역시 유** 옆에 앉아 시선을 그 쪽으로 향하고 있다. 어떻게 '완통'이 가능한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세부사항을 떠나서 집단 속에 묻어, 묻혀 갈 수 있는 수준인 것이다. 그 이후, 혹은 더 깊이, 가 문제이다. 아이의 2학기가 걱정이다.

 

*

 

- "엄마, 그런데, 왜 시간은 뒤로(는) 안 가?"

어느 날 아침, 참 뜬금 없는, 그러나 놀라운 질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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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nessy 2019-07-19 0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지치료 관련 도서에서도 님 글을 보았는데 우연히 이책 리뷰에도 또 님 글이 있네요.. 아마도 저희 아이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아이를 키우고 계시는것 같아요.. 엄마 아이 모두 힘내시라는 한마디 드리고 싶어서 댓글 남기고 갑니다~

푸른괭이 2019-07-19 09:07   좋아요 0 | URL
예, 발달 늦고 느립니다 -_-;; 경증이라 정말이지 한끝만 따라잡으면 될 것같은데 그 한끝이 구만리입니다. 아이마다 느린 정도나 양상은 다 다르더라도 힘든 건 다 똑같은 건 같더라고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