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었다고 말했다 - 2018년 제42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손홍규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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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모.

제목에 이끌려 이 책을 골랐다. "한 아이에게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은 동네 사람과 교류할 줄 모름에도 불구하고 스쳐지나가는 미성년자에게 한 없이 오지랖떠는 나를 정당화해주는 말이다. 난 우리 아이들에게 엄마 키보다 더 커지기 전에는 부모 손 놓고 길 걷지 말라고 엄포를 놓으며 키웠던 사람이었고, 부모들이 길에서 애들 손을 잡고 있지 않으면 뚫어져라 지켜보는 사람이며, 전화통화를 하거나 지인과 수다를 떨다가 순식간에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 대신 아이 뒤를 대신 쫓아가 되찾아준 적이 3번 있다는 걸 못내 자랑으로 여기는 사람이다. 휴대폰 보며 길을 건너는 학생들에게 위험하다 경고하고, 담배피는 학생들에게 걱정 한 마디 건네고, 무단투기하는 학생에게 쓰레기통에 버리라고 주워서 건네주는 그런 아줌마다. 그런 내가 제목에 기대했던 거와 소설은 결이 달랐다.


방현희.

공랭식이 뭔지 모르겠고, 포르쉐를 꿈꿔 본 적 없다. 우와 이 작가 자동차 덕후인 건가? 무의식적으로 남성작가라고 생각했는데, 여성작가라고 하니, 생뚱맞은 친구 여자들 이야기가 더 당황스러워졌다.


정지아.

존재의 증명.

온갖 브랜드의 소비가 나를 증명할 수 있다니, 주인공은 지갑도 시간도 부유한 사람이었나 보다.

또한 작가도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단편이다.

이 작가의 다른 책을 읽어봐야겠어 열심히 검색해 보았다.


정찬.

4월 26일 강경대 열사 맞아 죽다.

4월 29일 박승희 열사 분신

5월 1일  김영균 열사 분신

5월 3일  천세용 열사 분신

5월 4일  박창수 열사 고문으로 죽다.

5월 8일  김기설 열사 분신

5월 10일 윤용하 열사 분신

5월 18일 이정순 열사 분신

5월 18일 김철수 열사 분신

5월 22일 정상순 열사 분신

5월 25일 김귀정 열사 최루탄과 지랄탄에 질식하여 죽다.

대학 1학년의 봄 강경대 열사의 죽음에 충격을 받았지만, 거꾸로 쓰는 한국현대사 책을 믿지 못했던 난 도서관에서 다른 현대사 책들을 이것저것 뒤적거렸고, 5월 18일 강경대 열사 노제 때 처음으로 데모를 나갔고, 이정순 열사의 분신을 목격했다. 그 날이 내 20대를 바꾼 날이다. 5월 25일에는 을지로 인쇄골목에서 곤봉으로 처맞다가, 머리채를 잡힌 채 질질 땅바닥에 끌려가다가, 여학생 하나를 더 잡겠다고 전경이 곤봉을 휘두르며 욕심을 내는 사이에 어찌 어찌 혼자만 도망을 치다가, 골목 사이로 숨으려고 머뭇거리다 누군지도 모르는 남학생이 여기 있다간 죽는다는 고함에 같이 손 붙잡고 동국대까지 뛰어 들어갔다가, 숨도 못 쉬고 켁켁 토하다가, 내가 도망친 그 골목에서 김귀정 열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날 난 백병원 영안실을 지킬 사수대 모집한다는 소리를 뒤로 하며 집에 갔다가, 다음날 밤새 백병원이 침탈당할 뻔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 날 처음으로 화염병을 만들었다.

그런 기억들이 가득 올라와 읽는 내내 참 힘들었는데, MZ 세대들은 그 윗세대 작가들이 주제가 다 비슷비슷해서 재미 없다는 말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미안. 우리들은 아무리 토하고 또 토해도 아직 토할 게 남아 있어서 그래.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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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하다는 말보다는 웃긴 물리학이라는 제목이 더 잘 어울릴 정도로 유머코드가 딱 내 취향이다. 혹은 낭만 물리학이라는 제목도 그럴싸하다. 후테르만스는 ˝별이 빛나는 이유를 바로 어제 알았어요˝라는 역대급 고백으로 결혼에 성공하고, 칼 세이건은 우리를 별의 직계후손이라 칭해준다.
소프트웨어의 문제점을 껐다 켜기로 해결하고, 코 들이대고 냄새 맡기로 화학분석법을 시도하고, 가모프와 후테르만스의 계산실수, 안개상자로 얻어걸린 입자의 발견, 힉스보손이 왜 신의 입자로 불리게 되었는지 유래, 회의 수를 줄이는 방법을 모색하는 연구팀 등을 생각하면 어나더 레벨 천재라고 여겼던 물리학자들이 시트콤 빅뱅이론에 나오는 너드마냥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19세기만 해도 인간은 결코 원자를 볼 수 없을 거라 했는데 오늘날의 물리학자들은 힉스입자의 존재까지 실험으로 증명했고 중력파도 찾아냈으며 LIGO도 만들고 있다.

19세기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주 시작의 신비를 풀고자 한 물리학자들의 노력을 재미있게, 낭만적으로, 인간적으로, 쉽게 해설해준 작가의 재주에 경의를 표한다. 작가가 실험물리학자다 보니 물리이론을 쉽게 풀어쓰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다. 이론물리학자의 반증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열심히 공부했을 거라는 게 능히 상상된다. 

또한 이를 맛깔스럽게 번역하며, 본인의 전문지식을 뽐낸 역자에게도 감사 드린다. (역자의 유머감각도 최고다. 야릇한 쿼크만 형용사라며 투덜거릴 때 정말 빵 터졌다. 게다가 영어를 남발하지 않고 다 한국어로 번역해내려 한 노력도 감사하고, 슈퍼필드를 초장이라고 번역하지 않은 것도 고맙다. ㅋㅋ) 

이 두 사람의 노력 덕분에 1장부터 7장까지 읽을 때 고등학교때 물리수업과 지구과학 수업의 기억이 제법 되살아나는 기적이 발생했다. 8장에서 10장까지는 딸아이 물리 교과서를 슬쩍 읽어보고 뭔가 새로운 게 많이 추가했군 감탄했던 내용이 해설되어 있다. 11장 이후는 최근 과학기사나 다큐에서 다뤄지는 21세기 물리학의 현주소이다. 특히 12장에서는 드디어 이 책을 쓰게 된 이유 사과파이를 만들기 위한 표준모형이 다뤄진다. (작가는 368쪽에 이 그림을 삽입하면서 드디어 여기까지 썼어!!!라며 신나했을 거 같다. 사실 나도 신났다. 내가 여기가지 무사히 읽다니!!!)
아직도 물리학자들에게 파동함수의 붕괴와 파동 입자 이중성은 미스터리로 남아있다는데 물리학자인 외삼촌이 왜 신을 믿게 되었는지 이해가 되는 대목이었다. 이 책을 통해 물리와 외삼촌과 부쩍 친해진 느낌이 들었더랬다. 문과도 키득대며 읽을 수 있는 과학책으로 강추!

유일하게 마음에 걸린 점. 프랑스인의 프랑스어 사랑에 대한 비꼼이 혹시 대영주의 시각은 아닐까 살짝 걱정.

여성주의 뱀꼬리.
1.아인슈타인의 첫번째 아내 밀레바는 아인슈타인과 동거하며 그의 뒷바라지를 하다 졸업도 제때 못하고 임신으로 재시험도 못봤다.
2. 에미 뇌터라는 과학자를 지금이나마 알게 되어 기쁘다
3. 우젠슝은 중국인이고 여자라는 이유로 노벨상에 배제된 게 맞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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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의 과학 - 왜 모든 생명체의 크기는 서로 다를까?
존 타일러 보너 지음, 김소정 옮김 / 이끌리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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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은 5개의 법칙으로 요약된다. (자세한 수식은 책을 보시길)


1. 종의 힘은 종의 무게에 비례한다: 개미의 힘<인간의 힘<코끼리의 힘

생존을 위해 힘이 센 것이 유리하므로 진화의 자연선택론은 크기를 키우는 방향으로 진행된 경향이 있다.


2. 종의 표면적은 종의 무게에 비례한다: 개미의 표면적<인간의 표면적<코끼리의 표면적

표면적이 넓다는 것은 외부 자연환경의 영향에 더 많이 노출된다는 것이고, 크기를 키운 생물은 항온성을 유지하기 위해 보다 다양한 전략이 필요하다


3. 복잡성은 무게에 비례한다: 개미의 복잡성 < 코끼리의 복잡성 < 인간의 복잡성

2번 법칙에 의거하여 진화의 과정에서 세포의 분업이 발생하고, 이는 장기의 세분화와 뇌의 복잡성으로 연결된다. 여기서 1,2번을 좀 더 중요한 전략으로 삼느냐, 3번을 중요한 전략으로 삼느냐, 특히 어떠한 세포의 복잡도를 높이는가 등에 따라 진화의 방향은 다양하게 갈라지는데, 인간은 뇌의 발전에 더 투자한 셈이다. 상대적으로 후발주자인 인간은 이미 코끼리의 크기를 따라잡는 게 불가능했던 것일 수 있다.


4. 개체수는 무게에 반비례한다: 코끼리의 개체수 < 인간의 개체수 <개미의 개체수

무게가 커질수록 섭취해야 하는 자원이 늘어나므로 자연히 더 많은 활동 반경을 장악하게 되고, 거주지의 면적은 제한되어 있으므로 자연스레 개체수는 일정한 값에 수렴하게 된다. 또한 크기가 커질수록 성장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자연스레 한 세대 내에서 번식할 수 있는 숫자는 제한될 수 밖에 없다.


5. 물질대사 속도는 무게에 비례한다: 개미의 물질대사 < 인간의 물질대사 < 코끼리의 물질대사

먹는 양도 많고 표면적도 넓은데 물질대사의 속도가 빠르다면 해당 생물은 생명 유지 효용성은 극악에 치닫게 될 것이다. 따라서 크기가 큰 생물일수록 소화도 느리고, 심장 뛰는 속도도 느리며, 체온의 변화도 느리게 발생하여 생존 가능성을 높이게 된다.


뭐 이 정도가 내가 이해한 건데, 크기의 과학이라는 주제로 진화론의 자연선택을 충분히 설명해주고 있다는 것과 수많은 도표와 삽화로 쉽게 해설해준다는 점에서 아주 추천하고 싶다. 걸리버 여행기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예로 들어 재치있게 풀어준 것도 고맙고.


뱀꼬리)

예전 회사 동료와 회식을 하던 중 키가 매우 큰 직원과 진화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대개의 한국인들은 농경에 최적화하고 사계절의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키가 작은 방향의 진화를 선택한 거 같다는 얘기를 하자, 그럼 자기는 미개한 거냐며 버럭버럭 화를 냈다. 진화=발전이 아니라 적응이라는 것을 설명하려고 시도했으나, 벌떡 일어나 다른 테이블로 가버리는 바람에 대화를 이어갈 수 없었다. 지금은 나도, 그 사람도 다 다른 회사에 다니는 마당이지만 이 책을 권하면, 거 보라고, 내가 더 뛰어난 거라고 이해하지 않을까 쉰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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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게이블즈 빨강머리 앤 세트 - 전10권 (반양장) 그린게이블즈 빨강머리 앤
루시 M. 몽고메리 지음, 김유경 옮김, 계창훈 그림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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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빨간 머리 앤을 정말 좋아했다.

뮤지컬 애니도 좋아했고, 키다리 아저씨도 좋아했고, 소공녀도 좋아했고.

왜 난 고아 소녀 얘기를 이렇게 좋아하나 생각해본 적도 있다.

그러고보니 '작은 아씨들'도 좋아했는데, 나중에 아버지가 합류하긴 하지만,

소설의 80%는 아버지의 부재 상황에서 이루어진다.


경상도 집안에서 자란 난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없는 얘기가 좋았나 보다.

그러면서도 좀 더 평화로운 가정에서 자라는 거 같은 친구들을 부러워 했고,

무엇보다 어딜 가서든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가는 앤의 일생이 좋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50이 된 지금까지 가장 좋아하는 책으로 늘 빨간 머리 앤을 꼽을 수 있었던 건

이 책이 내게 준 것이 이상적인 가족에 대한 대리 경험 그 자체였기 때문이리라.

내가 사춘기를 겪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가 성인이 되는 일련의 과정에 있어

앤은 나이 먹어가는 인생의 지침서가 되어 주었다.


딸아이도 10권을 다 읽었으면 좋겠는데, 딱 1권만 읽고 끝이다.

뭐 세상은 달라졌고, 딸은 딸만의 대리 경험과 지침서를 찾겠지 싶지만 그래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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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9-28 15: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집 애들은 아예 읽지도 않습니다.
경상도 가부장적인 아버지... 에고 저도 할말 많습니다. 지금도 저와 아버지의 관계는 애증의 관계인데 솔직히 애와 증 어느쪽이 더 큰지 모르겠어요. ㅎㅎ

카스피 2022-09-28 16: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뭐 저도 앤은 1권만 읽었는데 이게 10권짜리란건 정말 나중에 알았어요

라로 2022-09-29 1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쉽지만, 나중에라도 읽게 되지 않을까요??
제가 그랬거든요!^^;;

mini74 2022-09-29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길버트랑 결혼한다고 속삭이면 읽지 읺을까요 ㅎㅎ 경상도 아버지 ㅠㅠ 그렇죠.~ 앤의 아이들 이야기도 슬프고 좋았어요. 아마 조금씩 책 속 앤의 나이가 되어가면 꺼내 읽지 않을까요.

조선인 2022-09-29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전 애가 없었어요. 쿨럭. 그냥 도의와 도리와 체면 정도?
카스피님, 10권 다 재밌어요
라로님, 그러길 바라며 책장에 빨간 머리 앤 코너를 만들어뒀어요. ㅋㅋ
mini74님, 길버트 이야기 뿐 아니라 애 낳은 얘기까지 다 해줬어요. 딸아이가 영어이름이 리라입니다.
 
희망
양귀자 지음 / 쓰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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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건대사태는 나무위키에 10.28 건국대학교 항쟁으로 기록되어 있다.

1990년에는 양귀자의 소설 희망에 건대항쟁을 주도한 운동권 이야기가 담겼고,

1993년에는 희망이 드라마로 만들어졌으며,

2002년에는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서 재조명되었다.


반면 1996년 연대사태는 나무위키에 연세대 사태로 기록되어 있고,

최소한 난 여지껏 이를 재조명하여 다룬 문학 작품이나 드라마나 다큐 프로그램을 본 적이 없다.

두 사건 다 주도한 학생운동단체가 빨갱이로 치부되었던 건 똑같은데,

건대 사태의 애학투련은 전대협으로 한총련으로 성장했던 거에 비해

연대 사태의 한총련은 전국의 과 학생회장, 단대 학생회장, 총학생회장을 범죄자로 만들었고,

한총련 탈퇴각서를 쓰지 않으면 다 수배자가 되는 통에 학생운동이 약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건대 사태를 야기한 건 전두환 군부정권이었고,

연대 사태를 야기한 건 문민정부란 허울을 뒤집어쓴 김영삼 정권인데,

군부독재정권도 못 이룬 학생운동 해체를 김영삼 정권은 해냈다는 게 참 기가 막힐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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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2-09-28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3년 드라마 희망이 종영되는 걸 못 보고 훈련소로 간 기억이 나네요. 별 게 다 기억나네요.

조선인 2022-09-29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드라마 희망과는 연결도 못 시키고 읽다가 찌르레기 아저씨의 일기를 보고서? 어라? 뒤늦게 기억이 났어요. 세상은 요지경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