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읽은 책 중 최고. 내게 포르투갈과 브라질 역사의 입문서가 되어주었고, 볼테르의 ˝캉디드˝ 해설서가 되어주었으며, 폼발 후작 카르발류가 그의 왕 주제 1세를 위해 세운 기마상보다 2배도 넘는 높이로 후대의 포르투갈인들이 후작의 동상을 세운 이유를 이해하게 해주었다.
화차로 처음 미야베 미유키를 알게 된 후 그의 책을 꽤 찾아읽었다. 하지만 어째 고른 책이 하나같이 실패했고 더 이상 그의 책을 굳이 골라읽지 않았다. 더군다나 모방범은 500쪽짜리 3권이라 눈길을 주지 않았었다. 3권까지 몰아 읽은 지금 이제와 후회를 한다. 이 사람은 장편에 훨씬 능하고 에도물보다 현대물에 훨씬 장점이 있다고 생각된다. 비록 추적추적 가을비 내리는 날이지만 얼른 끄적임을 마무리짓고 그녀의 다른 책을 찾아 도서관을 가봐야겠다.
영애를 찾아서 소년은 여행한다. 마침내 그 여행은 베른에서 끝났다. 이로써 족하다 생각했는데 청년은 굳이 안젤라에게 편지를 썼다. 난 그 4장짜리 글을 사족이라 여기며 혀를 찼다.그러나 안젤라의 답장을 읽고서야 비로서 깨달았다. 소년의 여행은 나이트 미처씨를 찾기 위해 시작된 것임을. 여행의 시작은 수용소가 아니라 평양이었음을 뒤늦게 눈치챘다. 결국 이 소설은 푸앵카레의 추측에 대한 증명인 것이다. 수학의 증명이 미를 추구하듯 이 책의 증명도 아름답다. 그동안 내가 읽은 이정명 글 중 가장 예찬하고 싶은데 전세계를 누벼야 하는 스케일상 드라마가 되는 건 불가능해 보여 아쉽다.
이유는 여자다. 그래서 여왕이다. 이 이상 말하는 건 스포일러니 꾹 참는다. 아. 굳이 몇 마디는 더 붙여야겠다. 여름휴가의 마지막 날에 이 책을 잡다니 난 참 재수가 없다. 오후가 가버리기 전 다른 책을 읽어 상쇄를 해야겠다. 해체된 기계마냥 먹먹해져버린 가슴을 메꿀 따스함이 간절하다. 제대로 처방하지 않고 땡볕으로 나갔다간 백주의 살인 혹은 소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답답하다. 먹먹하다. 고통스럽다. 그들의 허파에 든 건 바람도 물도 아니고 시커멓게 죽어버린 피다. 선지마냥 굳어가고 있는 피는 관으로 뽑아낼 수 없을 뿐 아니라 온 몸 구석구석 퍼져 눈을 멀게 하고 생명을 소각시킨다. 다시 한 번 강조하는데 휴가의 마지막날에 읽을 책이 아니다. 이게 별 다섯 개를 주는 이유다.