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쟝쟝님이 내게 댓글을 달아줬다.
하하! 모두 자기만의 연필깎이가 있을 거예요. 꼴도 보기 싫었던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도 알아서 좋아하게 되는 순간이.
경상도 보수꼴통 집안인 우리 부모님에게 맏아들은 유일한 사랑이었다고 늘 생각했었다. 그러나 어느덧 내가 결혼해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문득 문득 우리 어머니에게 내가 참 귀한 딸이었구나 한참이나 뒤늦게 깨달은 것들이 있다. 오그락지(무말랭이)가 가장 대표적이고, 김밥 얘기도 빼놓을 수 없는데, 그 못지않게 아린 추억이 연필깎이다.
그 귀한 큰아들에게도 안 사주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늘 필요했던 작은아들에게도 안 사줬던 연필깎이를 어머니는 막내딸 초등학교 입학 기념으로 사줬더랬다. 오빠들에게 노상 깎아달라고 부탁하다가 이제는 초등학생도 되었으니 내가 직접 깎아보겠다고 호기롭게 칼 들고 설치는 꼴을 우리 어머니가 보고야 말았던 것이다. 어머니와 처음으로 같이 문방구에 가서 연필꽂이를 고를 때 내가 반했던 건 샤파 열차 연필깎이였다. 은색으로 번뜩이는, 기차 모양의 연필깎이는 당시 최대 인기제품이었고, 문방구 주인은 비싼 값을 한다며 열심히 추천을 했더랬다. 어머니는 너무 비싸다며 값을 흥정하다가 기어이 그냥 집으로 오고야 말았다. 상심한 나를 위로하느라 작은오빠는 연필깎이 없어도 이렇게 예쁘게 깎을 수 있다 라는 모범을 보여주며 한 타스를 몽땅 깎아줬더랬다.
그 며칠 후 어머니는 남대문PX상에서 내쇼날 연필깎이를 사왔다. 버튼을 눌러 1단계부터 3단계까지 뾰족한 정도도 조절할 수 있고, 전기로 동작하는 자동제품이라 열심히 손잡이를 돌릴 필요도 없다. 당연히 샤파 연필꽂이보다 훨씬 비싼 제품... 난 어린 마음에도 어머니의 행동이 앞뒤가 안 맞는다 생각했고, 오빠들은 딸만 편애한다며 아우성이었다.
어머니의 속내는 그로부터 20년쯤 뒤에서야 들었다. 외할아버지의 옹니 때문에 초등학교도 고작 일 년을 다녔던 어머니로서는 딸이 학교에 들어간 게 너무 감격스러웠고, 그 딸이 무사히 초등학교를 졸업하기를, 의무교육 기간뿐 아니라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다니기를, 이왕이면 외삼촌들처럼 대학도 나오고, 지가 원하면 석사도, 박사도 다 하기를 못내 바랐던 것이다. 장사하느라 바빠 그 귀한 아들의 입학식도, 졸업식도 참석 못 하기 일쑤였지만, 막내딸 졸업식만은 꼬박 꼬박 챙기셨던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을 너무 늦게 알았다. 그렇게 난 또 눈물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